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11> 서장 (書狀)
강급사에 대한 답서
공부란 ‘相’으로부터 자유 획득
"도를 배우는 사람이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한다면, 비록 그와 머리를 맞대고 이치를 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어리석게도 바깥으로 치달려 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흔히 공부의 지침으로 하는 말 가운데, '밖으로 달려나가 구하지 말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밖'은 어디이고 '안'은 어디인가? 무엇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며, 왜 '구하지 말라'는 것인가?
{반야심경}을 들어 말하면 "물질·느낌·생각·의지·의식의 오온(五蘊)이 곧 공 (空)"이기 때문이고, {금강경}을 빌어 말하면 "색깔·소리·냄새·맛·촉감·의식의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밖'은 곧 오온·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로 경험되는 모든 '상(相, image)'의 세계를 가리키며, '구한다'는 것은 그렇게 경험되는 '상에 머문다'는 말이다.
흔히 취하고 버리는 분별심이 중생의 씨앗이요 번뇌의 뿌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분별하여 취하고 버리는 것은 곧 '상'에 머무름을 뜻한다. '상'에 머물지 않는다면 분별이 생길 수 없고, 분별이 생기지 않는다면 취하고 버림은 있을 수가 없으며, 취하고 버림은 곧 갈등(葛藤)을 야기하므로 번뇌의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결국 공부란 '상'에 머물지 않고 '상'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함이 된다.
그렇다면 '상'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의 자성(自性)이 '공 (空)' 임을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모든 상이 결국 허망할 뿐이며 모든 상은 그 자성이 공'임을 알아차릴 때에야, 비로소 '상'에 머물던 마음이 거두어져서 '상'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상의 자성이 공'임은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이제 거울을 가지고 비유하여 설명해보겠다.
'거울'이란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거울'이라고 하면 유리거울을 생각에 떠올린다. 그러나 '거울'이란 것이 영상을 비추는 물건을 의미한다면, 유리뿐만 아니라 물·구리·알루미늄·돌에 이르기까지 그 재료가 어떤 것인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재료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영상을 비춘다'는 의미에서만 '거울'을 생각 해본다면, '거울'은 곧 '영상'을 비추어내는 '기능' 혹은 '작용'일 뿐임을 알 수가 있다.
이제 '비추어내는 작용'과 '영상'의 관계를 살펴보자. '작용'이 있으면 '영상'도 있고 '작용'이 없으면 '영상'도 없으며, 마찬가지로 '영상'이 있으면 '작용'이 있고 '영상'이 없으면 '작용'도 없다. 그러므로 '작용이 곧 영상'이고 '영상이 곧 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영상'은 '상(相)'으로 구분되는 것이지만 '작용'은 '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즉 '작용'은 '공(空)'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상'은 무상 (無常)하게 변화하며 늘 차별되지만, '작용'은 늘 청정하고 평등하다. 그렇긴 하나 역시 '작용이 영상'이고 '영상이 작용'임에는 틀림없다. 말하자면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마음에 나타나는 오온·십팔계의 온갖 '영상'들은 비추어내는 '작용'에 의하여 나타난다. 이 비추어내는 '작용'이 오온·십팔계의 자성이며, 곧 우리가 찾고자 하는 '거울'인 본래 마음이다.
그러므로 육조혜능은, "그대들이 마음의 요체를 알고자 한다면, 다만 선과 악을 구분하는 모든 분별 사량을 멈추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면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바탕으로 들어가서, 늘 고요하면서도 묘한 작용이 무궁무진할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언제든지 온갖 차별 되는 '영상'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 '영상'에 머물러 분별에 끌려다니지 않고, '영상'의 자성이 곧 일미청정(一味淸淨)한 '공'인 '작용'임을 체험하여 확신 한다면, 이미 우리는 '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자! 이제, 독자 여러분은 이 순간 스스로의 '상'을 돌이켜보길 바란다. 어떤가?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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