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경요집 제20권
30. 잡요부(雜要部)
[여기에 열세 개의 연(緣)이 있음]
30.1. 술의연(述意緣)
대체로 신령한 진리는 소리가 없으므로 언사(言詞)로 인하여 뭇을 묘사하고, 언사는 흔적이 없으므로 문자를 연하여 음성을 원만하게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문자란 말의 올가미[蹄]가 되고 말은 이치의 통발[筌]이 된다. 음성과 뜻은 부합(符合)해야 하므로 어느 하나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나니, 그런 까닭에 문자를 응용함으로써 우주(宇宙)도 두루 포함할 수 있다. 비록 자취가 번잡한 것이 문자[翰墨]라 하더라도 진리를 정신에 계합하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경론(經論)이 호박(浩愽)하므로 갖추어 기록하여 두루 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록이 번거롭거나 단순하게 전하기도 하여 사건에 있어서는 자세하거나 간략함이 있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통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도하여 후학(後學)들을 열어 보이고, 가르침의 인연 자취를 시설(施設)하여 환연(煥然)하게 다 갖추어 놓았다.
세속 일의 근원을 가르치려면 답답한 일이 있겠지만 조장(條章)을 찾고 검토하여 그 추요(樞要)만을 계촬(計撮)하여 한데 모아 한묵(輪墨)으로 엮어서 전펀(前篇)에 갖추어 열거하였으므로 그 밖에 잡무(雜務)에 대한 것들을 끌어 모아 세속을 제도하고자 하되 현재에 행해야만 될 일들만을 다음에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혼미하고 어두운 것을 점점 제거하고 법의 등불이 멀리까지 비추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30.2. 원고연(怨苦緣)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의 긴 밤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모르고 있다.
여러 비구들아, 너희들의 생각엔 어떠하냐?
만약 이 대지(大地)의 모든 풀과 나무를 사지(四指)의 양만큼 잘라 산가지[籌]로 만들어서 너희들이 긴 세월 통 안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의지했던 부모의 수를 헤아린다 하더라도 그 모든 부모의 수효는 그래도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여러 비구들아,
이와 같이 시작도 없는 나고 죽음의 긴 밤을 수레바퀴 돌 듯하기 때문에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마신 그 부모의 젖은 항하강 물이나 사방 큰 바다의 물보다 더 많다.
왜냐 하면 너희들이 긴 세월 동안 혹은 코끼리로 태어나 먹은 그 어미의 젖도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혹은 낙타ㆍ말ㆍ소ㆍ나귀 등 모든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서 마신 그 어미의 젖도 그 수효가 한량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긴긴 세월 동안 무덤 사이에 버려져 흘린 그 고름과 피도 또한 이와 같으며,
혹은 지옥ㆍ축생ㆍ아귀 동에 떨어져 수혈(隨血)을 흘린 것만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긴긴 세월 내내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흘린 봄의 피는 매우 많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으니, 저 항하강 물이나 사방 큰 바다의 물보다 더 많느니라.
너희들이 긴 세월 동안 일찍이 코끼리로 태어나 혹은 귀ㆍ코ㆍ머리ㆍ꼬리ㆍ네 발이 잘려 흘린 그 피가 한량없이 많기도 하며,
혹은 말ㆍ낙타ㆍ나귀ㆍ소 등, 모든 짐승들의 몸을 받고서 귀ㆍ코ㆍ머리ㆍ발과 사지가 잘려져 그 흘린 피가 한량없이 많고,
혹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무덤 속에 버려져서 흘러 나온 고름과 피의 그 수량이 한량없이 많기도 하다.
혹은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면서 붐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는 동안 흘린 피도 또한 이와 같다.
혹은 긴 세월 동안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부모ㆍ형제ㆍ자매ㆍ육친(六親)ㆍ선지식 동을 잃기도 하였고,
혹은 돈과 재산을 잃어 그 때문에 흘린 눈물만도 너무나 많고 한량없어서 사방 큰 바다의 물보다도 더 많았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든 중생들이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온 것을 보거든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라.
〈우리도 긴긴 세월 동안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도 일찍이 이런 쾌락을 누려왔고 떠돌아 다녔던 세계만 해도 한량없이 많다.〉
혹 여러 중생들이 온갖 고뇌를 당하는 것을 보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우리들도 옛날에 긴긴 세월 동안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지금까지 일찍이 이와 같은 고통을 받았는데, 그 수효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혹 여러 중생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내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도 과거에 틀림없이 살생을 했었기에 상해를 받았고,
또 악지식(惡知識) 때문에 시작도 없는 나고 죽음에서 긴긴 세월 동안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했다.〉
혹 모든 중생들이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과거 세상 어느 때에 우리들도 틀림없이 우리들의 부모ㆍ형제ㆍ처자ㆍ친척ㆍ스승ㆍ친구ㆍ지식(知識) 등을 위하여 저토록 긴긴 세월 동안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무명(無明)에 덮이게 되고 애욕에 목이 얽매였으므로 긴긴 세월 동안 수레바퀴 돌 듯하였으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여러 비구들아, 이와 같은 것을 배워서 정근(精勤)의 방편으로 모든 근본을 끊어 없애 더 자라나게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한 사람이 한 겁(劫) 동안
그 몸의 뼈를 쌓아 모으되
늘 쌓아서 섞어 무너지지 않으면
마치 비부라산(毘富羅山)과 같으리라.
만약 모든 성인의 제자들이
바른 지혜로 참다운 진리를 깨달아서
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을 알면
고통을 여의고 적멸(寂滅)을 증득하리라.
여덟 가지 도적(道跡 : 八正道)을 닦아 익히면
바로 반열반(般涅盤)으로 향하고
궁극에는 칠유(七有)에 이르며
천상과 인간을 오고 가며 태어나리라.
일체 온갖 번뇌[結]다 없애면
구경에는 괴로움의 끝을 알리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긴긴 세월 동안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여 어느 한 곳에도 나지 않았거나 죽지 않았던 이가 없느니라.
이와 같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을 긴긴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여 또한 어느 한 곳에도 부모ㆍ형제ㆍ처자ㆍ권속(眷屬)ㆍ종친(宗親)ㆍ사장(師長) 등이 없었던 곳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큰 비가 내릴 때 빗방울의 거품이 한 번 생겨났다가 한 번 사라지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들도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욕에 그 목이 얽매여 긴긴 세월 동안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넓은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홍수가 질 때 동ㆍ서ㆍ남ㆍ북 어디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사방의 한량없이 많은 국토는 겁(劫)이 이루어지고 겁이 무너지느니라.
또 하늘의 비가 온 천하에 내려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긴긴 세월 동안을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도 괴로움 의 본제를 알지 못한다.
비유하면 지팡이를 공중으로 던졌을 때 혹은 머리가 먼저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꼬리 부분이 먼저 땅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중간 부분이 먼저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그 또한 이와 같아서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긴 세월 동안 수레바퀴 돌 듯하면서 혹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아귀(餓鬼)의 세계에 떨어지기도 하느니라.’”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야마천왕(夜摩天王)이 여러 하늘 대중들에게 중요한 일을 가지고 말하였다.
‘천인(天人)들에게 열여섯 가지 고통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열여섯 가지로서 천인들을 선한 데로 통하게 하여 포섭하는가?
첫째는 중음(中陰)의 고통이요,
둘째는 태 안에 머물러 있는 고통이며,
셋째는 태에서 나오는 고통이요,
넷째는 음식을 갈구하고 바라는 고통이며,
다섯째는 원수와 미운 사람을 만나는 고통이요,
여섯째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이며,
일곱째는 추위와 더위 등의 고통이요,
여덟째는 질병의 고통이며,
아홉째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는 고통이요,
열째는 경영할 일을 추구하는 고통이며,
열한째는 악지식(惡知識)을 친근히 해야 하는 고통이요,
열두째는 처자와 친구, 이웃 사람이 늙어지는 것을 보는 고통이며,
열셋째는 주리고 목마른 고통이요,
열넷째는 남에게 무시당하고 헐뜯김을 당하는 고통이며,
열다섯째는 늙어지는 고통이요,
열여섯째는 죽는 고통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인간 세계의 열여섯 가지 큰 고통이다.
인간 세상에서 목숨을 마칠 때까지 여러 가지 다른 고통은 나고 죽고 하는 가운데 참고 견뎌낼 수 없으므로 작용이 있는 것[有爲]에는 조그만 즐거움도 없다.
온갖 것들은 다 덧없는 것이고 온갖 것들은 다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 때 야마천왕이 게송을 읊었다.
인간 세계 가운데에서
음(陰)에는 다 고통이 있으니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으로 돌아가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다시 태어나게 된다네.
만일 중음에 머물러 있을 적에는
스스로 지은 업(業)으로 고뇌를 받나니
긴긴 세월 동안 먼 길을 가는 괴로움
이러한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똥과 오줌 속에 빠지고
뜨거운 불에 태워지나니
이와 같이 태(胎) 속에 머무르는 괴로움
이루 다 갖추어 말할 수가 없네.
언제나 음식의 맛에 탐착하여
그 마음 속에 늘 그러기를 희망하나니
맛에 대하여 변하는 커다란 괴로움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자그마한 마음 속으로 항상 희망하고
하고자 하는 것 만족할 줄 모르네.
그 때문에 받아야 하는 온갖 괴로움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원수와 미운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큰 불이나 독과 같나니
거기에서 생기는 온갖 고뇌들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은애(恩愛)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중생들 큰 괴로움 일어나고
크게 악한 일 참고 견디기 어렵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추위와 더위의 큰 괴로움과 두려운 일
중생들의 한량없는 갖가지 괴로움과
중생들의 한량없는 갖가지 악한 일들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질병의 괴로움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질병은 사왕(死王)의 사자(使者)가 된다네.
중생들은 누구나 다 이런 고통을 받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다른 사람의 책사(策使)가 되어
그에게는 항상 자재(自在)함이 없네.
중생들은 다 이런 고통을 받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애욕의 독이 중생들을 태우고
늘 추구(追求)하여 큰 고통을 받다가
차례대로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만약 악지식(惡知識)을 가까이하면
온갖 괴로움이 항상 끊어지지 않으리.
언제나 악한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처자들이 쇠모해지는 괴로움을 얻으므로
그런 모습을 보면 커다란 고통이 생기는데
그 고통은 지옥보다도 더 심하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배고프고 목마름에 스스로 제 몸을 태우는 것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과 같아
능히 몸과 마음 다 무너뜨리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천대를 받나니
그들은 곧 친한 이와 이웃 그리고 지식(知識)이라네.
그리하여 근심과 슬픔의 고통이 생기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사람들은 늙어감의 억압을 받게 되어
몸이 여위고 마음과 뜻은 열악해지며
허리는 구부러져 지팡이를 집고서야 다닐 수 있나니
이러한 고통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사람들은 죽음에 붙잡히는 대상이 되어
이 세상에서 다른 세계로 가게 되나니
그래서 이 죽음을 큰 고통이라 하나니
이루 다 펼쳐 말할 수가 없다네.
30.3. 팔고연(八苦緣)
『오왕경(五王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오왕(五王)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다.
‘사람이 태어나 이 세상에 살게 되면 항상 한량없이 많은 온갖 고통이 그 몸을 절박하게 하나니, 내가 이제 대충 그대들을 위하여 간략하게 여덟 가지만 말해 주고자 합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 고통인가?
첫째는 태어나는 괴로움이요,
둘째는 늙어지는 괴로움이며,
셋째는 질병의 괴로움이요,
넷째는 죽음의 괴로움이며,
다섯째는 은애(恩愛)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이요,
여섯째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며,
일곱째는 원수와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괴로움이요,
여덟째는 근심과 슬픔의 괴로움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태어나는 괴로움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이 죽을 때에 그 정신이 어느 갈래의 세계로 나아갈지 알지 못하면 미처 태어날 곳을 얻지 못하여 중음(中陰)의 몸을 받아 가지고 있다가
그로부터 삼칠일(三七日 : 二十一日)이 되는 사이에 부모가 화합하면 곧 그곳으로 가 태(胎)를 받게 됩니다.
첫 칠 일 동안은 마치 짧은 낙(酪)과 같고,
이칠일(二七日 : 十四日)이 되면 마치 팍팍한 낙(酪)처럼 되며,
삼칠일(三七日 : 二十一日)이 되면 마치 금방 엉긴 소(蘇)와 같게 되고,
사칠일(四七日: 二十八日)이 되면 마치 살덩어리처럼 되며,
오칠일(五七日 : 二十五日)이 되면 마치 육포(肉皰)같은 것이 형성되어 교묘하게 부는 바람이 뱃속으로 들어가 그 신체를 불어 여섯 가지 감정이 열리게 됩니다.
어머니 뱃속의 생장(生藏) 아래와 숙장(熟藏) 위에 있을 때에 어머니가 한 그릇의 뜨거운 음식을 먹어 그 신체에 쏟아 부으면 마치 끓는 물 속에 들어간 것 같고, 어머니가 한 잔의 찬물을 마시면 그 또한 찬 얼음이 몸을 끊어내는 것과 같이 차갑습니다.
어머니의 배가 불러질 때에는 신체를 압박하여 그 괴로움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어머니가 굶주렸을 적에는 뱃속이 텅텅 비어 또한 허공에 거꾸로 달려 있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 한량없습니다.
달이 다 차서 장차 태어나려고 할 때에는 그 머리가 산문(産門)을 향하는데, 극심한 고통이 마치 두 돌 틈이나 좁아 터진 산 사이를 뚫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또 태어나려고 할 때에는 어머니는 위험에 빠지고 아버지는 두려워하게 됩니다.
태어나서 풀 위에 떨어질 때에는 그 아이의 신체가 부드럽고 연하여 풀이 그 몸에 닿으면 마치 칼을 밟는 것 같아 홀연히 소리를 잃고 크게 울기만 합니다.
이런 것들이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말하였다.
‘이런 것들은 다 큰 괴로움입니다.’
‘어떤 것을 늙어지는 괴로움이라고 말하는가?
부모가 양육(養育)하여 장년이 되어 어른이 되면 스스로 강건(强健)하다고 하면서 가벼운 짐은 메고 무거운 것은 짊어지고 스스로의 힘을 가늠해 보지도 않고 추위와 더위에 대한 척도까지 잃고 맙니다.
연로해지면 머리가 희어지고 이가 빠지며, 눈으로 보는 것도 어른어른 희미해서 분명치 않으며, 귀로 듣는 것마저 밝게 들을 수 없습니다.
왕성하던 시기가 가고 쇠퇴함이 이르면 피부는 느슨해지고 얼굴에도 쭈굴쭈굴 주름이 지며, 온갖 뼈마디가 다 쑤시고 아프며, 행보(行步)하기조차 괴롭고 고달프며, 앉으나 서나 신음소리만 냅니다.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마음은 괴롭고 의식과 정신이 점점 사라져서 무슨 일이건 곧바로 잊어버리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앉으나 서나 사람의 부축이 필요하니 이것이 바로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모두들 대답하였다.
‘큰 괴로움입니다.’
‘어떤 것을 질병의 괴로움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이란 네 가지 요소[四大]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중 어느 하나의 요소가 고르지 못하면 일백한 가지 질병이 생겨나게 됩니다. 네 가지 요소가 다 고르지 못하면 사백네 가지 질병이 한꺼번에 생겨나게 됩니다.
땅이라는 요소[地大]가 고르지 못하면 온몸이 가라앉고 무거우며,
물이라는 요소[水大]가 고르지 못하면 온몸에 종기가 생기거나 붓고,
불이라는 요소[火大]가 고르지 못하면 온몸이 찌는 듯이 뜨거워지고
바람이라는 요소[風大]가 고르지 못하면 온몸이 구부러지고 뻣뻣해집니다.
그리하여 온갖 뼈마디마다 아파서 겪는 괴로움은 마치 매를 맞는 것 같으며,
네 가지 요소가 나아가고 물러남에 따라서 수족(手足)은 미음대로 되지 못하며,
기력이 허약해지고 모자라서 앉거나 일어설 때 사람의 부축이 필요하게 됩니다.
입이 마르고 입술이 타며, 힘줄이 끊어지고 콧속이 갈라지며, 눈으로는 빛을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며, 부정한 것[不淨 : 大小便]이 줄줄 흘러나오면 몸은 그 위에 눕고 맙니다. 마음은 고뇌를 품고 말은 슬프고 애처로운 말만 합니다.
육친(六親)이 곁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보살피느라 조금도 쉬지 못합니다.
무리 맛난 음식도 입에 넣으면 모두 쓰기만 하니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정말로 그런 것들이 바로 큰 괴로움입니다.’
‘어떤 것을 죽음의 고통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는 사백네 가지 질병이 동시에 다 생겨나서 네 가지 요소는 흩어지려 하고 혼신(魂神)은 불안해집니다.
죽으려고 할 때에는 칼날 같은 바람이 형체를 갈라 어느 곳이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면, 온 집안의 남녀 모두는 그의 좌우(左右)에 앉아서 근심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골수에 사무치는 아픔을 스스로 견디지 못해 합니다.
죽은 사람이 떠나갈 때에는 바람의 요소가 떠나가서 호흡의 기운이 끊어지고 불의 요소가 사라져서 몸이 차가워지는데 바람의 요소가 먼저 가고 불의 요소가 다음에 갑니다.
영혼이 떠나버리면 신체는 뻣뻣해지면서 아무것도 다시는 알지 못합니다.
열흘이 채 못 되어 살은 무너지고 피가 흘러내리며 몸이 퉁퉁 부어 올라 악취를 풍기면 가까이 갈 수조차 없습니다.
황량한 벌판에 내다 버리면 온갖 새들이 와서 쪼아 먹어 살이 다 없어지고 뼈는 말라 제각기 흩어지니, 이것이 바로 괴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정말로 그것이 큰 괴로움입니다.’
‘어떤 것을 은애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온 집안 안팎에 살고 있는 형제와 처자가 서로서로 그리워하고 사모하다가 하루 아침에 남의 겁탈로 망하게 되면 저마다 따로따로 흩어져서
아버지는 동쪽으로, 아들은 서쪽으로, 어머니는 남쪽으로, 딸은 북쪽으로 가게 되므로 오로지 한곳에 머물러 살 수 없도록 합니다.
남의 노비(奴婢)가 되어 각기 슬프게 울부짖으며 불러보지만 마음과 몸이 단절(斷絶)되어 아득하고 깜깜하기만 할 뿐 서로 만날 기약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정말로 그런 것들이 큰 괴로움이 됩니다.’
‘어떤 것을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라고 말하는가?
집안의 돈과 재물을 흩어 사용하면서 큰 벼슬 자리를 추구하고 이민(吏民)들은 부귀해지기를 바라 열심히 수고롭게 그것을 구해마지 않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를 만나 한 자리 얻어서 변경(邊境)의 수령이라도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성들의 재물이나 탐하여 착취하다가 남에게 고변을 당하면 말하기를
〈하루 아침에 일이 생겨 함거(檻車)에 실려 간다〉고 합니다.
사형을 받으려고 할 때에는 근심과 괴로움이 한량없어서 어느날에 죽고 사는지도 알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런 일은 큰 괴로움입니다.’
‘어떤 것을 원수와 미운 사람이 만나는 괴로움이라고 말하는가?
세상 사람들의 박정한 풍속은 함께 애욕(愛欲) 가운데 살면서도 급하지 않은 일로도 서로 다투다가 또한 서로 살해하여 마침내 큰 원수가 되어 각자 서로 피하고 숨으려 하지만 숨을 곳조차 없습니다.
저마다 칼을 갈고 활을 끼고 몽둥이를 가진 채 서로 만날 것을 두려워하다가 우연히 좁은 길에서 서로 만나면 활을 벌려 화살을 재우고 양쪽이 칼을 서로 겨누면서 누가 이기고 질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 때를 당하여 두렵고 무섭기가 한량없으니,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정말로 그런 것은 큰 괴로움입니다.’
‘어떤 것을 근심과 슬픔의 고뇌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있으면 오래 살아봤자 기껏 백 살에 이르고 그나마 목숨이 짧으면 태 안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라야 백 살에 불과한데
그나마 밤에 잠자는 것으로 그 반을 소비하고 나면 남은 해가 오십년이며
술에 취해 있고 질병을 앓으면서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으니 그것으로 오 년을 덜어 버리고,
어릴 때엔 어리석고 열다섯 살까지는 예의를 알지 못하며 여든 살이 지나면 마음이 둔해지고 지혜가 없으며 귀먹고 눈까지 어둡고 아무 법칙(法則)이 없으니 그것으로 다시 이십 년을 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나이 이미 아흔 살이 되고 남은 십 년 동안은 온갖 근심과 시름이 많습니다.
천하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에도 근심 걱정이요, 천하가 가물 때에도 시름이 되며, 천하에 큰 홍수가 져도 걱정이요, 천하에 큰 서리가 내려도 걱정이며, 천하에 흉년이 들어도 큰 걱정이요, 집안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온갖 질병에 걸려도 걱정이며, 집안 재물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다가도 그 재산을 잃게 될까 또한 걱정입니다.
관가에 온갖 조세(租稅)가 수송되지 못해도 걱정이요, 집안 사람들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나올 시기를 알지 못해도 걱정이며, 형제가 멀리 출행하여 돌아오지 않아도 걱정이요, 살고 있는 집이 가난하여 의식이 없어도 걱정입니다.
이웃집과 촌락(村落)에 일이 생겨도 걱정이요, 사직(社稷)에 제사 음식을 장만하지 못해도 걱정이며, 아내가 사망했으나 장례 치를 재물이 없는 것도 걱정이요, 봄날이 되어 씨를 뿌려야 하는데 쟁기와 소가 없는 것도 걱정입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 근심과 슬픔 때문에 즐거운 때가 없습니다.
명절날이 되어 모두 함께 모여 마땅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함께 슬퍼하며 서로 바라보고 울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정말로 그런 것들은 큰 괴로움입니다.’”
또 『금색왕경(金色王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한 천녀(天女)가 금색왕(金色王)을 향하여 게송을 설하였다.
어떤 법을 고통스럽다 하는가 하면
이른바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바로 그것이요,
어떤 괴로움을 가장 중하다 하는가 하면
이른바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바로 그 고통이라네.
죽음의 괴로움과 가난하고 궁핍한
두 가지 괴로움은 동등하여 다름이 없네.
차라리 죽음의 괴로움을 받을지언정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고 싶지 않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