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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7일 아산 UBF 신년 2 강 메시지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 / 마가복음 11 : 20-33
요절 / 마가복음 11 :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024년 신년 2 강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기초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의 종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막히지 않는 기도, 담대한 기도를 드리는 기도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아침에 길을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지나가는 길옆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나무는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잎이 푸르고 무성했었습니다. 하루 만에 뿌리부터 말라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지 하루밖에 지나지가 않았는데 잎과 줄기뿐만 아니라 뿌리까지 말라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크게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놀라움으로 말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지금 베드로의 모습은 그동안의 모습과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동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대하여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귀로는 들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말씀이 있어왔는데,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으신다는 것을 제자들은 귀로 들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서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듣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고수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어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오늘 뿌리부터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어제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흘려듣고 마음에 두지 않고 현실에 적용하지 않고...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집중력이 약합니다. 욕심에 쉽게 마음이 빼앗깁니다. 주변사물이나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감출 줄 모르고 자기 말만 해대는 사람을 일컬어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지 않고 기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기억해둔 예수님의 말씀을 눈앞에 벌어진 현상과 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제자의 길을 올바로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센터는 이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은 초청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지역교회에 등록하지 않았거나 출석하지 않는 청년들만 초청해 왔습니다. 성경에 사도바울이 남의 터 위에는 교회를 세우지 않겠다는 기록이 있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실제 선교 역사를 섬기는 측면에서 볼 때는, 지역 교회에 오래 출석한 형제들이 말씀을 듣기는 해도 순종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 가지 부족함이 있어도 말씀을 듣고 마음에 담는 사람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 가지 연약함이 있어도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그 말씀을 실제 상황과 생활에 적용해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경 말씀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문제, 우리 인생의 문제를 성경 말씀으로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들과 일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예수님 말씀을 통하여 해결받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패망하는 인생은 자기 욕심을 채움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본성과 감정을 따르는 것이 좋은 길이라 믿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눈앞에 보이는 무화가나무가 마른 것에 말씀을 적용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십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베드로와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를 몰아내고 왕위에 앉으셔야 자기들의 꿈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 왕이 되실 예수님을 원하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왜 종교지도자들과 충돌하실까 걱정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과 눈은 인간 예수님을 향해 고정되어서 기대와 걱정 사이를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아직 힘든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제자들이 의지하는 것은 환경이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장래, 직장, 물질 문제를 인간-예수님이 해결해주시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곁을 떠나신다고 하실 때 불안해하였으며 예루살렘으로 가신다고 할 때는 왕이 되려 하시는 줄 알고 환호했습니다. 사람이 환경 조건이나 사람을 의지할 때 연약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이것만큼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만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산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산이 들려진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산이 던져지는 불가능에 대해서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불가능이 없음을 믿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 불가능이 없으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위대한 포지션에 올라야 큰 일 할 수 있다고 계산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약하고 부족한 자기들이 위대한 포지션에 오르려면 예수님께서 지상메시아 왕국을 건설하고 그 왕국의 왕이 되셔야 한다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포지션, 사람들에 대한 권력을 가져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왕이 되지 않으신다면 자기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도전하면 위대한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1988년 한양센터에 갔을 때, “어 거기에서도 제자가 자라네요?” 라고 하신 사모님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지방이라 학생들이 순수해서 복음 역사도 쉬울 것이라고 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반대의견을 내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대전이나 청주에 비해서는 아산, 천안의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순수, 진실, 성실성에서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험일 뿐입니다. 밭이 좋지 않다. 시대가 삭막하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던져 질 산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80년대나 9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도 체험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학생목자들이 학생 양을 치는 역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현지 목자들을 세우고 또 그 현지 목자들이 또 다른 사람을 도와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역사, 이런 재생산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지속하는 역사를 위하여 도전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이야기 하신 후, 이어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믿음의 시작은 기도입니다. 믿음의 지속은 기도에 기초합니다. 믿음의 체험도 기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의심을 이기고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의심과 불신의 역사가 물러갑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기도하면 됩니다. 믿음이 잘 안생기면 기도하면 됩니다. 믿음이 좋고 영적인 사람이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좋고 영적인 사람으로 가는 길이 기도를 통하여 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힘이 있고 막힘이 없는 기도가 되기 위하여 문제되는 관계가 없어야 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든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용서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용서가 있고 현재의 용서가 있고 미래의 용서도 있습니다. 과거 큰 상처받은 일이 있는데 과거 일을 반드시 사과 받아야 용서하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더라도 나에게 행한 일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면 용서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미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사는데 나만 원한을 품고 있다면 내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나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기꺼이 지난 과오를 잊어주어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부담을 주고 모욕을 주고 실수를 하고 있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면 너그럽게 용납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너그러운 마음 이해의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그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사랑을 담은 충고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나 양들이 범하는 잘못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집니까? 관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나 양들이 지금 불순종하는 문제, 지금 연약한 문제가 있더라도 나중에 성장하고 나면 충분히 이 문제를 개선할 것이라 기대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미래에 변화되었을 때 해줄 용서를 지금 해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미래에 행할 용서를 해줄 대상을 자녀나 양 뿐 아니라 더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절대 용서 할 수 없는 대상이 아내나 남편일 수 있습니다. 직장동료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그가 변화될 것을 믿으면서 우리의 마음으로는 지금 미리 용서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상대방에게 해주는 용서의 말은 적절한 때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마음에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르게 하신 무화과나무는 사실은 당시의 유대교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유대교 중에서도 성전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이 예루살렘 유대성전은 겉으로 화려하였습니다. 당대 건축의 최고봉이라고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예루살렘에서 성전의 건물로써의 위엄과 화려함에 놀라고 탄복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예루살렘 성전은 건물로써는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나 그 안에 올바른 신앙이 없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뿌리부터 말라버리는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이제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예루살렘 성전이 앞으로 어떤 심판을 받을 것인지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가 씨가 심겨져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운 후 열매를 맺듯이 신앙도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잎만 무성하지 말고 열매 맺는 인생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잎만 무성한 삶을 살기 쉽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것,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만 해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빼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이 많은 사람들의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영적인 장소라고 하였지만, 예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무너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철저하게 파괴되고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드리는 인생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UBF 목자의 삶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Fishing – Growing up – Training – Discipline – Apostle입니다. Fishing 단계에서의 열매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사람이 우글우글 해 보이는데, 그 사람들 중에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없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으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Growing up 단계에서의 열매는 예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데, 1학년 때도 사랑달라 관심달라, 2학년 때도 사랑달라 관심달라, 3학년 때도 사랑달라 관심달라, 4학년 때도 졸업 하고도 취업하고도 결혼하고도 늘 자기 밖에 모르는 젖먹이 상태로 있으면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계속 공부하고 목자님들의 섬김을 받았으면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살겠다 예수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중심의 변화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실제적인 Training 단계로 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Training 단계의 열매는 변화된 모습니다. 이기적인 언어습관, 복음 역사 섬기기에 부적절한 생활습관, 자기중심적인 논리전개 방식,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약점, 틈만 나면 의심하고 의혹에 빠지는 생각의 경로가 모두 연단과 훈련을 통하여 정화되고 제거가 되어야 합니다. 보통 30대에 이런 연단을 받는 것이 좋은데, 연단 받을 때 연단을 받지 못해서 40대에도 여전히 자기중심, 50대에도 계속 Ego centric이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죄의 묵은 때와 인간적인 요소가 제거 되는 것이 Training 단계의 열매입니다. Discipline단계의 열매는 자립적으로 말씀의 샘을 파서 양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능히 다른 사람의 문제를 도와줄 수 있어서 제자양성가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Apostle 단계의 열매는 이런 모든 열매를 맺은 사람이 여전히 개척하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시키는 일만 하고 있지 말고 새로운 요회를 감당하든 새로운 캠퍼스를 개척하든, 선교지로 파송받든지 해서 새역사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연단도 안 받고 제자양성도 못하면서 파송부터 받으려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충분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안일하게 눌러 앉아 있는 것도 큰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좋은 열매 맺으라고 부르심 받고 세움 받았습니다.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되늘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꼭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믿음을 말씀하시고 막힘없는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복을 받고 믿음 있는 사람이 쓰임 받고 믿음 있는 사람이 연단 받을 수 있고 믿음 있는 사람이 열매 맺습니다. 다른 것은 자랑하면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을 믿은 것은 자랑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올해 더욱 믿음 위에 견고해지고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 믿음을 자랑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다른 하는 일이 없었음에도 큰 은혜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저녁에 목자님들이 기도하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올해는 년초부터 학생회가 자발적으로 매일 모여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올해 사모님들, 목자님들, 학생들 다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하여서 하나님께서 더 크게 은혜 주시는 한 해로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 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을 내시는 주 예수님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UBF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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