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5:1~20, 마태 8장 23~28, 누가 8:26~39
이 돼지 떼 몰살 사건은 예수님이 행한 기적중에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참으로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이 연출된 사건이다.
이사건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인데 '마가'와 '누가'완 달리 '마태'는 이사건을 '가다라'지방으로 또한 광인도 두명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거라사'가 지역적으로 갈릴리 바다에 가까워 맞는 듯 하고 바디매오 소경도 마태만 두명으로 기록한 것이 유대율법에는 어떤사건에서든 두증인을 요하기 때문에 광인 또한 두명으로 기록하지 않았나 싶다.
거라사 광인에게 들어간 군대귀신의 수는 그 당시 로마군대 단위인 '레기오'의 병사수가 6000명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귀신이 6000마리 라는 추측이 있다.
쉽게 납득은 안되지만 한 사람의 몸에 그처럼 수천마리의 귀신이 들어갈수 있는것이 영의 세계이다.
나는 한 때 축사하는 교회에 다닌 적이 있는데 처음 축사가 되어질때 영안이 일시적으로 열렸는지 눈에서 콩알만한 검은 형체들이 휙휙 왔다갔다 하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이게 뭔가 파리나 날벌레인가 싶었는데 눈을 감아도 보여서 영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그런 현상은 사라졌다.
귀신들림이라 하면 보통 사람만한 영체가 그사람에게 들어가 겹쳐져 그사람 행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크기나 힘, 성향등이 너무 다양하고 무리를 지어 움직이다 서로 단단히 뭉치기도 하고 축사시에 대장이 조무래기들 몇마리 내보내고 나간 척,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또한 축사자가 그닥 성령충만 하지 않을 경우, 여지 없이 그 축사된 영에게 덮어 쓰기도 하는데 축사자는 자만하여 자기한테 들어온 줄도 모르고 여전히 악한 영에 씌인 채 사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은사자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고, 예수님이 마지막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낸자들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의 세계란 신기하면서도 참으로 위험한 세계인 것이다.
거라사 광인은 어찌하여 그 많은 군대귀신이 들어왔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악한 영들은 보통, 정신적 상처나 죄된 습관과 감정을 통해 들어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배신당했을 때,
또는 분노, 시기, 탐욕, 음란, 증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갖을 때 악한 영이 침투 하는 빌미가 된다.
귀신도 코드가 맞아야 들어오는 것이지, 평안하고 즐거운 사람에게 느닷없이 귀신이 들어오는 법은 없다.
그리고 한번 들어오면 잘나가지 않는다.
대부분 범죄자들이 패륜적인 죄를 저지른 후, 감방등에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귀신이 할일을 다한 후, 잠시 쉬고 있는 것이지 귀신이 떠나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출감하고 또 들어가고, 후회하고 또 죄짓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하튼 거라사 광인은 괴성을 지르며 자기 몸을 돌로 치며 자해를 했다고 하는데 현대에서 이런 자들은 정신분열환자로 정신병원에서 가두지만 예전 우리나라 시골마을에서도 이런 사람을 미친×라 하여 한명 정도는 꼭 있었다.
무서운것도 모르고 창피한 것도 몰라 밤에 으슥한 폐가 같은 곳에 지내며 벌거벗은 채 음식 쓰레기나 주워 먹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학대를 당했거나 자식을 잃었거나 미칠 만한 사연이 꼭 있었다.
아마도 거라사 광인 또한 그리 될만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광인이 무덤가에 살았다고 하는데 고대 이스라엘 무덤은 우리나라같이 봉분이아니라 돌로 만든 굴 같은 집과 같은 형태이며 외진곳에 있어 그 근처에 버림받은 나병환자나 광인들이 많이 살았다.
무덤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섭고 꺼려지는 곳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 광인은 벌거벗은 채 밤낮 괴성을 지르며 자기몸을 상하게 하니 보통 사람들이 그 근처엔 얼씬도하지 못했다.
이런 광인의 모습은 영적으로 보면 자신과 타인의 힘으로 어찌할수 없는 상태로 마귀의 권세에 놓인 사람의 모습이다.
이런자들은 영적 무덤가에 거하며 술 도박 마약 간음, 동성애 등,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들로 자신을 치며 괴로움에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광인은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무슨 상관이니이까? 우리를 괴롭게 마소서!"라고 하는데 이는 안에서 귀신들의 대장이 한 말로서,
"당신은 하늘에나, 있지 왜 인간세계에 와서 인간을 구원하겠다고 우릴 괴롭게 하냐" 라는 뜻쯤 되지 않을 까 싶다.
예수가 그안에서 나오라하니 대장귀신은 무저갱에 보내지 말라 간청하며 돼지떼에게 들여보내달라고 한다.
그런데 돼지는 유대인 율법에 부정한 동물로 금기시되어 유대인은 돼지를 먹지 않고 제물로도 쓰지 못하는데 왜 그 근처에 돼지가 이천마리나 있었던 것일까?
유대인은 돼지를 아주 혐오하기에 유럽의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을 모욕하기 위해 키파를 쓴 유대인이 돼지의 젖을 빠는 '유덴자우'라는 조각상을 만들기도 하고 유대인이 돼지의 배설물을 먹거나 수간을 하는 장면을 그려서 대놓고 유대인을 모욕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에 들어서서 이스라엘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유대인들은 고육지책으로 거룩한 유대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돼지우리를 땅에서 띄워 사육 한다는 것이다.
이만큼 유대인에겐 돼지가 혐오스럽고 부정한 동물이지만 로마인들에겐 다르다.
로마인에게 돼지는 우리나라처럼 풍요와 쾌락 부 축복을 상징해서 그들의 이방종교제사에 돼지가 제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율법을 경시여기는 욕심많은 유대인이 로마인들에게 팔기 위해 돼지를 키운것이다.
여하튼 군대 귀신은 예수님이 내쫓으려하자 돼지떼에게 들어가길 원하고 예수님은 이를 허락한다.
분명 예수님은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면 돼지들이 어떻게 될줄 아셨다. 그렇게 되면 사유재산침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의 목숨은 이천마리 돼지보다 귀하단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이다.
현재 돼지 한미리당 시세를 검색해보니 백키로 기준, 사십만원정도라 한다.
사십만원에 이천을 곱하면 8억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껜 무덤가 광인의 생명이 8억보다 귀한것이다.
또한 돼지떼는 종말의 날, 구원받지 못해 멸망당할 사람들의 예표이기도 하다.
마7장6절에서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돼지는 오직 먹을 것에만 관심이 있다. 육신의 정욕만을 채우는데 관심이 있는 짐승이다.
진주의 가치도 모르고 줘봤자 짖밟아 진주를 흠집을 내어 가치를 떨어트리고 진주를 준자도 먹을것이나 달라며 들이받을 것이다.
진주는 복음이며 예수님을 상징한다.
세상에도 돼지와 같은 이런 사람들이 많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자,
오직 먹고 쾌락을 쫒는데만 관심 있는자,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보편적으로 싸구려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솄다.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
진주의 가치를 아는자는 그 진주를 얻기위해 어떠한 댓가도 치른다.
하지만 진주를 눈앞에 놓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직 먹을것만 세상것만 찾는 자들이 돼지이다.
여기서 귀신들린 자의 축사는 마귀의 권세에 놓인 인간을 예수님이 죄의 저주에서 해방을 시켜 준 것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자에게 쫓긴 마귀는 돼지같은 사람, 즉 육의 사람들에게 들어가고 그 돼지들은 바다에 몰살 된다.
성경에서 바다는 세상이며 사단의 영역을 의미한다.
바다에서의 돼지떼의 몰살은 세상에 빠져 멸망으로 치닫는 세상사람들의 모습이다.
마귀는 돼지떼에 들어가 종국엔 돼지떼를 몰살시키고 자신도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돼지같은 사람은 복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인가?
벧후2-20~22절의 돼지가 씻고서 다시 흙탕물에 뒹군다는 것도 예수님께 은혜를 받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그 가치를 저버리고 다시 자신을 더럽힌 자들이다.
여기서 아예 모르던 사람이 복음을 알고 버린 사람보다 낫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린 받은 복음을 귀히 여기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진주를 지키며 자신을 거룩히 지켜야 할것이다.
또한 이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돌아온 광인의 모습에 감사하고 감격하기는 커녕, 재산손괴에만 관심을 두고 예수께 떠나달라고 간구한다.
살아난 영혼보다 돈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 즉 현대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안산 단원고 근처에 산다.
단원고와 가까운 고잔동과 와동엔 그때 중고옷가게는 검은 옷이 동날 정도로 장례식이 많았고, 당시 그 또래 아들을 둔 언니는 정말 바쁘게 고2학생들의 장례식을 다녔다.
나도 안면이 있는 분의 아들이 그 사건으로 죽었는데, 그 장례식이 하필 어버이날인 5월 8일 이었다.
그런데 그 분과 친분이 있는 담임목사님이 장례식에 다녀와서 한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빚이 너무 많아 어버이날에 아들이 빚을 갚아주고 갔다는 말이 조문을 왔던 어느목사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이 어버이날, 아버지한테 선물을 하고 효도하고 죽었다는 말이다.
나는 그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더욱이 그말을 한 사람이 목사라니...
인생의 가치가 온통 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세월호 보상금이 8억정도였다고 알고 있다.
예수님은 8억의 가치가 있는 돼지 떼를 희생시키고 생명을 구했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를 택한다.
남의 재산에 손괴를 끼친 것에 대해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사람생명을 구하는 것을 택하시는 분이다.
구원을 받은 광인은 다행히 은혜를 알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신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사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막 5:19,20 "집으로 돌아가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긴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게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께 구원 받은 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각자의 사명과 역할이 다르다.
모든것을 내려놓고 복음전파에만 힘을 쓰는 목회자도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지인 친척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평신도 사명도 있는 것이다.
자, 우리도 광인처럼 예수님의 은혜로 제정신이 돌아온 사람들이다.
은혜 받은 자는 반드시 해야 할일이 있다.
목회자로 예수님만 증거하는 삶을 살든, 맡은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며 복음을 증거 하든,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분을 전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지만 예수를 전하지 않은 자가 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지도 모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며 진정한 구원을 받은 자라 할수 없다
하지만 나자신도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전도를 못하고 그틀이 듣기 편해 하는 말만 하다 만남이 끝날때가 많다.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 우린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우리 모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은 은혜를 증거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바란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ㅡ나현미 (그리스도의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