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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네의 프랑스 철학사는 이미 번역한 것인데
주와 보충설명을 첨가한다. - 프랑스 철학사: 시작이 8세기부터 이다.
그래도 20세기 철학의 주축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답: 18세의 전 고등학교 학생이 1년간 철학과목을 듣는다.
이런 나라는 없다.]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로비네(André Robinet, 1922-2016), PUF, (1966) 1977.
류종렬, 서광사, (1987) 수정본.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목차
1장 중세 철학
2장 근세 철학
3장 현대 철학
결론
1장 중세 철학
[01: 샤를마뉴시대의 철학: 알퀭이 그의 궁정에서 이법과 신앙으로 나누면서 시작.]
프랑스 왕의 후원자인 성 마르땡(St. Matin, 316경-397)은 자기의 법의를 신앙과 이성으로 분류해 놓고서, 동료들과는 이성적 사유를 같이 하고자 했으면서도 한편으로 신앙을 방패로 삼았다. 796년 알퀭(ALcuin, 703-804)은 마르무티에 수도원(L'abbaye de Marmoutier)의 미묘한 승계권을 이어받으면서 그의 수도승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은 두 개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즉 사강은 높은 곳을 향하여 천국을 보기도 하지만, 인간들을 향하여 연민의 얼굴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제자를 구원자로 인도하는 것과, 또 그들을 전문가가 되게 하는 것은 가르치는 이의 이중적 부담입니다. 옛 학문들에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 마르땡 사원의 탑위에 끌이 흐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쪽수는 번역본: 11]
철학은 당위의 모든 학문들이 이루어 놓은 성과의 바탕 위에서 성숙했다. 알퀭의 분류에 따르면 교양의 영역에서 자연학, 윤리학, 논리학이 포함된다. 자연학에는중세 스콜라철학의 네 과목(quadrivium)을 구성하는 산술학, 기하학, 음악, 천문(별의 운행법칙)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역학, 의학, 구천문학(별들의 운행법칙, 자연, 영향)도 포함한다. 논리학에는언어의 기본을 가르치는 문법학, 진실과 허위에 대해 논쟁하도록 가르치는 변증법, 설득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사학 이라는세 과목(trivium)을 포함한다. 윤리학에서는중요한 덕목들, 신중함, 힘[권력, 권위, 권세], 정의, 절제를 다룬다. 형이상학[자연의 배후학]은 결코 다루어지지 않는다. 자연의 배후학이 곧 신학이며, 신학은 자연학에 앞선 학문이다. [12]
현자[알퀭]는 솔로몬(전1000경-전931),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현자와 동료인 철학자는 구제지를 간청하고, 행복한 삶의 영역을 넓히고, 크리스트교 국가의 통치에 협력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효과적인 지식을 갖지 않으면 통치할 수 없다. 효과적 지식이란 고대 학자들의 실천, 미묘한 문법들, 변증법의 지식, 별의 운행에 관한 인식들이다. 샤를마뉴 대제(740?-814)는 구원[신앙]과 지식[이법]의 양면에서 모두 뛰어났다. [12]
자연적, 인간적, 신적인 것에 대한 인식인 철학은 신앙이나 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법”과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을 주장한다. 알퀭은 크리스트교가 요구하는 독단적인 인식에 반대하기 위하여 이 두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법”은 무엇이며 “법칙”은 무엇인가? [12]
알뀅은 달력의 날짜의 계산 방식을 샤를마튜 대제에게 가르치면서, 너무나 미묘한 산술적 이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그렇게 부드럽고 … 그렇게 적절히), 그것을 과학적 실천 이외에도 사용할 필요성을 느꼈다. 철학자는 지식의 창시자가 아니라 발견자이다. 창조주만이 창시자이다. 신은 자연 속에서 이법을 도입하였고, 학문은 그 속에서 이법을 발견한다. 아브라함(전2000?-1800?)이 자기의 신을 종경하기에는 천체의 법칙으로 충분하지 못했을까? 알퀭은, 그의 스승인 베드(Bède, 673-735)의 제자인 에그베르(Egbert, ?-766)가 베드로로부터 고대의 전통을 이끌어 내면서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말하곤 했다고 전한다. “인간들 중에서 가장 학식있는 자는 자연적인 사물에 대한 지식을 발명하는 자입니다. 산술은 학자에게 지식의 수단을 부여합니다. 즉 이법에 대한 보편적 지식이 있겠지요. 왜 없겠습니까?” [13]
라스코(Lascaux) 벽화(기원전 1만 7천년전)가 있고 난 이래로, 우리땅의 거주자들은 자신들로 하여금 대사건에 의해 제기된 모든 특별한 경우들을 완전히 극복하도록 해주는 어떤 실제적인 일반성을 탐구하였다. 알퀠은 수학의 합리성에 호소할 때 “6행의 수”(nombre sénaire)[육진법(un système sénaire)]를 생각한다. 즉 그는 식(일식이든 월식이든)에 대한 천문학적 법칙을 공표할 때, 한 별이 다른 별 앞으로 통과해감을 지적함으로써 만족해한다. 설명이란 산술적 관계 또는 개별적 물체들 서로의 관계에 기인한다. 설명이란 꼭 맞는 계산 또는 정학한 사실에 대하여 한정된 계산 및 제한된 관찰에 근거할 뿐이다. 판단력은 손과 눈 이상의 것일 수 없다. 그리고 철학을 구분하는 세 가지 종류의 관점 중에서 하나는 육체적 관점(시각)이고, 하나는 정신적 관점(이미지)이며, 나머지는 지적 관점(단지 영혼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살펴보더라도, 재능 있는 알퀭이 구별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인식의 세 종류를 묘사하는데 불평하겠는가? [13]
알퀭은 문화적 갈등을 체험했으며, 그 자신은 그것을 완전히 깨닫고 있었다. 카롤링 왕조 이전의 문화적 내용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580년에 그레고와르(Gregoire de Tours, 559-594)는 부재표를 만들었다. 로마의 문명은 사라지고, 크리스트교는 그것을 이교도의 예배에 양보하고, 수도사들은 난폭한 군인과 같았다. 골 지방의 어떤 사람도 점점 자신이 겪었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문법을 배울 수 없고, 변증법을 실천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시대에 문자의 연구는 우리들 가운데에서 사라졌다.” 알퀭은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소심하기 때문에 아무도 창조주가 자연에 도입했던 이법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우리시기에 회복했던 지식을 사라지게 버려둔다면 대단한 치욕을 느껴야 할 것이다.” 특히 철학자의 명예는 치욕적일 것이다. [13]
번성하는 프랑크 왕국에서 알퀭에 의해 일어난 이 부흥은 아주 짧았다. 카롤링 왕저 사람들의 눈에 알퀭은 뷔데(Guillaume Budé, 1467-1540)였다. 문화의 도피처이자 그의 출생지인 요크 지방의 폐쇄된 지역에서 밖으로 나온 알퀭은 동과 서의 사조가 서로 교차할 수 있도록 투르 지방을 풍부하게 한다. 아가(雅歌, Le Cantique des cantiques)의 말씀은 이렇게 실현될 것이다. “나의 님이 자기 동산에 왔고, 자기 나무의 열매로 만족했노라.” 새로운 다윗이라고 샤를마뉴 대제는 시편(Psaume)에 호감을 가졌다. 경전시대, 로마시대, 크리스트교 시대를 지나서 알퀭의 붓은 농경시적이거나 논쟁적이 된다. 자신의 “성직” 임무를 의식한 그는 회복된 제국으로 하여금 영국에서 얻어온 전통으로 향하게 한다. 그래서 문화는 우여곡절의 길을 걷는다. 교회는 곧 교황이다. 그러나 황제가 없으면 교황은 무엇인가? 교회 국가의 철학은 신학 없이 설명될 수 없다. 철학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 그것을 합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4]
파스칼(1623-1662)의 어리숙한 명제에 따르면, 인간의 병을 제외한다면, 인간성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 인간의 모습을 본 딴 것이다. 프랑크 국민은 같은 그룹으로 이해되는 그리스와 로마를 알지 못하였다. 새로운 혈통이 르와르 지방의 여러 강 위에 흐르고, 교회의 세계용 수반을 사용하여 세례 하듯이 강의 여러 갈래들에게도 회복하였다. 구원은 도래하지 않았다. 철학은 보충적인 몇몇 예비물을 요구했다. 프랑크 왕의 법령집(Capitulaires)의 상부구조는 프랑스에서 주교나 수도원 학교의 개교에, 그리고 첫째 아카데미[궁정 아카데미]의 창설에 기여한다. 다른 영지에 속하는 국민은 여러 대수도원과 소수도원 가까이 강을 따라 정착한다. 로망스어는 정확히 9세기에 유포된다(리트레(1801-1881) 견해에 따라). 베르됭 조약(843년)에서 그 언어는 외교적 가치를 얻는다. 그러나 철학적 차원의 언어는 없었다. 따라서 16세기 말까지 라틴어는 필수 불가결한 문화적 지주로서 남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학들이 자신들의 주제를 세네카(Seneca, 전4-후65)의 언어에서 벗어나서 주창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20세기 초에 와서야 가능했다. (15)
이 시대[중세]에 있어서 보편적 지식은 계시와 전통, 경전과 신에 의존한다. 크리스트교 세계관은 그리스 세계관을 대신했다. 신의 삼위일체, 신격(신의 제1위)의 거동, 말씀(신의 제2위)의 본성, 초자연적인 은총의 분배, 천사와 악마의 개입, 인간으로 태어남(신의 제3위) 등은 생성과 그 전개를 지배한다. 만일 종교적 전제에 다른 것과 달리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의심은 아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선 세계와 제휴하여 거대한 차원에서 생각하면서 이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의심이란 아는 것이다. (15)
알퀭은 황제에게 자연적 사물에 대하여 올바르게 인식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는 아름다운 욀랄리(Eulalie, 샤를마뉴 여사촌)의 영혼의 “여러 이법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즉 삼위일체의 본을 딴 삼중인간과, 인간을 다른 종으로부터 구별하게 하는 이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실재상으로는 하나이며 기능상으로는 다수인 영혼은 지적 형식(지혜)의 도움으로 감각적 사물들을 인식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사물이 지금 이 순간에 있다고 하는 신적 정신과는 반대로, 내가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동시에 나는 로마를 생각할 수가 없다. 영혼이 아무리 신속하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움직임은 한번에 단 하나의 대상에 고정될 수밖에 없다. 영혼은 시간을 넘을 수 없다. 영혼의 사유는 개체를 개체로 대체함에 따라서 분석적으로 전개된다. 요약하면 알뀅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결론 지을 수 있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신이 아니다.
9세기 인간은 네안데르탈인(Homme de Néandertal)이 아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리스인도 로마인도 아니다. 그는 야만적이면서 크리스트교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의 문화를 가질 만한 존재이다. 황제들(Césars)이 닦아 놓은 영토의 각 부분으로 이 문화는 전파되어 나갔다. 크리스트교는 지식의 이론을 크리스트교의 구원의 교설 속에 혼합시켰다. 플라톤(전428-348)과 세네카(Seneca, 전4-후65)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를 거쳐서 이 교설들을 새롭게 만드는 바탕이 되어 주었다. 800년대 태평성대를 누리던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 알퀭의 죽음, 오를레앙 학교의 설립자인 테오뒬프(Théodulfe, 755경-821)의 전성기, 그리고 여러 제도들 등은 종교적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이러한 것들은 죽은 자들의 대화를 이상적으로 병합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한 시기의 가능하면서도 어려운 지식, 즉 본질을 이루는 이법의 지식을 알려준다. 기억력을 초과하는 많은 역사, 변화, 발산, 기대 및 사치는 잊혀진다. 알퀭의 프랑크 왕 법령집의 준비와 더불어 프랑스 철학아의 미래가 시작된다. (16) (5:09, 59M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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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로비네(André Robinet, 1922-2016) 프랑스 철학자, 프랑스 철학 사가. 국립과학연구소(CNRS)소장, 벨기에 브뤽셀 대학 교수, 라이프니츠 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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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아브라함(Abraham (en hébreu : אַבְרָהָם ; en arabe : إبراهيم, /ib.ra.ˈhim/ 전2000?-1800?), 중동의 전승인물, 아랍 전승의 조상.
1100 다윗(David, Δαυὶδ, « bien-aimé ». )은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 음악에 조예가 깊다. 이스라엘 유다지파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 중 막내였다. 사울 왕을 이은 후계자.
1000? 솔로몬/살로몬(Salomon, en hébreu: שְׁלֹמֹה (shĕlōmōh), ?-전931), 고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들.
428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전428-348) 고대 그리스 철학자. 폴리테이아(La République,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04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전4-후65) 로마제국의 정치인, 철학자, 문학자. 네로의 스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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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베드로(gr. Πέτρος, lat. Petrus, ital. Pietro, 1년경?-67)는 크리스트교 열두 사도 중 한 사람, 초대 교황(재위: 33년 4월 1일 ~ 67년 6월 29일)
[에우랄리아(Eulalie, Εὐλαλία: Sainte Eulalie de Mérida, 290-304), 여성 순교자. 스페인 메리다 출신 메리다에서 순교, 바르바르 족이 산채로 태워죽었다. / 프루덴스(Prudence, Aurelius Prudentius Clemens, 348-408경)[남성]의 찬송가 속에 에우랄리아의 예문들이 나온다(Peristephanon 3).]
316 성 마르땡(Saint Martin, 316-397), 헝거리 출신, 로마 장군, 투르 주교로 별세, 성자 축일의 날자가 없이, 망토를 반으로 잘라 성문 앞의 거지에게 준 사건으로 성인으로 추앙받았고, 전승에서 성자로 추앙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메로빙 왕조(481-752)와 카롤링 왕조(752-987)의 후원자가 되었다.
35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4세기 북아프리카 츨신 신학자, 주교,
[[466 클로비스 1세(Clovis Ier, lat. Chlodovechus, 466경-511),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골지방을 통치하여, 메로빙 왕조를 열었다.
[[714 뻬뺑(Pépin III, « le Bref », Pippinus III Brevis, 714-768), 프랑크 왕(751-768), 751년부터 카롤링 왕가 성립. 그의 아들인 샤를마뉴(Charlemagne, lat. Carolus Magnus, 747?-814)가 768년에 왕위를 이어, 그의 이름 딴 왕조이다.
559 그레고와르(Grégoire de Tours, 559-594), 투르 주교, 10권의 프랑스사를 쓴 역사가이기도 하다.
673베드(Bède, dit le Vénérable, lat. Beda Venerabilis, 673-735), 앵글로 색슨계 수도사. 문인. 영국 민족의 복음 역사(l'Histoire ecclésiastique du peuple anglais),
700? 에그베르트(Ecgberht ou Egbert, ?-766) 요크의 주교. 노르망디의 왕(에그베르트)의 동생. [고려에서 왕과 국사의 관계처럼, 종교시대에 권력의 양면을 가족들이 장악.]
730 알뀅/알쿠이누스(Alcuin, 730-804) 라틴어를 사용한 영국 신학자, 시인, 과학자. 영국서 태어나 프랑스 투르에서 죽었다. 샤를마뉴의 스승이자 자문이었다. [앙드레 로비에의 “프랑스 철학사”에서]
740 샤를마뉴(Charlemagne,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740?-814), 카롤링 왕조 제2대 프랑크 국왕이자 초대 로마인의 황제.
750? 욀랄리(Eulalie, Gundrade/Gundrada, ?-?), 샤를마뉴의 여사촌, 여수도사, 팔라틴 아카데미의 회원, 알뀅은 그녀에게 저술을 헌정했다. / 동명이인으로 Gundrada: Etre humain; enfant de Pépin d'Italie et Chrotais.
755 테오뒬프(Théodulfe, Théodulf d'Orléans, 755경-821) 스페인 출신, 카롤링조의 문인, 오를레앙 주교, 카롤링 왕조의 부흥의 주역이었다.
1467 뷔데(Guillaume Budé, 1467-1540), 프랑스 인문학자. 에라스무스(Érasme, Erasmus, 1466-1536)와 편지교환, 프랑스와 1세(François Ier, 1494-1547)의 궁전에 접근했다.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1801 리트레(Émile Littré, 1801-1881), 프랑스 의사 어휘사전 편찬자, 철학자, 정치가.
*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초판은 1953 쟝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 1903- 1985 )가 썼다, 그리고, 앙드레 로비네(1922-2016)가 1966년에 새로 쓴 것이다. / 그리고 뜨로띠뇽(Pierre Trotignon, 1932-2025)은 전후에서 구조주의가 성행하던 프랑스 철학에 대해 썼다. (Les Philosophes français de 1945 à 1965)
- 시간 또는 자연, 우주발생론의 사유 계보로서, 벩송, 브레이어, 쟝켈레비치, 로비네, 뜨로띠뇽이다. 그리고 들뢰즈(1925-1995)과 바를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박홍규와 윤구병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마르무띠에 수도원(L'abbaye de Marmoutier) 베네딕트 수도사들의 수도원이다. 투르에서 3킬로 떨어져 있고, 현재(1990년)에는 폐허지로서 보존되어 있었다. 그 안에 수도사들의 토굴(토굴)들 중에, 높은 곳에 위치한 토방은 밑에서 두르박으로 음식을 올려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높은 몇 개의 토방과 달리 평지의 토방 흔적들은 겉으로 보아 긴 미로를 따라 각 토방들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수도원은 이집트의 나일강 동쪽 산맥에서 홍해를 향한 토굴도 마찬가지라 한다. 이 홍해의 토굴은 인도의 요기(요가수행자)들의 수행처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 라스코 동굴(Lascaux Caves)은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동굴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1940년 마을 소년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뒤, 197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동굴 안의 기원전 17000년~15000년 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 그림이 매우 유명하다.
* 육진법(Un système sénaire) est un système de numération de base six.
* 아가(雅歌, Le Cantique des cantiques, en lat. Canticum canticorum Salomonis), Cantique (ou Chant) 헤브류 경전에서 시들로 된 서적들 중의 하나다. 솔로몬(Salomon, ?-전931)의 노래라고 한다.
* 시편 : 다윗의 시, 노래이다.
* 네안데르탈인(Homme de Néandertal):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 또는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 s. neanderthalensis)는 45만년 전부터 공통 조상으로 생존했다가, 약4만년전까지 유라시아에 살았던 구인류의 절멸한 종 또는 아종이다.
(7:08, 59MLH) (7:13, 59M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