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 HOMEPAGE ) 04-06 16:17 | HIT : 1,624
머리말
강희근(시인. 이형기시인 기념사업회 회장)
이형기시인 기념사업회에서 내는 「가문 날의 꿈」창간호를 제4회 이형기 문학제 기념호로 발행하게 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동안 기념 사업회는 여러 사업들을 구상하거나 실현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 결과로 이제사 기념사업회의 표현지를 선보이게 된다.
이형기 시인은 제1회 개천예술제(영남 예술제) 백일장 장원을 했던 시인으로 장원을 하던 그해 약관 17세로 우리나라 대표 문예지인 「문예」에 시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하여 세인을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진주 출신 이 시인은 그만큼 조숙했다.
우리가 이형기 시인을 문학제를 통해 기리는 까닭은 어디 있는가? 한 지역에 하나의 브랜드를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내는 축제인가? 아니면 그 나름의 필연성을 확보해 가지고 있는가? 말할 것도 없이 이 형기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그의 시는 천편일률적인 서정이거나 케케묵은 편내용의 상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색의 일단인 인간의 근원, 존재에서 오는 불안감이나 허무를 본격적으로 노래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현대성을 확보하면서 당대의 시인들이 가 닿기 힘드는 기법적 성취를 이룩했다.
이형기 시인은 시효가 끝난 지나간 시인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오늘의 시에 작용하고 오늘의 현대성을 심화시켜 나가는 시인으로 그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형기 문학제를 연다는 것은 기념으로서가 아니라 한국 시의 자장(磁場)을 생산적으로 확대해 가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책의 표제 「가문 날의 꿈」은 이형기의 시 <랑겔한스섬의 가문 날의 꿈>에서 따온 것이다. 대체로 이형기 시는 허무를 앓는 부정적인 주제가 많다. 이 작품도 같은 궤에 속한다. 랑겔한스섬은 섬이 아니라 인체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군이다. 췌장 조직 안에 섬 모양으로 산재해 있는데 기관이 가물었다는 것은 인슐린이 분비될 수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내장기관이 병든 것처럼 세계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진 것과 같은 세계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절망과 좌절로 받아들이며 암흑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가? 이형기는 철저히 그렇게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설을 틈바구니에 끼워놓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랑겔한스섬만 제외시키면 세계가 가물어도 인간들에게는 희망과 꿈이 있다는 뜻으로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다.
창간호 「가문 날의 꿈」은 이렇게 해서 얼굴을 내외에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준비 기간이 짧은 관계로 다양한 내용을 싣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가 부를 수 있겠는가. 앞으로 호를 더하면서 내용이 깊어지고 다양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격려의 말을 보태주신 이창희 진주 시장님과 김두행 진주시 의회 의장님께 감사의 말씀드리고 필진과 편집진의 노고에 대해서도 오래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