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재완
임진왜란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임진왜란을 전후로 우리는 일본이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되지만
임진왜란이 있기전까지 일본이란 나라는 한낱 섬나라 골치 아픈 해적일 따름이었다. 그런 섬나라 일본이
어떻게 조선을 넘어 중국대륙을 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일본의 시대를 바꾸는 기막힌 개화(칼에서 총의 문화로 옮겨나기)가 있었다.
반면 조선은 송나라에서 이식한 성리학이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로 굴림하고 있었다.
: 안타깝게도 조선은 불교에서 유교라는 이데올로기로 바뀔 뿐...)성리학은 인간의 삶을
다스리는 좋은 학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이식되면서 폐쇄적인 학문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대외적인 상황과 달리 조선의 국내정치는 그야말로 피비린내나는 숙청의 연속이었다.
고려말에서 시작된 정적 죽이기(공민왕이 간신 김용의 모략에 속아 홍건적의 난을 진압한
충신 김득배,이방실 등을 숙청한 사건) 는 조선 태조대에 이르러 극을 달하였으며 이후 태종의 형제의 난, 세조의
단종폐위 및 김종서를 위시한 정적 숙청으로 이어졌으며 청렴한 사대부인 사육신마처 사지로 내몰았다.
이른바 권람과 한명회, 신숙주(: 필자는 이들을 권력에 눈이 먼 개망나니라고 칭하고 싶다.
이 잡것들 때문에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다. 이 패거리 잡놈들 때문에 구한말 무능한 고종이
들어섰고 을사늑약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국운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 시기 무도한 권력에 염증을 느낀 지식인들의 자발적 낙향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등을
위시한 무도한 권력에 나라의 안위를 도맡았던 충신들이 숙청되었으니 어찌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었겠는가?
나는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당시 권력을 가진 자들의 대대적인
숙청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임진왜란은 유능한 장수와 위기에 뛰어난 전략을 세울 인물들이 부재한 틈을 타고 서구의 총문화를
일찍이 받아들인 사무라이 일본에 굴복한 일대의 사건이었다.
다행히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장수가 있었다. 다행히 위기에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줄 알았던
남명과 같은 지식인이 있었다. 고려말 공민왕 때부터 이어진 숙청의 피바람은 조선초기 왕실의 권력에
빌붙어 개인의 영달을 탐하던 간신들에 의해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대라는 쇄국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그 이면에 정신의 수양을 외친 성리학이 있었지만 문제는 좋은 사상을 제대로
이용후생하지 못한 탓이 크다.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는데 유독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주나라적 문왕의 태평성대만을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