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비록 아직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동안 찬양 사역에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은
다 경험해 왔었다.
교회에서 초청되어 단독 공연도 해봤고, 음반들도 시중에 발표해 봤었다.
CBS 라디오 출연 및 몇몇 인터넷 라디오 출연도 했었다.
소그룹 예배 인도 및 대학, 청장년부 예배 인도를 거쳐 2003년부터는 전문적인 예배 인도자로 각각 사역하고
있다.
지역에 열린 음악회나 생명의 전화 후원 콘서트 등에도 다른 대중가수들과 같이 참여한 적도 있었다.
다른 교회의 자체 CCM 음반 프로듀싱도 해봤었고, 대학교 축제에 CCM 공연을 한 적도 있다.
간간히 찬양팀이나 성가대를 위한 찬양 세미나나 CCM 감상회 등도 강의해오다가,
2006년부터는 예배사역자연합을 통해서 대외적인 예배인도자학교와 작편곡 학교에서 간사와 강사로
섬기기도 했다.
드럼, 베이스, 기타 세션으로 여러 모임을 섬긴 적도 있고, 여름성경학교용 CD 제작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었다.
몸 담았던 교회나 찬양 선교단을 통해서 해외 단기 선교, 군 선교, 교도소 선교, 장애우 선교 등도 했었다.
크리스천 레코드사에 근무한 적도 있었다. 복음성가 대회에도 나가봤었다.
결국 찬양 사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조금씩, 그리고 잠깐씩은 다 해본 셈이다.
하지만, 그 중에 어느 하나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 현재 없다.
각자의 교회에서 예배인도자로 사역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물론, 나는 계속 찬양을 작곡하고 있다.
주님께서 분명 우리 부부에게 이 모든 사역들을 다 체험해보도록 기회를 주셨다.
그런데, 왜 그 모든 사역들이 잠깐뿐이었을까?
주님께서 찬양 사역의 모든 분야를 다 맛보게 하셨는데, 왜 그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허락하시지 않으셨을까?
현재 나의 대외적인 모습은 한 교회의 찬양 전도사로서 찬양팀을 이끌며 예배 인도를 하는 것이지만,
원래 내가 생각했던 내 사역의 모습은 작곡자로서 다른 찬양 사역자들에게 곡들을 제공하면서
음반 녹음, 공연, 연주, 편곡 활동을 하면서 작곡 저작권료로 생계비와 사역비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내 자작곡을 우리 부부 외에는 음반이나 공연에 사용하지 않는 상태이니,
아직도 원래 내가 가졌던 기대와는 거리가 먼 사역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한 교회의 예배 인도자를 꿈꾸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예배 인도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되었다.
이미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예배인 도자로서의 길은 계속 열렸었고, 요청이 계속 들어왔었다.
하기야, 교회 안에 아직도 작곡자보다는 예배 인도자가 더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자와 보컬과 연주자들을 뽑는 교회들은 많아도, 작편곡자를 뽑는 교회는 없으니까...
사실, 나는 가끔 당혹스럽다.
작곡자로서의 정체성대로 더 살려고 하지만,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예배 인도요, 악기 레슨이요,
음반 리뷰이기 때문이다.
작곡 이외의 사역을 내가 하지 않겠다거나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작곡자로서의 길이 열리지 않는 것과
내가 그 길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없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있는 것이다.
자신 없는 사역의 길은 열리고, 자신 있는 사역의 길은 열리지 않는 이런 상황을 통해
나는 주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