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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누가 죄인인가?
정사년(1917년) 봄, 경덕제 이준이 승하합니다. 상황 이형(또는 폐주 익성군)이 양위한 이래 그의 치세는 영광과 중흥으로 가득찼지만, 동시에 나라는 기만과 부패가 판치는 곳이 되었습니다. 4월 1일, 국장 마지막 날, 황제의 영정과 관이 육조 거리를 행진해 한강 다리를 건너 장지로 향했습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죠. 황제의 승하를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들, 아예 곡을 하며 목놓아 우는 사람들, 평생 한두번 할까 말까한 진귀한 경험에 신기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무엇인가 화가 나 보이는 사람들... 정부가 장례에 경덕제 생전 연간의 공신들을 모두 초대함에 따라, 박태양과 김한립은 각각 딸을 대신 보냈습니다. 결사의 우두머리이던 김영천 또한 자리를 비추었죠. 그 외 최가이(이진하)는 가톨릭 수녀로, 영윤은 장례위원회의 준비위원으로, 공유남과 윤야리는 사업가와 그 경호원으로 위장해 참가했습니다.
장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엄숙했으나, 일행들의 감은 "곧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최근 농협과 노총의 인원들이 친정부적인 인물들로 싹 갈아치워지고 신민당이 몰락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바이기도 했고, 그렇게 완벽한 어용단체가 된 농협이 정부의 급속 공업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저곡가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점도 예측 가능했습니다. 조사 결과, 그러한 예측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삼남지방에서는 분노한 농민들이 지방 농협 건물을 불태우고 정부 공무원들을 납치 및 폭행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농민과 공업노동자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죠.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니 부수상 이완용을 비롯한 정부 고관들은 뮈텔 대주교 등 각급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 때, 큰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쌀값 후려치기로 농민들 죽이는 정부 물러가라!" 서재필 수상, 이완용 부수상, 최신우 추밀원장 등 고위급 인사들은 국빈과 외교관들을 대피시키면서, 헌병대의 즉시 대응을 명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헌병대가 농민 시위대들을 에워싸듯 도열해 총을 겨눴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윤야리가 "역적들이 저쪽으로 도망친다!"고 외치자 이들 시위대는 고위급 인사들이 방금 대피한 장소를 향해 달릴 채비를 갖췄습니다. 그러자 헌병대는 그대로 발포했습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땅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다행히 가톨릭 수녀로 위장한 이진하가 뮈텔 주교에게 접근해 "저들은 미끼"라는 가짜 정보를 흘리면서 무차별 진압은 그 정도 선에서 끝났지만, 이 일련의 일들은 김영천을 자극시키기 충분했습니다. 그는 장례를 위해 마련된 단상 위에 대뜸 올라서더니, 다음과 같은 사자후를 뱉었습니다.
“이리도 이 어르신을 환대해주니 감개가 무량하구나, 이 역적들아! 이미 간적 이하응의 손아귀에서 놀아나 임금을 폐하고, 새 황제를 세워 입헌 헌법이라는 간사한 틀에 가둔 순간부터 이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껍데기만 남은 쓰레기가 되어버렸노라. 민의를 따르지 않는 정부를 뒤엎는 것은 군주를 능멸함이 아니라 그저 잔적을 없애는 것 뿐이거늘, 너희가 하는 꼴이 바로 그 잔적과 같구나! 역도들아, 옥새를 옹위하는 우상숭배의 노예들아, 내 너희를 버리고 떠나기를 백번 천번은 더 잘했구나! 농사야말로 세상의 근본이며 노동이야말로 개화의 근본이다. 이들의 분노를 외면하니 이는 솥을 끓이는 불을 더 지피는 격이요, 솥에 물을 넣지 않은 행위가 아닌가? 곧 솥이 깨지겠구나, 이 제국주의 권귀들아!
인민 동지 여러분! 오랜만이오, 나 김영천이오! 우리가 만들려던 나라가 이것이었소? 절대! 국가의 크기가 커지고 위상이 높아지면 무얼 하는가? 그 과실을 만드는 건 우리지만, 과실을 따먹는 것은 저 권귀 모리배들이니 아주 통탄할 노릇이외다. 혁명의 때가 머지 않았소, 여러분! 혁명은 죄가 없소!
혁명은 죄가 없으니, 모든 반역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동시에, 러시아 혁명을 찬양하는 사회주의적 논설들이 담긴 선전 삐라가 뿌려졌습니다. 물론 뿌렸다기보다는 몇십 장 정도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진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나눠준 것에 가까웠지만요. 군중들은 김영천의 말을 홀린 듯 듣고 있다가, 공유남의 호응 유도로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김영천을 근거리에서 호위하던 윤야리의 눈에 이쪽을 겨누고 있는 저격수가 보였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김영천을 구하러 가기에도, 저격수에게 달려가기에도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재빨리 발밑의 돌덩이를 집어 세차게 저격수를 향해 던졌습니다. 놀랍게도, 돌은 저격수의 미간에 정확히 명중해 그를 지붕 위에서 떨어뜨렸습니다. "저격수입니다, 선생님!" 먼저 경고부터 하고 공격에 나서는 것이 더 적절했던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모든 소란이 끝나고, 김영천은 조직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한성에 남았습니다. 지금 김영천과 함께 있는 것은 곧 자신도 순교하고 싶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천은 자신도 남겠다는 모든 동지들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생각보다 더 어처구니없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 “구태사상의 발원지를 처단하라! 혁명적 아나키스트 동맹의 이름으로 민중의 적 김영천을 처단한다!” 이 외침과 함께 김영천은 수류탄에 직격당했습니다. 그가 탄 자동차는 쇳덩어리로 전락해버렸죠.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아나키스트의 소행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설마 정부가 그렇게까지 했겠어?”라고 되물을 뿐. 조직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스승이 죽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정부라는 이들이 테러리스트와 똑같은 행동을 저지르다니요. 차라리 체포한 뒤 고문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황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스란히 갚아주기로 했습니다. 내부적으로 국가의 기틀을 무너뜨리고, 외부에서 투쟁역량을 키우며, 직접적 폭력투쟁으로써 '인민의 적'을 제거해나갈 것입니다. "조선-남만주 직접혁명 및 외만주 민중단결을 위한 총위원회(민혁)"은 민중 혁명의 그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18. 황무지 공화국
한때 동맹국(물론 서로 뒤통수 칠 생각만 가득했지만)이었던 영국과 독일이 서로를 최대의 라이벌로 지정하고, 프랑스에서 정권이 두 번이나 뒤집히며, 오스트리아 합중국에서는 좌익 사민주의자들이 집권해 제2차 제국개혁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정치부장 이진하, 군무부장 윤야리, 정보부장 박영화는 민혁 임시의장 김구(김창수)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 송화강을 넘어 동시베리아 공화국의 영토로 향했습니다. 이곳의 상황은 참 가관이었습니다. 말이 공화국이지, 사실상 군벌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었죠. 아무르강 이남 내만주에는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젤레나 우크라이나 철의 기사단'이라는, 거의 중세 봉건주의에 가까운 퇴행적 사상을 가진 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무르강 너머 태평양과 접하는 연해주 북부-외만주에는 안톤 데니킨의 제국 복원위원회가, 그보다 더 북쪽에는 세묜 부됸니가 이끄는 좌익 성향의 '혁명 기동타격대'가 위치해 있었죠. 명목상 동시베리아 공화국의 대통령인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은 수도인 하바롭스크도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신의 용병대인 체코 군단을 주 세력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일단 연해주 남부의 한인 밀집지역인 우수리스크 한인촌으로 향하려다가, 그곳에는 중정의 밀정들이 가득하다는 소식을 듣고 행선지를 스보보드니(자유시)로 바꿨습니다. 그곳은 한인촌을 제외하고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었고, 세묘노프와 부됸니 세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자경단을 꾸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자유시에 도착하자, 그곳의 지도자 격인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 '박 니콜라이'가 일행들을 맞아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오해가 생겨 서로 총을 겨누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한국 내 혁명을 지향하는 조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누그러진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죠. 박 니콜라이는 우수리스크 신한촌에서 믿을 만한 사람 몇 명을 불러오겠다며 자리를 나섰고, 일행들은 며칠 뒤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구 신민당의 정치인이자 1911년 망명 이후 트로츠키의 극동 사회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던 이동휘 선생, 그리고 전투적 아나키스트이자 역시 트로츠키와 함께 활동했던 박 일리야가 자유시를 찾아왔습니다. 트로츠키의 조직이 러시아 인민공화국에 합류해 사빈코프와 함께 우익을 형성하자 동시베리아 내 한인 혁명조직은 소강기에 들어가 있었죠. 민혁의 등장은 이들에게도 중요한 기회이자 분기점이었습니다. 열띤 토론 끝에,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부됸니와 일시적으로 협력하는 동시에 체코 군단과 협상해 동시베리아 정부를 붕괴시키는 데 일조하는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부됸니는 러시아 혁명을, 민혁은 한국 혁명을, 그리고 체코 군단은 조국으로의 귀환을 얻어가는 윈-윈-윈 거래였죠. 다만 민혁의 새로운 근거지를 어디로 할 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렸습니다. 러시아 내 중도좌파 정치인 니콜라이 부하린의 지지자인 이진하는 러시아와의 협력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윤야리와 박영화는 신중론을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군벌 형성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덜 미칠 북만주 지역이 근거지로 정해졌습니다.
"사회주의가 싫다고 군벌 형성을 용납하는" 꼴이 퍽 우스웠던 이진하는 정치부장으로서 민주집중제에 의거한 전위당 체제를 꾸렸습니다. 조선민족혁명당(조혁)이 창당되어, 당직과 공직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사이 조혁/민혁 군무부장 윤야리는 부됸니와 깊은 전우애를 형성하며 그를 끌어들였고, 박영화는 "민혁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다"는 말을 지어내 체코 군단과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습니다. 체코 군단은 곧바로 고용주인 콜차크를 배신해 그를 살해했고, 이 소식을 들은 데니킨은 러시아 제국 임시정부를 선언해 본인을 전러시아의 섭정으로 선포했습니다. 세묘노프가 제국 임시정부에 충성하고 러시아의 사빈코프가 최고소비에트를 설득해 동시베리아 수복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조선민족혁명당의 당군 '조선혁명군'이 초기 2,000명 규모로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공산주의자들과의 계약을 이행하며 해외 독립투쟁의 기반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었습니다...
19. 당랑거철?
시베리아 수복전쟁이 발발하기 몇 달 전인 1917년 8월, 수확철을 앞둔 서재필 내각은 농협 사태의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이들은 농민들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인도차이나를 차지한 일본으로부터 잉여 안남미(인디카)를 대량 수입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오히려 노동자와 농민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습니다. 서재필은 이 책임을 져 수상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죠. 후임으로는 당내 소장파이자 사민련의 영수 이승만이 선정되었습니다. 이승만은 농협의 구조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급한 불을 껐지만, 강경한 공업중심정책을 원하던 보국회, 토요회, 성심회 등 당내 기득권들은 이를 매우 마땅찮아했습니다. 1918년 4월 시베리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한성에서는 격론이 펼쳐졌습니다. 야당인 민주당, 농민당, 노동당 뿐 아니라 집권세력인 입헌자유당 내 소장파(이승만 포함)는 동시베리아를 그렇게 중요한 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완충지대로서의 역할 외에는 그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그 완충지대의 역할조차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 이승만의 평가였죠. 그러나 보수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시베리아는 '국가적, 민족적 자긍심'의 상징이었습니다. 애초에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근거로 집권해 어떻게든 권력을 연장해왔던 이들이 이제와서 그 유일한 성과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였습니다.
독일이 러시아를 지지하고, 영국과 미국이 중립을 지키며, 일본이 시베리아 출병을 선언한 상황이었습니다. 원활한 출병을 위해서 시베리아행 철도를 쥐고 있는 한국의 동참이 반드시 필요했던 일본은 지속적으로 한성 정계에 로비를 시도했죠. 그러던 5월, 이번에는 정체불명의 전염성 괴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독감, 한국 내에서는 '지나 독감'으로 불리는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전면전을 선언한 것입니다. 해외와 호응해 국내 투쟁역량을 신장하고 동시에 정부의 대처역량을 착실히 깎아먹어야 하는 재정부장 영윤, 선전부장 김혜정, 교통부장 공유남은 시베리아 출병과 방역이라는 두 의제를 적절히 고려해야 했습니다. 시베리아 출병은 장기적으로 정부의 역량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단기적으로는 해외의 동지들에게 해가 될 것이고, 방역조치 강화는 인민들의 건강에 필수적이지만 국내 혁명역량의 약화를 의미했습니다.
주로 정계 내 온건파(또는 진보파)가 방역조치 강화와 출병 반대를 외치는 반면, 강경파(또는 보수파)가 방역조치 반대와 출병 찬성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 착안하여 국내 민혁 조직의 급진파 동지들은 "방역 강화는 곧 공산주의 체제의 도입과 같으며, 이를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좌익분자들을 도와 시베리아 출병을 막으려 한다"는 흑색 프로파간다를 날리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침 재정부 회의에 참가했다가 "이 나라가 민족적 자긍심이나 열망 없이 어떻게 유지되겠냐"는 고위급 인사의 말을 듣고 몹시 분노한 영윤은 홧김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국내 급진파의 아이콘이었던 김혜정은 흐뭇하게 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온건파인 공유남 역시 정부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갈등하면서도 굳이 반대는 하지 않았죠.
민혁은 작은 반체제 조직에 불과했지만, 이미 휘발유로 범벅되어 있던 한성 정계를 불태우는 데는 아주 작은 불씨로도 충분했습니다. 불과 백 장도 안 되는 괴벽서가 한성 곳곳에 붙었을 뿐인데도, 한성의 정치인들은 기회다 싶어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정계는 입헌자유당 기득권과 우익 국민당의 연립정부인 '국민통합정부'와 입헌자유당 소장파 및 진보성향 야당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으로 갈려 극심한 비방전의 장으로 변해버렸죠. 이승만 내각이 불신임당하고 나서 국민통합정부의 수상으로 올라선 보국회의 이완용은 즉각 시베리아 출병을 선언했습니다. 물론 그가 진심으로 시베리아에서 끝장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뿐이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선택은 그대로 대중적 불만으로 작용했습니다. 엄청난 수의 국민들이 독감에 감염되어 그 중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인원이 사망했습니다. 일터에서는 고용주들이 정상출근을 강요한 끝에 억지로 출근한 노동자들이 독감을 옮겨 결국 생산불능에 빠지는 사태가 빈발했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타격은 점점 늘어갔고, 시베리아 출병에 대한 인기 역시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이완용은 일본과 의논해 철군을 논하고 있었죠. 이 때를 틈타, 대중적 불만을 결집시킬 구심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일행들은 "조선 민족혁명당"의 존재를 전력으로 선전했습니다. 9월 2일, 한성에서 우발적인 가두시위가 발생했고, 조혁은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즉시 급조된 조혁 깃발이 휘날렸죠. 그 존재조차 불투명했던 조직이 민중의 반체제적 열망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조직의 인지도를 높였으니, 남은 것은 실질적 조직력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해외에서는 조선혁명군이 적극적인 게릴라 활동으로 한일 연합군을 괴롭히고 있었으니, 국내에서도 해외의 무력에 호응해줄 조직이 필요했죠. 김혜정은 자신이 잠시 몸담고 있던 산별노조창립준비위원회에서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이미 완전한 어용단체로 전락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전혀 보호해줄 수 없는 한국노총 대신 독립적 노총을 설립한다면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죠. 이 제안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생디칼리스트였던 김혜정은 (만주의 조혁 본부의 입장과 비슷하게) 군사적인 노동조합을 원했고, 신 노총이 강한 민족주의적 경향과 사회주의-조합주의적 지향을 가지기를 바랐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급진파와 동조하고 있었던 영윤 역시 '민족주의적 경향을 완화하는 대가로' 이에 찬동했죠. 온건파이자 중도주의자였던 공유남은 급진파의 우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김혜정과 영윤의 급진파는 협상에 나서기로 하여, "혁명을 지향하며, 방법론으로 군사조직화와 총파업 무력투쟁을 채택하고, 완전한 성평등 및 인종평등을 실현하며, 개개인의 영웅의식 및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으로써 노동조합이 생산체를 직접관리하는 민중의 세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동총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분명 시작은 좌익 파시즘의 일종인 민족생디칼리슴이었으나, 그 결과물은 오히려 좌파공산주의의 그것에 훨씬 더 가까웠죠. 아무튼, 대부분의 동지들은 일단 '혁명'이라는 대전제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혁명을 하든... 일단 혁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1918년 12월 한국군과 일본군이 다대한 비전투손실을 낸 채 시베리아에서 철군했습니다. 러시아는 재통일을 선언할 수 있었죠. 다만 러시아 정계는 그간 일대 지각변동을 겪은 후였습니다. 급격한 공업 집산화가 큰 부작용을 야기해 우파(최대주의자)의 위치가 불안해졋고, 최대주의 계파의 거두 사빈코프와 트로츠키는 시베리아 수복전쟁으로써 공격적 국제주의 및 강력한 집산주의 노선을 복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출병 초반의 상황은 러시아에게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이들은 결국 실각하고 말았습니다. 좌파공산주의 계열의 힘이 강해진 러시아에서는 중도파 중 좌파(혹은 '좌파 중 중도파') 니콜라이 부하린의 제안으로 신경제정책(NEP)이 실시되었죠. 신기한 것은, 가장 급진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자본에 의한 지배를 반대한다고 나섰던 좌파 인사들이 오히려 레닌이나 카메네프같은 중도파보다도 자본주의 제도와의 타협에 더욱 전향적으로 나섰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아나키즘적 입장에 가까웠던 일부 좌파들은 여전히 반발했지만, 역시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했습니다. 러시아의 좌파공산주의자들은 '반권위주의'와 '반자본주의' 중 하나를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 되도록이면 전자를 위해 후자를 포기할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프랑스에서 '통합주의(integralisme)'라는 이념을 기초로 한 위베르 리요테의 통령정부(제4공화국)이 세워졌고, 국제연맹이 세워지던 1919년 초, 아시아에서도 다시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안직전쟁에서 승리하고 북양정부의 실권을 쥔 안휘군벌의 돤치루이는 몽골 출병을 계획중이었고, 이를 막을 힘이 없었던 몽골의 복드 칸은 시베리아 수복전쟁의 결과로 북만주에서 쫓겨난 세묘노프의 '젤레나 우크라이나 기사단'을 불러들여 중국인들을 막으려 들었습니다. 광저우의 국민정부와 달리 베이징의 북양정부는 만주 수복을 당면 목표로 삼고 있으니, 몽골에서의 일은 최대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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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샤츠슈나이더 아무튼 이번 조선 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당분간 동아시아 쪽은 안 건드릴 것 같네요. 의외로 유럽(러시아 제외)쪽은 한번도 안 했기도 하고…
@E.E.샤츠슈나이더 하긴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은 한번 했거나, 국민정부(...) 아니면 청나라... 죠 ㅋㅋ. 동남아나 인도는 뭐... 그런데 유럽은 그거땜시 배제 하고 계시던줄 ㅋㅋㅋ... 이 세계관 프랑스나 원 세계관 독일이 무대...? 가능성이 높으려나요?
@dear0904 가나안 프리퀄! 1세기 유다 속주 독립운동 RP(?)
@E.E.샤츠슈나이더 어...?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프레스터 존은 어때요?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예정된 배드엔딩 ㄷㄷ
@렌지파일 용사는 죽지 않는다! 컨셉으로 무한 전생하면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확장을 막아내는(...)
@렌지파일 일국혁명 vs 세계혁명 갈등요소도 있고 좋네요(?)
@E.E.샤츠슈나이더 그럼 대영제국으로 팍스 브리타니카 유지하는건?
@돈이 곧 진리 다른 곳은 다 해도 영국은 할 일 없을 것 같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E.E.샤츠슈나이더 혐성국 out!(?)
갑자기... 는 아니고, 마음 좀 식히고 다시 생각 해본 결과... 말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주사위... 참 좋죠. 공정하고, 평등하고, 선택 할 필요도 없고. 저도 쓸거고, 모두가 쓸거고, 계속 그럴겁니다.
그런데, 그게 캐릭터 혼자의 의사 결정이나, 상황 판단이 아니라... 투표 상황에서. 그것도 대부분 근거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캐스팅 보트임이 명백한 상황에서... 주사위로 투표를 하는건 상당히 부적절 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사위를 혼자만 보고 반대 했다면, 이렇게 말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놓고 주사위를 사용하여 투표를 했다는걸 공연히 표한 이상, 비판 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를 핵심으로 하는 컨텐츠에서, 어떤 플레이어가 자유투표등의 수단을 활용 함이 공고 할 경우, 그건 협상의 불가능함 및, 전략의 모호성을 플레이어가 강화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전략의 모호함은 ai가 제공 하는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즉... 최소한, 주사위를 사용해 표결 하려거든, 비밀로 하시거나... 차라리 기권을 권해 드리겠습니다.
정리하고 작성 중인데, 전개가… 이 정도로 뒤틀리면서도 복선이 회수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ㅋㅋㅋ
만협추 1편 (?)
하다보면 되는겁니다(?) 어떤 작가는 아무 생각 없이 써도 복선이 깔리고 회수 되는걸 자유롭게 한다더라구요(...) 믿긴 어렵지만...
@렌지파일 도이하라 상 말씀하시는건가요?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시작부터 암살에 견제에 혼돈 그자체였는데 또 이상하게 정리는 되었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