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60) 야구와 교회의 공통점 / 존 알렌 주니어
몇 년 전 필자는 야구와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는 아홉 가지 공통점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여기에는 인필드 플라이와 바오로 특전같이 초심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과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굉장히 유행하고 있다는 점, 과거의 기록을 중시한다는 점 등이 포함돼 있다.
현재 미국에서 야구 구단주들과 야구선수들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던 야구 개막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지난 칼럼의 연장선에서 열 번째 공통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열 번째 공통점은 야구와 가톨릭교회는 둘 다 흥행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둘 다 경영진이 어떠하든 떠나지 않는 열정적인 팬들이 있어 경영상 문제를 일으켜도 이들 팬은 떠나지 않는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사무국과 선수노조는 야구 경기 재개를 논의하고 있다. 수 주 동안 양측은 서로에게 악감정을 퍼부어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지긴 했지만 6월 17일 현재 양측은 그래도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말이다.
양측은 모두 정상적으로 팀당 162 경기를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가능한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경기당 수당을 온전히 받길 원한다. 구단주들은 무관중 경기를 치르면,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손해를 보게 되니, 시즌을 줄이거나 선수들의 연봉을 삭감하길 바라고 있다.
많은 야구팬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가운데, 선수들이 자기들의 잇속만 차리려고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구단주들은 또한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구단들은 리그를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큰 손실을 보고 있다고 호소하면서도 터너 스포츠와 32억 달러 규모의 플레이오프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최근 필자는 ESPN 야구 해설가 칼 라비쉐의 인터뷰를 들었다. 그가 한 말을 정확하게 인용할 수 없지만, 그의 발언 요지는 메이저리그 재개 협상에 제3자인 팬들의 요구도 들어가야 하지만, 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팬들이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영향력은 체계가 제대로 갖출 때까지 모든 야구 경기를 보이콧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다수의 야구팬들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야구 경기가 열리면, 야구장에 가려 할 것이고, 야구 경기가 TV로 중계되면, 어찌됐든 그 중계를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담컨대, 만일 내일 당장 야구 경기가 재개된다면, 대부분 팬들은 구단과 선수 노조의 악다구니 싸움을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해버릴 것이다.
야구 경기 재개 논의와 마찬가지의 경우가 가톨릭교회에도 있다. 오랫동안 필자는 교회활동가들이 신자들에게 성직자 성추행 추문과 같은 모두가 납득할 만한 분노에 대해 기부를 멈추거나 미사를 보이콧하거나 본당 전출 등의 방법으로 표출하라고 설득하는 것을 보아왔다. 물론 몇몇 신자들을 이를 따랐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교회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야구팬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불완전함에도 교회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신자들은 신앙과 교회기관의 차이점을 식별하고 있으며, 구단과 선수들 사이의 다툼에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야구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야구팬과 마찬가지로 다른 일을 제쳐두고 자신의 본당과 자신의 영성 생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야구와 가톨릭교회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만일 야구팬이 야구를 포기할 수 없다면, 캔사스시티 로얄스와 같은 사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작은 시장을 갖고 있는 가난한 팀이지만, 캔사스시티 로얄스는 최근 올해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연봉을 100 보전하고, 한 명의 선수도 방출을 안 시키기로 결정했다. 근거는 이렇다. 대부분 메이저리그 경기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이들 선수들 다수는 자신들의 동네에서 대학과 전문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코치나 스카우트 역할을 하면서 야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캔사스시티 로얄스 데이튼 무어 단장은 “이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야구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 명의 선수라도 방출을 피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운영 마인드라면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면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성직자 성추행 추문으로 분노하고 있다면, 로마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 있는 아동보호센터와 같은 활동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교황청 재정 추문에 크게 실망했다면, 철저하고 투명하게 회계를 관리하는 주교나 사목자에게 고맙다고 말해보는 것을 어떨까?
물론 몇몇 신자들은 소수의 야구팬과 마찬가지로 한계점에 다다라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비난은 잘못한 이들에게 보내져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목소리를 낼 다른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
존 알렌 주니어(크럭스 편집장)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