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16장
함께 구원받아 함께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문안함으로 격려,
복음으로 굳게 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찬송 46장, 새찬송가 46장)
2019-2-19, 화
맥락과 의미
긴 편지의 마지막 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AD 57년경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16장의 앞부분에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하며, 그들도 서로 평화의 인사를 하도록 초대합니다(1-16절). 중간 부분에서 악한 자들로부터 떠나라고 권면하며, 성도를 축복합니다(17-20절). 그리고 후반부에는 고린도에 있는 여러 성도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들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한다고 합니다(21-24절). 제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송영을 드립니다(25-27절).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 아래서 하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간에 서로 문안하고 인사합니다. 우리는 평화의 인사를 하면서 서로의 생명을 풍성히 일으켜주는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 예배 때 성도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문안하면서 서로의 인격을 세워줍시다. 또 평소에 방문이나 전화와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도들을 격려합시다.
1. 주 안에서 함께 성도된 자들과 서로 문안하며 귀하게 여기고 세워주자 (1-16절)
사도 바울은 서로 평화의 인사를 하는 성도들을 나타내는 말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이 성경을 읽는 우리 성도들이 어떤 존재이며 서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를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과 그리고 그와 함께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이 평화의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문안하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서로에게 평화의 말과 표정으로 인사하고 환영하도록 가르칩니다.
1절에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뵈뵈는 아마 바울의 로마서 편지를 가지고 간 자매인 듯합니다. 로마서 편지를 그녀를 위한 추천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겐르레아 교회는 고린도에서 5-10km정도 거리의 항구도시입니다. 뵈뵈는 그 교회의 일꾼으로 있었습니다. 아마 자기 집을 교회의 모임장소로 제공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2절에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성도의 관계의 중요한 측면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관계는 자연인으로 만나는 것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성도라는 직분자로서 성도의 옷을 입고서 만납니다. 우리의 서로의 자연적인 부족함이나 자연적인 강점을 보고 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성도이기 때문에 합당하게 대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한 것을 따라서 성도로서 귀히 여기고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쓸 것을 주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와 자녀들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족이든 교회의 다른 성도든 성도로서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서 공동체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식구들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해주고 세워줍시다.
이제 사도가 로마시의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평화의 인사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도에 대해 ”사랑받은 자” 혹은 사역에 수고한 것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평화의 인사를 하고, 또 그들의 수고 때문에 감사하며 평화의 인사를 합니다.
3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원래 로마에 살던 유대인이었습니다. 클라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다 추방할 때(49년), 고린도로 이사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교회를 섬겼고, 다시 에배소에 가서 일하면서 교회를 섬기면서 아볼로를 만나 그의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행 18장). 다시 로마에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동역자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4절). 모든 생명을 다해서 사도 바울이 사역을 다할 수 있도록 사랑하고 지원했기 때문에 모든 이방인의 교회가 거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고린도 교회와 사도 바울은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에 속한 새로운 시민으로써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격려합니다.
5절에 에배네도를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합니다. 그는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시아라는 것은 터키 서부 에베소 지역을 말합니다. 6절에 마리아를 ”많이 수고한” 사람으로 부릅니다. 수고라는 것은 땀을 흘려 일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지만 땀 흘려 열매를 맺습니다.
7절에 친척 (11, 21절)은 실제적인 친척관계 라기보다 같은 유대민족이라는 것을 뜻합니다(9:3). 이들은 사도에게 아주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아마 사도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자인 것 같습니다. 8절에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아, 9절에서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 10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라라고 합니다.
12절에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 택함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또 사도는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라고도 말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성도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14절에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더 나아가서 15절에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합니다.
이것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수식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함께 일하고 함께 갇히고 하나의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16절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합니다. 바울이 있던 고린도 교회와 모든 교회의 이름으로 로마의 성도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하는 자로서 사도적 교회의 전체 성도의 문안을 대리해서 로마 교인들에게 평화를 전합니다. 특별히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안부와 평화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모든 교회를 대표해서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은 우리에게도 사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모든 교회의 평화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위에 온 교회의 축복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2. 말씀의 가르침 안에서 서로 섬기되,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을 멀리하라 (17-20절)
안부를 전하는 교회에 대해 16절까지 말하고, 바울과 함께 안부하는 그 성도들의 이름을 21절에서 계속합니다. 그 사이에 있는 17절부터20절은 성도들의 친교 바깥에 있는 사람들, 사단의 세력에 대해 조심하라고 합니다. “너희 교훈을 거슬러.” 더 정확히 말해서 너희가 배운 가르침에 반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정하는 기준은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같은 가르침 안에 있고 같은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이 가르침과 믿음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혜롭게 적용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친하게 하고, 아무에게나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내주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떠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마음의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18절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는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배만 섬기는 자들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노예로서 섬긴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섬기는 것”(12:11)의 표현으로서 ”서로 종 노릇 해야 합니다”(14:18).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서로를 섬기지 않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배만 채우는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면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킵니다.
거짓 교인들은 분쟁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믿음으로부터 넘어지게 합니다. 구원으로부터 끊어지게 합니다. 그들은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거짓 교인들이 말을 번지르르하게 한다고 쉽게 따르지 맙시다. 그들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잘 분별합시다. 우리들 자신에게도 이런 위선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19절에 그리스도를 순종하고 선한 곳엔 지혜롭고 악한 곳엔 미련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는 이런 악한 자들로부터 떠나라고 하면서도, 20절에 격려의 말을 더해 줍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평화에는 승리의 뜻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 삶에서도 우리 개인의 내면에서도 사탄의 공격이 계속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을 피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약해서가 아닙니다. 패배주의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화와 섭리로 이끄시고 사단을 발 아래에 멸하실 것입니다. 진리를 굳게 붙잡고 살아갑시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를 이룹니다. 진리 안에 가정을 이룹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악한 일이 일어나면 책망해서 비진리를 쫓아버립시다.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고 은혜와 평화의 축복을 해줍니다. 주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는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은혜로우신 주님을 의지합시다. 평화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3. 고린도 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로마 교인들을 문안함 (21-24절)
이제 사도 바울은 자기와 함께 있는 고린도 성도들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하는 평화의 인사말을 전해줍니다. 21절에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야손은 데살로니가 교회 초기에 핍박을 받은 성도입니다(행 17:5,6). 23절에,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가이오는 고린도전서 1장 14절에도 나옵니다. 그는 예배 때 고린도 교회의 예배와 모임 때에 식사를 대접하는 부자였습니다. “이 성의 재무(청지기) 에라스도.” 에라스도는 사도행전 19:22에 나오는 그 사람은 아닙니다. 고고학에서 발굴한 다른 자료에 등장하는데 고린도의 상당히 부유한, 일종의 재무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교인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과 같이 문안합니다.
로마에 있던 성도들(1-16절)과 고린도에 있던 성도들(21-24절)에 대해 같은 말을 사용하여 앞 뒤가 짝을 이룹니다(수미 쌍관법). “나의 동역자”(3, 21절), “나의 친척”(7, 21절), “모든 교회”(4, 23절), “이방”(4, 25절). 이 세상 모든 교회에 있는 참 신자는 하나님의 가문의 친척이요, 동역자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이렇게 알고 귀히 여깁시다.
4. 복음을 따라 우리를 굳게 세우시는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과 영광을 돌림 (25-27절)
지금까지 성도들을 향해 평화의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와 찬양을 올리도록 초대합니다. 25-27절은 원문에는, “너희를 견고하게 하실 능력이 있는 분”으로 시작해서 ”오직 지혜로운 그분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로 끝납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너희를 ”견고하게” 하시는 일에서 아주 지혜롭기 때문에, 그 분께 감사 찬양합니다.
그 분은 어떤 수단으로 우리를 견고하게 합니까? 복음을 통해서입니다. “…을 따라서”라는 말을 세 번 사용하여 강조합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을 따라서”(25절) 견고하게 하십니다. “신비의 계시를 따라”(26절)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비밀을 사도에게 나타내 주셔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인 구약의 말씀에서부터 이미 나타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26절) 신구약의 계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신비인 그리스도의 복음은 감추어져 있다가, 나타났고, 알려 졌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관인 사도를 통해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을 ”믿어 복종케 하고”(26절) “견고하게”(27절) 하십니다. 이렇게 행하시는 능력과 지혜가 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믿고 복종할 일
함께 복음을 굳게 잡고 나갑시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는 성도와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화와 축복의 인사를 합시다. 우리 성도들끼리, 또한 가족 성도들끼리 새로운 관점으로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시대의 왕실은 어린 왕자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말을 높이고 존중했습니다. 왕의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왕세자는 다음 왕위를 이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 밑에서 다스리는 왕자들, 공주들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온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서로에 대해 새로운 원칙을 가지고 대합시다. 성도로서, 형제로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로서, 동역자로서 새로운 영적인 친교가 넘치기 바랍니다. 우리는 단순한 느낌과 감정에서 나오는 친숙함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객관적 사실을 통해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받았음을 바로 압시다. 서로 문안하고 존중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을 축복하는 것은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것으로 나가야 합니다. 성도들끼리 문안하고 격려하는 것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문제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 계속 감사 찬양하는 일이 약해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이 복이 넘치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