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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훌리건 천국 원문보기 글쓴이: 드가모프
흐..흥! 새..새해엔 밀덕질을 하겠다고.. 하겠다고 누가 말이나했습니까!
그렇지만은! 해야지요.
훌리 여러분 모두 새해복 많이 받고 기쁜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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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stage.
류마:이 미친놈아 취준 안하냐? 날 봐 취준하려고 알래스카에 고기잡이 왔잖아.
드가모프:그...그건....
류마:병신아 토익 공부를 했으면 그걸 취업스펙에 써먹을 생각을하거나 점수를 더올려야지!
드가모프:더..덕질에 이제 영어를 조금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
류마,김연경:더러운 새끼!!!!!!!!!
드가모프:새..새해에도 덕은 멈추지 않아... 밀덕의 세계는 끝이 없어.
프랭크스터:난 지방대에 비상경계라 ... 미래가 암울해.
류마,드가모프:닥쳐!!!!!!!
프랭크스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이 대화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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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차세계대전에 있어서 독소전역은 기념비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전역은 2차대전의 향방을 바꾼 큰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독일군의 8할은 소련과의 전투에서 녹았으며 소련 역시 2000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며 독일을 막아내고 끝내는 역관광 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하였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이 서방측의 엘알라메인 전투 승리의 기념이나,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코웃음을 치는 것은 자신들의 희생이 더 컸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랜드리스와 연합군의 양면전선 강요도 소련군의 승리에 보탬이 되었고, 덕의 한명으로서 특정한 국가 하나만이 2차대전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보진 않는다. 연합군은 모두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보는편이다.
다만 단순히 스케일!과 거대함!의 측면만 따지자면 소련의 2차대전 승전에 대한 기여와 그 무지막지한 물량은 밀덕들에게 엄청난 오오오오오 오오오(!!!)로 다가오기 때문에(....)
오늘의 컬러사진들은 미국과 러시아의 2차 대전 덕(德)들의 사이트들에서 돌아댕기는 소소한 2차대전시 소련군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2차 대전 컬러사진 or 컬러복원 사진은 뭔가 일반적으로 2차 대전을 흑백사진만으로 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생동감이나 신비감을 준다.
본 사진의 입수에 도움을 준 미국과 러시아의 밀덕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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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밥은 먹고 합시다!
점심시간을 즐기고 있는 소련 해군 장병들. 2차대전 당시 소련 육군의 빛나는 승리에 가려져서 많이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2차대전 당시 소련 해군 역시 열심히 싸웠다.
연안방어는 물론이며 상륙전을 전개하는 나치독일군을 상대로 싸우기도 하고, 육군의 해상보급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세바스토폴 공방전 경우와 같이 정 안돼면 함포지원사격을 해서라도 육군의 승리에 최선의 기여를 했다.
정 안돼면 상륙해서 육군과 연합하여 육상전 까지 치르기도 하고.. 오늘날 러시아의 해군육전대의 역사는 해군의 이런 활약이라는 역사적 자부심을 승계하였다.
해당 사진 부대원들은 통상적인 항구 경비 중...
당시 소련 해군 전투 정복은 검은색이 주류였다.
물론세바스토폴 전투는 졌지만 독일군은 2만7천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소련군은 포로 9만 사망자 3만정도
해맑은 소비에트 해군의 모습
2.잠좀 자고 합시다.
치열한 격전 끝에 오침을 취하는 소련군 장병들의 모습. 가운데의 방중술의 달인 공덕대장 성님의 XX와 같은 큼직한 박격포가 인상적이다.
2차대전 당시 참전군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격전과 거듭된 전투로 인해 장병들의 피로도 문제가 큰 골칫 거리였다.
전쟁에서 인명은 장식일 뿐인데 서방은 그걸몰라요!
라는 생각을 가진 소련군 조차도.. 장병들의 피로도가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함부로 간과할 순 없어서 각급 제대의 지휘관들이나 정치장교들의 동의하에 휴식시간엔 충분한 수면을 제공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심지어 전선이 길어지는 상황의 경우 전투 중에도 수면(!)이 이루어지는 상황들도 더러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100명의 전투원이 있다고 치면 50명이 전투를 할동안 50명은 잠을 재우고 이런식의 교대수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세부적인 교대수면의 절차나 방식은 개개의 전투상황이나 지휘관들의 판단에 따라 다르긴했지만...
물론 피터지게 다 싸우는 모드면 잠같은건 못자요
3.포 위에서 한컷.
독소전쟁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엄청난 기동전 이었다. 그 광활한 유럽대륙을 양측의 군대가 휘젓고 다녔고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펼쳤고 보병의 작전시 이동행군 거리가 수백km가 넘어버리는 일은 우스울 정도의 예삿일이었다.
당연히 보병들의 행군시 피로도도 문제였고 그래서 종종 저런 포나 전차 위에 장병들이 탑승하여 행군피로를 줄이는
일은 일상적 이었다고 한다.
뭐 해당사진은 당연히 자주포는 아니어서 저상태로 갈순 없고.., 견인포 인데 대충 저렇게 애들이 타고 삐데고 있으면
1)견인포 견인하는 차량이 와서 저걸 견인하고 애들이 저상태로 타고 가거나..
2)공간모자르면 뒤따라오는 전차 위에타고..
3)장갑차위에도 타고..
등의 일이 종종 벌어졌다.
오오 위아더 월드~~~~~~
물론 짬 안되거나 자리 잡는데 늦은놈은 걸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군생활 한 사람 누구나 공감하지만 삐델 수 있을때 삐데야지.
4.침략자들에게 저격의 응징을!
2차대전 당시 소련군 저격병들의 활약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바실리 자이체프의 유명한 일화와 말할 것도 없이 영화로도 나왔고~
소련군은 1-2년차의 경험이 생긴 저격병들을 후방으로 보내 다시 저격병을 양성시키고 다시 투입하고 이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독소전 내내 상당한 저격수들을 양성하고 해당 사진과 같이 써먹었다.
개발리던 초반과 달리 중반,후반에 갈수록 여유도 생기고 공업생산량도 폭증하면서 저렇게 저격총에 저격용 망원렌즈를 장착하는 일도 일상적인 것이 되어갔다. 수풀에 매복한 노병의 눈빛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저격은 현대전에서도 엄청난 복병이다. 예를들어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 1개 대대가 이라크군 저격수 고작 몇명! 때문에 진군이 지연된 사건이 있었을 정도다.
일단 병사들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탄에 옆에 있는 사람 수박통이 날아가면 당연히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정신적 차원을 떠나서, 병력 손실문제 때문에 자유로운 기동이 어려워지기에 전술적으로도 막대한 차질이 벌어진다.
나치독일의 저격역시 위력적인 것이었지만 물량과 대량생산(?)을 이룩한 소련의 저격수 운용은 독일에게 두고두고 치명타가 되었다.
5.나치독일은 혁명민주화가 시급하제!!
해군육전대 성님과 일반 수색보병 성님에게 민주화당한 나치군 패잔병들의 모습. 얼빠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독일군은 중후반 부터 패전을 거듭했고 때문에 많은 패잔병들이 소련땅에 남아 이런식으로 항복을 하게 되었다.
소련군:그래서 이 씹새야 니 소속이 어디냐고, 친위대냐? 아니면 정규군이냐?
독일군:제 계급장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성님? 친위대는 이런 계급장 없고 좀 간지나는 계급장이고 이런 전투복 안입는다오.
소련군:아오 짜증나!!!!! 너가 전투복을 위장했을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어서 진상을 실토해!!
독일군:ㅠㅠㅠㅠㅠ 아오 진짜라구요 제발.
소련군2:음...야 후딱 솔직히 안불면 이 총검으로 확 배 쑤신다?
독일군:믿어줘요 성님들 제발 ㅜㅜㅜㅜ
투항한 독일군의 신상명세를 적는 소련군 보병의 모습보다 긴 총검을 꽂은 총을 들고 있는 소련군의 눈빛이 훨씬 인상적인 사진이다. 독일군은 2차대전내내 소련군과 소련의 민간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는 가혹행위를 종종 저질렀기에 소련군 병사들 역시 투항한 독일군이나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을 마구잡이로 보복하는 일이 흔했다.
사실 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닌게 나라도 내나라 국민들이 2000만명씩이나 특정한 군대에 죽었다면 그랬을 것 같다.
그래도 어느 집단이나 사람들이나 개념있는 사람들도 있는법어서 독일군에게 가혹행위를 하지 않고 그냥 저렇게 심문절차를 거친뒤 포로수용소에 넣는 일도 의외로 흔했다.
단 정규군이 아닌 친위대면 엄청난 보복을 대부분 각오해야했다. 무장 친위대 SS는 아인자츠그루펜이란 조직을 만들어 동유럽에서 유태인 140만을 살해했음은 물론 어마어마한 숫자의 소련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들의 학살행위는 심지어 독일 정규군 조차도,군법재판 회부감이라며 치를 떨정도였고 종종 지휘관들이 안볼때나 지들끼리만 있을때 정규군이나 친위대 병사들끼리 술빨고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군기위반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친위대는 독일군 내에서 조차 막장 집단으로 찍혔을 정도다. 그러니 소련군에게 걸리면 그건...
집단 민주화의 현장
6.치열한 시가전 현장
독소 전쟁내내 광활한 대지에서의 회전과 기동전 외에도 수많은 시가전이 치루어졌다. 모두에게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말할 것도 없고 그외에도 수많은 소련의 도시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도시가 초토화 당했고 잿더미로 변했지만, 소련은 시가전에서 독일군의 축차적인 소모를 강요함으로서 승리의 발판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어쩔땐 독일군과 20미터 앞에서 마주친적도 있어요. 녀석은 친위대 정예부대 복장을 하고있더군요,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았어요. 이런 20미터의 거리에서는 "먼저 적을 보고 수류탄을 던진 놈이 이기는거지 잘싸우는 놈이 이기는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전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고 먼저 던졌고 살아남았어요." -한 소련군 참전 용사의 회상-
이 인터뷰는 독소전을 둘러싼 시가전의 모든 양상을 한번에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당시 독일군은 기동전이나 포병전, 공중전에서는 소련군을 압도하고 있었고 전쟁초반 이 이점을 활용해서 시가전에서도 도시를 개발살 냄으로써 이점을 확보했지만,
잿더미가 되고 건물의 구조물이 무너진 도시는 하나의 소련군을 위한 거대한 엄폐물이 되어버렸고 건물 하나하나는 벙커와 토치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현재 지상 최고의 강군이라고 일컬어 지는 미군 조차도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군사교범에서 시가전시 사상자 발생률을 20%로 잡고 있을 정도로 시가전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2차대전 당시, 독소전이 터지기전만해도 독일군은 이렇다할 대단위 규모의 시가전을 치워보지 못한 상태였고, 소련군 역시 그는 매한가지라서 독일군 신병이나 소련군 신병이나 시가전에 대한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가전은 서로의 전투경험을 평등하게 만들어버렸고, 이는 저 인터뷰에서 처럼, 전투에 있어서 순간의 운이나 순발력의 여지를 더 크게 작용시켰는데 서로의 경험이 평등한 상태에서는 차라리 자기 마당이라 지형지물에 더 익숙한 소련군이 더 유리하면 유리했지, 독일군에게 유리했던 것은 아니므로 독일군은 시가전에서 큰피해를 입어야했다.
미국:뭐? 독일이 포격과 항공전에서 유리해서 소련군을 밀고있다고? 자 받아 소련! 나의 랜드리스야!!!
독일:이런 시발 전쟁에 치트키 쓰지마시죠?
미국,소련:닥쳐!!
물론 소련군과 소련의 민간인들은 자기 마당에서 전쟁이난것이니 피해는 말할것도 없고.. 지못미(...)
7.소련 여군의 활약
2차대전기간 동안 소련 여군은 여러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의무병으로서, 전투병으로서, 저격병으로서, 남자들이 전쟁터로 가서 텅텅 비어버린 동네치안을 담당하는 무장치안대로서 상기의 사진들과 같은 업적(!)을 남겼다.
워낙 남자들이 많이 전사하니 여군의 징집이 이루어질 수밖 에 없었는데, 소련 여군의 활약은 지금도 러시아의 군사사에 있어서 꼭 다루고 넘어 갈 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나저나 총검 위엄쩐다(...)
소련군의 유명 여자 저격수! 독일군 309명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류드밀라 파브리첸고 누님..
전후에는 결혼도 잘하시고 역사학 전공하던거 계속하셔서 박사학위도 따시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셨다함.
이런 선배 여군들의 위업을 받들어서!!!
오늘날 러시아 여군의 미모와 몸매는 쩔제!!!! 클라스가 다름.
8.스탈린의 오르간 카츄샤.
카츄사를 점검하는 소련군 장병들, 그리고 실제 발사 모습
카츄샤는 오늘날 다연장 로켓포의 시원(?)으로 볼수 있는 물건이다.
독일군들은 이 물건에 당하며 스탈린의 오르간이라며 이 물건을 저주했다.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도 카츄샤 로켓포는 화력지원으로 큰 활약을 펼쳤다.
9.땅크!! 데싼트!!!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땅크! 데싼트!의 실제 모습.! 광활한 개활지에서 수천대의 소련군 전차와 전차와 함께 기동하는 수만~수십만명의 소련군의 우라아~~~~~~! 돌격 그리고 이 완벽한 땅크 데싼트는 나치독일을 페닉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물론 땅크데싼트로 인한 인명피해도 장난은 아니었지만.... 됐어! 이겼으면 된거야!
승리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 땅크 데싼트!
10.소련 공군의 활약.
독소전 초반 독일공군의 정밀한 폭격으로 인해 주요 공항이 모두 개발살 나고,초반부터 너무 얻어터진 바람에 정신이 없어 별 활약을 하지 못하던 소련공군은 전세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스탈린이 기술자랑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싸울 수 있는 전투기들을 만들어내고, 조종사들을 투입하여 서서히 독일군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소련 공군은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했으며 후반에 가면 역으로 독일군에게 폭격을 시전하며 나치독일의 멘탈을 민주화시키기 시작했다.
우리가 러시아의 주력기종으로 자주 듣는 미그기는 아르툠 미코얀의 M 미하일 구레비치(소련의 유명한 항공기 설계기술자들)의 G를 따서 MG로 이름이 명명된 것인데.
이들은 2차대전 시기부터 전투기들을 만들어내며 소련공군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소련 공군의 조종사들, 공항의 경비를 담당했던 병사들, 수많은 장교들 역시 소련의 승전에 당당히 기여했다.
작전의 성공을 기원해주는 소련군 장교. 그리고 활짝 웃는 소련 공군의 조종사.
해맑게 웃고 있는 소련 조종사의 모습. 저 작은 붉은별은 격추시킨 적군 전투기의 대수를 킬마크로 새긴 것이다.
11.일본은 혁명민주화가 시급하제!!
8월의 폭풍 작전에서 대승을 거둔 소련군 장병들이 일본군 진지에서 노획한 일장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장기에 글씨가 많이써져 있는데, 당시 일본군들은 여러가지 마음속의 기원이나 황군의 승전(...)같은 뇌내망상들을
일장기에 많이쓰곤했다. (미드 퍼시픽에서도 저런 일장기를 노획한 미군장교가 나오지..)
소련은 미국과의 얄타회담에서의 밀약(즉 독일항복이후 3개월내에 일본을 공격한다는 밀약.)을 지키기 위해 만주전역을 개시했다. 이름하여 그 유명한 8월의 폭풍 작전
해당 전투에서 소련군은 수십만에 가까운 병력과 어마어마한 숫자의 항공기와 전차 포전력을 동원했고 일본은 말그대로 개발살이 났다. 75만 관동군중 8만명이 전사했고,60만이 포로가 되었다. 소련군은 약 2-3만명 정도의 인적손실을 기록했다.
이점을 가지고 일본웹에서 일빠들이 아니야! 나의 황군은 그러치않았어!ㅠㅠ 하고 징징쳐짜지만 야스쿠니신사의 만주전역 전사자 위패명단 및 소련군의 기록, 연합군 정보부 기록에 의해 이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어쨋거나 진건 진거란다.
그리고 이 수많은 전투들 끝에..
그리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그들은 승리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 오늘날도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조국을 구한 장군으로 칭송받는 소련군의 명장이다.(사진 가장 가운데 사람.)
가운데에서 왼쪽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 오른쪽은 버나드 로 몽고메리 영국군 원수~
백마를 타고 개선하는 주코프, 그리고 오른쪽은 다른 소련군의 명장 로코솝스키다.
2차 대전이 한창일때의 일화였다. 전세가 역전되어서 처음에 털렸던 곳들을 소련군이 수복하던 중 한 소련군 부대가 초소안에 써진 글을 발견했다.벽에 글이 써져있고 초소안에는 백골이된 소련군 유골만이 있었다.
요새의 벽에 써진 다음과 같은 글을 보고 모두 눈물을 터트렸다고 전해진다.
나는 비록 이곳에서 죽지만 나의 조국 러시아여, 절대 항복하지마라.
오늘날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2차대전에서의 승전이란 단지 승전 이상의 의미로 기억되고 있다. 이 전쟁에서의 승전은 단지 조국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세계를 구했다는 자부심을 스스로 갖게 해주었고, 이는 러시아인들의 대국적 자존심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전쟁의 한시기 죽어나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면서 새해 첫글을 마쳐본다.
P.S:새해에도 밀덕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