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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4) : 3월29일 (일)
데우랄리(2100m)- 톨카(1700m)- 란드룩(1565m)- 뉴브릿지(1340m)- 지누단다((1780m)
14명의 사람과 송아지 한마리와 수탁 한마리가 이 동네 전체의 구성원이다. 이 수탁이 동네의 좌장노릇을 한다. 트레케가 올쩍마다 우렁차게 울어 자기 존재를 알린다.브레멘 악단의 제일 위에 선 수탁같아서 브레멘의 수탁이라고 이름 지었다.
브레맨의 수탁
브레멘의 수탁이 아침 4시부터 울어댄다. 동네의 모닝콜이자 얼람 역활을 철저히 한다. 센스도 있어서 마당에서 울지 않고 50m쯤의 뒷산에 올라서 요란히 울어 댄다, 안 일어나면 부리로 쪼을 듯한 기세이다.
일어나니 주인집 아줌마가 향을 피우고, 밤새 비가 깨끗이 청소한 쓸 것도 없는 마당을 쓸고 있다.
담프스와 포타나길에서 사우스 안나프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볼 수 있다는데, 어제는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볼수가 없었다. 오늘도 동북 쪽 하늘을 올려보아도 설산은 보이지 않아서 실망하며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려는데 ”세상에......” 마차푸차레의 봉우리가 북동북 쪽에 우뚝 솟아 있고, 정북 방향으로는 사우스 안나푸르나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마차푸차레
네팔에 온지 나흘 만에 설산과의 젓 조우이다. 오감이 얼어 붙는 듯하고, 무당이 신이 내리면 몸을 떤다는데.....몸이 떨리는 듯 하다.
산은 너무 높아서 고개를 들어 봉우리쯤을 보면 거기는 산의 배꼽 쯤이다 머리를 완전히 제치고 하늘을 올려보면 하늘위에 산봉우리가 우뚝하다.
산은 너무커서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다.산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본 후, 그림 마추기 하듯 부분 부분을 머리 속에서 짜 맞추어야 머리 속에서 산의 그림이 완성된다.
사우스안나푸르나와 히운칠리.
롯지 주인 아줌마에게 제일 조망이 좋은 곳을 물어서 앞산으로 오른다. 나무가 무성하여 좋은 뷰 포인트를 찾기가 어렵다. 한 곳을 찾아 거기에 40분을 머물면서 디카와 필카의 샷터를 마구 눌러 댔다.해리가 찾으러 올라와 같이 내려가서 아침을 먹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마차푸차레는 구름속으로 숨어 버리고 사우스 안나푸르나는 태양빛을 받아서 더욱 하얗게 빛난다.
데우랄리란 이름에 맞게 오늘은 거의가 내리막길이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ABC(ANANAPRUNA BASE CAMP)에서 내려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십여명의 일본인과 솥과 버너를 포함해서 부식등을 질머진 십여명이 넘는 가이드와 포터도 만나고, 15명 가량의 여자로만 이루어진 팀도 만났다.가이드와 포터 트래커가 모두 여자인 것이다. 여자 가이드와 포터는 돈을 더 받는다고 한다.
가이드와 포터 없이 60리터짜리 배낭을 지고 씩씩하게 걷는 서양인들도 만나게 된다. 그들의 힘과 기백이 부럽기도 하지만 네팔에 온 이상 네팔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가이드만이라도 고용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비자 비용만 내고 히말라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주고 즐기기만 하는 것은 이기적이란 생각이다.
톨카의 롯지겸 식당에서 블랙커피와 야크 치즈를 먹었다.
주인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 온다. 수리아 라는 42세의 이 주인은 의정부와 성남에서 5년을 보냈다고 한다. 돈을 모았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소주만 늘었다고 했다. 얼굴은 잘 생겼으나 술에 찌든 기색이 남아 있어 보인다. 멀리 히운출리의 설봉이 하얗게 빛나고 주위는 온통 나무 천지이다. 이 선경 속에서 그가 소주로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좋은 한국을 기억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톨카를 떠났다.
톨카에서 본 안나푸르나사우스와 히운 출리
톨카에서 수리아와 함께. 내 머리 위로 히운칠리가 보인다.
톨카를 지나 랜드룩에 들어섰다.
안나프루나에 있는 모든 롯지와 식당은 구룽족들이 관리하에 있고 그들의 소득 수준은 높은 편이다. 간드룩이 구룽족 마을 중에는 제일 크고, 다음이 촘롱, 세번째가 란드룩이다. 안나프루나 빙하로 부터 큰 강인 모디콜라( MODI KHOLA: 콜라는 강의 현지어이다)가 MBC에서 부터 내가 지냐야하는 모든 마을을 거쳐 트레킹의 종착지인 나야풀을 지난다. 란드룩만이 강의 東岸에 있고 나머지는 전부 강의 西岸에 있다. 란드룩에서는 설산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강 건너편의 산만 보여 트레킹의 요지도 되지 못하고 주민들은 농사로만 생활을 영위하니 궁핌 해 보인다.
작은 마야;가운데 아이
란드룩 입구에 들어서는데 놀고 있던 아이들 중 한 여자 아이가 내 손을 잡는다. 손 만 잡는 줄 알았는데 손에다 고사리잎같이 생긴 풀잎을 쥐어 주면서 밝게 웃는다. 너무도 감격하여 배낭을 내리고 캬라멜 한 박스를 모두 털어 주고 볼펜을 두 자루씩 주었다. 마야가 사는 동네이니 이 아이를 리틀 마야라고 지었다. 온몸은 때로 꾀지지하고 머리는 감지 않아 석회가 있어도 밝게 웃는 모습에서 모습에서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것이 일곱 가지나 있다는 無財七施란 賢者의 말씀을 느낀다.
작은 마야가 내 손에 쥐어 준 풀잎.
뉴 브릿지를 넘으면 江의 동안에서 서안으로 넘어 간다. 뉴 브릿지 롯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때 까지는 내리막 길이었으나 이제 부터는 지누단다 까지 440M를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 길은 거의가 돌계단 길이다. 날씨는 무덥고 땀이 비오듯한다.
속으로 “ THIS IS THE STAIRS TO HEAVEN. AT THE END OF THIS STAIRS, THERE WILL BE BIG REWABDS!”를 되 내이면서 언덕을 오른다. 그러면 정말로 거기에는 좋은 전망이나 좋은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지누단다의 침실방- 이 방에서 3/29 ,4/3 이틀을 묵었다.
지누단다에는 촘롱의 수력발전에서 보내는 전기가 있어 밤새 불을 켤 수도 있고 잠자리는 데우랄리가 여인숙 수준이었다면 호텔 수준이다. 밤부에서 하산 길인 덴마크 청년들이 ABC에서 멋진 광경을 보았다고 자랑하면서 아직도 흥분이 가라 앉지 않은 표정이다.
그들 방문앞에 빨래가 즐비하게 걸려 있기에 나도 별 할일이 없고, 빨래를 하고나서 맨발에 반팔을 입고 더블 침대 위에서 책을 보다가 가벼운 감기 증상을 얻었다. 그래서 로칼 와인인 록시를 한 잔 마시고 잤다.
샤워를 하고 깨끗한 이부자리에서 개운한 기분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첫댓글 마차푸차레의 웅장한 모습과 아이들의 소박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히운출리등 너무 아름다운곳 이네요. 언제나 가게 될지 꿈만 같아요. 빨리 가고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