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강 백화점-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11.24. 월
백화점
민문자
지금부터 백화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백화점은 여러 가지 상품을 부문별로 나누어 진열ㆍ판매하는 대규모의 현대식 종합 소매점을 말합니다. ‘백화점’ 하면 우선 고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물건이 좋은 만큼 값비싼 물건만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최고급 물건을 파는 아름답고 화려한 대규모 상점이란 생각이 우선 나지요. 백화점은 가구와 생활용품에서부터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과 같이 모든 산업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이삼십 년 전까지는 물건을 속지 않으려면 값을 좀 더 주더라도 백화점을 이용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상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백화점에 가서 눈요기만 하고 일반상가에 가거나 재래시장에 가서 같거나 비슷한 물건을 깎아가며 싸게 사들이고, 정찰제인 백화점은 부자들만 이용한다는 고정관념들이 있었지요.
대부분 백화점은 우리나라 경제를 주름잡는 재벌들이 경영하고 있습니다. 돈벌이에 귀신을 능가하는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더 쾌적하고 편리하고 더 좋은 시설로 손님을 맞이합니다.
문화와 산업의 발달에 따라 생활의 여유를 누리는 대중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서 대부분 백화점이 문화센터와 찻집 각종 맛집, 찻집, 카페 등이 들어선 식당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은 물건 구매뿐만 아니라 공부도 하고 만남의 장소로도 많이 이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계절마다 세일판매도 자주 해서 철 지난 고급품을 헐값에 사고 싶은 가난뱅이나 부자나 백화점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백화점을 이용한 것은 결혼식을 위해서 미도파백화점에서 웨딩드레스를 빌려 입은 것입니다. 그때 그 가격이 얼마나 값이 비쌌던지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뿐인 결혼식에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백화점은 비싼 곳, 돈이 넉넉해야 가는 곳이란 생각이 저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 후 정작 생활에서는 백화점을 이용하는 기회가 적었습니다. 다년간 시 공부를 하느라 문화센터를 드나들고 가끔 반액세일 하는 옷 몇 벌을 사 입은 정도였습니다.
다시 큰마음 먹고 백화점을 찾은 것은 사위를 맞이할 때 시계와 반지를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큰돈을 쓸 때는 역시 백화점이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문화센터에서 강의하시던 스승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백화점 갈 일이 없어졌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우리나라 모든 부문에 기술과 유통의 발달로 좋은 상품을 동네 시장에서도 손쉽게 사거나 택배로 집안에서 편안하게 사들여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 태어나 생활하고 있는 분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신이 선택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백화점이나 시장이나 얼마나 좋은 옷가지며 음식이며 과일 등 먹거리가 많이 널려 있습니까. 올해는 과일도 풍년이 들어 더욱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돈이 없어도 카드 한 장만 가지고 가도 반겨줄 백화점입니다.
백화점은 가진 돈이 적어서, 괜스레 주눅이 들던 곳, 눈요기만 하고 시장 골목골목을 헤매던, 마음이 가난하던 때를 뒤돌아보게 합니다. 지금은 마음이 부자가 되었나 봅니다. 필요할 때면 언제나 갈 수 있는 곳, 좋은 만남을 위한 장소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백화점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규원 약력
본명은 규옥(圭沃). 시인, 교수.
생몰: 1941년~2007년.
출생지: 경남 밀양시.
데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학력 : 부산사범학교. 동아대학교 법학.
1971~79년 태평양화학 홍보실.
1982년부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물증 / 오규원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湖)에 산다는
폐어(肺魚)는 학명이 프로톱테루스 에티오피쿠스
그들은 폐를 몸에 지니고도
3억만 년 동안 양서류류 진화하지 않고
살고 있다 네 발 대신
가느다란 지느러미를 질질 끌며
물이 있으면 아가미로 숨쉬고
물이 마르면 폐로 숨을 쉬며
고생대(古生代) 말기부터 오늘까지 살아
어느 날 우리 나라의 수족관에
그 모습을 불쑥 드러냈다
뻘 속에서 4년쯤 너끈히 살아 견딘다는
프로톱테루스 에티오피쿠스여 뻘 속에서
수십 년 견디는 우리는
그렇다면 30억만 년쯤 진화하지 않겠구나
깨끗하게 썩지도 못하겠구나
한잎의 여자
한잎의 여자 1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잎의 영혼
그 한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 듯한 그 한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가진 여자
눈물같은 여자 슬픔같은 여자
병신같은 여자 시집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잎의 여자 2 - 오규원
나는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 입는 여자
남대문 시장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여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원에 사는 여자
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여자
라면이 먹고 싶다는 여자
꿀빵이 먹고 싶다는 여자
한달에 한두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손발이 찬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
추운날엔 팬티 스타킹을 신는 여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여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여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 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
한잎의 여자 3 - 오규원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 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같은 여자, 그레뉼같은 여자
모카골드 같은 여자
창 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 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여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여자
봉투같은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잎 클로버 같은 여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개이기도 한 여자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 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여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여자
바람에는 눕는 여자
누우면 돌처럼 깜깜한 여자
창 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 서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
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여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 보여 주지 않는 여자
앉으면 앉은, 서먼 선 여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 했네
물푸레 나무 한잎처럼 쬐그만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
개봉동과 장미 / 오규원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