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은 베이징(北京)에서 시작해서, 그곳에서 사흘, 시안(西安)으로 가서 이틀동안 전형적인 관광코스로 둘러보고, 충칭(重慶)으로 가서 배를 타고 10일동안 오천리(1,985Km)를 양쯔강을 타고 내려와 난징(南京)에서 내려 상하이(上海)로 가서 사흘을 지내고 끝냈다.
베이징은 창국 60주년 기념행사가 막 끝난 때라 아직도 티난만광장(天安門廣場)에는 그당시 설치했던 끔직이도 큰 장식 수레들이 그대로 있었고, 특히 광장 양쪽으로 세워놓은 56개의 "온민족 통합기둥"(National Unity Poles)은 다민족의 통합을 애쓰는 정책을 상징하고 있었다. 한족이 92%이고 나머지 8%가 55의 소수민족으로 구성 되었는데도, 다민족국가라고 앞세우는 것을 보면 중국이라는 땅덩어리를 함께 묶어두는데는 필요한 백성들인가 보다. 일본여행중에 60주년 축하연 중계를 보았는데, 그때 갑작이 조선족대표 행열과 함께 "도라지타령"이 나와서 우리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섬쩍했었다. 북경구경은 작년에 김창현동문이 올린 "燕京別記"를 읽어서 얻은 알찬 깨다름때문에 더욱 즐길수 있었으니 우리 부고9사이트가 이래서 좋다.
티난만광장(天安門廣場)의 National Unity Poles
시안(西安)에서는 진시황릉에서 나온 유물들과 兵馬俑을 발굴한 유적지를 돌아보고 옛사람들이 (특히 왕과 귀족들이) 갖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집념과 "삶"을 죽어서도 연장하려던 안까님에 감탄이 나기도 했지만 서글픔이 더 크다.
시안(西安)의 兵馬俑발굴지
충칭(重慶)은 해방전 우리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이라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다. 1997년에 중국의 네번째 대도시로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티안진[天津]과 더불어) 인정되어서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크고 (80,000 평방 Km - 우리나라에서 전라 남북도를 제외한 크기), 인구가 가장 많은 (3천5백만) 대도시(?)라고 말한다. 지알링강(嘉陵江)이 양자강으로 합류하는 곳이고 여기서 우리는 배를 타고 양쯔강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쯔강은 세계에서 나일강과 아마존강 다음으로 세번째로 긴 강이다. 양쯔강은 전체길이가 6,300 Km이며 티베트의 해발 5,000m 고지대에서 시작하여 이빈(宜宾)에서는 305m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320Km 동북쪽에 위치한 충칭(重慶)에서는 192m로, 또 660Km 동쪽 하류에 위치한 이창(宜昌)에서는 40m로 떨어져 상하이(上海)로 내려와 중국동해로 흘러나간다. 양쯔강은 여러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이 창쟝(長江)이다. 이 강을 따라 몇천년을 두고 발달해온 도시와 마을들은 수다하다. 하지만 양쯔강은 싼샤(三峽)댐을 건설하기 전에는 홍수때마다 범람하여 늘 피해가 많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큰 골치덩어리 였다. 근래의 가장 큰 홍수는 1998년에 있었다. 이미 1900년대 초기에 썬옛센 (孫文)이 양쯔강에 댐을 설치 하여야 될것을 제시 하였다. 근 50년의 준비와 건설후인 2003년 6월 1일에 댐 자체의 건축이 끝나면서 정식으로 댐상류에 강물을 채우기 시작하여 지금은 175m의 깊이를 유지하는 큰 호수가 된 것이다. 여의도의 육삼빌딩이 249m라고 하니 그 깊이를 상상할수 있다. 이 싼샤(三峽)댐이 계획되고 건설되면서 중국내부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 특히 준비과정이였던 1980-1990년대에는 자연의 회손, (특히 삼협주위의), 역사적인 유물의 수몰, 역사적으로 오래된 지역 (1800여개의 도시와 마을)과 농토의 수몰, 그리고 백사십만명에 가까운 수몰지역의 주민들의 이주 문제등으로 신문, 잡지, TV에서 반대의 소리가 매우 컸었다. 이러한 여론적인 반대와 수몰지역 주민일부의 끈질긴 반대에도 무릅쓰고 강행하여 이 Three Gorges Project (三峽工程)는 현제 거의 완성에 이르렀다.
충칭을 떠나서 제일처음 상륙한곳은 펭두(豊都). 펭두는 이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으로 이미 한나라때 부터 "망령의 도시" (Ghost City)라는 별명을 갖고있었다. 원래의 펭두(豊都)는 거의 반이상이 수몰되고 현제의 펭두(豊都)는 고지에 새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수몰지역 이주민을 위하여 초기에 지은 대부분의 아파트는 6층인데 그이유가 6층까지는 엘레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다. 펭두에 사는 젊은이들은 새도시에 만족하다고 하지만 그들의 부모는 아직도 옛생활의 향수를 갖고 있다고 로컬 가이드가 말한다. 특히 추첨으로 받은 아파트가 고층인(5층 또는 6층) 경우에는 매일 5, 6층을 몇번씩 오르고 내리는 것이 힘들고, 옛날에는 문밖에만 나서면 자기 밭이 였는데 이제는 자기네 밭이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서 불편하고, 자기 땅 같지도 않고...
펭두(豊都)항구에 모여 있는 양쯔강을 소제하는 뱃사람들
양쯔강은 물이 누렇다. 그래도 이강에서는 여러가지 물고기가 잡힌다고 한다. 우리가 본 양쯔강의 고기잡이는 대개가 이인조의 부부들이다.
양쯔강의 고기잡이 부부
펭두를 지나 다음에 도착한곳은 시바오자이(石寶寨). 이곳에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세운 12층 목조건물의 사찰이 있다. 이 사찰은 절벽을 한쪽벽으로 하고 세워진 것이다. 그것은 절벽위에 있는 절에 가려면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여 죽었기 때문에 절벽을 뒷담으로 하고 세웠다고 한다.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기도 하다. 싼샤댐이 완공 되면서 이절이 있는 작은 산은 섬이 되었고, 절의 거의 반이 물에 잠기게 되어 이를 보호하기위하여 제방을 앞쪽으로 높이 쌓았다.
시바오자이(石寶寨)의 사찰
양쯔싼샤(長江三峽)는 펭지에(奉節)에서 시작하는데 취탕샤(瞿塘峡), 우샤(巫峡), 시링샤(西陵峡)로 1,000m이상의 고산절벽들이 양쪽을 끼고 솟아 올라 200Km거리의 峽谷을 이루어 양쯔강댐이 있는 이창 (宜昌)근처에서 끝난다. 댐이 건설되기전에는 이근방의 수면이 해발 60m~80m이였었는데 현제 175m로 되었으니 100m정도는 물에 잠겨 버린것 이다. 싼샤는 역사적인 유적을 많이 갖고 있었던 곳인데 댐으로 이산속과 절벽에 있던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이 수몰되었다. 몇개의 유적들은 (특히 옛 사찰들) 다른곳 산속에 다시 원본에 따라 설치하였지만 원래것들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중에서 가장 애석하게 여겨지는 것은 근 이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었던 국가 문화재였던 둔전(屯田)마을인 다창(大昌)이 완전히 수몰되어 몇개의 옛날 집만 옮겨지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한 싼샤는 "삼국지"의 무대로 유명하다. 취탕샤(瞿塘峡)끝지역에 있었던 유비가 죽은곳인 바이디쳉 (白帝城)은 댐이 완공되면서 완전히 섬이 되었고 그곳에 있던 유적들은 거의 수몰되었다고 한다. 취탕샤(瞿塘峡)는 양쪽으로 높이 350m~1,200m의 절벽들이 쿠이멘(夔門) 이라고 불리우는 문처럼 솟아오른 암벽을 시작으로 약 8Km쯤 계속된다. 쿠이멘(夔門)의 The Whitewashed Wall (粉壁墻)을 지날때 그 절벽에는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에는 1000년전 송나라당시에 새겨진것과 400년전 당나라시대에 새겨진것, 그리고 최근에 새겨진 것들이 있다. 물론 원본은 이미 물에 잠겨서 지금 보이는 것은 원본대로 새로 절벽 윗 부분에 새겨 놓은 것이다. 우샤(巫峡)에는 천미터이상의 십이봉이 웅대하게 솟아올라 있고 그중에 센누펭(神女峰)은 특히 신비스럽다. 시링샤(西陵峡)는 넓고 길게 구비구비 돌면서 신비스러운 산의 정경을 보여 주지만 시링샤 서쪽의 정경은 거의다 수몰되었다고 한다. 댐이 완성 되기 전에 이곳을 와 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달라 졌는지는 모르지만 깊이가 그많큼 줄어들었으니 고산절벽의 웅장함이 덜하리라 생각된다. 중국의 많은 시인들이 칭송을 한 이 양쯔쌍샤(長江三峽)의 운치는 당나라의 李白과 두보(杜甫)의 시에서도 엿볼수있다고 한다.
취탕샤(瞿塘峡)를 들어가며
쿠이멘(夔門)의 粉壁墻에 새겨 있는 글씨들
취탕샤(瞿塘峡)를 지나서 우샨(巫山)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다닝강(大宁河)을 따라 올라가면 샤오싼사(小三峡)로 들어간다. 샤오싼샤에서는 룽먼샤(龙门峡), 바우샤(巴雾峡)와 디취샤(滴翠峡)를 볼수있다. 샤오싼샤(小三峡)는 안개에 쌓인 켭켭의 산이 멀리 보이면서 기암 절벽이 연속되고, 나무가 욱어진 고산에 살고 있는 원숭이도 가끔 볼수 있고, 높은 절벽에는 아직도 몇몇곳에 옛사람들이 그들 관습에 따라 절벽에 뚤린 굴에 올려놓은 현관(懸棺)을 볼수있다.
샤오싼사(小三峡)의 괴암
샤오싼사(小三峡)의 첩첩한 산들
샤오싼사(小三峡)의고산 절벽
샤오싼사(小三峡)의고산 절벽
양쯔싼샤(長江三峽)댐은 이창 (宜昌)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댐이며 1950년에 정식으로 기획이 시작되었고, 1994년에 준공이 시작되었으며, 2003년에 강물을 저장하기 시작 했다. 올해로(2009년) 몇개의 소발전소를 제외하고는 완공을 한셈이다. 홍수에 의한 수해를 막고, 수력발전으로 전력을 확보하고, 수로를 통한 물력의 운송을 급증시키는것이 이 댐을 만든 세가지 목적이다. 이댐이 건축되면서 훙수로 인한 피해는 100년은 막을수 있고, 설치된 26개의 수력 발전기로 일년에 85조 킬로왓트를 발생시키고, 일만톤 정도의 배들이 충칭까지 운항을 할수 있게 됐다. 우리탄 배가 이 댐의 다섯개의 "문" (locks)을 통과하는데 6시간이 걸렸다. 양쯔싼샤(長江三峽)댐기념관에 들리니 중국인들이 들끌었다. 모두들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아마 수몰지역 이주민들은 아닌듯...
양쯔싼샤(長江三峽)댐
이창 (宜昌)에서 양쯔싼샤(長江三峽)댐을 빠저나와 400Km를 크루즈한후에 처음 들린곳은 동팅호(洞庭湖)변에 있는 유에양(岳陽). 그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동팅호(洞庭湖)를 내려다 볼수있는 유에양루(岳陽樓)가 있다 (물론 여러번 재건축한 것이지만). 이탑은 중국의 역사적인 四大塔 (지앙시[江西]에 있는 텡왕게[滕王阁], 우한[武漢]에 있는 황헤루[黄鹤楼]와 펭라이[蓬萊]에 있는 펭라이게[蓬莱阁])중에 하나이며 송나라의 학자이며 시인이였던 팽종얀(范仲淹)이 쓴 유에양루지(岳陽樓記)로 더욱 유명하다.
유에양루(岳陽樓)
유에양(岳陽)을 떠나 다시 230Km동쪽에 있는 우한(武漢)에 내려 그곳 후베이(湖北省)박물관에 들렸다. 이곳에는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 하기전인 서기전 481-221년시기의 잔구오시대(戰國時代)의 추(楚)나라때의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이다. 많은 동기시대의 유물이 있지만 그중 추(楚)나라의 음악에대한 발전을 보여주는 동으로 만든 65개의 종으로 2,500년전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아직 정확한 음을 낸다고 한다.
후베이(湖北省)박물관에 있는 동으로 만든 종
우한(武漢)에서 250Km동쪽에 있는 쥬이장(九江)에 내려 버스로 징데젠(景德镇)에 들렸다. 징데젠(景德镇)은 1,700년의 역사를 갖고있는 도자기의 도시이다. 시내를 들어가면서 부터 길가에 있는 전보대, 문, 기둥, 모든 장식들이 다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옛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많은 수집가들이 갖고 싶어한다고 한다. 특히 청백색의 도자기가 유명하다.
옛날에 도자기를 굽던 곳
양쯔강에서 마지막으로 들린곳은 안칭(安慶)에서 내려서 간 지우후아산(九華山)으로 이곳 동쪽에 있는 유명한 황샨(黃山)에 못지않게 깊고 높은 산봉우리가 모여있고 중국의 불교를 그래도 유지 시킨 사찰이 많이 있는 산이다.
지우후아산(九華山)
양쯔강 오천리를 타고 내려 오면서 느낀것은 중국을 무시해서는 않된다는 것이 였다. 너무 크다. 사람도 너무 많다. 그리고 너무 큰 박력을 갖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시골 마을에서본 빈곤도 역역하여 온 국민이 다 잘 살려면 힘이 들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처럼 오래 걸릴 것 같지가 않다. 양쯔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여기 초등학교 복도에는 갈릴레오, 베이콘, 아인슈타인, 큐리부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중국이 한복판에 있는 세계지도와 "세계로! 미래를 향해!"라는 구호가 걸려 있다.
원장현의 낙화
~ 霧 城 ~
(보통 디지털 카메라로, 그것도 아마추어의 실력으로 찍은 사진들이라 실제의 정취를 잘 보여주지 못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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