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혼 (이케다 SGI 회장 대담록)
제18회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前 평의회의장 포브스 먼로
▶ 글래스고대학교의 명예 교수다. 아프리카 경제사 연구의 제일인자다. 1940년,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지방에서 태어났다.
에든버러대학교에 다닐 때 스승으로 섬긴 셰이퍼슨 교수와 만남을 계기로 아프리카 경제사에 몰두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유학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물네 살에 독립 직후인 케냐로 건너가 나이로비대학교에서 연구했다. 귀국한 뒤, 글래스고대학교의 사회학부장과 평의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소카대학교에서 온 유학생들을 실비아 부인과 함께 따뜻하게 보살피는 등 두 대학의 교류를 촉진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저서로는 ‘아프리카 경제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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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인지’보다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중요
“이케다 선생님은 여러 대학과 국가에서 많은 영예를 받았는데 무엇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까.”
1999년 12월, 홍콩중문대학교 리궈장 총장(당시)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이케다 SGI 회장이 답했다.
“모두 추억에 남지만 한 곳을 들자면 영국의 글래스고대학교입니다.”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한 음률이 울려 퍼지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눈부신 햇살이 내리쬔다. 1994년 6월 15일. 글래고스대학교의 명예학위 수여식이 1882년에 건축된 장려한 뷰트 홀에서 엄숙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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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15일, 스코틀랜드를 처음 찾은 SGI 회장이 글래스고대학교의 장려한 뷰트 홀에서 열린 명예학위 수여식에 참석했다.
파이프오르간이 울려 퍼지는 속에 대학의 권위를 상장하는 ‘깃발’을 앞세우고 SGI 회장을 비롯한 수상자 열 명이 입장했다. 1000명 남짓한 신사 숙녀가 영예의 식전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 한사람, 각 추천자가 “총장(챈설러)” 하고 부른 뒤 연설했다.
“총장에게 말씀드립니다. 대학 평의회가 추천하는 이케다 다이사쿠 씨에게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요청합니다!”
먼로 평의회의장의 바리톤과 같이 강하고 맑은 목소리가 홀의 정숙을 깼다.
SGI 회장이 수상자를 위한 의자인 ‘블랙스턴 체어’에 다가가 천천히 앉았다. 중세 박사학위의 구두(口頭) 시험을 받을 때 후보자가 검은색 대리석 위에 앉았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케다 씨는 1947년, 도다 조세이 씨를 만나 제자가 되면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먼로 박사의 ‘도다 조세이’라는 말이 여러 번 울려 퍼졌다. SGI 회장은 은사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56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글래스고대학교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와 증기기관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 등을 배출한 ‘근대의 요람’이다.
틀림없이 이날 치른 식전은 박해와 중상의 폭풍우를 극복하고 은사와 함께, 은사의 꿈을 이어받아 세계에 넓힌 창가의 큰 길이 다다른 도달점 중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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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는 일본의 문명개화를 도운 은인이다. ‘글래스고대학교’가 문명을 개화했다고 해도 좋다.
메이지 초기 헨리 다이어(공과대학교 초대 총장)를 비롯해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많은 외국인 교사가 일본을 찾았다. 이와쿠라 사절단이나 런던에 유학 중인 나쓰메 소세키가 글래스고대학교를 찾았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이와사키 야타로의 제자들도 유학했다.
스코틀랜드와 글래스고대학교가 아직 ‘소년’이던 일본에 가르친 것은 ‘엔지니어 사상’과 ‘셀프 헬프(자조<自助>)’ 정신이었다. 즉 실학을 중시해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존중하고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상찬하는 사상이다.
지위와 출신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판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이루었는지’ 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를 평가하는 정신이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부단히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무한한 인간 이해다.
먼로 박사도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 학교가 자랑할 만한 역사는 학교의 교원이나 졸업생이 ‘어떤 일을 했는가’라는 업적입니다.”
“명예학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이루었는지’로 수여합니다.”
하이랜드(고지) 지방에서 태어난 순수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온몸에 그 긍지가 넘쳤다.
박사는 일찍이 창가학회를 비판하고 중상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카대학교의 교원과 유학생을 만나고 또 1990년 일본을 방문해 학회원의 모습을 직접 접하면서 가슴에 진실을 새겼다.
박사가 일본을 떠날 때, 공항에서 배웅하는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난 창가학회 분들은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 4년 뒤, 긴 시간의 교육교류를 바탕으로 글래스고대학교가 SGI 회장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명예학위를 수여했다.
평의회의장인 먼로 박사가 추천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또 박사 부부는 글래스고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소카대학교 유학생을 가족처럼 보살폈다. “우리를 스코틀랜드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생각하세요.”
자택에 초대해 실비아 부인이 직접 만든 수프를 정성껏 대접하고 차를 몰고 여행에 데리고 간 적도 있다.
먼로 박사는 그 학생들이 학술계와 교육계 그리고 경제계 등으로 웅비해 일본과 세계에서 활약하는 일을 창립자 SGI 회장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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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0일. 먼로 박사가 아오모리 오이라세를 방문해 이케다 SGI 회장이 노래한 ‘폭포의 시’가 탄생한 경관을 지켜보았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뒤에는 도호쿠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 진심어린 성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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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식이 끝난 뒤에도 박사와 SGI 회장은 여러 차례 계속 교류했다.
박사는 소카대학교와 간사이소카학원을 방문할 때마다 “기회를 잡아라” “고투(苦鬪)를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젊은 생명에 응원의 말을 보냈다.
2007년 5월, 박사는 아오모리 오이라세의 초시오폭포 앞에 섰다. 오이라세는 SGI 회장이 ‘폭포의 시’를 구상한 곳이다.
“폭포처럼 세차게
폭포처럼 한결같이…”
박사는 ‘추천사’에서 마지막에 이 시를 낭독했다.
박사가 “‘폭포의 시’처럼 긍지 드높고 열정 넘치는 용감한 폭포군요. 물줄기 소리가 마치 이케다 SGI 회장의 말처럼 들립니다” 하고 말했다.
또 SGI 회장도 박사가 더없이 사랑하는 스코틀랜드의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 한 구절을 박사에게 드렸다.
“오래도록 좋은 친구 잊지 않고 /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리”
“그럼 이만 악수를 마음의 친구 / 그럼 이만 악수를 진정한 친구 / 즐거운 잔 자 기울이네”
마음으로 맺은 악수는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까지나 단단하고 따뜻한 우정을 계속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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