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룬디aa라는 커피를 마시면 어쩔 수 없이
그곳의 역사가 떠오릅니다. 아주 아픈 역사
르완다 내전에 관한 것이지요.
르완다와 브룬디는 600년 정도의 오랜 기간동안
벨기에의 지배를 받은 곳입니다. 이 곳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살고 있었는데, 수적으로
투치족이 훨씬 적어서 전체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았어요.
벨기에는 식민 통치를 쉽게하기 위해 투치족에게
특권을 쥐어 주었습니다. 즉 투치족을 왕으로 내세워서
후투족을 지배하도록 했지요. 그래서 소수의 투치족이
지배계급이 되어 가축과 땅을 차지하고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가난과 억압에 시달렸지요.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독립을 하는데 이 나라에서도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벨기에 정부는 그들에게 민주 정부를 세우고
선거를 해서 대표를 뽑으면 독립을 인정하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후투족은 정당을 만들어 선거를 치러 정부를
세우고 왕을 내쫓은 후, 투치족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백년 동안 억눌려 오던 분노는 한꺼번에 터져나와서
후투족은 보복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투치족은 부랴부랴 남부지방인 부룬디으로 가거나
이웃나라로 피신했습니다.
그러자 벨기에는 이 두 부족이 서로 다른 나라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1961년 북쪽은 후투족 대통령이
있는 르완다, 남쪽은 투치족 대통령이 이끄는 브룬디라는
두 개의 공화국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곪아 온 부족간의 갈등은 두 공화국 내에서
끊임없는 보복전과 쿠데타로 계속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르완다 대통령인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자 이 사고를 투치족의 소행이라고
생각한 후투족이 복수의 칼을 들고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투치족도 피의 보복을
선언했지요. 상상을 초월한 학살극이 벌어졌습니다.
3개월동안 전체인구 740만명중 100만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이것은 시간당 400명 1분당 7명이 죽은 것과 같습니다.
너무도 끔찍하여 차라리 죽기를 원했던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