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는 소마구와 돼지우리를 깨끗이 치는 일에서 시작됐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고 마구에 넣어준, 소똥 범법의 볏짚을 치고 새 볏짚을 넣어주는 일에 나도 네발 쇠스랑으로 소똥을 찍어 마구 밖으로 끌고나와 똥뫼에 쌓았다. 언제든지 날아들어 나를 강타할 수 있는 소 뒷발질을 피하려, 소 엉덩이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힐끔힐끔 눈치를 봐가며 쇠스랑질을 하고 새 볏짚을 넣어주었다. 문을 닫고 마구간을 나오는 나를 소가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똥뫼 거름자리에 밤새 쌓인 흰 눈이 똥이 썩으며 나는 열기에 녹으며, 똥뫼 꼭대기에서 굴뚝 연기 같은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또 바람이 불면 구수한 냄새가 나의 창자까지 들어오는 듯했다. 설까지 몇 밤을 더 자야하는지, 두 손바닥을 코앞에 들고 손가락을 굽혀 남은 날밤을 헤아리기도 했다.
할배가 추땀 댓돌에 앉아 지팡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실눈으로 거름자리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한 번 뒤집어야 되겠다. 할 수 있겠나?”
“왜요?”
“저 똥거름이 나를 살려 준 은인인기라.”
할배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도 설을 앞둔 이맘때였지. 저 아래에도 초가삼간만 한 거름자리가 있었어. 가을에 풀을 베 썩혀 만든 거름이 명년의 풍년 농사를 결정 지웠단다.
한 날 거름을 뒤집고 있는데 왜놈 순사가 칼을 허리에 차고 올라오고 있다는 게야. 조선순사 두엇도 왜놈을 뒤따라 돌계단을 타고 쫄랑쫄랑 올라오는 게 보였어. 뭘 생각할 것도 없이 엉겁결에 내가 두더지 같이 거름자리를 파고 들어가 몸을 가까스로 숨겼지. 숨을 통 쉴 수가 없어 똥이 범벅인 볏짚사이로 구멍을 내는데 죽창을 든 조선순사가 내 앞에 멈췄고, 나구나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지.
한 놈이 죽창을 개울 쪽에서부터 돌담 쪽으로 돌아가며 솥 밭 봉약 찾듯이 찔렀지. 한 대여섯 번째 찌른 죽창이 옆구리를 지나갔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어. 눈을 떠보니 내가 마당에 누워있는 것이야. 천만다행이 순사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비로소 옆구리를 만지며 깊은 숨을 들이켰어.“
“그래서 할매들이 ‘니 울면 순사 온데이’ 했구먼.”
내가 끼어들었다.
“그래. 조선 순사가 동네에 뜨면 개도 갑자기 버부리가 되고 울던 송아지도 울음을 뚝 그쳤단다.”
“그런데 할매들은 왜 ‘장차 커서 순사라도 해라’고 말해요?”
“그건 니가 커면 스스로 알기다. 당장 똥을 쇠스랑으로 찍어 뒤집어라.”
나는 더는 할배 말에 대꾸하지 않고 두 발 쇠스랑을 질질 끌며 거름자리로 갔다. 옆집 아재가 거름을 뒤집는 모습을 봤지만, 막상 직접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 키 보다 긴 쇠스랑 나무자루 중간을 움켜잡고 똥을 찍어 내 앞으로 끄집어 내렸다. 일을 다 마치려면 몇날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손바닥이 쇠스랑 자루에 밀려 쓰라려왔고, 김이 뭉텅뭉텅 솟아날 때면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고구마로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똥거름을 찍을 준비를 했다.
“몽근 거름을 감자밭에 내야 하느니라. 똥과 볏짚이 골고루 잘 섞여 썩은 보실 보실 한 거름을 밭에 내야 한다.”
“밭, 흙에서 썩이면 될 긴데 왜 집에서…”
나는 붉게 물든 손바닥을 호호 불며 할배에게 따졌다.
“뭐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게 있겠느냐. 좀 쉬었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거라.”
그때 또방우가 망태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손에 낫을 들고 나타났다. 바우 또바우 삼바우, 3형제를 사람들은 방우라 불렀다. 할배에게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소 꼴 베로 가나?”
또방우에게 물었다.
“같이 가자?”
내가 기다리고 있던 대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쇠스랑을 던져버리고, 꼴망태와 낫을 챙겨 집 앞 나무다리를 종달새 걸음으로 건넜다.
“니는 맨날 똥하고 씨름만 하고 살래?”
바위가 언덕을 구르듯 논두렁길을 달음질 치는 또바우를 뒤따라갔다.
“점심은?”
“아직….”
“여기 남은 볶은 감자 좀 묵어봐라.”
“올해 너거 집은 좀 캤나?”
“얼마 못 캤다. 심기만 하고 거름도 하지 않고 내팽겨 쳐 두었는데 당연히 씨감자 구경도 못했다 나가.”
“그라믄 올 여름에는 머 묵고 살긴데?”
“방법이 없제. 손가락 빨게 생겼다 나가.”
“왜 거름을 작년 여름부터 좀 만들지 않고?”
“게을러서 그렇다 나가. 부지런 하게 모은 길가 똥이 이렇게 큰 감자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 집은 몰랐다 나가.”
껍질을 볏겨 노랑 노랑하게 볶은 뜨거운 감자를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소금물을 뿌려 볶은 감자는 한자리서 열 개도 먹을 수 있었다.
“감자밭에는 거친 거름 말고, 잘 삭은 몽근 똥거름이 최고다. 풀을 썩혀 만든 거름보다 똥거름이 좋다.”
“똥 이야기 그만해라. 체하겠다.”
“니 뱃속에도 똥 있다 나가. 뭐가 더럽다고. 소똥으로 만든 똥감자 맛만 좋다.”
2대 독자 용이 3일은 굶은 듯 바가지에 담긴 감자를 눈 깜짝 할 사이 비웠다.
“오늘은 풀 맬기가, 아니면 베로 갈기가?”
“어제는 밭에 난 풀 맨다고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라믄 오늘은 같이 풀 베로 가자. 내년에 쓸 거름을 만들려면 여름부터 많이 베 모아야 할기다.”
“난 콩밭에 난 풀 뽑아야 한다. 장마 오기 전에 풀을 뽑아야 콩이 열린다 카더라.”
“니 호미질 괭이질에 풀이 남아나지 못하겠다. 그래 나는 풀 베로 갈기다.”
“마당에 난 풀이라도 좀 뽑지.”
그때 뜬금없이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날아들었다. 보릿고개 봄도 아니고 탈곡을 한 가을도 아닌, 한여름에 엿장수가 동네를 찾아온 것이었다.
“짤강 짤깡….”
순식간에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안산을 타고 올라가 메아리가 되어 다시 개울을 건너왔다. 억머구리가 개굴개굴 울 듯, 쥐 죽은 듯 고요하던 동네에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안산에서 쩌렁쩌렁 울었다.
지난, 올봄에 왔던 엿장수였다. 그날도 어른들은 밭으로 논으로 새벽부터 내빼 동네는 텅텅 비었고, 우리는 심심해 안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 먹고 집 앞 개울에서 피라미를 잡는데 바지게에 엿판을 지고 동네를 날아든 엿장수였다. 봄에 온 엿장수가 여름에 다시 나타나 목에 흰 수건을 걸치고 연신 가위질을 해대며 외쳤다.
“할비 놋쇠 담뱃대나 어매 비녀는 안 되고 되고오… ”
“못 신는 헌신짝 고무신이나 보리쌀…”
“울랑도 호박엿, 사아소오~”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개울 건너 솔밭 안산에서 되받아 더욱 크게 울렸다. 마름 입속에 침이 샘물 솟듯 고였다. 침이 꼴깍 꼴까 넘어갔다.
“혹시 간첩나가?”
“이 더운 여름에 또 온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 설마 아재들을 염탐하려고 엿 장사로 속이고 온 순경은 아니겠지?”
“잘 봐라. 바지게 엿판 밑에 총을 숨겨두었는지?”
용이 마당끝에서 골목 밖으로 목을 길게 빼며 말했다.
“니는 여기 숨어 지켜봐라. 내가 밖에 나가볼까?”
“걱정마라. 진짜 엿 장사 같다. 보면 더 묵고 싶다 나가.”
“그래. 안 보는 게 좋겠다.”
용이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침을 꼴딱 삼켰다. 엿장수 가위질은 벽장시게 불알 같았다. 가위 날이 좌우로 왔다갔다, 한결같이 달달한 소리를 냈다.
“할매 신짝이나…”
길바닥에 바짝 누워있던 소똥도 일어나 엿판 지게작대기 앞으로 다가서는 듯 했다. 엿판 지게목발 가랑이 사이를 나와 바지게를 고인 지게작대기를 돌아나 온 가위질 소리가 나의 마음을 점점 더 심란하게 흔들었다. 엿장수가 가기 전에 뭘 들고 골목을 나가 엿 맛을 봐야 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횡 한 마당만 보였다. 애만 더욱 타들어 갔다. 이번에는 누가 엿을 사 가는 모양이었다. 가위질 소리가 멈추고, 엿 떼는 소리가 들렸다.
“톡 탁, 톡 탁….”
엿장수가 공갈로 치는, 팔자 좋게 대자로 들어 누운 엿을 가위머리로 엿판 칼을 쳐 떼는 소리에 용이가 그만 자기 집으로 내달렸다. 집 안팎을 다람쥐 같이 맴돌며 뭐든 손에 걸리는 대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것으로 봐서 엿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빼도 빡도 못하는 엿장수 낚시질 떡밥을 용이도 덜컥 물은 것이었다. 빨리 엿판으로 모이라는 공갈 엿 떼는 소리가 귀청을 더욱 크게 울렸다.
“우리 할매가 엿 묵어라 줬는데 많이 줘요!”
“이게 뭤고! 정말로 할매가 줬단 말이가? 어매가 바꿔 묵어라 캐야 묵을 수 있다 나가, 이놈아.”
엿장수가 용이에게 확답(?)을 받으려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눈치 없이 내가 끼어들어 그만 다 끓은 죽 솥을 엎어버리는 그 이상의 초를 치고 말았다.
“지난번에 말짱한 고무신을 돌에 찧어 엿 바꿔 묵고 엄청 혼났어요.”
“야, 니도 그 엿 한 번 빨았다 나가. 진짜로 은가락지는 엿을 마니 준다 카더라.”
“머라카노. 물귀신같이 내를 끓고 들어가지 마라.”
김성태가 마른입을 다시며 멀뚱멀뚱, 물쭘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용이와 돌열(석열)이 엿판 바지게 앞뒤를 빙글빙글 돌며 호시탐탐 송아지 엉덩이를 노리는 수송아지 같이, 엿장수 눈을 피해 훌쩍 뛰어 엿판에 번듯하게 누워있는 엿을 훔쳐봤다. 날 얼렁 보쌈이라도하여 소나무 숲에 숨어서 빨고 핥아 잡수시라는는 듯, 엿은 밀가루를 덮어쓰고 꼼짝도 하지않은채 벌러덩 누워있었다.
“야, 이놈들!”
엿장수가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다 열판에 붙은 똥파리를 쫓듯 수건을 흔들며 소리쳤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그럼 엿판을 왜 지고 와서 엿도 못 묵고, 또 어른들에게 욕만 묵게 해요?”
우리는 엿판 지게를 넉 놓고 바라보다 끝내 기찬 궁리를 했다. 용이 눈짓을 했다. 아무렴 엿장수가 애들 눈치를 못 챌까, 눈동자가 동글동글 크진 엿장수가 다시 큰소리쳤다.
“이놈들이 엿판을 통째로…”
말이 씨앗이 된 듯 그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쥐가 고양이 소리에 놀라 도망치듯, 용이 엿을 담은 바지게 지게발목 양다리 사이로 미꾸라지 같이 삐져나오는 순간에 엿판 지게를 고인 작대기가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날았다. 엿장수도 공중을 날고있는 바지게 작대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어 천둥치는 소리가 소가 아침에 집을 나가며 싼 소똥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길바닥에서 났다. 지게를 고인 작대기는 길 아래 개울에 떨어져 물에 반쯤 잠겨 더위를 식히는 듯했다.
엿장수가 법수무당 가위춤 추듯 엿가위를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안산자락 응달 언덕으로 내빼는 우리를 뒤쫓았다. 옛날 공비토벌군에게 도망친 동네 아재들 같이 우리는 안산 솔밭을 향해 삼십육계로 도망쳤다. 이승만이 쫄개 김종원이 노획한 빨치산 따발총도 솔밭으로 내빼는 용이와 바우를 결코 잡을 수는 없었다.
엿장수가 멈췻거리더니 이번에는 올라온 언덕을 뒤돌아 냅다 뛰어 내려갔다. 물에 빠진 듯 두 팔을 휘저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언덕을 반은 굴러 내려갔다. 우리는 먼 일이 있어났는지 소나무숲에서 나와 언덕 아래를 바라봤다.
한눈에, 동네 개 대여섯 마리가 엿판을 둘러싸고 혀를 바쁘게 날럼거리는게 보였다. 몰려든 개들이 길에 엎어진 엿판 밀가루를 핥자 엿장수가 다시 미친 듯 소리쳤다. 개가 길바닥에 들어 누운 호박엿을 핥고 빨다 끝내 아싹아싹 씹었다. 엿 뼈다귀 깨무는 소리가 안산을 타고 올라왔다. 엿판 밀가루를 뒤집어 쓴, 입 주둥이가 하얀 개들이 엿장수가 다가오자 되려 멍멍 짖었다.
그 때도 엿제이 지 조오~ㅅ 꼴리는 대로 엿을 떼 팔았다. 간첩 잡는다는 군인들이 나타나 동네를 불 지르고 사람들을 잡아다가 박산골자기에 몰아넣어 불에 태워 죽은 뒤끝(거창사건)이라 모르는 사람이 동네에 들어서면 겁부터 냈었다.
아, 엿장수는 왜 하필 해마다 마당 감나무에 감꽃이 필 때쯤 나타나 애들의 애간장을 태웠을까, 지금에 와서까지 궁금하다.
남의 엿을 한 번 빨고부터 내가 불행하다는 것을 나는 그 무렵 느꼈다. 서울 산다는 동네 형이 가지고 온 알사탕을 빨고 싶은 만큼 나는 절망의 동산 사과를 씹었다.
차라리 동산 사과를 보지 않았다면 사과를 한 입 물고 동산에서 쫓게 나지 않았을 것. 다행이 나는 오지의 사람들과 달리 계속해서 사과를 먹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선악과, 사과나무를 동산에 심은 게 애당초 잘 못된 농부의 삽질이었다. 사과를 떠먹은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지은 게 아니라, 엿을 지고 나타난 엿장수가 문제였다. 그때 서울로 혹은 부산으로 야반도주라도 했어야지.
원조는 고자 할배였다. 산골 밖, 알사탕을 빨기위하여 스스로 불알을 까고 한양으로 내처 왕실 내시가 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