양평, 그리고 양평, 대한문학세계 객원기자 소운/박목철
양평,
북한강 주변의 지역 중 평(平)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지명이 여러 곳이 있다.
청평, 가평, 양평이 그러하다. 외국의 도시나 지역명 중에도 뜻은 몰라도 불리는 이름에서
친밀하고 평화롭다는 느낌이 드는 지명이 있게 마련이듯 평이라고 불리는 지역에는 왠지 정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에서의 오랜 생활을 접고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이 경기도 양평이다.
위에서도 들었듯이 양평이라는 지명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새로운 주거에 대해 서먹함보다는
막연하지만 낯설지 않은 정겨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서울과 지방간의 문화적 격차가 크고 생활 여건이 좋지 않아 지방 생활을 기피하기도 했다.
같은 서울에서도 사대문 안과 밖을 달리 보던 때도 있었으니 하물며 시골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경제가 좋아지며 이제는 지방이 오히려 서울 변두리보다 생활 여건이 좋다고들 하는 세상이다.
양평만 해도 면 단위인 옥천면 체육공원에는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전천후 체육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비나 눈이 내려도 맞지 않고 운동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 야간 경기를 위하여
조명 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는 것을 보면서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는 흐뭇함에 빠지게 된다.
손주가 그네 타기를 좋아해서 옥천면 체육공원 놀이터를 자주 찾게 되었다.
공원을 알기 전에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그네를 태웠는데, 예전과 달리 요즘은 학교 체육시설을 편하게
이용하기에는 뭔가 심적 불편함이 있었다. 범죄 예방을 위해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는 가지만
휴일 같은 때 그네를 타러 가자고 조르면 빗장 지른 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4살배기 손주에게
이해시키기가 아주 난감하곤 했는데 체육공원을 안 뒤로는 그런 불편함이 없어서 좋았다.
어떤 때는 늦은 시간에 그네를 태우기도 하지만 닫아건 문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대성전은 공자를 중심으로 4 성인과 18명의 현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8 현인 중에는 고려와 조선조의 현인도 포함,
* 대성전 안은 이렇게 위패를 모셔 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 대성전과는 달리 명륜당은 학문을 가르치는 강의실과 같은 곳이다.
* 옛 서원이나 향교 등의 문은 다 이렇게 낮다. 겸손히 허리를 숙이고 드나들라는 가르침도 있다고 한다.
가, 양근(楊根)향교,
체육공원을 가는 길에 양근 향교라는 안내판이 보여 손주 손을 잡고 향교를 둘러보기로 했다.
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향교는 지금으로 치면 국립 교육 기관에 해당하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교육
기관이다.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삼아 양민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던 시설이 향교이고, 지방관이 부임할 때 향교의 교관(교수 종6품, 훈도 종9품)을 대동
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로 들어오며 관학이라 할 수 있는 향교보다는 사학 기관이랄 수 있는 서원이나
서당이 오히려 교육기관으로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웬만한 전통적 기반이 있는 곳에는
향교가 남아있어 옛 교육 기관의 위상을 후대에 전하고 있기도 하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르지 않으면 士, 農, 工, 商의 계층 중 士(선비)에 해당하는 이들이
일할 직장이 아예 없었다. 관직이라 해도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라 관직에 오른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 할 만큼 문이 좁았다. 과거를 보려면 체계적인 교육도 받아야 하는데, 그 문도 과히 넓지
않았다. 향교의 정원은 작은 행정단위에는 30명 정도, 크다 해도 90명이 넘지 않았고, 전국 향교의
정원이 1만 5,33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지금으로 치면 종합대학 한 곳의 정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선 팔도 모두에서 정원 만 오천 명뿐인 향교에 입학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향교의 정점에는 성균관이 있다. 성리학에서 으뜸으로 섬기는 이는 공자이고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놓은 대성각이라는 배향(配享) 시설이다.
성균관이나 향교는 교육 시설이긴 하지만 공자를 위시한 4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 외에 18현을
모셔 놓은 배향시설과 학문을 가르치는 강학(講學) 시설, 교육생들의 숙식과 뒷바라지를 위한 기숙사와
취사 시설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향교가 평지에 자리한 경우에는 전묘후학으로 배치하고 구릉지
인 경우에는 전학후묘로 시설을 배치하는 게 원칙이라는데, 양근 향교는 구릉지라 대성각이 뒤쪽
에 자리하고 강학 시설인 명륜당이 앞쪽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구조를 띠고 있었다.
-전묘후학(前廟後學)이란 앞쪽에는 배향시설, 뒤쪽에는 강학(講學) 시설을 배치하는 경우이고
전학후묘의 경우는 이와는 반대인 경우이다.
양근 향교를 둘러보며 옛 선인들이 참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바람막이 전실(前室)도 없이 외풍에 접한 작은 방에서 지내며 공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그나마도 선택된 소수 인재가 누리는 혜택이었으니, 일반 백성의 삶이 어떠했을까 ?
향교를 돌아보는 내내 이 땅에 살아 온 민초들의 고된 삶이 아프게 다가왔지만 어린 손주는 마냥 즐겁다.
"할아버지 여기서 더 놀자!"
* 우리나라의 담장은 이렇게 낮다.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 학인들이 머물던 기숙사와 같은 곳이다. 성균관은 몰라도 향교는 아마도 여럿이 기숙했을 것이다. 추위에 떨었을 듯싶다.
* 온돌구조는 굴뚝이 아궁이 반대쪽에 있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건축물이 왜소함은 온돌구조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나, 창기야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옥천 체육공원 미끄럼틀 바로 옆에 작은 흉상이 하나 서 있다.
체육공원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곳이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곤 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을 찾는 사람 중 흉상에 관심을 두고 살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손주가 미끄럼을 타는 재미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별생각 없이 흉상 후면에
새겨있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보고 싶은 아들 창기야!
그 누가 너를 그 먼 곳으로 데리고 갔길래
그 무엇이 우리를 다시는 만날 수도
볼 수도 없게 갈라놓았니
아주 짧고 짧은 순간에 너와 생이별을 하고
수년이 흐른 지금도 너를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도록 만들었는지
엄마는 오늘도 아들 생각에 가슴이 메여
찢겨 지는구나
창기야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아들아 우리 다시 꼭 만날 날을 약속하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내렴,
아들을 너무너무 그리워하는 엄마가... (비석 내용 전문)
비석에 새긴 비문을 읽으며 가슴이 메어옴을 느꼈다. 며칠 만 안 봐도 보고 싶어지는 피붙이를
한순간에 영영 잃어버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보낸 엄마의 절규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절망하고 피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고 김창기 준위(원사에서 추서)는 이곳 출신으로 천안함 폭침 시 전사하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생전에 다녔다는 학교는 서울을 오가는 길에 우뚝 서 있다. 오가다 빤히 쳐다보이는 학교
를 보며 얼마나 아들 생각이 간절하셨을까? 웃고 떠들며, 흉상 제단 디딤돌을 놀이터 삼아 뛰놀아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던 자신의 무심함이 정말 죄스러웠다.
* 옥천면 체육공원에 위치한 고 이창기 준위의 추모비,
* 자식을 그리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 가슴을 아리게 한다.
* 아이들의 놀이 시설 바로 옆이라 님의 혼령께서는 아마도 외롭지는 않으실 것이다.
양평군 옥천면,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빠짐없이 잘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더해,
옛 향기 가득한 향교를 품고 있기도 하고, 나라를 위해 장렬히 목숨을 바친 용사의 기념비도 간직
하고 있는 열사의 고장이기도 하니, 이곳에서의 삶이 초라하지는 않겠다고 하는 자위를 해 보았다.
기념 흉상 앞에 놓인 돌 화병에 꽂힌 꽃이 며칠을 봐도 늘 같은 조화라는 사실이 마음 쓰였다.
면민 체육대회라도 여는지 지척에 자리한 체육시설에서는 함성이 요란했고, 음식 쟁반을 든 여자분
들이 주변을 분주히 오가기도 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문득, -자주는 몰라도 국군의 날이라도 고운 생화를 바쳐야겠다-
나이 탓인가? 세상을 보는 눈이 착해지는 것 같다.
손주 녀석이 좀 크면 놀이터 삼아 뛰놀던 기념비가 지닌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할 텐데,
에그! 세월이 기다려나 줄는지 모르겠다.
다, 손주의 재롱을 보며 눈높이 맞추기에 세월을 잊는다.
* 그네 타기를 좋아해 제 형이 다니는 인근 옥천초등학교 운동장을 자주 찾았다.
* 양평읍에는 이런 키즈 카페가 서너 곳이 있다. 덤블링을 하며 좋아하는 녀석을 보면 나이를 잊는다.
* 녀석 할아버지 모자를 보기만 하면 벗겨서 제가 쓰고는 이쁜 표정을 짓는다.
* 뭘 먹으려 하지 않아 데리고 다니기에 신경이 쓰인다. 양평 쉬자 파크 구내 빵집에서,
* 인근 한국 콘도 가는 길에 있는 패러글라이더 착륙장에서 신기 한 듯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 장난이 심해 양근향교에서도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았다. 제 엄마가 보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 이쁘게 하라니까, 저도 어색한 모양이다.
첫댓글 비석 내용이 그런슬픈사연 이있었군요!너무도 가슴아픔니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일을 당하신분은 살아계신동안은 하루도잊지못하실것입니다 허나!어쩌겠읍니까 운명이라 생각하는수밖에 ~
저도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려옴을 느꼈답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지요, 어찌 하루인들 잊고 살 수 있겠습니까,
공감하는 댓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 김창기 준위님을 비롯 여러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무심히 지나는 일상에서 고마운 분들의 희생을 잊고 살았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풍요도 없었겠지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손주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손주와의 나들이 와중에도 양평에 관한 정보를 세심히 취재하시고 맛깔나게 정리해주시니
대단하십니다. 양평군에서 감사의 표창이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ㅎㅎ
요즘 공무원들 겉으론 친절한 듯 하지만, 주인 의식이 별로 입니다.
옥천면 물축제를 몇 번에 걸쳐 소개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 자체가 없답니다.
그냥 제가 사는 곳이니 본분을 다하는 것 뿐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시는 모습이 너무도 좋아보이십니다ㆍ
어린 손자의 기억에 얼마나 좋은추억으로 남을까요ㆍ
가슴아픈 사연이지만 훌륭한 분의 흉상까지 사진으로 보고~~
다음에 양평을 가게 되면 양근향교 등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ㆍ
저는 양근성지만 다녀왔었는데
좋은 곳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ㆍ
양근 성지는 저도 살펴 보았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천주교 순교자가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주변에도 좋은 명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대로 요즘은 손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답니다.
좋은 댓글 감사히 가슴에 담습니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르지 않으면 선비에 해당하는 이들이
일할 직장이 아예 없었다. 관직이라 해도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라
관직에 오른다는 것이 하늘의별 따기라 할 만큼 문이 좁았다
- 그러나 요즘은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비록 보수는 적지만
어딘가에든 취직이 되기에 확실히 옛날보다 살기가 좋아졌음을
느낍니다.
한동안 저희 가정은 양평에서도 전원주택을 구입할 의사가 있었는데
대도시보다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추위에 민감하여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형님의 설명을 대하니 양평도 편안하게 살기가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네요. 귀엽고 잘생긴 손주와 잘찍은 사진과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리피터님 반갑습니다.
양평이 겨울에 춥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습니다.
살아보니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제 딸의 말로는 다른 건 대충 갖추고 있는데 정작 병원이 부실하다고
아쉬워 하더군요, 제가 병원을 몇 번이나 간다고, 했더니 나이 들수록
병원이 가까워야 한다고 면박을 주더군요, ㅎㅎ
본의 아니게 더 시골쪽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청운이라고 꼭 영화에서 보던 정겨운 면 소재지의 풍광이 저를 끌더군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옆 용천이리에삽니다 손주들이다커 인젠놀이터에 자주못가네요 키울때는그 놀이터에자주갔는데요
양평이 살수록 물맑고 공기좋고 좋으네요
저도 내려온지 한십년돼가는 사람입니다
항상 좋은글 잘보고있읍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살아보니 양평이 좋은 곳 입니다.
딸들도 병원 만 잘 갖췄으면 한답니다.
요즘도 장날이면 장터를 찾곤합니다.
오가는 분들을 보며 막걸리 한잔의 멋도
솔솔 하답니다. ㅎㅎ
댓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