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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자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대태양
第七十一回 占对山黄忠逸待劳 据汉水赵云寡胜众
제71회: 마주보는 산을 점령한 황충은 쉬면서 피곤한 적을 기다리고, 한수를 점거한 조운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이겼다.
却说孔明分付黄忠:“你既要去,吾教法正助你。凡事计议而行。吾随后拨人马来接应。”黄忠应允,和法正领本部兵去了。孔明告玄德曰:“此老将不着言语激他,虽去不能成功。他今既去,须拨人马前去接应。”乃唤赵云:“将一枝人马,从小路出奇兵接应黄忠:若忠胜,不必出战;倘忠有失,即去救应。”又遣刘封、孟达:“领三千兵于山中险要去处,多立旌旗,以壮我兵之声势,令敌人惊疑。”三人各自领兵去了。又差人往下辨,授计与马超,令他如此而行。又差严颜往巴西阆中守隘,替张飞、魏延来同取汉中。
각설, 공명이 황충에게 분부하기를,“그대가 가겠다면 법정에게 그대를 돕게 하겠소. 모든 일을 그와 의논해서 실행하시오. 나는 뒤따라 인마를 동원해 접응하겠소.”했다. 황충이 받아들여서 법정과 함께 자기 부대의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공명이 현덕에게 고하기를,“이런 노장은 말로써 격동하지 않으면 비록 가더라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이제 갔으니 우리도 모름지기 인마를 일으켜 접응하러 가야 합니다.”했다. 이에 조운을 불러 말하기를,“한 갈래 군사를 거느리고 좁은 길을 따라 기습병력을 내어 황충을 지원하시오. 만약 황충이 이기면 출전할 필요는 없소. 만약 황충이 실패하면 즉시 구원하러 가시오.”하고, 또 유봉과 맹달을 보내면서 이르기를,“3천 병력을 거느리고 산 속의 험한 길목으로 가서 깃발을 많이 세워 우리 병력의 성세를 과시해서 적군들로 하여금 놀라고 의심하게 만드시오.”했다. 세 사람이 각자 병력을 거느리고 떠났다. 그리고 사람을 하판 땅으로 보내어 마초에게 계책을 주어 이러저러하게 행하라고 했다. 또한 엄안을 파서의 낭중으로 보내 요충지를 지키게 하는 대신에 장비와 위연을 불러 함께 한중을 취하게 했다.
却说张郃与夏侯尚来见夏侯渊,说:“天荡山已失,折了夏侯德、韩浩。今闻刘备亲自领兵来取汉中,可速奏魏王,早发精兵猛将,前来策应。”夏侯渊便差人报知曹洪。洪星夜前到许昌,禀知曹操。操大惊,急聚文武,商议发兵救汉中。长史刘晔进曰:“汉中若失,中原震动。大王休辞劳苦,必须亲自征讨。”操自悔曰:“恨当时不用卿言,以致如此!”忙传令旨,起兵四十万亲征。时建安二十三年秋七月也。
한편, 장합과 하후상은 하후연을 만나서 말하기를,“천탕산을 이미 빼앗긴데다 하후덕과 한호를 잃었습니다. 지금 듣자니 유비가 친히 병력을 이끌고 한중을 취하러 오니, 빨리 위왕께 글을 올려 정예 병력과 맹장을 동원해 계책을 마련해 응전하시라 하십시오.”하니, 하후연이 곧 사람을 보내 조홍에게 알렸다. 조홍이 밤새 허창에 이르러 조조에게 아뢰니, 조조가 크게 놀라 급히 문무 관리를 불러 모아서, 출병하여 한중을 구원할 것을 상의했다. 장사 벼슬의 유엽이 나와 말하기를,“만약 한중을 잃으면 중원이 진동할 것입니다. 대왕께서 노고를 사양하지 마시고 반드시 친히 정벌하셔야 합니다.”하니, 조조가 스스로 뉘우쳐 말하기를,“당시 경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러 한스럽구려!”하고, 급히 명령을 내려 병력 40만을 일으켜 친히 정벌에 나섰다 . 이때가 건안 23년 가을 7월이었다.
曹操兵分三路而进:前部先锋夏侯惇,操自领中军,使曹休押后,三军陆续起行。操骑白马金鞍,玉带锦衣;武士手执大红罗销金伞盖,左右金瓜银钺,镫棒戈矛,打日月龙凤旌旗;护驾龙虎官军二万五千,分为五队,每队五千,按青、黄、赤、白、黑五色,旗幡甲马,并依本色:光辉灿烂,极其雄壮。兵出潼关,操在马上望见一簇林木,极其茂盛,问近侍曰:“此何处也?”答曰:“此名蓝田。林木之间,乃蔡邕庄也。今邕女蔡琰,与其夫董祀居此。”
조조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진군하니 선두부대의 선봉은 하후돈이고, 조조는 친히 중군을 거느렸으며, 조휴를 시켜 후군을 맡게 하여, 삼군이 속속 길을 나섰다. 조조는 백마에 황금 안장을 얹어 올라타고 비단 옷에 옥대를 띠었다. 무사가 붉은 비단에 금박을 두른 커다란 양산을 손으로 들고, 좌우에서 금과(철봉 끝에 참외 모양의 둥글고 누런 쇠를 붙인 무기)와 큰 은도끼, 몽둥이 형태의 무기, 과모(여러 가지 창)를 들었다. 또한 해와 달, 봉황 깃발을 휘날렸다. 조조가 탄 수레를 호위하는 용호 관군이 2만 5천으로 다섯 부대로 나누어 부대마다 5천 명을 두고,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으로 안배하고, 깃발, 갑옷, 말들도 아울러 본래 색(오색)을 따르니, 휘황찬란하고 매우 웅장했다. 병력이 동관을 나와서 조조가 말 위에서 바라보니 한 곳에 수풀이 매우 우거져 있어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에게 묻기를,“이곳이 어디인가?”하니, 대답하기를,“이곳은 남전입니다. 수풀 사이로 바로 채옹의 장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채옹의 딸 채염이 그 지아비 동사와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했다.
原来操素与蔡邕相善。先时其女蔡琰,乃卫仲道之妻;后被北方掳去,于北地生二子,作《胡笳十八拍》,流入中原。操深怜之,使人持千金入北方赎之。左贤王惧操之势,送蔡琰还汉。操乃以琰配与董祀为妻。当日到庄前,因想起蔡邕之事,令军马先行,操引近侍百余骑,到庄门下马。时董祀出仕于外,止有蔡琰在家,琰闻操至,忙出迎接。操至堂,琰起居毕,侍立于侧。操偶见壁间悬一碑文图轴,起身观之。问于蔡琰,琰答曰:“此乃曹娥之碑也。昔和帝时,上虞有一巫者,名曹旴,能婆娑乐神;五月五日,醉舞舟中,堕江而死。
원래, 조조와 채옹은 친했다. 지난날 그 딸 채염은 위중도[衛道玠]의 아내였다. 그 뒤에 북방(흉노)에 포로로 끌려가 북쪽 땅에서 두 아들을 낳고 <호가십팔박>(악곡)을 지었는데 그 노래가 중원으로 흘러들어왔다. 조조가 매우 불쌍히 여겨 사람을 시켜 천금을 가지고 북방으로 들어가 그녀와 바꾸게 했다. 좌현왕(흉노족 왕)이 조조의 위세를 두려워해서 채염을 한나라로 돌려보냈다. 조조가 이에 채염을 동사의 아내로 짝지어 주었다. 그날 장원 앞에 이르러 채옹의 일을 떠올려 군마들을 먼저 보내고 조조는 근시 1백여 기를 이끌어 장원 문 앞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렸다. 그때 동사는 바깥으로 벼슬길에 나가서 채염만 집에 있었다. 채염은 조조가 온 것을 알고 황망히 나와서 영접했다. 조조가 당상에 이르자 채염이 안부를 묻고 조조 옆에 모시고 섰다. 조조가 우연히 벽 사이에 걸린 비문의 탁본을 보고, 일어나 살펴보다가 채염에게 물으니 채염이 대답하기를,“이것은 조아의 비문입니다. 지난날 화제 때, 상우 땅에 한 무당이 있었는데 이름이 조우였습니다. 능히 사바세계의 음악 신이라 할 만했는데 5월 5일에 술에 취해 배 위에서 춤을 추다가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其女年十四岁,绕江啼哭七昼夜,跳入波中;后五日,负父之尸浮于江面;里人葬之江边。上虞令度尚奏闻朝廷,表为孝女。度尚令邯郸淳作文镌碑以记其事。时邯郸淳年方十三岁,文不加点,一挥而就,立石墓侧,时人奇之。妾父蔡邕闻而往观,时日已暮,乃于暗中以手摸碑文而读之,索笔大书八字于其背。后人镌石,并镌此八字。”操读八字云:“黄绢幼妇,外孙齑臼。”操问琰曰:“汝解此意否?”琰曰:“虽先人遗笔,妾实不解其意。”操回顾众谋士曰:“汝等解否?”众皆不能答。于内一人出曰:“某已解其意。”
그 딸이 나이 열 넷이었는데 강을 돌아다니며 7일 밤낮을 구슬피 울다가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닷새 뒤에 아버지의 시신을 지고 강물 위에 떠오르자 마을 사람들이 강변에 묻어주었습니다. 상우 현령 도상이 조정에 상주하여 그녀를 효녀로 표창했습니다. 도상이 한단순에게 글을 짓고 비문을 새겨 그 일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당시에 한단순의 나이가 바야흐로 열세 살이었으나 한 점도 고치지 않고 글을 한 번에 휘둘러 완성하여 비석을 묘지 옆에 세우니 당시 사람들이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소첩의 부친 채옹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 살펴보았으나 날이 이미 저물어 어둠 속에서 손으로 비문을 더듬어 읽고 붓을 찾아 그 뒤쪽에 여덟 자를 크게 썼습니다. 뒷사람이 비석을 새기며 아울러 이 여덟 자도 새겼습니다.”했다. 조조가 여덟 자를 읽어,“황견유부, 외손제구”라 하고, 조조가 채염에게 묻기를,“그대는 이 뜻을 풀지 못하는가?”하니, 채염이 말하기를,“비록 선인(부친)이 남긴 글이나 소첩은 참으로 그 뜻을 풀지 못합니다.”했다. 조조가 모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여러분도 풀지 못하겠소?”하니, 모두 답하지 못하는데,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제가 이미 그 뜻을 풀었습니다.”했다.
操视之,乃主簿杨修也。操曰:“卿且勿言,容吾思之。”遂辞了蔡琰,引众出庄。上马行三里,忽省悟,笑谓修曰:“卿试言之。”修曰:“此隐语耳。‘黄绢’乃颜色之丝也:色傍加丝,是‘绝’字。‘幼妇’者,少女也:女傍少字,是‘妙’字。外孙乃女之子也:女傍子字,是‘好’字。‘齑臼’乃受五辛之器也:受傍辛字,是‘辤’字。总而言之,是‘绝妙好辤’四字。”操大惊曰:“正合孤意!”众皆叹羡杨修才识之敏。
조조가 보니, 바로 주부 벼슬의 양수다. 조조가 말하기를,“경은 일단 말을 마시오. 내가 그 뜻을 생각해 보겠소.”했다. 곧 채염과 작별한 뒤 사람들을 이끌고 장원을 나섰다. 말을 타고 3 리를 가더니 문득 깨닫고 웃으며 양수에게 말하기를,“경이 먼저 말해 보시오.”하니, 양수가 말하기를,“이것은 은어입니다. 황견(黃絹)은 얼굴 빛깔의 실(누런 명주)입니다. 색(色) 옆에 사(絲)를 더하면 절(絶)자입니다. 유부(幼婦)는 소녀입니다. 여(女) 옆에 소(少)를 붙이면 묘(妙)자입니다. 외손(外孫)이란 바로 딸의 아들입니다. 여(女) 옆에 자(子)는 호(好)자입니다. 제구(齏臼)는 바로 오신(다섯 가지 맛을 내는 양념)을 담는 그릇입니다. 수(受) 옆에 신(辛)은 사(辭)입니다. 모아서 말하면 바로‘절묘호사(아주 좋은 말)’네 글자입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내 뜻과 딱 맞소!”했다. 사람들이 모두 양수의 재주와 식견이 민첩함에 감탄했다.
不一日,军至南郑。曹洪接着,备言张郃之事。操曰:“非郃之罪,胜负乃兵家常事耳。”洪曰:“目今刘备使黄忠攻打定军山,夏侯渊知大王兵至,固守未曾出战。”操曰:“若不出战,是示懦也。”便差人持节到定军山,教夏侯渊进兵。刘晔谏曰:“渊性太刚,恐中奸计。”操乃作手书与之。使命持节到渊营,渊接入。使者出书,渊拆视之。略曰:凡为将者,当以刚柔相济,不可徒恃其勇。若但任勇,则是一夫之敌耳。吾今屯大军于南郑,欲观卿之“妙才”,勿辱二字可也。
하루가 안 돼서 군대가 남정에 이르렀다. 조홍이 맞이하여 장합의 일을 두루 말했다. 조조가 말하기를,“장합의 죄가 아니오.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에서 항상 있는 일일 따름이오.”하니, 조홍이 말하기를,“바로 지금 유비가 황충을 시켜 정군산을 공격하지만 하후연은 대왕의 병력이 올 것을 알고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고 있습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만약 출전하지 않으면 나약하게 보일 것이오.”하고, 곧 절부(신표)를 지닌 사람을 보내어 정군산에 가서 하후연에게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유엽이 간언하기를,“하후연의 성미가 너무 굳세니 간계에 빠질까 두렵습니다.”했다. 조조가 이에 손수 글을 써 주었다. 사자가 절부(신표)를 지니고 하후연의 영채에 이르니 하후연이 맞아들였다. 사자가 서신을 내놓자 하후연이 뜯어서 읽었다. 서신에 대략 이르기를,“무릇 장수 된 자는 마땅히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도와야지 단지 그 용기만을 믿어선 아니 되오. 만약 오로지 용기에만 의지한다면 즉 한 사내의 상대일 따름이오. 내가 이제 남정 땅에 대군을 주둔해 두고, 경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자 하니 아무쪼록 이 두 글자(妙才:하후연의 자)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했다.
夏侯渊览毕大喜。打发使命回讫,乃与张郃商议曰:“今魏王率大兵屯于南郑,以讨刘备。吾与汝久守此地,岂能建立功业?来日吾出战,务要生擒黄忠。”张郃曰:“黄忠谋勇兼备,况有法正相助,不可轻敌。此间山路险峻,只宜坚守。”渊曰:“若他人建了功劳,吾与汝有何面目见魏王耶?汝只守山,吾去出战。”遂下令曰:“谁敢出哨诱敌?”夏侯尚曰:“吾愿往。”渊曰:“汝去出哨,与黄忠交战,只宜输,不宜赢。吾有妙计,如此如此。”尚受令,引三千军离定军山大寨前行。
하후연이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사자를 되돌아가게 한 뒤에 장합과 상의해 말하기를,“이제 위왕께서 대병을 인솔해 남정에 주둔하여 유비를 토벌하려 하오. 내가 그대와 더불어 이곳에서 오랫동안 수비만 하고 있으니 어찌 공적을 세우겠소? 내일 내가 출전해 힘써 황충을 사로잡아야겠소.”하니, 장합이 말하기를,“황충은 지모와 용맹을 겸비했소. 게다가 법정이 돕고 있으니 함부로 대적할 수 없소. 이곳 산길이 험준하니 오로지 견고히 수비함이 마땅하오.”했다. 하후연이 말하기를,“만약 다른 사람이 공로를 세우면 나와 그대가 무슨 면목으로 위왕을 뵙겠소? 그대는 산이나 지키시구려. 나는 출전하러 가겠소.”하고, 곧 명을 내려 말하기를,“누가 용감히 나가서 정찰하고 적병을 유인하겠소?”하니, 하후상이 말하기를,“바라건대 제가 가겠습니다.”했다. 하후연이 말하기를,“네가 정찰하다가 황충과 교전하게 되면 단지 일부러 져야지 이겨선 안 된다. 내게 묘한 계책이 있으니 이러이러하게 해라.”했다. 하후상이 명령을 받아 3천 군사를 이끌고 정군산의 큰 영채를 떠나 전진했다.
却说黄忠与法正引兵屯于定军山口,累次挑战,夏侯渊坚守不出;欲要进攻,又恐山路危险,难以料敌,只得据守。是日,忽报山上曹兵下来搦战。黄忠恰待引军出迎,牙将陈式曰:“将军休动,某愿当之。”忠大喜,遂令陈式引军一千,出山口列阵。夏侯尚兵至,遂与交锋。不数合,尚诈败而走。式赶去,行到半路,被两山上擂木炮石,打将下来,不能前进。正欲回时,背后夏侯渊引兵突出,陈式不能抵当,被夏侯渊生擒回寨。部卒多降。有败军逃得性命,回报黄忠,说陈式被擒。忠慌与法正商议,正曰:“渊为人轻躁,恃勇少谋。可激劝士卒,拔寨前进,步步为营,诱渊来战而擒之:此乃‘反客为主’之法。”
한편, 황충은 법정과 더불어 정군산 입구에 주둔하여 여러 번 도전했지만 하후연은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았다. 진격하고 싶어도 산길이 위험해서 적의 정세를 헤아리기 어려워서 오로지 머물며 지킬 따름이었다. 이날, 문득 보고가 들어오니 산 위의 조조 군사들이 내려와서 싸움을 건다고 했다. 황충이 기다렸다는 듯이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맞서려 하자 부장 진식이 말하기를,“장군께서 움직이실 것 없이 바라건대 제가 맡겠습니다.”하니, 황충이 크게 기뻐하며 곧 진식에게 명하여 1천 군사를 이끌고 산 입구를 나가 포진하게 했다. 하후상의 병력이 도달하여 곧 교전해서 몇 합 되지 않아 하후상이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났다. 진식이 뒤쫓아 가는 도중에 양쪽 산 위에서 나무와 돌을 굴려서 전진할 수가 없었다. 진식이 돌아가려 할 때 배후에서 하후연이 병력을 이끌고 튀어나오니, 진식이 막아낼 수가 없어 하후연에게 사로잡혀 영채로 끌려갔다. 부하 병졸들도 많이 항복했다. 패잔병 가운데 달아나서 목숨을 구한 자가 돌아와 황충에게 진식이 잡혔다고 보고했다. 황충이 놀라 법정과 상의하니 법정이 말하기를,“하후연은 사람됨이 경솔해서 용맹을 믿고 꾀는 모자라오. 사졸들을 격려해서 영채를 거두고 전진하여 걸음걸음마다 영채를 세우면서 하후연을 싸우러 오게 유인하면 사로잡을 수 있소. 이것이 바로 손님과 주인의 입장이 바뀌는 전법이오.”했다.
忠用其谋,将应有之物,尽赏三军,欢声满谷,愿效死战。黄忠即日拔寨而进,步步为营;每营住数日,又进。渊闻之,欲出战。张郃曰:“此乃‘反客为主’之计,不可出战,战则有失。”渊不从,令夏侯尚引数千兵出战,直到黄忠寨前。忠上马提刀出迎,与夏侯尚交马,只一合,生擒夏侯尚归寨。余皆败走,回报夏侯渊。渊急使人到黄忠寨,言愿将陈式来换夏侯尚。忠约定来日阵前相换。
황충이 그 꾀를 써서, 가진 물품을 모두 전군에 포상하니 환성이 골짜기에 가득해서 목숨 바쳐 싸우기를 바랐다. 황충이 그날 바로 영채를 거두어 전진하며 걸음마다 영채를 세워 조심스레 진군했다. 영채마다 며칠씩 머물다 다시 전진하니, 하후연이 듣고서 출전하려 했다. 장합이 말하기를,“이것은 바로 손님과 주인의 입장이 바뀌는 계책이니 출전하면 안 됩니다. 싸우면 손실이 있을 것이오.”했다. 하후연이 따르지 않고 하후상에게 수천 병력을 이끌고 출전할 것을 명령하니, (하후상이) 곧장 황충의 영채 앞에 이르렀다. 황충이 말을 타고 칼을 들어 하후상과 말이 엇갈려 단지 1합에 하후상을 사로잡아 영채로 돌아갔다. 나머지는 모두 패주하여 돌아가 하후연에게 보고했다. 하후연이 급히 사람을 황충의 영채에 보내어 진식을 데려와서 하후상과 바꿀 것을 말했다. 황충이 내일 진지 앞에서 교환할 것을 약속했다.
次日,两军皆到山谷阔处,布成阵势。黄忠、夏侯渊各立马于本阵门旗之下。黄忠带着夏侯尚,夏侯渊带着陈式,各不与袍铠,只穿蔽体薄衣。一声鼓响,陈式、夏侯尚各望本阵奔回。夏侯尚比及到阵门时,被黄忠一箭,射中后心。尚带箭而回。渊大怒,骤马径取黄忠。忠正要激渊厮杀。两将交马,战到二十余合,曹营内忽然鸣金收兵。渊慌拨马而回,被忠乘势杀了一阵。渊回阵问押阵官:“为何鸣金?”答曰:“某见山凹中有蜀兵旗幡数处,恐是伏兵,故急招将军回。”渊信其说,遂坚守不出。
다음날, 양쪽 군사들이 모두 산골짜기 넓은 곳으로 가서 진을 펼쳤다. 황충과 하후연은 각각 본진 문 앞의 깃발 아래 말을 세웠다. 황충은 하후상을 데리고 나왔고, 하후연은 진식을 데리고 나왔는데 각각 아무 겉옷이나 갑옷을 입히지 않고 단지 몸을 가리는 얇은 옷을 입혔다. 한차례 북소리 울리자 진식과 하후상이 각각 본진을 향하여 달려갔다. 하후상이 진문 앞에 다다랐을 때 황충이 쏜 화살 한발이 (하후상의) 등 한복판에 명중했다. 하후상이 화살에 꽂힌 채 돌아오니 하후연이 크게 노하여 말을 몰아 곧장 황충을 잡으려 했다. 황충이 바로 하후연을 자극해 싸우려한 것이었다. 두 장수가 싸워서 2십여 합에 이르자 조조 군사의 영채에서 문득 징을 쳐서 병력을 거둬들였다. 하후연이 당황해서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자 황충이 기세를 타고 한바탕 무찔렀다. 하후연이 본진으로 돌아가 호위관에게 묻기를,“무엇 때문에 징을 쳤소?”하니, 대답하기를,“제가 보자니 산 오목한 곳에 촉병들의 깃발이 여러 군데 나부껴 아무래도 복병이 있을 것 같아서 급히 장군을 불러들인 것입니다.”하니, 하후연이 그 말을 믿고 마침내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黄忠逼到定军山下,与法正商议。正以手指曰:“定军山西,巍然有一座高山,四下皆是险道。此山上足可下视定军山之虚实。将军若取得此山,定军山只在掌中也。”忠仰见山头稍平,山上有些少人马。是夜二更,忠引军士鸣金击鼓,直杀上山顶。此山有夏侯渊部将杜袭守把,止有数百余人。当时见黄忠大队拥上,只得弃山而走。忠得了山顶,正与定军山相对。法正曰:“将军可守在半山,某居山顶。待夏侯渊兵至,吾举白旗为号,将军却按兵勿动;待他倦怠无备,吾却举起红旗,将军便下山击之:以逸待劳,必当取胜。”忠大喜,从其计。
황충이 정군산 아래에 바짝 이르러 법정과 상의하니, 법정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정군산 서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높은 산이 하나 있는데 사방이 모두 험한 길이오. 이 산위에서 족히 정군산의 허실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 장군께서 만약 이 산을 얻게 되면 정군산도 오로지 수중에 있게 됩니다.”했다. 황충이 산꼭대기 약간 평평한 곳을 올려다보니 산 위에 적은 인마가 있을 뿐이었다. 이날 밤 2경(밤10시쯤)에 황충이 군사를 이끌고 징과 북을 두드리며 곧장 산꼭대기로 치고 올라갔다. 이 산은 하후연의 부장 두습이 지키고 있었는데 겨우 수백여 명이었다. 그때 황충의 대군이 몰려 올라오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산을 버리고 달아났다. 황충이 이곳 산정을 얻어 바로 정군산을 마주보게 되었다. 법정이 말하기를,“장군께서 산허리에 자리 잡아 지키시고 저는 산꼭대기에 머물며, 하후연의 병력이 오기를 기다려서, 제가 백기를 들어 신호를 보내면 장군은 병력을 절대 움직이지 마시오. 그들이 권태로워 방비가 없기를 기다려 제가 홍기를 들어 올리면 장군께서 그때 바로 하산해서 공격하시오. 편안히 쉬면서 지친 적군을 맞아 치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이오.”하니, 황충이 크게 기뻐하며 그 계책을 따랐다.
却说杜袭引军逃回,见夏侯渊,说黄忠夺了对山。渊大怒曰:“黄忠占了对山,不容我不出战。”张郃谏曰:“此乃法正之谋也。将军不可出战,只宜坚守。”渊曰:“占了吾对山,观吾虚实,如何不出战?”郃苦谏不听。渊分军围住对山,大骂挑战。法正在山上举起白旗;任从夏侯渊百般辱骂,黄忠只不出战。午时以后,法正见曹兵倦怠,锐气已堕,多下马坐息,乃将红旗招展,鼓角齐鸣,喊声大震,黄忠一马当先,驰下山来,犹如天崩地塌之势。夏侯渊措手不及,被黄忠赶到麾盖之下,大喝一声,犹如雷吼。渊未及相迎,黄忠宝刀已落,连头带肩,砍为两段。后人有诗赞黄忠曰:“苍头临大敌,皓首逞神威。力趁雕弓发,风迎雪刃挥。雄声如虎吼,骏马似龙飞。献馘功勋重,开疆展帝畿。”
한편, 두습이 군사를 이끌고 도망쳐 돌아와서 하후연을 만나 황충이 맞은 산을 빼앗은 것을 말하자 하후연이 크게 노해 말하기를,“황충이 맞은 산을 점거했으니 내가 출전하지 않을 수 없소.”했다. 장합이 간언하기를,“이것은 바로 법정의 꾀니 장군께서 출전하면 안 되고 오로지 견고히 수비해야 하오.”하니, 하후연이 말하기를,“우리의 맞은 산을 점령해서 우리의 허실을 관찰하니 어떻게 출전하지 않겠소?”했다. 장합이 애써 간언해도 듣지 않고, 하후연은 군사를 나누어 맞은 산을 포위하여 크게 욕하며 도전했다. 법정이 산 위에서 흰 깃발을 드니 비록 하후연이 아무리 모욕해도 황충은 출전하지 않았다. 정오가 지나 법정이 조조 군사들이 권태로워 그 날카로운 기세가 떨어지고 많은 사람이 말에서 내려 쉬는 것을 보고. 이에 홍기를 들어 펄럭였다. 북과 피리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진동했다. 황충이 탄 말이 맨 앞에 서서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가니 마치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리는 기세였다. 하후연이 손 쓸 새가 없이 황충이 그 깃발과 수레덮개까지 이르러 크게 소리치니 천둥이 치는 듯했다. 하후연이 미처 맞서지 못하는데 황충이 보도로 내려치자 머리부터 어깨까지 베어져 두 동강이 났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황충을 찬양하기를,“검은 머리가 큰 적수를 만나니, 백발이 귀신같은 위세를 떨치네. 힘은 조각한 활을 당겨 쏘고, 바람을 헤치며 날 선 칼을 휘두르네. 우렁찬 목소리 범이 포효하는 듯하고, 준마는 나는 용과 같네. 적장의 머리를 잘라 바쳐 공적이 무겁고, 강토를 열어 임금의 땅을 넓히네.”했다.
黄忠斩了夏侯渊,曹兵大溃,各自逃生。黄忠乘势去夺定军山,张郃领兵来迎。忠与陈式两下夹攻,混杀一阵,张郃败走。忽然山傍闪出一彪人马,当住去路;为首一员大将,大叫:“常山赵子龙在此!”张郃大惊,引败军夺路望定军山而走。只见前面一枝兵来迎,乃杜袭也。袭曰:“今定军山已被刘封、孟达夺了。”郃大惊,遂与杜袭引败兵到汉水紥营;一面令人飞报曹操。 操闻渊死,放声大哭,方悟管辂所言:‘三八纵横’,乃建安二十四年也,‘黄猪遇虎’,乃岁在己亥正月也;‘定军之南’,乃定军山之南也;‘伤折一股’,乃渊与操有兄弟之亲情也。
황충이 하후연을 참하자 조조 군사들이 크게 무너져서 각자 살고자 달아났다. 황충이 기세를 타고 정군산을 빼앗으러 가니 장합이 병력을 이끌고 나와서 맞섰다. 황충과 진식 두 사람이 협공하여 한바탕 마구 무찌르니 장합이 패주했다. 홀연히 산의 측면에서 한 무리 인마가 번쩍 나와서 갈 길을 가로막았다. 앞장선 한 대장이 크게 외치기를,“상산 조자룡이 여기 있다!”하니, 장합이 크게 놀라 패잔병을 이끌고 길을 뚫어 정군산 쪽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한 갈래 병력이 와서 맞이하니 바로 두습이었다. 두습이 말하기를,“지금 정군산은 이미 유봉과 맹달에게 빼앗겠습니다.”했다. 장합이 크게 놀라 마침내 두습과 더불어 패잔병을 이끌고 한수에 이르러 진지를 세워 주둔했다.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조조에게 급보했다. 조조는 하후연의 죽음을 듣고 목 놓아 크게 울고, 비로소 예전에 관로가 했던 말들(38년 종횡하던 누런 멧돼지가 범을 만나고, 정군산 남쪽에서 넓적다리 같은 신하를 잃는다는 점괘)의 뜻을 깨달았다. ‘삼팔종횡’은 바로 건안 24년이요,‘황저우호’는 해가 기해년 정월을 뜻하고, ‘정군지남’은 곧 정군산의 남쪽이요, ‘상절일고’는 조조와 하후연은 형제의 (하후돈의 족제이고 조조와 동서간) 친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操令人寻管辂时,不知何处去了。操深恨黄忠,遂亲统大军,来定军山与夏侯渊报仇,令徐晃作先锋。行到汉水,张郃、杜袭接着曹操。二将曰:“今定军山已失,可将米仓山粮草移于北山寨中屯积,然后进兵。”曹操依允。却说黄忠斩了夏侯渊首级,来葭萌关上见玄德献功。玄德大喜,加忠为征西大将军,设宴庆贺。忽牙将张著来报说:“曹操自领大军二十万,来与夏侯渊报仇。目今张郃在米仓山搬运粮草,移于汉水北山脚下。”孔明曰:“今操引大兵至此,恐粮草不敷,故勒兵不进;若得一人深入其境,烧其粮草,夺其辎重,则操之锐气挫矣。”黄忠曰:“老夫愿当此任。”孔明曰:“操非夏侯渊之比,不可轻敌。”
조조가 사람들을 시켜 관로를 찾아보게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조조가 황충을 몹시 원망하여 곧 친히 대군을 가느리고 정군산으로 와서 하후연의 복수를 하려고 서황을 선봉에 세웠다. 행군이 한수에 이르자 장합과 두습이 조조를 맞이하여, 두 장수가 말하기를,“지금 이미 정군산을 잃었으니 미창산의 군량과 사료를 북산의 영채 안으로 옮긴 뒤에야 진군할 수 있습니다.”하니, 조조가 이를 승낙했다. 한편, 황충은 하후연의 수급을 베고나서 가맹관으로 와서 현덕을 만나 공을 아뢰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황충에게 정서대장군의 벼슬을 더하고 연회를 베풀어 축하했다. 문득 부장 장저가 와서 보고를 하기를,“조조가 스스로 대군 2십만을 거느리고 와서 하후연의 복수를 하려 합니다. 지금 바로 장합이 미창산에서 군량과 사료를 운반해서 한수의 북산 기슭으로 옮기고 있습니다.”하니, 공명이 말하기를,“지금 조조가 대병을 이끌고 이곳으로 이르렀지만 식량과 사료가 부족할까 두려워서 군사를 멈추고 진격하지 못합니다. 만약 한 사람이 그들의 경계 깊이 침입해서 식량과 사료를 불사르고 군수품을 빼앗으면 조조의 예기가 꺾일 것입니다.”했다. 황충이 말하기를,“이 늙은이가 바라건대 이 일을 맡고 싶소.”하니, 공명이 말하기를,“조조는 하후연에 비할 바가 아니니 함부로 대적할 수 없소.”했다.
玄德曰:“夏侯渊虽是总帅,乃一勇夫耳,安及张郃?若斩得张郃,胜斩夏侯渊十倍也。”忠奋然曰:“吾愿往斩之。”孔明曰:“你可与赵子龙同领一枝兵去;凡事计议而行,看谁立功。”忠应允便行。孔明就令张著为副将同去。云谓忠曰:“今操引二十万众,分屯十营,将军在主公前要去夺粮,非小可之事。将军当用何策?”忠曰:“看我先去,如何?”云曰:“等我先去。”忠曰:“我是主将,你是副将,如何先争?”云曰:“我与你都一般为主公出力,何必计较?我二人拈阄,拈着的先去。”忠依允。
현덕이 말하기를,“하후연이 비록 총수였으나 한낱 용감한 사내일 뿐이니 어찌 장합에 비하겠소? 만약 장합을 참할 수 있다면 하후연을 참한 것의 열 배를 넘을 것이오.”하니, 황충이 분연히 말하기를,“바라건대 제가 가서 참하겠습니다.”했다. 공명이 말하기를,“그대가 조자룡과 더불어 한 갈래 군사를 거느려 가서 모든 일을 의논해서 행하시오. 누가 공을 세우는지 지켜보겠소.”하니, 황충이 응낙하고 바로 떠났다. 공명이 장저를 부장으로 삼아 함께 가게 했다. 조운이 황충에게 말하기를,“지금 조조가 2십만의 무리를 이끌고 열 군데에 영채에 나눠 주둔했소. 장군께서 주공 앞에서 군량을 빼앗으러 간다 하셨으나 작은 일이 아니오. 장군께서 무슨 계책을 쓰시겠소?”하니, 황충이 말하기를,“내가 먼저 가는 것을 지켜보심이 어떻겠소?”했다. 조운이 말하기를,“내가 먼저 갈테니 기다리시오.”하니, 황충이 말하기를,“내가 주장이고, 그대는 부장이거늘 어찌 선두를 다투시오?”했다. 조운이 말하기를,“내가 그대와 더불어 모두 한가지로 주공을 위해 힘을 다하는 것인데 하필 계산하여 비교하시오? 우리 두 사람이 제비를 뽑아서 당첨된 사람이 먼저 가기로 합시다.”하니, 황충이 응낙했다.
当时黄忠拈着先去。云曰:“既将军先去,某当相助。可约定时刻。如将军依时而还,某按兵不动;若将军过时而不还,某即引军来接应。”忠曰:“公言是也。”于是二人约定午时为期。云回本寨,谓部将张翼曰:“黄汉升约定明日去夺粮草,若午时不回,我当往助。吾营前临汉水,地势危险;我若去时,汝可谨守寨栅,不可轻动。”张翼应诺。却说黄忠回到寨中,谓副将张著曰;“我斩了夏侯渊,张郃丧胆;吾明日领命去劫粮草,只留五百军守营。你可助吾。今夜三更,尽皆饱食;四更离营,杀到北山脚下,先捉张郃,后劫粮草。”张著依令。
그때 황충이 당첨되어 먼저 가게 되었다. 조운이 말하기를,“기왕에 장군이 앞서 가시니 제가 당연히 도와드리겠소. 시각을 약정해서 장군께서 시각에 맞춰 돌아오시면 저는 병력을 움직이지 않겠소. 만약 장군께서 그 시각이 지나도 귀환하지 않으시면 제가 즉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접응하겠소.”하니, 황충이 말하기를,“공의 말씀이 옳소이다.”했다. 이에 두 사람이 정오를 기한으로 약정했다. 조운이 본채로 돌아가 부장 장익에게 말하기를,“황한승(황충)이 내일 양초를 빼앗기로 약정했는데, 만약 정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가서 도와야겠소. 우리 영채 앞으로 한수가 다다랐고 지세가 위험하오. 내가 가게 되면 그대는 신중히 진지를 지켜야지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될 것이오.”했다. 장익이 응낙했다. 한편, 황충이 영채 안으로 돌아와 부장 장저에게 이르기를,“내가 하후연을 참해 버리자 장합의 간담이 떨어졌소. 내가 내일 명령을 받들어 양초를 빼앗으러 갈 때, 단지 5백의 군사를 남겨 영채를 지키게 하겠소. 그대는 나를 도와 오늘밤 3경(자정쯤)에 모두 배불리 먹고 4경(새벽 2시쯤)에 영채를 떠나 북산 기슭으로 달려가서 먼저 장합을 잡고난 뒤에 양초를 빼앗겠소.”했다. 장저가 명령에 따랐다.
当夜黄忠领人马在前,张著在后,偷过汉水,直到北山之下。东方日出,见粮积如山。有些少军士看守,见蜀兵到,尽弃而走。黄忠教马军一齐下马,取柴堆于米粮之上。正欲放火,张郃兵到,与忠混战一处。曹操闻知,急令除晃接应。晃领兵前进,将黄忠困于垓心。张著引三百军走脱,正要回寨,忽一枝兵撞出,拦住去路;为首大将,乃是文聘;后面曹兵又至,把张著围住。
그날 밤 황충이 인마들을 거느리고 장저를 뒤따르게 하여, 한수를 조용히 건너서 곧장 북산 아래 당도했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자 군량이 산더미 같이 쌓인 것이 보였다. 얼마 안 되는 군사들이 지키다가 촉병들이 온 것을 보더니 모조리 버리고 달아났다. 황충이 지시하니 기마병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려 군량미 위에다 장작을 가져다 쌓았다. 막 불을 지르려는데 장합의 군사들이 도착하여 황충과 한바탕 엉켜 싸웠다. 조조가 전해 듣고 급히 서황에게 접응하라고 명령했다. 서황의 병력이 전진하니 곧 황충이 포위에 갇혀 어려워졌다. 장저가 3백 군사를 거느리고 탈주해서 영채로 돌아가려는데 홀연히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와 갈 길을 가로막았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문빙이었다. 후면에서 조조의 군사들이 다시 와서 장저를 에워쌌다.
却说赵云在营中,看看等到午时,不见忠回,急忙披挂上马,引三千军向前接应;临行,谓张翼曰:“汝可坚守营寨。两壁厢多设弓弩,以为准备。”翼连声应诺。云挺枪骤马直杀往前去。迎头一将拦路,乃文聘部将慕容烈也,拍马舞刀来迎赵云;被云手起一枪刺死。曹兵败走。云直杀入重围,又一枝兵截住;为首乃魏将焦炳。云喝问曰:“蜀兵何在?”炳曰:“已杀尽矣!”云大怒,骤马一枪,又刺死焦炳。杀散余兵,直至北山之下,见张郃、徐晃两人围住黄忠,军士被困多时。云大喝一声,挺枪骤马,杀入重围,左冲右突,如入无人之境。那枪浑身上下,若舞梨花;遍体纷纷,如飘瑞雪。
한편, 조운은 영채 안에 머물며 정오까지 기다리며 살펴봐도 황충이 돌아오지 않자 황급히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 3천 군사를 이끌고 접응하러 앞으로 나아갔다. 떠날 때 장익에게 이르기를,“그대는 영채를 굳게 지키시오. 양쪽 근처에 활과 쇠뇌를 많이 설치하여 준비하시오.”하니, 장익이 바로 응낙했다. 조운이 창을 꼬나잡고 말을 몰아서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머리를 마주하여 한 장수가 길을 막는데 바로 문빙의 부장 모용열이 말에 박차를 가해 칼춤을 추며 조운을 맞이했지만, 조운이 손을 들어 한 창에 찔러 죽이니 조조의 군사가 패주했다. 조운이 두터운 포위 가운데 돌입하자 또다시 한 무리 병력이 막아섰다. 앞장선 것은 바로 위나라 장수 초병이었다. 조운이 소리쳐 묻기를,“촉병들은 어디 있는가?”하니, 초병이 말하기를,“이미 모조리 죽였다!”했다. 조운이 크게 노해 말을 몰아 한 창에 또 초병을 찔러 죽였다. 나머지 병력도 무찔러 흩어버리고, 곧장 북산 아래 이르러 바라보니 장합과 서황 두 사람이 황충을 에워쌌고 군사들이 곤란에 빠진 지 오래 되었다. 조운이 크게 한번 고함을 지르고 창을 꼬나쥐고 말을 달려 두터운 포위 속으로 돌입해서 좌충우돌하니 마치 무인지경에 든 듯했다. 그 창날이 온몸에서 마치 춤추는 배꽃 같이, 두루 어지러이 흩날리니 바람에 날리는 눈발 같았다.
张郃、徐晃心惊胆战,不敢迎敌。云救出黄忠,且战且走;所到之处,无人敢阻。操于高处望见,惊问众将曰:“此将何人也?”有识者告曰:“此乃常山赵子龙也。”操曰:“昔日当阳长坂英雄尚在!”急传令曰:“所到之处,不许轻敌。”赵云救了黄忠,杀透重围,有军士指曰:“东南上围的,必是副将张著。”云不回本寨,遂望东南杀来。所到之处,但见“常山赵云”四字旗号,曾在当阳长坂知其勇者,互相传说,尽皆逃窜。云又救了张著。
장합과 서황은 심장이 놀라고 간담이 떨려서 감히 맞서 싸우지 못했다. 조운이 황충을 구출해서 싸우며 달아나기를 되풀이하니 그가 이르는 곳마다 아무도 감히 막아서지 못했다. 조조가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보고 놀라서 여러 장수에게 묻기를,“저 장수가 누구냐?”하니, 조운을 알아본 자가 있어 고하기를,“바로 상산 조자룡입니다.”했다. 조조가 말하기를,“지난날 당양 장판의 영웅이 아직도 있구나!”하고, 급히 명령을 전하기를,“그가 이르는 곳에서 함부로 맞서지 마라!”했다. 조운이 황충을 구해 두터운 포위를 뚫고 나오는데 어떤 군사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동남쪽에 포위된 사람은 필시 부장 장저입니다.”했다. 조운이 본부 영채로 돌아가지 않고 곧 동남쪽으로 향해 돌진했다. 다다르는 곳마다 ‘상산 조운’네 글자가 적힌 깃발만 보면, 일찍이 당양 장판에서 그 용맹을 아는 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전하며 모두 도망갔다. 조운이 장저도 구해냈다.
曹操见云东冲西突,所向无前,莫敢迎敌,救了黄忠,又救了张著,奋然大怒,自领左右将士来赶赵云。云已杀回本寨。部将张翼接着,望见后面尘起,知是曹兵追来,即谓云曰:“追兵渐近,可令军士闭上寨门,上敌楼防护。”云喝曰:“休闭寨门!汝岂不知吾昔在当阳长坂时,单枪匹马,觑曹兵八十三万如草芥!今有军有将,又何惧哉!”遂拨弓弩手于寨外壕中埋伏;将营内旗枪,尽皆倒偃,金鼓不鸣。云匹马单枪,立于营门之外。
조조가 보니 조운이 좌충우돌하는데 가는 곳마다 대적할 이가 없어 아무도 감히 맞아 싸우지 못하여 황충을 구해내고 또 장저를 구해냈다. (조조가) 분연히 크게 노해서 스스로 좌우의 장사들을 거느리고 조운을 뒤쫓아 왔다. 조운이 이미 본채로 돌아오니 그의 부장 장저가 맞이하고, (장저가) 멀리 바라보니 후면에서 먼지가 일어나며 조조의 군사들이 쫓아오는 것을 알았다. 즉시 조운에게 말하기를,“추격하는 군사들이 점점 접근하니 군사들에게 명하여 영채의 출입문을 닫아 망루에 올라 방어해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니, 조운이 꾸짖기를,“영채 문을 닫지 마라! 자네는 어찌 내가 지난날 당양 장판에서 창 한 자루 말 한 필로도 조조의 순사 83만을 초개 같이 여겼음을 알지 못하는가! 이제 군사와 장수도 있거늘 무엇을 또 두려워하랴!”했다. 마침내 궁노수를 동원해서 영채 밖 참호 안에 매복시켰다. 영채 안에 깃발을 매단 창들이 모두 눕혀 있고 징과 븍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조운이 말 한 필에 창 한 자루로 영문 밖에 서 있었다.
却说张郃、徐晃领兵追至蜀寨,天色已暮;见寨中偃旗息鼓,又见赵云匹马单枪,立于营外,寨门大开,二将不敢前进。正疑之间,曹操亲到,急催督众军向前。众军听令,大喊一声,杀奔营前;见赵云全然不动,曹兵翻身就回。赵云把枪一招,壕中弓弩齐发。时天色昏黑,正不知蜀兵多少。操先拨回马走。只听得后面喊声大震,鼓角齐鸣,蜀兵赶来。曹兵自相践踏,拥到汉水河边,落水死者,不知其数。赵云、黄忠、张著各引兵一枝,追杀甚急。
한편, 장합과 서황은 병력을 거느리고 촉병의 영채까지 뒤쫓아 당도하니 벌써 하늘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바라보니 영채 안에 깃발은 쓰러져 있고 북소리도 울리지 않는데다 조운이 필마단창으로 영채 밖에 서 있고 영채 문이 활짝 열려 있으므로 두 장수가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 이렇게 머뭇거리는데 조조가 친히 도착해 급히 군사들을 재촉하여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다. 뭇 군사들이 명령을 듣고 크게 한바탕 함성을 지르며 영채 앞으로 내닫는데도 조운은 전연 움직이지 않으니 조조의 군사들이 몸을 휙 돌려 되돌아가려 했다. 조운이 창으로 한번 신호하자 참호 안에서 활과 쇠뇌를 일제히 쏘았다. 그때 하늘이 저물어 어두우니 촉병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고 조조가 먼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그런데 후면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북과 피리가 일제히 울리며 촉병들이 추격해 왔다. 조조의 군사들이 서로 짓밟으며 한수 강변까지 뒤엉켜 달아나니 물에 빠져 죽은 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조운, 황충, 장저가 제각기 한 갈래 병력을 이끌고 뒤따라 무찌르는 것이 매우 급했다.
操正奔走间,忽刘封、孟达率二枝兵,从米仓山路杀来,放火烧粮草。操弃了北山粮草,忙回南郑。徐晃、张郃紥脚不住,亦弃本寨而走。赵云占了曹寨,黄忠夺了粮草,汉水所得军器无数,大获胜捷,差人去报玄德。玄德遂同孔明前至汉水,问赵云的部卒曰:“子龙如何厮杀?”军士将子龙救黄忠、拒汉水之事,细述一遍。玄德大喜,看了山前山后险峻之路,欣然谓孔明曰:“子龙一身都是胆也!”后人有诗赞曰:“昔日战长坂,威风犹未减。突阵显英雄,被围施勇敢。鬼哭与神号,天惊并地惨。常山赵子龙,一身都是胆!”
조조가 막 달아나고 있는데, 문득 유봉과 맹달이 두 갈래 병력을 인솔하여 미창산의 길을 따라 달려와서 불을 놓아 군량과 사료를 불태웠다. 조조가 북산의 군량과 사료를 포기하고 황급히 남정으로 돌아갔다. 서황과 장합도 버티지 못하고 본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운이 조조 군사들의 영채를 점령하고 황충이 군량과 사료를 빼앗으며 한수에서 얻은 무기가 무수해서 크게 승리를 거두어 사람을 보내 현덕에게 보고했다. 현덕이 곧 공명과 더불어 한수에 이르러 조운의 부졸에게 묻기를,“자룡이 어떻게 싸웠는가?”하니, 그 군사가 자룡이 황충을 구하고 한수에서 적병을 물리친 일을 상세히 두루 말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산 앞뒤의 험준한 길을 보며 흔연히 공명에게 말하기를,“자룡은 온몸이 모두 간담이구려!”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지난날 당양 장판에서 싸울 때, 그 위풍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돌격해 영웅을 드러내고, 포위 속에서 용감을 떨치니, 귀신도 울고 소리치며, 하늘도 놀라고 땅도 덜덜 떨겠네. 상산의 조자룡은, 온몸이 간담 덩어리구나.”했다.
于是玄德号子龙为“虎威将军”,大劳将士,欢宴至晚。忽报曹操复遣大军从斜谷小路而进,来取汉水。玄德笑曰:“操此来无能为也。我料必得汉水矣。”乃率兵于汉水之西以迎之。曹操命徐晃为先锋,前来决战。帐前一人出曰:“某深知地理,愿助徐将军同去破蜀。”操视之,乃巴西宕渠人也,姓王,名平,字子均;现充牙门将军。操大喜,遂命王平为副先锋,相助徐晃。操屯兵于定军山北。徐晃、王平引军至汉水,晃令前军渡水列阵。
이에 현덕이 자룡을 호위장군으로 부르게 하고, 장수와 군사들을 크게 위로하고 연회를 베풀어 밤늦도록 즐기게 했다. 문득 보고하기를, 조조가 다시 대군을 보내어 사곡의 좁은 길을 따라 진군해서 한수를 빼앗으러 온다고 했다. 현덕이 웃으며 말하기를,“조조가 이렇게 와도 능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오. 내가 헤아려보니 (우리가) 반드시 한수를 얻게 될 것이오.”했다. 이에 병력을 이끌고 한수의 서쪽에서 (조조 군사를) 맞이했다. 조조가 서황이 선봉에 서서 결전하러 가도록 명령했다. 진영 장막 앞으로 한 사람이 나와서 말하기를,“제가 이곳 지리를 깊이 알고 있사오니 서 장군을 도와 함께 가서 촉병을 격파하겠습니다.”했다. 조조가 보니 그는 바로 파서군 탕거현 사람으로 성은 왕이고, 이름은 평이며, 자는 자균이었다. 현재 아문장군을 맡고 있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왕평을 부선봉으로 삼아 서황을 돕게 했다. 조조가 정군산 북쪽에 주둔했다. 서황과 왕평이 군사를 이끌고 한수에 이르러서 서황이 앞쪽 군사들에게 명령해 한수를 건너 포진하도록 했다.
平曰:“军若渡水,倘要急退,如之奈何?”晃曰:“昔韩信背水为阵,所谓‘致之死地而后生’也。”平曰:“不然。昔者韩信料敌人无谋而用此计;今将军能料赵云、黄忠之意否?”晃曰:“汝可引步军拒敌,看我引马军破之。”遂令搭起浮桥,随即过河来战蜀兵。正是:魏人妄意宗韩信,蜀相那知是子房。
왕평이 말하기를,“군사들이 만약 물을 건너서 급히 물러나야 한다면 어찌하시겠소?”하니, 서황이 말하기를,“옛날에 한신이 물을 등지고 진을 친 것은 이른바 ‘죽을 곳에 처한 뒤에야 살 길이 생긴다’고 생각한 것이오.”했다. 왕평이 말하기를,“그렇지 않소. 옛날에 한신은 적군이 꾀가 없는 것을 헤아려서 이 계책을 쓴 것이오. 지금 장군은 조운과 황층의 의중을 능히 헤아리시겠소?”하니, 서황이 말하기를,“그대가 보병을 이끌고 적군을 막으면서 내가 기병을 이끌고 그들을 격파하는 것을 지켜보시오.”했다. 마침내 부교를 놓도록 명령하고 뒤따라 즉시 강물을 건너 촉병과 싸우러 갔다. 이야말로, 위나라 사람이 망령되게 한신을 본받으려 하지만, 촉나라 승상이 장자방(장양) 같은 줄 어찌 알리오?
未知胜负如何,且看下文分解。
승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