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삿된 견해를 다스림
제85강 모든 법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다스린다
지난 시간에 ‘삿된 견해를 다스린다’는 부분에서
다섯 종류로 나눠서 설명을 했습니다.
결론적인 얘기를 한자면,
정말 내 몸 안에 ‘나’라고 하는 무엇인가 있어서 보고 듣고 행동한다면
사실은 중풍 걸린 사람도 완치가 돼야 되거든요.
그렇지만 그렇게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있지만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본문 292p
‘모든 법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다스린다', 법아견(法我見)인데
이것을 공부하겠습니다.
법아견(法我見)은
객관적인 것[法], 내 밖에 있는 모든 존재에
실체[我]가 있다고 보는 견해[見]입니다.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되면 의심이 생깁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관(觀)을 통해서 들어가야 되는데,
‘내’라든지 내 밖에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수행해 간다면
그것은 수행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법아견(法我見) 같은 게 있으면
‘저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생기죠.
그러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봅시다.
(논 - 60)
法我見者란 依二乘鈍根故로 如來 但爲說人無我하니
以說不究竟으로 見有五陰生滅之法하고 怖畏生死하여 妄取涅槃이니라.
‘모든 법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란 무엇인가.
이승의 아둔한 근기에 기대기에 여래께서는 다만
“변하지 않는 하나의 주재자로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말한 내용이 가장 뛰어난 법이 아니기에
이승은 오음에 생멸이 있다고 보고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여 헛되이 열반을 취한다. |
오음(五陰)이라는 것은 오온(五蘊)을 얘기합니다.
옛날 번역에는 오음이지만
요즘 번역에서는 오온입니다.
오온은 다섯 개[五]가 쌓여 있다[蘊]는 거죠.
다섯 개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얘기합니다.
색(色)은 물질을 얘기하기 때문에 우리 개인으로 보면 몸이고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 삼라만상을 얘기하는 겁니다.
수(受)는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감수작용입니다.
상(想)은, 받아들이면 대상의 이미지가 생기는데
마음에 상이 생긴다 해서 표상작용이라고 하고,
또는 상을 취한다 해서 취상작용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행(行)은 의지작용이기 때문에 항상 선악의 생각을 동반하고,
식(識)은 선악을 판단하는 판단작용입니다.
그래서 네 개[受, 想, 行, 識]는 마음을 얘기하고,
색(色)은 몸을 얘기할 때는 이 두 개[몸, 마음]를 합해서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색은 온 우주 삼라만상 물질계를 포함을 하는데,
그렇게 보면 오온 자체가 우주 전체입니다.
그런데 이 오온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알아버리면,
생사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영원하지 않으니까 불안해지는 겁니다.
영원한 것은 생겼다 사라졌다가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인아견(人我見)이라는 것은 실체를 얘기하는데,
적어도 실체가 있으려면 변하지 말아야 되고[獨立自存],
또 하나는 관계를 떠나야 되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온을 살펴보니까
육체라는 것도 끝없이 변하고
정신작용도 매순간 찰라찰라 변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생각을 갖는가 하면,
불생불멸의 열반을 구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것도
오온이 두려우니까 이것을 빨리 벗어버리고
영원한 열반을 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그 뒤 배경에는 ‘내’라고 하는 것이 상정해 있다는 거죠.
‘내’라고 하는 생각을 갖고는 있지만
육체는 변하기 때문에 육체를 ‘내’라고 할 수도 없고,
정신작용도 매순간 찰라찰라 변하기 때문에
실체나 자아를 찾을 수가 없는 거죠.
‘내’가 있어야 불안에서 벗어나는데
끝없이 변하는 몸을 ‘내’라고 하니 불안하고
매순간 변하는 정신을 ‘내’라고 하니 불안한 거죠.
그러니까 불생불멸을 구하는 거예요.
이 불생불멸을 구한다고 하는 것은
자아관념에서 비롯됐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고집을 어떻게 떠나야 되느냐 하는 거예요.
철저하게 ‘내’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
그때서야 불안요소가 없어집니다.
제가 지난시간에 정신병 치료를 하는데 있어서
무아(無我), 자아가 없다는 것을 내세워서 정신병 치료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보통 정신병 치료하는데 자아강화법을 쓰는데
반대로 자아라는 것이 불안의 요인이라는 거죠.
그래서 자아에서 벗어나므로 해서 정신병에서 해방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무아정신치료학회가 외국에는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개체에서 자아가 없다는 얘기지
관계 속에서 ‘내’가 없다거나 ‘너’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자아라든지 신이라든지
이것은 모든 존재의 본성이 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신도 아는 성질이 있고 자아도 아는 성질이 있는데
안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거든요.
그런 마음의 하나의 모습으로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니까
자아도 없고, 신도 없고, 실체도 없고, 비어 있는 겁니다.
비어 있으면서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 반응을 하는 거죠.
그런데 외부의 영향을 받는 그 외부도
전부다 마음의 작용이라는 겁니다.
이게 아주 어려운 얘기죠.
(”)
云何對治오.
以五陰法自性이 不生이어 則無有滅이니 本來涅槃故이니라.
이것을 어떻게 상대하여 다스릴 것인가.
오음의 법에 자기 성품은 생겨나지 않으므로 없앨 것이 없으니,
본디 열반이기 때문이다. |
오온이라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알고 보니까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어요.
‘내’라고 하는 견해를 갖고,
색(色)을 살펴보니까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무아(無我)고,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살펴보니 무아더라는 거죠.
그래서 ‘내’라는 것을 찾아봐도 없으니까,
원래 생겨난 적도 없는데 사라질 게 뭐 있겠느냐는 거죠.
그렇게 되면 두려움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래서 원래 없앨 것이 없다면 그대로 열반이다,
오온 자체가 그대로 열반이더라는 거죠.
그렇게 되려면 수행을 해서 꿰뚫어보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것을 알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오온은 텅 비어 있고
자아도 없고 실체도 없다는 성인의 말씀을 배우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게 수행입니다.
지난 시간에 진여라는 것은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고,
거기에는 실체도 없고 자아도 없다고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러면 혹시 진여가 없어진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허공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지만
허공 자체는 부정할 수 없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진여라는 것은 텅 비어있지만
진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오음이라고하는 것도 모양과 색깔이 있고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고 갖가지 선악을 일으키지만
그 자체를 따지고 보면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렇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이 또 형상을 이루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텅 빈 그 자체가 열반입니다.
색이라는 물질이 비어 있고 수상행식이라는 정신작용이 비어 있으니까
불안해서 열반이라는 것을 구하려 했지,
저 자체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고
정신작용 자체가 무아라는 것을 알아버리면
괜스레 ‘내’라고 생각했던 자체가 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따로 열반을 구할 것이 없는 거죠.
그래서 오온 자체가 열반이고,
열반이 생긴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는 불생불멸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것을 따로 밖에서 구할 게 아니더라 이거죠.
괜스레 몸과 마음이 ‘내’라고 생각하고,
그런 몸과 마음이 바뀌어가서 불안했지만
그 불안한 마음도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는 거죠.
텅 비어 있어서 그 자체가 열반이더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일상생활의 희로애락 속에 끄달리고 살아가지만
물질의 본질, 마음의 본질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면
욕심을 내다가도 욕심에는 실체도 없고 자아도 없음을 자각하면서 욕심이 사라져 버리고,
성을 내다가도 성은 실체가 없음을 자각하게 되면 성이 내려가 버리게 되죠.
이렇게 되면 탁한 이 세상 속에 살면서도 청정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이런 것을 ‘진흙 속에 핀 연꽃’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하게 되면 연꽃 한 송이를 피우듯이
그런 마음자세로 이 세상 살아가면
온갖 시류에 휩쓸려도 물이 들지 않는,
시정잡배하고 같이 살면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자비심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죠.
그래서 날마다 좋은날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상대하여 다스릴 것인가.’ 내용이 그겁니다.
그리고 ‘오음의 법에 자기 성품은 생겨나지 않으므로 없앨 것이 없으니,
본디 열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엇인가 실체가 있다고 하는 고집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죠.
대상을 절대화 시키는 마음[法我見]과
자기를 절대화 시키는 마음[人我見]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런 견해가 사라져 버리면 날마다 편안한 마음이죠.
그 다음에 ‘집착을 여읜 사실을 모두 드러냄’, 이랬습니다.
(논 - 61)
復次 究竟離妄執者란 當知이니
染法과 淨法이 皆悉相待로서 無有自相可說이라.
또 마침내 헛된 집착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염된 법과 깨끗한 법은 서로 맞서 기댐으로 있게 되는 것으로서
말할 만한 근본성품이 없다는 사실을 으레 아는 것이다. |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더럽다고 하는 것은 항상 깨끗함을 전제로 해서 더럽다고 하는 거고,
깨끗하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전제로 해서 깨끗하다고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깨끗함의 본질이든 더러움의 본질이든
원래 실체도 없고 자아도 없음을 꿰뚫어 본다면,
무엇을 깨끗하다고 얘기하고
무엇을 더럽다고 얘기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깨끗하다, 더럽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상대적인 개념 속에 살면,
너는 낮고 나는 높고, 너는 더럽고 나는 깨끗하고,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고,
차별하는 마음에 의해서 나중에는 소외감이 생기고,
소외가 생기니까 투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해서 힘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를 꿰뚫어 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죠.
우리는 실제 훈련해서 이런 고집을 꺾어 버리고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여기 컵을 보면,
모양과 색깔만 보이지 본질이 비어 있다는 게 안 보이지 않습니까.
육안으로 보이는 이것을 ‘컵’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 사는데,
만일에 여러분들이 심안이 열려서 꿰뚫어보는 힘이 있어서
시선이 이 컵을 차고 나가면서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체득을 해버리면,
그 다음 부터는 컵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려요.
이게 이쁘든 밉든 깨끗하든 더럽든 아름답든 추하든 원래 비어 있는 거예요.
결국 더럽다 깨끗하다, 아름답다 추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그렇게 감정을 넣어서 그렇게 생각을 할 뿐이지
본질은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면 사물에 머무는 마음이 점점점 줄어들고,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내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근본성품이 없다는 사실을 으레 아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
是故로 一切法이 從本已來 非色非心이며
非智非識이며 非有非無이어 畢竟에 不可說相이니라.
이 때문에 모든 법은 본디부터 물질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알음알이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어서
끝내 말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
마음이다, 지혜다, 이런 말은 전부다 상대개념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거죠.
말을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조사어록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스승이 아끼는 찻잔이 있는데
제자가 청소를 하다가 찻잔을 떨어뜨려서 깨버렸어요.
그때 스승이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깨진 찻잔을 얼른 뒤로 숨겼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이 제자가 존재의 본질을 꿰뚫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스승님 제가 찻잔을 깨서 죄송합니다.
더 좋은 것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사과를 했겠죠.
그렇지만 이 제자는 찻잔을 뒤로 숨기고 하는 얘기가,
“사부님 사람은 영원히 삽니까?” 이렇게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이,
“지수화풍 사대가 화합에 의해서 몸을 구성하고
몸에 기운에 의해서 마음이 형성 되어서 이렇게 인간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대가 흩어지면 몸도 소멸하고,
몸이 소멸하면 사대 기운에 의해서 이루어진 마음도 소멸하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이 마음이 부모의 연을 만나서 육신을 가지고 또 태어나고,
이렇게 윤회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
텅 비어 있는 진실을 알아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가 깨진 찻잔을 스승님께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찻잔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이게 무엇을 얘기하는가 하면,
벌써 찻잔은 실체가 없음을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는 겁니다.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는 거죠.
자기 몸이 원래 텅 빈 줄 알고
마음이라는 게 원래 텅 빈 줄 안다면
이런 물질계도 텅 빈 줄 아는 거예요.
그러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거죠.
본연의 마음자리 그 세계는
높고 낮음이 없고, 가고 옴이 없고, 늘거나 줌이 없고,
깨끗하거나 더러움이 없이 텅 비어 있는 거예요.
그 자리는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마음, 지혜, 진여, 여래장 등등
갖가지 이름을 부를 뿐이지 본연의 자리에는 그게 없는 거죠.
그래서 선사들은 그것을 일심이니 진여니 마음이라고 안하고
화두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화두(話頭)라는 것은 말 이전 생각 이전,
말과 생각을 떠난 그 자리, 이렇게 지시하는 말입니다.
개념화 시켜서 결정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질이 텅 비어 있음을 알면
자기 자신의 몸을 절대화 시켜서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든지,
바깥의 대상을 절대화 시켜서 대상에 무엇인가 있다든지 하는
이런 생각을 안 갖게 된다는 거죠.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
而有言說者란 當知하라.
如來善巧方便으로 假以言說 引導衆生이라.
其旨趣者는 皆爲離念하여 歸於眞如니라.
以念一切法하여 令心生滅케 하면 不入實智故이니라.
그런데도 말이 있게 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으레 알아야 한다.
여래께서는 훌륭한 방편으로 임시 말로써 중생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 취지는 모두 헛된 생각을 떠나 진여에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모든 법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이 생멸하게 되면
참된 지혜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일심이다, 진여다 이렇게 말을 했고
진여에 돌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말을 했을 뿐이다,
말하는 것은 방편이다,
결국 참된 지혜에 들어가기 위해서 언어가 필요한 것이지
다른 것은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시간이 다 됐는데요,
‘삿된 고집을 다스린다’, 이것을 우리가 공부를 다 했습니다.
삿된 집착을 다스린다는 것인데,
인아견(人我見)과 법아견(法我見)이죠.
다음시간에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이라 해서
발심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삿된 견해를 타파하고
두 번째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만이 수행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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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날마다 행복하소서..정혜신님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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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머무는 곳마다 정토이옵고
서 있는 곳마다 주인되소서...윤은아빠님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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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가르침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고운인연에 두손모읍니다 광혜의하루님
행복한 부처님되소서...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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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스님께서 적어주신 글이
수본진심(守本眞心)이 제일정진(第一精進)이라 말씀입니다
본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 정진이라는 말씀이지요
해가 갈수록 이 말씀이 다가옵니다
진흙 속에 핀 연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 머물러도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늘 청안하소서..나무아미타불 ()
참마음님 진심이 깨달음 입니다. 깨어 있는 마음(알아차림) 이 의식적으로 면면이 이어지면 깨달음이지요 그러나 중생은 습이 있어 잠잘 때는 의식도 자고 - 대상을 보면 잡생각(번뇌)을 이르키는 것을 찰나의 속도로 이루어 지니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덧 죽음이 코 앞에 와 있지요 우리 유교에도 정신일도 하사불성 이라는 말 이 있듲이 의식(알아차림)을 잠시도 노치지 않고 살면 이것이 최상의 삶이라오 - 성불 하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나무아미타불_()_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_()_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중요하고, 참고가 되는 말씀 너무.....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大乘起信論 87 - 智雲스님 講義 - 11. 삿된 見解를 다스림 - 第85講 모든 法에 實體가 있다는 見解를 다스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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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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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허당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제가 btn 홈페이지에 2004년~2006년 대승기신론을 지운스님 동영상으로 강의할때 공부했었습니다. 그때 공부한 것이 가장행복한 공부 카페에서 그대로 문자화에 그 노고에 감사드리며, 양해를 얻어 모셔(아비라불교 밴드)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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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