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제공한 승합차를 타고 깔끔한 백족 전통가옥이 양쪽으로 가지런한 골목을 지나 말 타는 장소로 이동한다. 백족들은 흰색과 꽃과 새를 좋아해 벽을 하얗게 칠한 후 새나 꽃 그림을 그려 장식하고 지붕에 새 머리 장식을 하는데, 장식으로 머물지 않고 새를 키우는 집들도 자주 보인다.
▶ 창산 입구의 마부들
▶ 구름에 정상을 감춘 창산
창산 입구 풀밭에는 벌써 마부들이 말을 몰고 나와 풀을 뜯기고 있다. 마부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데 마부들의 손이 굉장히 거칠다. 말과 함께 수없이 저 높은 창산을 오르내린 세월의 훈장일 거라고 생각된다. 가이드북에 의하면「창산은 점창산이라도 부르는 운령산맥 남쪽 주봉이며 19개 봉우리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진다. 평균해발이 3500m이고 4000m이상의 봉우리가 7개이며 제일 높은 마룡봉(馬龍峰)은 4122m로 19개 봉우리의 우뚝 솟은 웅위와 수려한 얼하이(洱海) 풍경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창산 19개 봉우리 계곡에는 계곡 물이 세차게 흘러내려 얼하이로 흘러가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18계이다. 창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은“망부운(望夫云)”과 옥대운(玉帶云)”이다. 망부운은 매년 겨울과 봄에 자주 옥국봉(玉局峰)에 나타나는데 이 구름이 나타난 후 얼하이엔 즉시 광풍이 세차게 불고 거친 파도를 일으켜 망부운이 나타날 때 어부들이 얼하이에 나가면 지아비를 잃게 되어 망부운 이라고 한다. “망부운”을 “무도운(无渡云)”이라고도 한다. “옥대운”은 사랑스럽고 감동적이어서 백족의 속담에 의하면 풍년의 징조라고 한다. 즉 “창산이 옥대를 띠였으니 굶은 개도 쌀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여름에도 녹지 않는 창산의 눈은 명성을 떨친 대리 “風花雪月” 4경 중 하나로 창산 경관 중의 제일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의 창산은 백리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최고봉 마룡봉의 적설(積雪)은 일 년 내내 녹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산중턱 이상은 푸르고 싱싱하지만 최고봉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있다.」고 한다.
▶ 창산에 말을 타고 오르는 모습
창산을 오르기 위해 말을 탄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공정여행 EBS TV 프로그램과 글을 보며 Package관광의 모순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린 코끼리를 잡아다 조련사가 날카로운 꼬챙이로 코끼리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귀 뒤를 찔러 코끼리를 훈련시켜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벌이하는 태국이나 네팔의 코끼리 투어며, 유명 관광지에 대규모 호텔과 위락 시설 등을 지어 돈을 벌지만 번 돈의 대부분이 외국이나 거대 자본가에게 유출되고 지역주민들의 행복과 복지에는 무관심한 세계 유수의 호텔들 등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다. 내가 공정여행을 선택하게 된 동기도 작년 아들과 치앙라이에서 코끼리 트래킹 당시 조련사가 날카로운 꼬챙이로 코끼리를 찔러 가면서 코끼리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 할 정도로 가슴이 아파 공정여행을 신청했는데,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공정여행에서 왜 말을 타는 일정을 넣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던 터였다.
「"공정여행인데 왜 말을 타는 일정을 넣었나? 왜 잔인하게 말을 타고 산을 올라야 하는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전에는 말이 물건을 나르거나 사람을 태워 이동하는 등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동물이었지만, 요즘엔 일부러 죽이고 있다. 소수민족들이 살던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그들의 농업이나 운송수단으로서 쓸모가 없어졌고 아주 적은 숫자의 말이 이처럼 관광객들을 태우는 데 쓰이며 소수민족들에게 돈을 벌어주고 있는 정도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산이나 들판을 다니지 않는 말들은 수명이 단축된다." 라고 최 작가가 이야기 한다.
그랬다. 창산에 오르는 방법은 걸어서 오르거나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방법 그리고 말 타고 오르는 방법이 있다. 이들 방법 중 걸어서 창산에 오르는 방법이 제일 좋을 것이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린이나 노약자가 오르기엔 너무 힘들다.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방법은 간단하고 편리하며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으나 경제적으로 소외받는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대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방법이다. 따라서, 자연도 덜 해치고 경제적으로 소외받는 소수민족들을 도와주면서 동물도 살리고 여행의 참 맛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말을 타고 오르는 방법일 것이며 공정여행의 취지에도 부합할 것이다. 우리가 말을 타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은 이곳의 본래 주인인 소수민족들에겐 밥과 생활의 기반이 될 것이고 고생한 마부에게 준 팁은 소수민족 아이들의 학용품이나 옷을 사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태우고 중화사까지 힘든 산행을 하는 동안 정이 든 말들이 도태되지 않고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 땅에서 소수민족들과 함께 살아 갈 명분이 될 것이다.
▶ 말 트래킹에 앞서 마부와
▶ 중화사 입구에 도착하는 일행들
창산 아래에서 열 지어 출발하는 우리 산행에는 마부 한 사람이 서너 마리의 말을 이끈다. 아내가 1번 말, 내가 2번 말 순으로 말을 타고 출발한 산행은 처음에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급한데다 우기라 곳곳에 웅덩이가 패여 있고 진흙투성이인 길이 나타난다. 말도 산을 오르기가 힘든지 연신 방귀를 뀌어대고 숨소리도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나도 긴장이 되는지 말고삐를 더욱 움켜잡게 된다. 뒤에서 말을 타고 오는 10살 짜리 언준이가 말 타는 것이 재미있는지 연신 “이랴! 이랴!”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말들은 제 순서를 지키면서 묵묵히 산을 오른다. 웅덩이나 급경사에서 말들이 주춤하거나 주위의 풀이라도 뜯으려고 잠시 멈추면 어느 새 마부들이 “추! 추! 추!”하면서 말들에게 성화를 댄다. 20분 쯤 지나자 말과 나의 움직임이 일체가 되어가고 허벅지 사이로 말의 체온도 느껴져 온다. 고도가 높아지고 경사가 심해지면서 말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방귀도 더 자주 뀐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자꾸만 뒤로 밀리기에 제자리를 찾으려고 앞으로 당기니 말이 더 힘들어 한다. 70kg이 넘는 날 태우고 오르는 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든다. 말도 오르기 힘든 급경사를 마부들은 걸어서도 잘도 오른다. KBS 다큐프로인 “차마고도의 마방”에서 보았던 그 옛날 차를 말에 싣고 티벳으로 가는 고산준령을 오르는 말과 마방 생각이 난다. 웅덩이와 진흙 구덩이를 지날 때 말들이 튀긴 진흙과 흙탕물로 바지와 신발은 흙탕물 범벅이다. 그렇게 말과의 교감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느낄 무렵 한 시간 여의 산행은 중화사 아래에서 끝나고 말에게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말의 고생을 위로한다. 산행을 도와 준 마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말 옆에서 마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다.
▶ 중화사 : 좌상-중화사입구에서 본 따리시내, 우상-중화사 압구, 좌하-중화사 내 절, 우하-중화사 유교사원
중화사 앞 전망대에서 바라 본 따리 시내와 얼하이 호수는 창산 아래의 안개로 희뿌옇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따리고성과 얼하이 호수가 어울린 경치가 일품이라는데 중화사를 둘러보고 나오면 안개가 걷힐 거란 희망을 가지고 중화사 돌계단을 오른다. 중화사는 특이하게 불교와 도교, 백족의 민속신앙인 본주를 모시는 건물이 한 곳에 있는 사원이다. 계단 위 문엔 금복주를 닮은 부처가 모셔져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이 부처님의 불룩한 배를 만지면 복이 온단다. 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있고 법당 뒤편에는 태극문양의 천정 아래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신 도교건물이, 그 뒤로 돌아가면 본주를 모신 건물이 있다. 최 작가가 중화사에 들어가기 전 “도교사당에 들어가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무조건 관우 상에 절을 하라고 하고 많은 시주를 요구하니 잘 생각하라.”는 말에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니 비가 쏟아진다. 아무래도 전망대에서 따리풍경을 감상하긴 틀린 것 같다. 비가 오니 전망대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상점들도 철시해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 구름 위를 거닌다는 창산 雲游路
▶ 雲游路의 이모 저모 : 좌상-폭포, 우상-운유로 원경, 좌하-은유로에 핀 꽃, 우하-내려오는 길
우거진 숲 사이로 산 허리를 잘라 제법 넓게 낸 돌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무척 미끄럽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개자 나도 모르게 따리 시내 쪽으로 눈이 간다. 선명하진 않지만 따리 시내와 얼하이 호수가 자태를 드러낸다. 그 경치가 일품까지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따리고성과 얼하이 호수가 잘 어울려 보인다. 좀 더 내려오니 깊은 계곡사이로 폭포가 쏟아지고 산 위엔 아직도 비가 오는지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있어 마치 중국 古畵의 풍치 속에 내가 빠져 들어 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옛 중국 그림이나 우리 동양화 중 풍경이 들어간 그림을 볼 때 저런 풍경은 화가가 상상 속에서 찾아 낸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광이 바로 동양화 속의 풍광이 아닌가? 길가엔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이 예쁜 꽃을 피우고 있고 넓은 바위엔 빨간 글씨로 커다란 글자들이 새겨 있는데 뜻은 모르겠지만 아마 따리에 살던 혹은 이곳을 여행왔던 옛 문인들의 글리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문공부를 더 해 글의 의미를 이해하면 더욱 흥미진진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 이곳부터 언민이가 날 앞질러 갔는데...
6살 언민이가 앞 서 뛰어간다. 장래 희망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축구선수인 메시를 닮은 축구선수인 이 녀석은 어디를 가도 달리기를 좋아한다. “넘어질라. 조심해.”하고 주의를 주지만 넘어지지도 않고 앞 서 달린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언민이 엄마가 “언민이, 누구하고 같이 갔어요?”하고 묻는다. 잣나무 숲 아래의 송이버섯 비슷한 버섯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글쎄요. 앞서 간 사람은 언민이 밖에 못 봤는데..”라고 대답하니 “김 선생님 내려가시는 거 못 봤어요? 뒤쪽엔 안 보이시던데요.” “글쎄요. 전 못 봤는데...”하자 언민 엄마가 언민이를 부르며 앞서 달린다. “겁이 나서도 아이가 멀리는 못 갔을 거야.”하고 위로해 보지만 아이를 잃은 엄마의 애달픈 목소리는 멀어져 간다. 삼거리에서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온 언민 엄마는 거의 사색이다. “김선생님이 데리고 주차장에서 기다릴지 모르니, 같이 가 보시죠.”라고 달래서 주차장으로 내려와 봐도 언민이와 김선생님이 없다. “분명히 김선생님과 언민이가 같이 있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위로한다. 정군과 버스기사가 오토바이를 빌려 우리가 내려 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 삼거리 쪽으로 내려온다. 되돌아 온 정군이 김선생님과 언민이 둘 다 안 보인단다. 내가 “그럼, 김선생님이 이곳에서 아는 곳은 객잔 밖에 없으니 객잔으로 언민이를 데리고 가셨을 것이다. 객잔으로 전화 해 보자.”고 제의해 정군이 객잔으로 전화하고 잠시 후 객잔에서 그 곳에 있다는 연락이 온다. 언민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객잔으로 가 보니 김선생님은 밖에 나와 계시고 언민이는 객잔 PC게임에 빠져 있다. 천진난만한 어린애라서 그럴까? 까맣게 타고 있었을 엄마의 속도 모르고......... 창산트래킹의 해프닝은 이렇게 공정여행에서의 한 페이지의 추억을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