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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 상담과 치유를 통해 초석을 다지라! |
「목회지도력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인 이 책은 일대일 사역, 가정 사역, 지원 그룹 및 설교 그리고 교육등과 같은 중요한 사역에서 목회자가 어떻게 효과적인 상담과 치유를 통해서 성도들을 양육할 수 있는지를 매우 다양하고 깊게 다루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개인의 욕구도 증가하는 오늘날, 교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목회자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기 원한다. 이런 성도들의 욕구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은 목회자가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상담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목회 현장에서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고 성도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또한 상담자로서 목회지의 바른 태도는 무엇인지를 30명이나 되는 목회자와 전문 상담가들의 조언을 통해 말하고 있다.
목회의 일차적 목적 중에 하나가 성도의 영혼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할 때, 목회자는 성도들의 영혼 상태와 심리 상태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목회자들이 그런 정보를 얻고 효과적인 목회 사역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 차례
1. 목회 철학
전략 1. 영적 양육을 위한 개혁 / 유진 H.피터슨
전략 2. 성도들을 돌보기 위한 전략 / 리처드 C. 할버슨
전략 3. 교사와 같은 목회자인가? 아니면 초인적인 상담가인가? / 랜디 알콘
전략 4. 거듭남인가, 구원인가? 또는 치료인가? / 아키발드 D. 할드
전략 5. 상담 치료 시대의 목회자 / 루이스 맥버니
전략 6. 목회자가 위대한 상담가가 될 수 있는 이유 / 로버트 J. 모건
2. 성도들을 돌볼 때의 문제
전략 7. 적당한 애정 / 마이클 E. 필립스
전략 8.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욕구 / 로버트 J. 모건
전략 9. 유혹하는 여성과 상담할 때 / 안드레 부스타노비
전략 10. 전이, 그 속박의 줄을 끊어라 / 아키발드 D.하트
전략 11. 당신의 적과 가까이 지내라 / 게리 D. 프레스톤
3. 성도들을 보살펴주기 위한 체계들
전략 12. 가족같이 친근한 교회가 되기 위한 열쇠 / 제임스 돕슨
전략 13. 지원 그룹을 만들기 위한 진통 / 랜디 크리스천
전략 14. 보살펴주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 부르스 라슨
전략 15. 삶의 변화를 위한 설교 / S. 보엔 매튜스
전략 16. 목회 사역을 현장에 맞추라 / 데일 S. 리안
4. 위기 상황
전략 17. 위기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 / 게리 L.걸브랜슨
전략 18. 개입해야 할 때 /마셜 쉘리
전략 19. 사망의 골짜기에서의 목양 / 그리그 아시마쿠폴로스
전략 20. 자살 그 이후 / 랜디 크리스천
전략 21. 무너지는 결혼 생활을 재건하라 / 제임스 D.버클리 ♥ 2
5. 구체적인 돌봄
전략 22. 당신은 욥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 캐슬린 린즈쿡
전략 23. 오랫동안 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돌봄 / 매튜 우들리
전략 24. 재혼자를 위한 상담에서의 중요한 질문 / 랜디 크리스천
전략 25. 사별의 슬픔을 당한 사람을 위한 돌봄 / 케빈 E. 루프콘
전략 26. 밝고 아름답지만 심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 / 빅토리아 마틴
전략 27. 어린 시절에 당한 학대의 상처를 치유하라 / 알 마일스
전략 28. 성 중독에 빠진 사람을 위한 돌봄 / 할 B. 쉘, 게리 스위튼, 베티 레이드
전략 29. 성 폭행 희생자를 상담하는 일 / 대니 암스트롱
전략 30. 환자와 함께 있어주라 / 리처드 엑슬리
여는 글
"깊은곳" 이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 곳은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할 때 경험하게 되는 현장! 깊은 은혜 속으로 가자
고린도교회의 피상적인 신자들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표피적 삶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래서 삶의 여러 정황을 통해 좌충우돌한다. 물론 사람들은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하지만 자신의 힘, 물질, 또는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연단 없이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목적없이 분주한 우리를 보고 하나님은 탄식하신다! 자신의 자녀들이 분주함과 복잡함으로 평강을 잃어버린 데 대해 신음하신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폭풍이 간섭할 수 없는 고요하고 깊은 영적 삶의 자리를 알지 못한다. 사실 인간의 낭패 뒤에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충만함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일생의 노력 끝에 쟁취할 수 있는 그런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실재로 인도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가까운 일이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바라는 성도들을 위해 캘빈 밀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속박하는 것들의 폭정을 부수고, 우리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삶을 변화 시키는 마음의 여행! 그리스도 안, 영혼의 진정한 깊은 곳에서의 삶이 당신 앞에 보물 창고처럼 펼쳐져 있다. 당신은 고요한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여행을 시작 보라.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전체적인 요약부분보다 전략2의 내용을 전부 수록했습니다.
「상담과 치유를 통한 30가지 양육전략」
(p. 27-41)중에서
<전략 2> 성도들을 돌보기 위한 전략
“목회자는 새로운 목회지를 가면서 기존의 사역 프로그램을 함께 가지고 간다.” - 리처드 C. 할버슨 - ♥ 3
나는 1944년부터 1947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콜린저에서 처음으로 사역한 수 다시는 목회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목회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보조 사역자로서 작은 그룹의 사람들과 8년 동안 일했고, 3년 동안 국제기독교지도력 단체에서 일했다.
그 후 주님의 인도로 제4장로교회에 왔을 때 나에게는 준비된 사역 프로그램이 없었다. 나는 목회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고 무슨 프로그램이 유용한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제4장로교회에서 21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준비된 프로그램이 없었던 ‘문제’가 오히려 나에게 큰 재산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회자가 새로 목회지에 부임하면 보통 기존의 프로그램을 함께 가지고 간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는 어떤 프로그램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다른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방법론의 문제에 묻혀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동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비교하게 되고, 결코 본래의 목회 사역을 하지 못한다.
진정한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좀더 귀납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단순화하라
제4장로교회에 부임한 초기에 하나님은 나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첫째는 주일 아침 회중을 대할 때 거실에서 소그룹을 대하듯이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주님이 주신 계명을 온전히 실천하라는 것이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마가복음에 있는 말씀이 시선을 끌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열 두 명의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자신과 함께 있으라고 명령하신 내용이었다. 갑자기 ‘함께’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이 말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이다. 이 단어에는 코이노니아의 기도와 격려가 함축되어 있다. 이 단어를 통해서 나는 교인들과 ‘함께’하는 사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그들과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런 일정을 세운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예수님은 보편적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사역을 위해 일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열두 명의 제자들과 보내셨다.
여기서 나는 가장 효과적인 교회 구조는 작은 그룹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역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접근’이, 정형화된 전문적인 목회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 4
예를 들어 나는 수요일 아침에는 정기적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을 만나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어떤 메시지를 미리 생각하고 그들을 만나면 만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 전에 깨달았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달랐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각각의 그룹에는 특성이 있고 그 특성에 맞게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특성의 배후에는 성령이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내가 전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교인들을 만날 때 좀더 수준 높은 지각력을 가지고 그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교인 전체나 몇몇의 사람들이 침묵할 때에도 그들로부터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형화된 접근 방법을 피하라
최근 우리 교회에는 고든콘웰신학교 학생이 인턴으로 와서 사역했다. 나는 그와의 첫 만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 자네는 고든콘웰에서 많은 것을 배웠네. 그리고 그 전에는 네비게이코에서 귀중한 경험을 쌓았네. 그러니 자네는 첫 사역지에 부임하게 되면 전에 훈련받으면서 구상했던 계획, 생각 그리고 프로그램들을 빨리 적용하고 싶을 걸세. 그래서 인내하지 못하고 그 곳에서 이미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할 걸세. 그러나 나는 자네가 그 곳에서 이미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천천히 그 일의 한 부분이 되어 동참하기를 바라네. 그렇게 되면 자네가 배운 지식들은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응용되어 상황에 적합한 것으로 승화될 수 있을 걸세. 민들레는 몇 시간 안에 자라나게 할 수 있지만 난초의 경우는 7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인본주의자들은 모든 일에는 ‘올바른 길’ 또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으며 그것을 찾기만 하면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가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1956년 제4장로교회에 오기 전까지 나는 11년 동안 소그룹 사역을 해왔다. 나는 나 자신을 소그룹 전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지 오늘날의 문화 때문이다. 오늘날은 어떤 분야에 몇 년 동안 몸고 있으면 당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로 취급한다.
나를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했던 사람은 나를 담당한 첫 번째 목사님이셨다. 그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가르쳐주셨다. 즉 그는 나에게 여러 생각을 좋은 씨앗처럼 마음밭에 심고 어떻게 자라나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 5
그 결과 나는 ‘정형화’되어 있고 미리 만들어진 거대한 교회 프로그램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론적으로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서 그것이 스스로 자라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 교회는 모든 예배를 시작할 때 성도들에게 교회를 위한 그들의 공헌을 상기시켜 주는 인사말을 한다. 그 인사말은 다음과 같다.
“매순간, 상황마다 우리가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향해 지금 여기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일을 위해 매진합시다.”
수년 전 나는 주일 아침 설교 시간에 문자 그대로 일주일 동안 말씀에 푹 빠져 살아온 소규모 성도들을 대하듯 설교하기 시작했다. 성도들이 내 설교에 귀기울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목적을 위해 나는 주일 예배에서 회중을 대할 때 우리 집 거실에서 소그룹의 사람들을 만나듯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저녁때 몇 명의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면 당신은 그들을 일렬로 세우고 지루하게 강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최자나 소그룹 리더의 임무는 그룹 토의에 집중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토의 과정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주일 아침마다 나는 새로운 말로 교인들에게 질문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정말로 들으셨습니까?” 만약 회중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는 계속해서 “우리가 들은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성도들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회중 가운데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대답할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설교 중에 교인들이 듣고 반응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공허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중심 철학을 발견하라
나는 교회의 이상적인 조직 구조는 동심원 구조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직적으로 교회조직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심원 구조의 성경적 모델은 사랑의 사도인 요한에서 시작된다. 최후의 만찬에서 요한은 자신의 머리를 예수님의 가슴에 갖다대었다. 요한과 예수님과의 이런 밀접한 관계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원 안에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변화산과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가셨다. 어쨌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관계를 맺었는데 그 관계는 나머지 9명이 누리지 못한 교제의 관계였다. 나머지 제자들은 질투를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 세 사람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 6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핵심 그룹은 12명의 제자들이었다. 그 그룹을 넘어서면 70명의 제자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120명의 제자 그리고 500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다.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한다.
나는 목회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5절에서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라고 말했다. 진정한 크리스천 공동체는 목회자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말은 목회자가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도들 간의 돌봄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주일 아침의 예배를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 주일 아침의 예배야말로 목회자가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보살핌을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수년 동안 우리 교회는 주보 뒷면을 ‘가족 제단’이라고 불렀다. 이 자리를 통해서 우리는 교인들의 필요들을 챙겼다. 즉 병든 자, 입원한 자, 학생 그리고 ‘금주의 가족’이라고 해서 4-5가정 정도를 소개했다. 또한 예배 중에 우리는 ‘찬양과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순서를 갖는다. 이 순서는 중보 기도 순서 다음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성도들에게 주위 사람들과 인사하라고 말한다. 성도들끼리 교제를 할 때 나도 강단 아래로 내려가 회중 사이로 걸어가서 여러 사람과 껴안고 인사를 한다. 다른 부교역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순서가 끝나면 우리는 주보 뒷면에 기재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런 단순한 순서들을 통해 우리는 성도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서로를 격려해주는 관계
우리 교회는 소그룹을 장려한다. 그러나 교회가 소그룹을 조직하지는 않는다.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소그룹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모임에 와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면 나는 보통 흔쾌히 승낙한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가서 성경을 귀납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소그룹의 모임을 단지 성경 공부에서 그치지 말라고 권고한다. 모든 소그룹은 서로를 격려해주는 성도의 모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소그룹 위원회는 소그룹이 역동적인 모임이 될 수 있도록 교인들에게 직접 모범을 보여준다. 나는 가능한 한 자주 사역 위원회를 만난다. 그리고 다른 교역자들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각 위원회에게 서로를 격려하는 관계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라고 권한다. ♥ 7
21년 전 우리는 ‘양 무리 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각각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일정한 수의 교인들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 책임을 분명하게 정했다. 예를 들어 평신도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교인들은 1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만나고, 1년에 두 번 이상 접촉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도시 워싱턴 지역의 생활 특성 때문이었다. 어떤 교인들은 “우리는 양떼처럼 취급받는 것이 싫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양 무리라는 개념에 치명타를 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도들 간에 단체 의식이 돈독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프로그램을 시도하기로 했다. 교제 위원회를 설립하고 교인들을 돌보기 위한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고충 전담 사역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아름다운 남부 억양을 가진 훌륭한 여성도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패트 브라운으로서 그녀는 사람들을 돌봐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찾아온다. 그녀는 창의력을 발휘해서 모든 일을 상황에 따라 잘 처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가정은 임대 주택에서 쫓겨났을 때 그녀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이 병원비를 지불할 수 없을 때 그녀는 중간에서 당회원에게 연락한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소위 ‘전진’이라는 사역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그녀는 또한 ‘가족 연계’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의 목적은 모든 가정이 함께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이벤트 중심의 교제 사역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가족 연계 사역 관계자들은 이번 달에 우리 지역의 프로 미식 축구팀인 레드 스킨스의 홈 경기 관람을 준비중이다. 그들은 지난 여름에 울프트랩에서 열린 한 야외음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하퍼스 페리에서 함께 지내기 위해 기차를 전세 낼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런 교제를 통해 남녀노소 그리고 기혼자나 미혼자들은 서로 하나가 된다. 패트는 특별히 결혼을 앞둔 미혼자들이 기혼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려고 할 때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그녀는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한다.
이 모든 일에 우리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8
문화를 이해하라
처음 제4장로교회에 부임했을 때 나는 주중이면 거의 매일 오후에 심방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대도시 외곽 지역에서는 심방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가족 전체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둘째, 대도시 외곽 지역에 사는 가정 주부들은 매우 바쁘다. 그래서 그들은 목회자와 30분 동안 앉아서 심방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셋째, 자녀들이 모두 집에 있을 때 목회자의 심방은 그 가족들에게는 불법 침입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심방을 받은 가족들이 한쪽 눈은 나를 주시하면서 다른 한쪽 눈으로는 TV를 시청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교역자들에게 심방 대신 일정한 수의 성도들을 할당해서 1년에 적어도 4번은 그들에게 전화 심방을 하라고 말했다. 이런 전화 심방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구체적으로 나는 전화 심방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두 시간을 할애한다. 그래서 전화 옆에 앉아 한 가정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딕 하버슨 목사입니다. 제가 전화한 것은 혹시 오늘 제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줄 제목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듣는 법을 배워라
나는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프린스턴대학에서 상담학에 관련된 필수 과목을 이수하며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나는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먼저 사람들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회자가 교인들과 함께 있어주고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과 동고동락하려는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전에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오랫동안 숨겨온 어느 성도를 상담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말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만약 그 성도가 자신의 문제를 시인할 때 내 표정이 변하고 내가 충격을 받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우리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전에 미리 철저히 준비했다.
지금까지 상담을 하면서 나는 큰 실수를 여러 번 했다. 그 실수들은 대부분 내가 영적으로 준비되지 않았거나 외부적인 압력, 개인적인 낙담 때문에 상황에 충분히 민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정말 창피스러웠던 나의 실수담을 이야기하겠다. 제4장로교회 부임 초기에 한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남편은 유대인이었고 여자는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결혼 생활에서 갈등을 빚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여러 번 상담을 했다. ♥ 9
그런데 상담을 할 때만다 항상 그 남편은 어느 시점이 되면 일어서서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급기야는 광기를 부렸다.
어느 주일 아침 예배 후 그들은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 남편은 내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괴상한 행동을 했다. 그의 행동에 아내는 창피해 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했다. 그는 이상한 행동을 그만 두고 “목사님도 아시겠지만, 나는 아내가 없으면 자살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 나는 그가 역겨웠다. 그래서 화를 내며 “당신은 그녀에게 전혀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 월요일 아침, 나는 그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그가 나에게 한 첫 마디는 “하버슨 목사님, 나에게 자살하라고 말한 사람은 당신입니다”였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고 그들 부부의 진정한 문제에 민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을 모두 잃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교훈 삼아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충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비난에 확실히 대처하라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방관주의적 사역 방식에는 갈등이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최근에 15세 된 아들이 법을 어겨 곤궁에 빠진 한 가정이 나를 비난한 적이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전화로 나의 개인적인 실수와 교회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비난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 아버지의 비난보다 더욱 나를 괴롭혔던 것은 전에 당회원 이었던 한 성도의 편지였다. 그는 현재 아내와 별거 중이었다. 그는 두 쪽 분량의 편지에서 교회의 잘못들을 험악한 말로 비난했다.
나는 그런 갈등이 생길 때 정면으로 대응한다. 그 당회원의 편지를 받자마자 나는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로 말하는 것을 꺼렸지만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나는 그가 편지에 쓴 내용을 다시 말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후 나는 다음과 같이 사과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비난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대표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그에게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2주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날 예정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버지의 경우 나는 먼저 중. 고등부 담당 부장을 찾아갔다.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와 이야기한 그 날 저녁에 담당 부장은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나는 비난이 생기면 그것을 빨리 그리고 직접적으로 민감하게 해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갈등이 내 영혼에 남기는 깊은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빨리 치유되지 못한다. ♥ 10
여기서 길바닥의 웅덩이에 빠진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친구 개구리들은 웅덩이에 빠진 개구리를 구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마침내 그들은 절망한 채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그 다음 날 그들은 웅덩이에 빠진 개구리가 이전처럼 활기차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았다. 한 개구리가 그에게 다가와서 “어떻게 된 거냐? 우리는 네가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나도 그랬어. 그런데 트럭 한 대가 달려 오는게 보이자 어떻게든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빠져나오게 됐어.”
갈등의 수렁에 빠져 있는 목회자에게 “당신은 무조건 빠져나와야 합니다”라는 말밖에 나는 달리 해줄 말이 없다. 나도 여러 번 그런 상황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합리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태복음 5장 24절에서 우리에게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셨다.
“예물은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누군가 우리를 비난했을 때 우리는 그를 찾아가야 한다. 목회자의 이미지 중 목자로서의 이미지는 한 손에 긴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으로 귀여운 양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목자의 한 측면이다. 목자의 또 다른 측면은 양이 무슨 병에 걸려 있는지 알아내서 아무리 힘들더라도 양을 치료하거나, 처방책을 주는 모습이다.
올바르게 평가하라
나는 성공이라는 말에 당혹감을 느낀다. 오늘날 교회에는 성공과 대형화를 동일시하는 사고 방식이 만연되어 있다. 이런 동일시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공의 기준이 물질주의에 뿌리를 두게 되어 교인 수, 예산, 교회의 크기 등으로 교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물론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목회자의 성공의 기준은 아니다.
나는 소형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 문화에서는 암묵적으로 목회자가 사역을 잘하면 나중에 대형 교회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크기가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소자를 위한 사역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척 콜슨은 재소자에 대한 사역을 평가하기 위해 최근 전국에 있는 교도소를 대상으로 일일이 조사했다고 말했다. 나는 척에게 그의 평가 기준을 물었다. 놀랍게도 그의 평가 기준에는 통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 없었다. 모든 것이 가치와 연관되어 있었다. 즉 교도소에 있는 크리스천 재소자들의 영적 분위기가 어떠한가? 그들은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가? 그들은 다른 재소자들을 위해 전도하고 있는가? 바로 이런 것들이 성공적인 사역의 기준이다. ♥ 11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나는 항상 놀란다. 스위스의 의사인 폴 투르니에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어떤 부모는 극단적으로 권위주의적인 반면 어떤 부모는 극단적으로 관대하고 대개의 부모는 그 중간입장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부모의 양육 스타일에 관계없이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느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비록 실패해도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는다.
나는 목회자의 가장 위대한 자유 중 하나는 ‘실패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인 삶과 목회 생활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압력을 받아왔다. 나의 영적 생활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실수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이와 같은 사실 때문에 자유함을 느낀다.
이번 주 화요일 아침,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꿈 때문에 나는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 꿈에서 오직 기억나는 것은 내가 실패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다시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잠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다시 한 번 내 실수가 하나님의 실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주님, 내가 실패할지라도 당신의 은혜로 다시 기초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 자유 함이 생겨났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선하심을 이용하여 우리의 게으름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실패는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한 과정이다. 실패는 순금을 만들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다. ♥ 12
Day-3. 영원히 존재하도록 지어졌다.
☞ 오늘의 성경말씀(전도서 4:4)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3:11)
“하나님이 사람과 같은 존재를 하루살이로 만들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도록 지어졌다.”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 내용요약
현재의 삶이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실제의 공연을 위한 최종 연습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보내고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즉 영원한 시간을 이 땅을 떠난 뒤에 살게 될 것이다. 지구 위에서 산다는 것은 영원한 삶을 위한 중간 지점, 예비 학교이며, 연습장에서 실제 경기에 임하기 전에 갖는 연습이나 몸 풀기 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길어야 100년 정도 살 수 있지만, 그 후에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 이 말은 우리 안에는 영원한 삶을 바라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영원토록 살도록 우리를 만드셨음을 의미한다.
어느 날 우리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의 육체는 지구상에서의 시간과 결별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존재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육체를 ‘장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래의 몸은 ‘집’이라 부른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5:1).
이 땅에서의 삶에는 많은 선택 사항들이 있지만 영생이 지시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천국과 지옥, 우리가 지구상에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디에서 영생을 보낼 것인지가 결정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영생을 그분과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용서 그리고 구원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사는 것이 존재의 끝이 아니고 그 후의 영원이라는 것이 있으며, 지금의 삶이 영생을 위한 준비과정이란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많은 활동과 멋지고 대단했던 목표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던 많은 문제들이 한순간에 의미 없고, 사소하며,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더 작아 보일 것이다. 영원의 빛 가운데 살면 우리의 가치관이 변한다. 시간과 돈을 더 현명하게 쓰게 되고, 명예나 부, 또는 일의 성취감이나 쾌락보다 인간관계와 인격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다.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라면 나는 이제부터 인생을 즐기라고 제안할 것이다. 우리의 행동들에는 장기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없기 때문에 완벽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누려도 된다는 말이다. ♥ 13
하지만 죽음이 우리 존재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죽음은 우리 존재의 끝이 아니고 영생으로의 전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행위에는 영원한 결과가 따른다. 우리 삶에서 이루어진 모든 행동이 영생에서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삶에 목적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것이 이곳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은 우리가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보낼 몇십 년 보다 훨씬 많고, 우리에게 평생토록 매일 기회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이상의 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계획은 언제까지나 한결 같고, 그분의 뜻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시33:11, 쉬운성경).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보낸 10개월의 시간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위한 준비였듯이, 현재의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바로 그것이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우리의 영원한 집을 기대하고 있다”(히 13:14, LB).
영원에 비교하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눈 깜짝할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결과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기고 사는 것이 더 지혜로운 삶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튜 헨리(Matthew Henry)의 말을 기억해 보자.
“우리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것이 매일의 일이 되어야 한다.”
☞ 생각할 점(내 삶의 목적에 대해 오늘 하루 반복해서 생각하고 묵상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의 삶 그 이상의 것이 있다.
☞ 삶으로 떠나는 질문
1. 나는 영원을 위해 지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두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2.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외울 말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 섬김과나눔교회에서 매달 2회씩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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