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日本)
5. 고도(古都) 나라(奈良)의 풍광(風光)
도다이지(東大寺) 사슴 / 일본 최대의 목조건물 도다이지 대웅전
나라(奈良)는 4세기, 지방의 호족들이 힘을 합쳐 야마토(大和) 정권을 수립하고 최초로 수도로 삼은 곳으로 중국의 장안(長安)을 본떠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문예를 부흥시켜 국가의 기틀을 잡았다는데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는 천자문을 가져다 가르치고, 호오류사(法隆寺)를 지은 후 신라의 불교 화가인 담징(曇徵)을 모셔와 벽화를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또 백제의 아좌(阿佐)태자를 모셔다가는 쇼도쿠(聖德) 태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인 2만 명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아스카(飛鳥)문화를 꽃피웠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도다이지(東大寺)로 절 입구에 들어서자 사슴들이 나무 밑에 누워있기도 하고 길까지 나와 관광객들을 졸졸 따라다녀서 신기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져도 그저 가만히 있다.
엄청나게 넓은 경내 가는 곳마다 있으니 수백 마리는 되겠다. 관광객들이 먹이(鹿せんべい)를 주어 따라다니는데 길옆에는 먹이 봉지를 파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대웅전 기둥구멍 / 동대사 사슴 / 검은 목조불상
목조건물로는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도다이지(東大寺) 본전(本殿) 건물은 물론이려니와 절 입구의 산문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모신 목조 부처님상은 검은색인데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다.
부처님 왼편 뒤쪽의 기둥 아래쪽에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부처님의 콧구멍이라고도 하고 손가락 구멍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면 무병장수한다나... 날씬한 관광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빠져나오는데 기둥이 얼마나 굵은지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와 발이 안 보일 정도다.
카스카타이샤(春日大寺) / 카스카타이샤의 석등(石燈)
산자락에 위치한 가스카타이샤(春日大社)는 큰 규모의 사당(祠堂)으로, 서기 768년에 창건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여기는 사람들의 염원을 비는 석등이 수도 없이 들어서 있는데 기부한 사람들의 액수와 이름을 새긴 대리석들이 수도 없이 길옆에 서 있다. 옛날의 오백 엔짜리부터 요즈음의 천만 엔짜리까지.... 이곳에는 석등(石燈)이 1.800여 개, 금속등(金屬燈)이 1.000여 개 있다고 한다.
흥복사 / 흥복사 오층탑 / 국보관의 아수라상
높이 50m의 고주노토(五重の塔)로 유명한 고후쿠지(興福寺), 산주노토(三重の塔)도 있고 2만여 점의 중요 문화재와 공예품을 보유하고 있는 고쿠호칸(國寶館)도 유명하다.
오후에 이카루카(斑鳩)지역의 료센지(靈山寺)에서부터 산길을 따라 토묘지(東明寺), 야타데라(矢田寺), 마쓰노오데라(松尾寺)를 거쳐 호오류지(法隆寺)에 이르는 5km정도의 등산을 할 예정으로 기차와 택시를 타고 영산사(靈山寺)까지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하는 수 없이 1km정도 떨어진 암자까지 우산을 쓰고 갔다가는 돌아와 절을 둘러보았는데 등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료센지(靈山寺)는 본존(本尊)이 약사여래(藥師如來)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일본 대본산으로 AD 8세기, 일본 승려 교기(行基)와 인도 승려 보리산나(菩提僊那)가 창립하였다고 한다. 황금과 백금으로 법당을 지은 황금전(黃金殿), 백금전(白金殿)이 있고 또 경내에 온천탕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불교사원 료센지(靈山寺) / 료센지 황금전(黃金殿)
절 앞에서 산 밑을 빙 돌아 호오류지(法隆寺)까지 버스나 기차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없어서 당황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학생(고등학생)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버스노선까지 보아주며 자세히 알려주는데 결국 버스로 시내까지 다시 가야 된다고... 또 버스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법륭사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자기는 잘 모른다며 엄마한테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물어보면서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호오류지(法隆寺) / 호오류지(法隆寺) 대법당 건물
아좌태자와 담징의 혼이 서려있는 호오류지(法隆寺)는 아스카(飛鳥)시대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호오류지(法隆寺)는 일본 불교를 일으킨 쇼도쿠태자(聖德太子)에 의해 서기 670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실로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셈이다. 이 절은 일본 고유수종인 히노키(檜:측백종류)로 지었다고 하는데 히노키는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奈良)는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백제 영향인지...
길거리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냥하였다. 우리 핏줄이 섞여서 그런가 가깝게만 느껴진다. 교토(京都)와 나라(奈良)는 외국 관광객이 무척 많다.
길옆에 앉아 쉬는데 어떤 동양인이 느닷없이 교토어원(御苑)이 어디냐고 묻는다. 마침 우리가 막 다녀오던 길이라 ‘이 담벼락을 따라 쭉 가다가....’ 가르쳐주면서 보니 서양사람 두 명을 안내하는 모양이다.
가르쳐준 후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일본인이란다. 세상에......
웃으면서 ‘나는 한국인이요~~~.’ 했더니 계면쩍은 웃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한국 사람이 일본인 가이드한테 길을 알려준 셈이다.
<6> 대도시 오사카(大阪)
오사카성 / 웅장한 오사카성 천수각
오사카(大阪)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일본 제2의 도시로, 항구(港口)도시이자 운하(運河)의 도시이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카페리가 이곳까지 직접 오는 것도 있는데 열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후쿠오카에서 부산행 오후 3시 30분 페리가 예약이 되어있어 서둘러 오사카조(大阪城)만 보기로 하였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 하카다(博多)까지 신칸센 히카리(光)호로 2시간 40분정도 걸린다.
나고야(名古屋)성, 구마모토(熊本)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불리는 오사카(大阪)성은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싸인 성은 높은 언덕위에 늠름하게 우뚝 솟아있다. 오사카 JR역에서 성으로, 들어가려면 해자에 걸린 돌다리를 건너 구불구불 돌이 깔린 언덕길을 상당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성벽은 어마어마하게 큰 돌들로 쌓았는데 일정하지 않은 모양으로 깎아 교묘하게 석축을 쌓아 올렸다.
페루 잉카인들 석축기술의 정교함에서는 못 미치지만 그 규모와 크기에서는 단연 앞서는 것 같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하여 16세기에 건축되었다는 이 성은 태평양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는데 그 수려한 외모와 일본건물 특유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모습은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다. 오중탑(五重の塔) 구조의 천수각(天守閣)은 오래된 목조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복원하면서 많은 부분이 철 구조물로 바뀌었고, 맨 꼭대기까지는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나선형의 계단도 있어서 걸어 오르내릴 수도 있다.
각층 별로 많은 유물과 사진이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엘리베이터로 맨 위까지 올랐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하였다. 일본의 성(城)이나 절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일본인들을 축소 지향형(작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옛날의 일본인들은 지금과 달리 무엇이든 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옛 일본인들은 이런 거대한 건축물들(거대한 석축 성곽과 해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을까.....
시간이 촉박하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역으로 와서는 도시 환상선(都市環狀線)을 타고 오사카 역까지 와서 다시 신오사카 역까지 가야 후쿠오카행 신간센을 탈 수 있다.
구경에 정신이 팔린 탓으로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었는데 신칸센에 오르고 채 1분도 안되어 출발한다.
이 기차를 놓쳤으면 어찌할 뻔 했을꼬...
<8박 9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며>
우리의 이번 여행은 뒤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폭우가 내려 계획하였던 도쿄의 후지산(富士山) 등산과 큐슈의 아소산(阿蘇山) 등산을 못 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보면,
물가가 너무 비싸다. 한 끼 식사가 우리 돈으로 8천~1만 원 정도인데 양이 너무 적고 반찬도 없어 평소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든다. 숙박비도 너무 비싸서 젊은이들은 부담스럽겠다.
도쿄에는 한국인이 하는 민박도 있는 모양인데 여럿이 비좁게 자도 1인당 4만 원은 주어야 한다.
호텔도 그렇지만 민박도 사진에서 보니 돌아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아 가급적 JR 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버스 기본요금이 2.500원 정도, 택시 기본료가 8.000원 정도였다. 기차도 지역노선(Local)은 물론이려니와 신칸센은 엄청나게 비싸다.
8박 9일간의 여행경비가 1인당 대충 16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오히려 패키지로 여행하는 것이 더 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수한다면....
일본의 고성(古城)에서는 말을 탄 뿔 달린 괴상한 투구의 쇼군(將軍)과 깃발을 등에 꽂고 달려가는 일본의 옛 군사들 모습, 성을 공격하고 지키는 치열한 전투장면이 연상되었고, 또 어둑한 달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닌자(忍者)들이 담벼락 위로 소리 없이 달려가는 모습도 연상되어 즐거웠다. 어느 곳에서나 줄서는 일본인들, 미소 띤 얼굴로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말하고 관광객(외국인)들에게는 자기 일을 팽개치고 직접 나서서 길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가르쳐 주던 일본인들, 말끝마다 ‘아리가도, 스미마셍,...’
몇 년 전이던가 일본에서 ‘오아시스(おあしす) 운동’ 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오하요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안녕하세요?)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감사합니다.)
-시쯔레이시마스(しつれいします。/실례합니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나라의 ‘아나바다 운동’ 이나 ‘고미안 운동’ 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나바다 운동은 IMF 사태가 터지던 1998년에 우리나라에서 전개한 운동으로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는 운동이었고 고미안 운동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캠페인이었다.
일본인들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철저한 청결의식 등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국제 매너라 생각되었다. 아무튼, 일본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선진국이라는 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