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으로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 788-1021
제15장 심리학과 철학 Psychologie et philosophie 993
심리학은 앞선 세기에서 일반적으로 철학하고 분리되어 독립된 학문으로서 생각되었다. [프랑스 실험심리학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는 1876(37살)년에 철학지(Revue philosophique de la France et de l'étranger)창간하였으며, 그는 특히 현대 영국 심리학(a Psychologle anglaise contemporaine, 1870)에서 심리학의 독립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은 우리들 시대에[20세기에 와서] 상당한 변형들을 겪게 된다. 몇 가지를 고려해보면, 이 변형들은 철학과 연관이 깊다. 우리는 여기서 이 변형들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간단하게라도 서술할 수 없다. 그 대신 운동에서 중요한 몇몇 인물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심리학은 심리학적 삶의 일반적 측면들을 가치있게 평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유”, “품행”(conduites), 행실(comportement), 조절 현상 등과 같은 측면을 평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자, 감각, 이미지 등을 함께 끌어 모으고 그리고 나서 불가분의 총체로서 연구하는데, 의식을 원자들로, 감각들로, 이미지들로 잘라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프레데릭 폴앙(Frédéric Paulhan 1856-1931)의 많은 저작들 속에 나타난다. 그의 후기 저작들은 심리학자의 것인 만큼이나 도덕론자의 것이었다. 그는 정신의 요소들을 통일시키는 여러 가지들, 즉 정신적 삶의 보편적 특성, 체계적인 관념연합, 내재적 목적성 등을 강조해왔다. 그는 정신활동과 정신의 요소들(L'activité mentale et les éléments de l'esprit 1889), 성격의 허구(Les mensonge du caractère 1905), 세계의 허구(Le mensonge du monde, 1921) 등을 썼다.
철학자이며 의사인 삐에르 쟈네(Pierre Janet, 1859-1947)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정신(l'esprit)의 고등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적 종합(synthèse mentale)의 개념을 사용한 심리학적 자동주의(Automatisme psychologique, 1889)를 쓴 후, 자기 저작의 집성의 글로서 뒤마(G. Dumas, 1866-1946)와 같이 저술한 『심리학 개론(Traité de psychologie)』의 결론들을 요약하는 글에서, 그는 “심리학은 보다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은 인간의 품행들, 부분적 운동들, 개인이 주변 대상의 작용에 대해 반작용하는 일반적 태도들 등을 연구한다. 이 품행들 속에서 심리학은 항상 제시되는 일반적 성격들, 즉 정도의 차이만 변할 뿐인 성격들을 관찰한다. 정도의 차이란 모든 심리적 동요와 함께하는 심리적 긴장에는 열등한 정도에서 우등한 정도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다. 열등한 정도에서 행동은 사유되고 상상된 채있으며, 우등한 정도에서 생동은 집행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우리가 미국 실재론에 관하여 언급했던 행동주의(behaviourism)와 나란히 가는 운동을 발견하게 된다.
[심리학자이며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인] 삐에롱(Henri Louis Charles Piéron 1881-1964)은 바로 이점을 주목했다. 그는 두뇌와 사유(Le cerveau et la pensée, 1923)을 쓰면서, 심리학은 생물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심리학은 개인의 반작용의 양태들에 대한 연구 즉 여전히 생리학적으로 조건화되어 있는 행실들에 대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는 의식을 무시해야만 한다. 삐에롱은 1912년부터 이런 주제를 주장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 위에서 말했던 미국에서 행동주의적 방법이 전개했던 것보다 앞선 것이다.
심리학의 모든 현실적 방법들은 심리학적 사실들이 개입되어 있는 심리-생리학적 문맥으로부터 심리학적 사실들을 분리해 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서(l'émotion 감동 감격)은 이 방법들의 바깥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의사 이며 심리학자인] 뒤마(Georges Dumas, Georges-Alphonse Dumas, 1866-1946)는 박사학위 논문인 슬픔과 환희(La Tristesse et la Joie 1900)에서 애정적(affectifs, 감화적) 사실들에 관한 탐구에서, 여러 개인들의 동일한 애정적 상태를 연구하기보다 오히려 동일한 개인에 있어서 다양한 애정적 상태들을 즉 감동적인 양태들(les variations)을 연구하면서 규칙(la règle)을 찾았다. 특성들(caractères)의 집합을 사람들은 개성(l'individualité)이라 부른다. 이 특성이란 각각 현상을 그러한 관점에서[개성이란 관점에서] 규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희나 슬픔 같은 통일한 이름의 현상들은 한 개인의 특성과 다른 개인의 특성을 완전히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의식의 “요소들”(les éléments)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모든 희망을 버리게 했다. [아직도 의식의 바탕이 흐름이나 운동이라는 실체를 인정하기가 거북했던 시절이다. 의식에는 요소나 원소(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기본이었다.]
앞선 시대에 매우 많이 다루었던 발생(une genèse, 생성)의 문제는 사람들이 구조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들 때문에 일반적으로 내버려둔 체 있었다. 심리학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사회학에서도 철학에서도 관념들의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낭만주의에서 태어난 진화론의 관념은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여기 그에 대한 여러 증거들이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발드윈(James Mark Baldwin 1861–1934)은 바로 심리학 속에서 발생학적 과학을 보았다. 그는 베르그송처럼 정신적 생성은 기계적 과학들의 범주에 의해서 해석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펜서의 방식으로부터 생각된 진화의 관념을 재건하고자 하지 않았다. 전혀 반대로 그는 심리적 현상들이 다른 모든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이해 가능하게 되려면, 정신이 자신에 의해 자신의 경험을, 그것도 총체적이고 무매개적인 경험을 참조할 경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범미주의(汎美主義 pancalisme)는 일반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전체적 인식을 감성적(esthétique) 관조 속에 위치시켰다. 그에 따르면 감성적 범주들은 조직화의 규칙들과 같은 것이다. 이 규칙이 경험의 모든 측면들을 분류할 수 있게 준다. 그의 후기 작품으로는 발생론적 논리 또는 사유와 사물: 사유의 발전과 의미의 연구(Genetic Logic. Or Thoughts and Things: A Study of the Development and Meaning of Thought. 1906), 실재성의 발생적 이론: 범미주의라 불리는 실재성의 미학적 이론의 출구로서 발생적 논리의 윤곽(Genetic Theory of Reality. Being the Outcome of Genetic Logic as Issuing in the Aesthetic Theory of Reality called Pancalism, (1915)
철학자 심리학자 의사인 샤를 블롱델(Charles Blondel 1876-1939)은 병적인 의식(La Conscience morbide, 1928)을 썼는데, 그는 “순수 심리학학적인 것”에서, 말하자면 유기체적 인상들의 동질적 덩어리(la masse homogène)에서, 병리적 정신 상태의 중요한 것을 보았다. 우리는 사회적 영향들 하에서 이성과 정상적 의식이 구성되지만, 이 순수 심리학적이란 것은 사회의 영향들에 침투시킬 수도 없고 환원할 수도 없는 개성의 토대이다. 정신적 질병이 생겨난다는 것은, 정상적 의식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이, 잠재의식 속으로 이 덩어리의 역행(le refoulement)이 일어나지 않을 때이다. [프로이트와 반대방향으로 사유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정신적 태도가 여기서는 연구의 대상이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들라크르와(Henri Delacroix 1873-1937)는 자기 전 저작에서 정신의 삶의 어떤 부분을 부분과 전체의 연관 없이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목표로 삼았다. 그의 저작 종교와 신앙(La religion et la foi, 1922), 언어와 사유(Le langage et la pensée, 1924), 예술의 심리학: 예술활동에 관하여(Psychologie de l'Art: Essai sur l'activité artistique, 1927 등 참조할 수 있다. “언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관계들의 질서로 배열된 개념체계가 기초로 되어 있어야 한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종교는 순수 감정이 아니다. “종교는 다음 경향들 만큼일 경우에만 종교이다. 만족을 구하고자 애쓰는 그 경향들은 직접적이고 자연적인 수단을 거부한다 ... [또한 그 경향들은] 우회적으로 마술적이고 종교적인 실행의 수단들을 조직된다. 그리고 [그 경향들은] 개념들과 존재들의 완성을 지배하는 이것들[개념들과 존재들]의 체계를 가정한다 .... 침묵의 사유가 있는데, 이 사유는 말하고 상상하는 사유의 표현을 앞선다. 그리고 이 사유는 그 표현을 벗어난다.” “예술은 감각적 자료들을 노래하는 군집(l'essaim)을 분명한 체계로 배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편으로 이성, 지혜, 지성을, 다른 한편으로 일종의 초지성적 직관의 포기를 가정하는 것은 거짓이리라. 지성은 과학에서처럼 예술에서도 재단하고 측정하고 작업한다.” 정신이 자신의 작업들의 각각에서 드러내는 총체성, 그것은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가 예술적 발명에 관해서 “복합적인 이론적 성찰, 형이상학과 기술로 뒤섞인 성찰”에 대해서 말하면서 확정한 것이다. 이 명상은 작품의 탄생에 함께 하는 것이다. 참조: 프랑스 철학회 회보(Bulletin de la société française de philosophie(Janvier 1928, p.5)
앞선 시기의 심리학은 이미지를 일종의 정신적 요소로서 생각했다. [정신의 불가분성] 그러한 분석의 불가능성은 비네(Alfred Binet 1857-1911)가 프랑스에서 발전시킨 사유의 심리학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에 관해서 그의 저작 지성의 실험심리학적 연구(L'étude expérimentale de l'intelligence 1903)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사유의 심리학이 독일에서는 뷔르쯔부르크 대학의 연구소의 탐구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뷔르루르(Albert Burloud 1888-1954)가 쓴 와트, 메서, 뷜러의 실험적 탐구에 따른 사유(La Pensée d'après les recherches expérimentales de Watt, Messer et Bühler, 1927)를 참조하자. 형태 이론(la théorie de la forme, Gestalttheorie)은 순서의 지각 또는 세 광점(光點)의 배치 등과 같은 현상들에 관해 주의를 끌었다. 세 광점의 배치[빨강 노랑 파랑의 합체는 흰 빛이다]가 각각의 광점에 의한 빛의 감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성(l'introspection)은 이미지가 없는, 단어가 없는 순수 사유의 현존을 증거한다. 우리는 할로서 임무가 있다는 감정 없이는, 어떤 태도에 입장을 취하지 않고서는, 어떤 의향 없이는, 생각하지 못하나, 이미지 없이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가 의식에 떠오르지 없이도 문장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해체할 수 없는 총체성에서 연구하기에 이른, 사유의 역동성 자체이다. 이것은 또한 관념연합이론의 정신에 반대되는 정신이었다.
만일 발생(genèse 생성)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연구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심리학의 연구에서 이다. 그런데, 삐아제(Jean Piaget 1896-1980)가 헌신했던 일련의 작품들, 어린이에서 언어와 사유(Langage et la pensée chez l'enfant, 1923), 어린이에서 판단과 추론(Le jugement et le raisonnement chez l'enfant, 1924), 어린이에서 세계의 표상(La Représentation du monde chez l'enfant, 1926)등에서, 그는 어린이의 정신성은 일종의 환원할 수 없는 불럭처럼 나타난다고 한다. 이 덩어리는 성인의 정신성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그것을 배제한다. 그리고 그 덩어리를 사람들은 분석하기보다 묘사할 수 있다고 한다. 레비 브륄(Lévy-Bruhl, 1857-1939)에 따른 원시 정신성과 문명의 정신성 사이의 관계처럼, 어린이 정신성이 어른의 사유 사이의 관계와 같을 것이라고 보았다.
일반적 방식으로 우리가 막 알렸던 다양한 시대 조류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양들이 있다 할지라도, 이 조류들은 사람들이 심리학적 분석에서 새롭게 쪼개진 면[절개면]이라 불릴 수 있을 모든 필연성을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통합 속에서만 의미있는 것을 가볍게 분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체로서 의미를 부분들로 해체했다가 전체를 통합하는 것과 다르다. 생명체가 대표적이다. 생명체는 해체하면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병리학적 심리학 즉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것의 마지막 증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수행위, 말실수, 꿈 등에서, 다시 말하면, 심리학적인 삶 속에서 처음에 하나의 사고(un accident)처럼 나타난 것에서, 정신분석학이 찾는 그 의미[증거]이다. 정신분석학은 이 의미를 사용하여 상징을 만든다. 이 상징은 욕망(désir, libido)의 병리학적 심층의 삶을 표현하기도 하고 동시에 감추기도 한다. 이 욕망은 “검열”(sensure) 덕분에 억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욕망의 심층적 의미는, 정신적 삶의 인식 조건처럼, 불가분이고 전반적 관점을 지닌 동일한 경향을 지시한다. 참조, 정신분석학 시론(Essais de psychanalyse)(tr.fr. 1922), :
꿈의 과학(Science des rêves)(tr.fr. 1926). (45RLH)
*참고 문헌 Bibliographie
G. Dumas, 『심리학 개론(Traité de psychologie)』(1930)...
F.L. Mueller, La psychologie contemporaine, 1963. [F.L. Mueller s.d.]
M. Pradine Traité de psychologie générale, 1943 [프라딘(Maurice Pradines 1874-1958) 프랑스 철학자.]
É. Souriau, Notice sur la vie et les traveaux de Maurice Pradine, Instituet de France, 1960. [수리오(Étienne Souriau 1892-1979) 프랑스 미학철학자.]
J. Piaget, La construction du réel chez l'enfant, 1937; Les mécanismes perceptifs 1961; La naissance de l'intelligence chez l'enfant, 3e éd., s.d.; (Introduction à l'épistémologie génétique, 3 vol, 1950; J. Piaget et B. Inhelder, La genèse des structures logiques élémentaires, 1959; La psychologie de l'enfant, 1966; J. Piaget, Sagesse et illusions de la philosophie, 1965.
H. Baruk, Histoire de la psychiatrie français. 1967 [바뤽(Henri Baruk, 1897-1999) 프랑스 정신과의사.]
(45RLH) (옮4:35, 58L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