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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종일 노래부른다고 탓하지 마라 |
A Minor Bird
Robert Frost
I have wished a bird would fly away, Have clapped my hands at him from the door, The fault must partly have been in me, And of course there must be something wrong, |
작은 새
로버트 프로스트
나는 새가 날아가 버리길 바랬다, 밖으로 나와 새에게 손뼉을 치기도 했다, 잘못은 얼마간 내게 있었음에 분명하다, 게다가 어떠한 노래이든 그것을, 번역 : 김기태 |
(출처) Robert Frost, <West-Running Brook(1928)>
주태석 작, <자연 이미지>
새는 노래하고 물고기는 헤엄친다. 그것은 엄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새에게 노래하는 본성을 빼앗고 물고기에게 물 속을 헤엄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노래와 헤엄을 금지시키면 그들은 본능을 잃은 채 죽어버리고 만다.
일찍이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리지 말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라고 설파하였다. 인간의 짧은 안목으로 보기에 오리는 너무 다리가 짧고, 학은 필요 이상으로 다리가 길다. 흔히 말하는 황금률, 팔등신의 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오리다리를 늘리고 학의 다리를 자른다면 자연의 이치를 어기는 일이다. 오리다리가 늘어지면 더 이상 그 새는 오리가 아니고, 학의 다리가 짧아진다면 학의 진정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서양에도 비슷한 우화가 있다. 테세우스(Theseus)가 아버지를 찾아 아테네로 가는 동중에 여섯 명의 괴한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만난 악당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철로 만든 두 개의 침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길이가 짧고, 다른 하나는 짧은 침대였다. 키가 큰 나그네가 지나가면 길이가 짧은 침대에 눕힌 다음 침대보다 긴 부분을 잘라서 죽였고, 키가 작은 나그네에겐 길이가 긴 침대에 눕게 하고 침대 길이로 몸을 잡아 늘이는 방법으로 죽였다. 테세우스는 이를 물리치고 악당이 하던 방식대로 그를 처치해 버린다.
장자에 등장하는 학과 오리의 우화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설화는 자연의 본성을 어기면서 타인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충고이다. 자연은 그 다양성으로 인해 아름답고 생명은 그 고유함으로 인해 신비롭다. 우주 만물과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이 이 질서를 지키며 본능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데 오직 인간만이 이를 거스른다.
인간의 오두막 옆 나뭇가지에 새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그 새는 빽빽한 가지와 무성한 잎사귀 속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암컷 새를 불러와 신방을 차리고 살림을 가꾸었다. 한창 사랑하고 행복하던 그 때에 인간이 찾아와 큰 소리로 손뼉을 치며 내쫓았다. 새들은 잠시 자리를 물렀다가 다시 돌아왔고, 인간은 그 때마다 새를 내쫓았다. 그러나 본시 오두막이나 나무 보금자리는 자연의 것이었다. 더부살이 하기에는 인간이나 새나 마찬가지다. 새가 성가시게 지저귄다고 하여 인간이 불평하거나 새를 내칠 이유가 없다. 새라고 해서 인간의 말소리가 역겹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홍방울새 부부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인간은 가장 의심많고 편협된 존재이다. 가장 늦게 지구에 깃들인 그들은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라 여기며 다른 종들을 깔본다. 숲이 어지럽게 가린다고 베어버리고 산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하여 굴을 뚫고 신작로를 놓는다. 이 건방지고 무례한 이들은 도대체 다른 피조물들과 사이좋게 지내려 하지 않고 해치고 망치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이제 한 인간이 집 옆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새를 내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옛 선조들은 초가집과 기와집의 처마를 길게 빼서 새들이 둥지를 짓고 깃들게 했다. 새들은 처마 밑에서 따가운 햇볕과 차거운 비를 피하며 가족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집은 새들을 불러모으지 못한다. 처마가 없고 지붕이 없는 아파트에는 더 이상 새들이 둥지를 틀지 않는다. 새들과 공존하며 사는 지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의 이치에서 터득한 것이었다. 이제 그 이치와 질서를 잊어버린 인간들은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인간다운 풍모와 가치마저 놓치고 살고 있다.
시에서 오두막의 주인은 새를 탓하지 않고 그냥 놓아 두기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여러 시간이 흐른 뒤 스스로 공존과 조화의 이치를 터득한 것이다. 새들이 노래하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시의 말미에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수용되는 여러 자극에 대해 관용과 조응의 자세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을 충고한다. 자연도 자연이려니와 사회생활에서 유입되는 여러 반발과 자극들 또한 너그럽고 큰 마음으로 감내하는 것이 좋다고 이른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데 네오 내오하고 다툴 이유가 없다. 곡절이 많은 이가 신소리를 해대는 것은 자신이 너그럽고 만만하기 때문이다. 이를 싫다고 물리면 누가 자신과 친구하자고 손을 내밀겠는가? 요즘의 우리들은 예전보다 더 시선이 날카로와지고 시야가 좁아져 있다. 스스로 낮추되 넓게 오지랖을 열어서 크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석영호 작, <사람과 새>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는 일생의 대부분을 여행과 농장생활로 보낸 자유인이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자연을 통해 문학을 잉태했다. 그의 자연시는 영혼을 울리고 정신을 치유하는 힘이 있어서 불안한 이들을 평안하게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로 인해 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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