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페라(Opera)의 대가(大家) 바그너(Wagner/獨)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1813~1883)는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골고루 남겼지만 특히 오페라를 많이 작곡하였는데 널리 알려진 ‘탄호이저’, ‘로엔그린’ 등 14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오페라의 거장으로 불린다.
바그너는 26세 때인 1839년, 유럽의 민담(民譚)과 자신이 겪었던 항해의 경험을 묶어 오페라극장에서 발레 공연 전에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단막짜리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작곡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3막으로 공연되는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오리지널이다.
(1) <오페라> 방랑하는 오란다인(Der fliegende Holländer)
바그너의 오페라 초연 당시 광고 / 불길을 내 뿜는 유령선
1840년, 바그너는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가 1834년도에 발표한 풍자소설 ‘슈나벨레보브스키 사람들의 회고록(Aus den Memorien des Herrenvon Schnabelewopski)’에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스토리가 나오는 것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단막의 오페라를 수정 보완하여 3막으로 완성한다. 방랑하는 오란다인을 영어로는 ‘프라잉 더치맨(The Flying Dutchman)’이라 한다.
풍차의 나라로 알려진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홀란드’, ‘더치란드’ 또는 ‘화란(和蘭)’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오란다(オランダ)’는 홀란드(네덜란드)의 일본식 발음이다.
바그너가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오페라로 쓴 배경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주 재미있다.
‘방랑하는 오란다인(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이야기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중세 초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은 유령선을 타고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대양을 떠돌며 항해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타이틀인 독일어 ‘플리겐트(fliegend)’라는 단어의 의미는 마스트에 돛을 올리지 않아 배가 바람 부는 대로 파도치는 대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방랑하다’는 의미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고 오히려 ‘표류(漂流)하다’라는 의미가 짙다.
1715년, 조지 배링턴(George Barrington)이란 사람이 쓴 ‘보타니로의 항해(Voyage to Botany)’라는 글에 의하면 중세로부터의 내려오는 민담(民譚)으로 팔켄부르크(Falkenburg)라는 선장이 영혼을 대가로 악마와 주사위 도박을 하다가 졌기 때문에 북해(北海)에서 ‘최후의 심판’ 날까지 정처 없이 바다를 항해(표류)하는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항해하는 배들이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유령선을 멀리서 볼 경우가 있는데 유령선에서는 자기들을 육지로 안내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령선에서는 선원들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는 메시지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항해자들은 이 유령선을 보는 것만으로 저주를 받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서둘러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또 다른 스토리로는 17세기 네덜란드인 선장 베르나르 포케(Bernard Fokke)라는 사람이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포케 선장은 네덜란드로부터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자바(Java)까지 누구보다도 빠른 스피드로 항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케 선장이 악마의 도움이 없이는 그렇게 빨리 항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는데 당시 자바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처음으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 책은 1821년에 발간된 블랙우드 잡지(Blackwood's Magazine)인데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항해하던 네덜란드 선박의 항해일지 기록을 발췌하여 잡지에 게재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 배에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배를 보았다는데 그 배는 암스테르담 소속 선박으로 배에는 생존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지나가던 선박들이 그 배를 조사하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파도가 위험하여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 스토리는 전설이나 민담이 아니라 항해일지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항해일지에 따르면 1641년 네덜란드 상선 한 척이 멀리 동양에서 화물을 싣고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선장은 반 드 데켄(Van de Decken)이었는데, 먼 항해 후에 남아프리카의 희망봉까지 왔으므로 기분이 한결 홀가분한 입장이었다. 배가 아프리카의 남쪽 끝머리에 왔을 때 선장은 만일 이곳에 자기 소속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정착촌을 세운다면 회사 배들이 동양에 갔다 올 때 이 정착촌에 들려 충분한 휴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알지 못하여 배는 갑자기 심한 풍랑에 휩싸이게 되었다. 선원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 줄 몰라 했고 선장은 선원들과 힘을 합쳐 몇 시간 동안이나 폭풍에서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어느 순간, 폭풍을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그 순간, 배는 바다 위에 삐죽 솟아 나온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했다. 반 드 데켄 선장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만일 저 희망봉만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 배를 타고 다녀도 좋다.’는 저주의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결국, 희망봉은 돌아왔지만, 끝없이 표류(漂流)하게 된다.
지금도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이 일어날 때면 저 먼 폭풍 속에서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는 반 드 데켄 선장의 배를 어렴풋이 볼 수 있다고 한다.
과거에도 사람들이 그 네덜란드인의 유령선을 본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2차 대전 중 이 지역을 항해하던 독일 U-보트의 선원들도 보았다고 주장했는데 항구에 돌아 왔다가 다시 출동한 그 U-보트는 얼마 후 원인 모를 화재로 바다에 침몰하였다.
1881년 7월, 영국 해군함정이 희망봉 언저리를 돌아 유럽 쪽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 이 배에 타고 있던 몇 사람들도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배를 보았다고 한다.
나중에 영국의 왕이 된 조지 왕자(Prince George of Wales: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는 훗날 에드워드3세가 된 앨버트 왕자(Prince Albert of Wales)와 함께 대영제국 해군함정인 ‘HMS 바칸트(Bacchante)’의 갑판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다. 이들 두 왕자와 함께 3년에 걸친 대항해에 동참한 왕실 개인 교사 달턴(Dalton)은 다음과 같이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목격담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호주의 멜버른에서 시드니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새벽 4시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배로 생각되는 배가 우리 배의 앞쪽을 지나쳐갔다. 유령선에서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붉은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배와는 200야드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유령선의 돛과 마스트가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 배의 망루에 있던 파수병도 이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우리는 담당 수병에게 어서 선수(船首) 갑판으로 가서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수병이 뛰어가 보았으나 유령선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침 10시 45분경, 갑판에 있던 수병 13명이 유령선을 다시 보았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이 뱃머리의 마스트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네덜란드인은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산산조각이 되었다.”라는 기록이었다.
망루의 파수병이 그 배를 본 것은 불행이었다. 얼마 후 그 병사는 같은 지역을 항해하던 중 아무 이유도 없이 급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갑판 장교였던 조지 5세는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배를 보았는데도 저주에서 무사했다.
다만, 함께 승선해 있던 앨버트 왕자는 에드워드 3세가 되었으나 유령선의 저주 때문이었는지 심프슨 부인 때문에 왕관을 버리는 운명을 겪는다.
조지 5세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1826년 영국의 에드워드 피츠발(Edward Fitzball)이라는 사람이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이란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 연극으로 공연했다. 연극에서는 저주를 받은 네덜란드인이 그와 운명을 함께할 여인을 찾기 위해 100년에 한 번씩 육지에 오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되어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도 7년마다 한 번씩 육지에 오를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 후 1839년에는 프레데릭 마리아트(Frederick Marryat)라는 사람이 ‘유령선(The Phantom Ship)’이라는 소설을 출간하여 네덜란드인에 관한 얘기를 썼고 네덜란드의 뢰머(A.H.C Roemer)라는 목사도 ‘방랑하는 배(He Vligend Schip)’라는 책에서 저주받은 네덜란드인 선장에 대한 스토리를 소개한다.
1951년에는 헐리우드의 MGM사가 ‘판도라와 방랑하는 네덜란드인(Pandora and the Flying Dutchman)’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는데 에바 가드너와 제임스 메이슨이 주연한 영화였다.
최근에는 2006에 ‘카리브의 해적’ 시리즈가 만들어졌는데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에피소드가 채택되었다. 이에 따르면 네덜란드인의 배에 탄 선원들은 육지를 잊고 점점 해양인간으로 변형되는 저주를 받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네덜란드인 선장은 데이비 존스(Davy Jones)로 바다의 여신 칼립소(Calypso)와 사랑에 빠진다.
칼립소는 존스 선장에게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을 내세(來世)로 데려다주는 책임을 맡기는데 10년 동안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다가 칼립소 여신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숨어버리자 화가 나서 죽은 사람들을 큰 상자에 넣어 가두어 버린다. 결국, 존스 선장은 죽은 사람들을 내세로 운반하는 일을 집어치우고 해적 중의 해적이 되는데 그는 항해하는 배들을 보는 대로 침몰시켜 버린다. 그리고는 침몰하는 배의 죽은 사람들, 또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백 년 동안이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화가 난 칼립소 여신은 존스 선장을 저주하여 ‘최후의 심판’ 날까지 항구에 돌아가지 못하고 험난한 대양(大洋)을 정처 없이 떠돌도록 저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