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86)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의 머리를 밀어내지 못함
수학여행의 밤, 아이들은 이불을 펴고 누운 채로 잠들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공중을 떠돈다
예전에 여기에서 선배가 죽었대
아니야 죽은 게 아니라 자퇴를 한 거래
여기 주인이 교장이랑 친구래 그래서 매년 여기로 온대
아이들은 흐린 어둠을 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진실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고백을 하지는 않고 말들만 떠도는 수학여행의 밤
옆 반 반장이 혼자 우는데 걔네 담임이 안아줬대
매점 아줌마가 원래 이 학교 졸업생이래
아니야 죽은 딸이 여기 학생이었대 그래서 온 거래
저 모든 일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작게 속삭인다면, 그것이 고백의 형식을 갖춘다면 그것은 더욱 진실처럼 들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의 손가락이 옆에 누운 아이의 손가락에 닿아 있다 실수로 그런 것처럼
- 황인찬(1988- ),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난다, 2024
**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단체, 배경 등의 설정은 실제와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문구,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것은 얼마 전에 시작한 모 드라마의 안내 문구입니다. ‘허구’라는 바탕을 깐 학원물인 이 드라마에서는 고종 황제의 사라진 금괴 이야기에, 학교 괴담을 결합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괴담은 괴상하고 이상야릇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사라진 금괴라……,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과 관련된 사기 사건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듣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거짓이나 유머 정도로 생각하고 흘려듣습니다만 의외로 솔깃해서 믿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이런 사기 사건이 꽤 자주 생깁니다. 요즘의 어수선한 나라 안팎의 사정을 고려했을까요. 이 드라마는 비자금이 아닌 금괴를 바탕에 두었습니다. 아니 시대 설정이 비자금이 아닌 금괴를 설정했을 수도 있겠군요. 촬영이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되었을 테니 최근의 상황을 반영한 것은 아니겠지만 금괴는 최근의 정국政局과 맞물려서 잘 맞아떨어져 보입니다. 이런 걸 시의적절하다고 하나요. 시의적절이라니, 오늘 소개한 시가 수록된 이 책의 시리즈 제목이 또한 시의적절입니다. 기획 의도로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를 내세운 이 시리즈는 2024년 한 해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매달 써나간 열두 권의 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중 번갈아 일기처럼 쓴 시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7월의 책입니다. 괴담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여러 장르를 결합해서 전개됩니다. 위 드라마의 장르 또한 코믹, 액션, 멜로, 스릴러 등 여러 장르의 특색을 고루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괴담을 바탕으로 했으니 여러 장르가 섞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괴담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여고괴담’입니다. 저만 그랬을까요, 학교 괴담은 <여고괴담>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포영화 시리즈’로 이어진 <여고괴담>은 1998년에 시작해서 2021년까지 여섯 편이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뜨기 시작해 스타가 된 배우들이 여럿 있습니다. “예전에 여기에서 선배가 죽었대” “아니야 죽은 딸이 여기 학생이었대” 오늘의 시에서도 이런 학교 괴담이 나옵니다. 이 학교 괴담은 학교를 넘어 학교 바깥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괴담은 “어두운 곳에서 작게 속삭이”고 “그것이 고백의 형식을 갖추”었더라도 어디까지나 괴담입니다. 애초에 “저 모든 일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던 그대로 괴담입니다. 이런 괴담을 실체가 있는 진실로 오해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공포물에서 괴담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것은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이지 진실 찾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이런 괴담을 실체가 있는 진실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순간 감정이 확 끓어오르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감정을 밖으로 표출시키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이 저에게는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해서 차마 “머리를 밀어내지 못”해서였습니다. 제 “손가락에” 그 사람의 “손가락”이 “닿아 있”어서 아직 더 함께해야 해서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지나가면 언젠가는 이 파국도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무모해 보일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더불어 사는 지혜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수선한 날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안녕을 빕니다. (20250305)
첫댓글 순간 감정이 확 끓어오르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감정을 밖으로 표출시키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이 저에게는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해서 차마 “머리를 밀어내지 못”해서였습니다. 제 “손가락에” 그 사람의 “손가락”이 “닿아 있”어서 아직 더 함께해야 해서였습니다. (보광 남태식)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