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들어 오는 복을 차버리다(룻4:1-6)
보아스는 기업 무름의 절차를 진행한다. 먼저 0순위의 사람에게 의사를 타진한다. 처음에는 자기가 기업을 무르겠다고 했다(4하). 그러나 땅만 사는 것이 아니라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하여 후사를 잇게 하고 그의 이름으로 그 기업이 상속되어야한다는 말에(5) 그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한다(6).
그 이유는 재산상의 큰 손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기업을 사서 자기의 소유로 하는 줄 알았는데,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하고, 또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으로 기업을 돌려 그 가문이 대가 끊이지 않게 한다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조건은 재산상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아 기업 무름을 거부하였다.
하나님의 일에 이해타산을 앞세우면 안 된다.
하나님의 율법을 집행하는 일에 이해타산을 내세워 0순의의 권리를 포기한다. 여건이 안 되어 포기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러나 형편이 되는데 손해볼까봐 포기하는 것은 너무 계산적이고 야비한 짓이다. 그리고 법을 악용하는 것이다.
기업 무름은 일종의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이해타산을 따지고, 계산적인 태도로 나온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여기에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필요하다.
어떤 장로님가정은 사재를 털어 조그만 복지시설을 지어 자비량으로 소외된 이들을 섬기고 있다. 또 어떤 목사님은 개척교회를 하면서 자기도 도움을 받아야할 형편이지만 도리어 어려운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분도 있다. 이해타산을 앞세우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사람으로 이를 나누기 위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철저히 사랑의 원리에 의해 실천해야한다. 이해타산을 따지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가난한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눅19:17)
재리에 눈이 멀면 하나님의 복도 차버린다
재물과 이익에 눈이 멀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 할 수 없다. 재물과 이익을 취하는 일에 눈이 멀면 하나님과 그의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없다. 아간(수7장), 게하시(왕하5:20-27), 유다가 재물과 이익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해 화를 당한 대표적인 인물 들이다.
이 인물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보다는 재물과 이익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손해가 가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질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발로 차버린 격이 되었다.
섭리적인 측면에서 이일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다. 보아스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래서 차 순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고 발을 벗고 나섰다. 어떠한 손해도 감수하고 지혜롭고, 현숙하고, 신앙이 돈독한 여인을 위해 희생하기를 기뻐하였다. 그 결과 보아스는 메시아의 탄생을 예비하는 계보의 중심에 서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0순위의 인물은 재물과 이익만 탐내는 탐욕의 눈으로 이일을 보았으므로 무명한 인물이 되었다. 자기 복을 자기발로 차버린 아쉬운 인물로 남게 되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나가기
우리는 무엇을 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철저하게 신앙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아야한다. 이해타산을 고려하고, 재리와 연관해서 일을 다루면 큰일 난다. 말씀도 벗어나고, 악용하고, 하나님의 섭리 즉, 인도하시는 손길을 볼 수 없다. 결국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기회, 축복을 제 발로 차버리는 겪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