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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노트 77 – 4대는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다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에서 수행을 지도하시는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해를 거듭하면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 참고 >는 수행자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별도로 보충한 내용입니다. 수행은 개인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론에서 벗어나면 안 되므로 반드시 스승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또 스승에 따라 다른 수행방법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1. 질문 : 경행을 할 때 전에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낍니다. 발이 움직일 때 처음에는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급급했는데 이제는 발을 들을 때의 가벼움과 발을 내려놓을 때의 무거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4대 중에서 수대는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사야도 답변 : 경행을 할 때 집중력이 좋아지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한 가지씩 나타날 때가 있다. 수행자가 행주좌와(行住坐臥)를 하는 중에 밀착해서 알아차리면 지수화풍이라는 네 가지의 성품이 느껴진다. 이때 물의 성품인 수대는 느껴지지 않는다.
< 참고 >
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의 성품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을 때만이 내가 겪는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는 방법을 사용할 때만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을 알아차릴 때는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이라는 네 가지 성품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을 4대라고 합니다.
수행자가 처음에는 발의 움직임만 알아차리기 쉬운데 차츰 집중력이 생기면 발을 들 때의 가벼움과 내릴 때의 무거움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발을 디딜 때의 단단함이나 부드러움을 느껴도 지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을 관념으로 알아차리지 않고 실재를 알아차리는 것이라서 발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4대 중에서 수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수대는 몸을 형성하는 요소라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4대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서 사념처 수행 중에 신념처에 해당하지만 알아차릴 때는 느낌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으로 알아차릴 때 이런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라는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이때 4대는 네 가지 요소들이라는 뜻입니다. 지대는 몸에 있는 단단하고 부드러운 무겁고 가벼운 땅의 요소를 상징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몸이 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수대는 몸을 형성하는 작용을 합니다. 나의 몸이 몸으로 작용하려면 물이 있어야 서로 끌어당겨서 몸을 형성합니다. 밀가루에 물을 넣어야 반죽이 되어서 빵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수대의 경우는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침이나 땀이나 오줌을 수대로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 콧물도 수대로 알아차리면 좋습니다. 눈물을 흘릴 때 감정이 생겨서 흐르는데 이때 눈물을 단순하게 수대로 알아차리면 감성이 이성으로 바뀌어 마음이 진정됩니다. 수대는 응고시키는 집합성이 있지만 흐르는 성품도 있습니다. 때는 무거운 성품도 있습니다. 물이 가벼울 때는 수증기가 되고 무거울 때는 물이 되어 흐릅니다. 그래서 무거움에서도 수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화대는 몸의 뜨거움과 차가움이 있을 때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뜨거운 불을 의미하는 화대라고 해서 뜨거운 것만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차가움이 있기 때문에 뜨거움이 있으므로 차가움도 화대의 대상입니다. 화대는 일정 기간 성장을 돕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늙어가고 얼굴에 핀 검버섯이 모두 화대의 영향입니다.
풍대는 바람의 요소로써 몸의 진동을 말합니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 풍대입니다. 몸은 끊임없이 진동합니다. 진동하기 때문에 성숙하고 쇠퇴합니다. 풍대 중에 두드러진 것이 호흡입니다. 그리고 약한 진중 중에 맥박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몸에서 일어나는 전율이라거나 다른 진동도 풍대에 속합니다. 기침은 상승하는 풍대에 속하며 대변과 소변을 하강하는 풍대에 속합니다.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내장의 연동운동도 모두 풍대에 속합니다.
4대는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중에 단단한 것이 두드러지게 강할 때 지대라고 합니다. 수행 중에 4대를 알아차릴 때 반드시 4대 중에서 이것이 무슨 대라고 규정하면서 알아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느낌으로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어떤 느낌을 4대 중에 무슨 요소라고 하는 규정하는 순간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4대를 느낌으로 알아차리고 하는 것입니다. 명칭을 부르기 위한 것이지 실재가 아닙니다. 수행은 어떤 명칭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대상이 가진 성품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4대는 살아있는 생명을 유지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4대가 활발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4대가 달라집니다. 몸이 부드럽다가 단단해지고, 몸의 수분이 증발하고, 몸이 뜨겁다가 차가워지고, 몸이 진동하고 호흡을 하다가 멈춥니다. 그래서 생명이 건강할 때의 4대와 병이 났을 때의 4대가 다릅니다. 죽음이 엄청난 것이 아니고 지혜로 보면 단지 4대의 변화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나의 몸을 몸이라고 했을 때는 존재라고 보기 쉽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자아가 생깁니다. 하지만 몸을 4대로 알아차리면 존재가 없어지고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알게 됩니다. 이때 4대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서 나의 몸이라는 선입관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몸을 존재로 볼 것인가, 하나의 구성요소로 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몸을 존재로 볼 때는 자아가 생기고 구성요소로 볼 때는 자아가 생기지 않고 단지 하나의 현상으로 봅니다. 몸은 내 몸이라고 알기 쉽습니다. 하지만 4대로 볼 때는 나의 4대라고 인식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현상으로 봅니다. 그래서 몸을 알아차릴 때 4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은 관념으로 부르기 위한 명칭이지만 4대는 실재하는 현상이라서 사물의 이치인 무상, 고, 무아를 알기에 좋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깨달음을 얻어 윤회가 끝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나서 집착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진리를 알면 더 이상 태어날 의도가 일어나지 않아 윤회가 끝납니다. 이것을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라고 합니다.
2. 질문 : 명상 중에 입에 침이 고인 것을 느낍니다. 어떤 때는 침이 너무 많이 고여 있기도 합니다.
사야도 답변 : 입에 침이 많이 생길 때도 있고, 생각으로 그렇게 느낄 때도 있다. 입에 침이 고여 있을 때는 단지 고여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만약 잠에 떨어져서 침을 흘렸으면 흘린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침이 고였으면 고인 것을 알아차리고 침이 흘렀을 때는 흘린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흘린 침을 닦을 때는 침을 닦는 것을 알아차리면 된다.
< 참고 >
좌선을 하다가 어떤 생각을 골몰하게 할 때는 순간적으로 침을 삼키는 기능이 작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래 침이나 눈물은 계속해서 분비되기 마련입니다. 침도 나도 모르게 분비되고 분비된 것을 자연스럽게 삼키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체의 자율적인 기능이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떤 생각에 빠지면 마음이 그것에 매달려 순간적으로 침을 삼키는 기능이 작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단지 침이 고인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어떤 현상이나 모르는 것을 알았으면 안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호흡은 숨을 쉬려는 의도가 없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숨을 쉽니다. 호흡은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생각에 깊게 빠지면 숨을 쉬는 기능이 잠시 정지되어서 한숨을 크게 쉬게 됩니다. 이때도 침이 고인 현상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현상이 생겼을 때는 먼저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누구나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이런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다음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특별하게 침이나 눈물을 단지 물의 성품인 수대라고 알아차리는 것도 무방합니다. 눈물의 경우는 감정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만 수대라고 알아차리는 순간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즉시 이성을 찾습니다.
만약 침을 닦아야 할 때는 무조건 손을 사용하지 말고 먼저 침을 닦으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뒤에 천천히 침을 닦으면 깊은 생각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므로 좋은 현상이나 좋지 않은 현상이나 똑같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단지 알아차리고 말아야 이런 현상에 어떤 의미를 달아서는 안 됩니다. 볼 때는 보고 말고, 알 때는 알고 말고, 느낄 때는 느끼고 말아야 합니다. 어떤 현상이나 마침표를 찍고 무엇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수행의 궁극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모든 것이 변하는 무상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현상이나 단순하게 알고 말면 그 현상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 드러납니다. 이때 성품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묘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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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년만에 수행노트를 다시 정리합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른 것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강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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