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모호한 증거
신성한 매실 758
그런데 형사팀 조민태 형사가 근처에서 뭔가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뭐 좀 알아냈어?”
권 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네, 혹 단서가 될만한 것들은 찾아봤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래도 이것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래?”
“참! 나머지 목격자 진술도 여럿 확인해두었습니다.”
조 형사가 권 팀장에게 건넨 것은 인쇄물을 담은 누런 봉투였다.
“이게 왜?”
“봉투 밑을 자세히 보십시오. 인쇄소 주소가 나와 있습니다.”
조 형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것 외 중요한 목격자 진술은?”
“범인은 범행 후에 저기 보이는 주차장에서 차가 아니라, 오토바이로 도주하였는데 방향이 지리산 쪽이란 게 확인되었습니다. 주차장 관리인이 목격하였답니다.”
권 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몹시 걱정했지만 현장에 있던 조 형사의 초동수사로 약간 마음이 놓였다.
밤이 깊었지만, 산음 경찰서 형사팀 전원은 회의실에 모여있었다.
권 팀장은 수사과장에게 한참이나 무엇인가를 지시받은 모양이었다.
하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서장이 그곳을 다녀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어두웠고, 칙칙했다.
누구보다 권 팀장은 의외로 풀이 죽어있었다.
아마 수사과장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은 듯 보였다.
그렇기나 말기나 권 팀장은 애써 태연한 척 회의를 주재했다.
“피해자는 어떻게 되었나?”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건 이후 병원에 실려 간 피해자 곁은 지켰던 형사의 대답이었다.
“음, 그렇군. 자넨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인 목사죠.”
“좋아. 어떻게 될지 모르니 회의 끝나면 병원으로 가서 계속 지켜봐. 무슨 일 있으면 즉각 보고하고. 참!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지?”
아까 여자를 병원에 데려간 박 형사가 대답했다.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기에 근처 병원에 입원시켜두었습니다.”
“좋아. 내일 병원 문이 열리는 대로 그대가 한번 다녀와. 여자를 통해 목사에 관하여 모든 정보를 몽땅 알아 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다음, 범인들 도주 경로를 CCTV로 확인하고 있지?”
“네. 일부 확인하였고 오늘 밤부터 계속 돌릴 계획입니다.”
형사의 말에 권 팀장은 수첩을 책상에 내리쳤다.
“그래, 각자 맡은 분야에 열심히 하면 분명 뭔가 나오겠지.”
그때 형사팀 유일한 여성인 김유리가 손을 들었다.
“사건에 관하여 팀장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모니터링한 결과, 이 사건은 정말 묘한 것 같습니다.”
“…….”
“우리만 아니라, 전국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신상이 나왔거든요.”
형사들은 김유리 형사의 발언에 주목했다.
“그래? 어떤?”
권 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피해자들은 모두 기독교 목사이거나 일부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은 최근 시중에서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에 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이를테면?”
“이단이라 불리는 신청지의 이망희부터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한 교인 성추행 사건의 당사자인 천민교회 이재룡 목사, JMS 총재 정맹석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잖습니까.”
권 팀장은 반문했다.
“그렇다고 살해당한 분들이 모두 그런 쪽은 아니잖아. 물론 조사해봐야겠지만.”
이에 김유리 형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그렇죠. 그런데 지금 인터넷에서는 정부와 경찰도 못 하는 일을 이들이 했다고 오히려 범인들은 영웅시하고 있습니다.”
“뭐?”
“그들을 두둔하는 댓글도 엄청나게 많이 달리고요. 심지어 어떤 유튜브 방송자는 그들은 ‘행동하는 의적’‘사이비 종교 척결단’이라고 칭송합니다.”
김유리의 말에 권 팀장을 비롯한 대다수는 경악했다.
단지 최림은 대충 예상하였기에 팀장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피해자들이 모두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던 이 사회의 종교 지도자란 말이지. 그렇다고 우리 구역에서 피해자를 불에 태워 죽인 놈들을 두둔하자는 말이야!”
권 팀장은 예상외로 화를 내었다.
팀원들은 평소 그답지 않은 태도에 모두 놀라고 말았다.
이에 별수 없이 최림이 나섰다.
“김 형사의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번 사건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구역의 범인 검거도 중요하지만, 이 전국적인 사건을 기획한 자, 즉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
최림의 발언에 권 팀장은 얼굴이 붉어졌다.
“이것 봐! 자꾸 배후 운운하는데, 그건 경남청이나 중앙청에서 알아서 할 일이야. 우린 우리 구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 두 놈만 잡으면 끝이야. 알겠어?”
‘이런!’
“내 생각에는 범인들은 ‘종말론’ 같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야.”
‘이게 아닌데.’
이쯤에서 자기 생각과 다른 권 팀장의 말에 최림은 답답했다.
그래도 권 팀장은 자기 말만 이어갔다.
“그러니 ‘천년왕국’이니, ‘666’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거야. 그놈들은 분명히 지리산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어. 그러니 내일부터 전원 지리산 일대를 뒤진다.”
헐!
형사들 대부분이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도 권 팀장은 말을 이었다.
“이게 내 수사방침이야. 알겠어?”
권 팀장의 말에 최림이 되받았다.
“그들이 오토바이로 지리산 쪽으로 갔다고 해서 꼭 산으로 들어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왜? 무슨 근거로?”
“아시다시피, 중간지점에서 갈라지는 길이 세 군데나 있습니다. 놈들이 거기서 하동으로, 진주로, 사천으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믿었던 최림이 사사건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자 권 팀장은 화가 많이 났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회의 서류를 손으로 신경질적으로 밀쳤다.
“시끄러워!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팀장 하든지! 아니면 다른 팀으로 가든지.”
“…….”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최 형사는 내일 아침에 서장에게 보고할 수사계획서나 작성해줘. 이상! 이것으로 회의는 끝낸다. ”
권 팀장의 화를 억누르며 조사실을 나가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팀원들은 민망한 얼굴을 피하려 한 명씩 자리를 떴다.
최림은 아직도 이 사건의 내막을 솔직히 말하는 게 옳은지 답답했다.
그날 밤, 수사계획서를 끝낸 최림은 오래간만에 미오에게 전화했다.
미오 역시 늦은 밤임에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이야. 잘 지내지?”
“그럭저럭, 그보다 누나도 TV 봤지?”
“물론.”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최림은 미오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다.
하지만 미오는 즉답 대신에 그간에 일어났던‘악령퇴치반’의 활약상을 말했다.
“이곳도 매우 바빠. 전두태의 잔재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줄 몰랐어.”
“알아. 그보다 아까 내가 말한 거에 관해 생각을 듣고 싶어.”
그러자 미오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놈이 벌인 일이지.”
“그렇지? 전두태가 맞지?”
“그래, 그런데 …….”
미오가 뜸을 들이자, 최림이 다급했다.
“그런데?”
“놈이 전략을 바꾸었나 봐. 이제 대놓고 정통 기독교인들까지 공격하네.”
“뭐? 전국에서 피해 본 목사와 장로들이 정통이라고? 사이비가 아니고?”
“응, 우리가 알아본 바론 그래. 이제 놈이 본격적인 세를 확장하는가 봐.”
최림은 미오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역시 아까 김유리 형사의 말대로 죽은 자들이 사이비 종교인 줄 알았다.
그렇다면 전두태는 미오가 말한 대로 이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였다.
천년왕국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서 선포하는 작업이었다.
“그럼, 누나가 마이클에게 말해서 당장 우리 팀을 이곳으로 불러 줘.”
최림은 답답한 나머지 미오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미오는 냉정했다.
“안 돼. 당장은 힘들어. 여기도 몹시 바쁘다고 했잖아.”
“나 혼자 해결하라고?”
“그 말이 아냐. 일단 정말로 놈이 그곳에 기거하는지부터 확인해 봐.”
“확인?”
“그래, 그게 확인되면 내가 마이클에게 부탁해 볼게. 넌 현실적인 수사부터 해.”
최림은 기가 찼지만, 이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밤, 최림이 어두운 지리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때였다.
갑자기 놈의 웃음소리가 천지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
우하하하하하, 어하하하하하하하하!!!
다음 날 아침, 최림은 인쇄물의 봉투가 만들어진 J 시로 출발했다.
미오의 말대로 현실적인 수사부터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서에서 대략 40여 분 거리였다.
인쇄소는 주택과 상가 밀집 지역에 있었다.
다행히 아침나절이어서 인쇄소는 한가했다.
사장은 최림이 건넨 봉투를 물끄러미 보더니 무릎을 쳤다.
“맞습니다.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그게 언제?”
“올해 초쯤 될 겁니다. 오랜만에 그 여교사가 불쑥 찾아와서 아이들 탐정 놀이에 쓸 인쇄물이라고 의뢰했습니다.”
최림은 여교사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