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김옥순 사진전 중에서)
문을 통한 삶의 조명
(글. 홍순태 교수)
오늘날 한국의 사진창작의 현실은 복잡하고도 실감 나는 전쟁터이다. 기성세대의 보수파는 한국사진작가협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주해 그 시간은 멈추어버려 그 문을 박차고 과감하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견층의 사진가들조차도 과감하게 그 고착된 틀을 벗어나지 목하며 작품 활동을 업그레이드 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활발하게 전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분별하게 외국의 사진장르를 모방하는 것에 그쳐, 국적 없는 사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시도라고 자칭하면서 포토샵에 의한 마구잡이식 변형 내지는 뉴웨이브에 의한 만드는 사진,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패러디 사진 표현의 군웅활거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대의 한국적, 문화적 전통의 바탕 위에 현대적 시각의 사진사조가 만들어져야만 우리의 것이 된다고 본다. 물론 사진 선진국들의 사진사조가 어느 정도 이식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적 사고에 걸맞은 탐구적 정신과 시각의 확대로 독자적인 발전을 모색해야만 한다. 현재 문명 비평적 시각이나, 실험주의, 신비철학, 개념주의 등의 다양한 접근방법이 존재하지만 사진의 가장 뚜렷한 존재 가치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표현 방법적 측면에서 관찰한다면 생생한 현실의 기록의 명료함, 단순성 같은 성질을 강조하는 자연주의적 분야가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김옥순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진일보한 ‘뉴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즉 기록성이나 창작성 둘 중 어느 한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유류산업의 생활화 이후 급속히 산업전선에서 밀려난 탄광산업으로 인해 탄광촌은 폐허가 되고 슬럼화 되면서 인적이 없는 폐광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옥순은 이 폐허의 마을로 변해버린 폐광촌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끌어들여 그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폐광촌의 잔상을 표현한 사진이다. 그의 사진적 전개방식은 생활공간 중 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문 안과 문 밖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을 추론한다.
문을 통해서 안과 밖의 세계가 소통되었을 그 문, 문 안에서는 가난에 찌든 생활도구와 가난하지만 가족들아 모여 앉아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애, 문 밖으로 나가면 까만 석탄가루로 검게 덮인 온통 검은색의 길과 탄광의 모습, 채탄을 마치고 온통 검게 변해버린 옷차림으로 집에 돌아오는 가장의 지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외롭고 고독하게 폐광촌을 거닐며 사진을 찍는 김옥순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모든 사진에 표출된 가옥들은 몹시 닳고 묵은 때로 얼룩져 있으며 그것은 결국 그들만의 삶의 현장인 것이다.
차분히 가라앉은 로우키 톤의 색조와 때 묻은 벽과 문짝들은 그들의 애환 어린 삶 속으로 감상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들만의 고통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나 문을 통해 안팎으로 이어지는 강인한 정신력의 의지가 추론되며 심상적 분의기로 유도한다. 그가 기록하려는 의지는 처음에는 그리움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영상으로 변하면서 자기만의 개성적 시점의 사진으로 유도한다. 그의 사진은 결코 설명적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를 우리들은 보는 듯하다.
<작가노트>
문! 그것은 삶의 통로이자 생활 범주를 제한하는 공간의 시작점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덧칠한 범주를 넘나들며 카멜레온 같은 세상과 나 자신 사이에서 소통과 단절이라는 참담한 잔상으로 각인되는 찰나들과 접해야 하는 공간으로서의 門. 門은 이렇게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여 대지를 달군 한없이 뜨거웠던 한 낮의 여름날, 나는 영월의 폐허된 탄광지대를 걷고 있었다. 수많은 삶들이 활발했던 곳, 그러나 지금은 오랜 삶들이 정지되어 있는 곳,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의 흐름조차도 옛 도시의 정지됨에 멈추어서고 내 자신의 호흡마저도 정지 되는 듯 답답함이 억눌려왔다.
그러나 나는 사라져가는 도시의 흔적 속에서 비밀스럽게 속살 감추고 있는 과거로 갈 수 있는 비밀통로를 발견하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집마다 세월의 흔적으로 깊은 상채기를 남기며 존재성을 갖추고 있는 남겨진 門, 그 단절된 뒤쪽에는 나와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어떤 이들이 수없는 여름을 지내왔을 것이고 또 지나간 새로운 여름을 맞아 왔을 것이다. 나는 門의 안과 밖의 공간을 상상하며 카메라의 셔터소리와 함께 그들의 잔상을 메모리에 저장했다. 도시를 넘나들며, 혼자라는 고독과, 멀리 오가는 길엔 위험도 따라다녔다. 고독한 작업들은 모두 생각보다 쉽지만 않았다.
이미 고착화된 신분, 현실로부터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일부 특정인들의 팍팍한 일상 속에 무미건조한 색깔로 다가오는 門, 나는 이 門을 통해 세월과 현실을 그대로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본다. 어렸을적 내가 보아온 그리고 세월의 뒤안길로 곧 사라질 이 門들의 아름답기까지한(?) 색채는 마치 늙어가는 여인, 할머니들의 짙은 화장. 그것처럼 보인다. 스치는 바람에 삐걱거리는 대문소리. 대문 곁, 편지함은 소식에 굶주린 듯 휑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녹슬어 문패의 이름조차 희미해진 그 문을 통해 혹시 하는 희망적인 소식을 기다리며 외출을 했을 저 문속의 주인공을 상상하며 오늘도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전시안내>
제목 : 문(門)
일시 : 2009년 7월 3일(금) - 8일(화)
장소 : 충무로 Bit 갤러리 (서울 중구 충무로3가 24-4)
(02) 2263-4903
<작가약력>
작가프로필 : 신구대 사진아카데미 수료
사진모임 빛과공간 동호회원
사진집단 비트멤버
한국디지탈포토포럼(KDPF)
첫댓글 겨울나무님 사진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언니가 얼마나 맘 담았는지는 다 보여요...추카추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