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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명상 원문보기 글쓴이: 나부자
우선 여덟에 해당하는 신지 그림 글자부터 보자.이 글자는 해독하기에 가장 난해한 글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림글자 일까? 우선 위의 그림부터 보자.
위에는 기둥 두 개가 서 있고 다음에는 'ㄴ' 과 같은 글자에 다섯 죽엄시(尸)에서 말하던 것과 같은 꼬리가 붙어 있으며 그 아래는 다시 기둥 두 개가 서 있다.
그런데 다섯에서는 이 꼬리를 사다리 놓는 장소라 하였다.
도대체 전자(篆字)란 먼저 말 했듯이 도장 새길 때 꼬부려 쓰듯이 멀쩡한 글자를 엿장수를 불러다가 마음대로 꼬부려 놓아서 알기가 힘든데 이 그림 글자를 전자로 썼을 때는 더욱더 해독하기가 어려우니 이 그림 글자에 해당이 될 가능성이 있는 그림을 백 개나 그려 봐야 한다.
이런 가능성을 가지고 아래 그림을 보자.
* 계집과 자식들이 사는 깃 (집) 그림 1.
* 계집과 자식들이 사는 깃(집) 그림 2.
다시 먼저 다섯에서 한말을 인용한다.
진서 동이전에 의하면 "여름에는 나무 위의 '깃' 에서, 겨울에는 굴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夏則巢居冬則穴處 - 晋書 東夷傳) 그렇다면 굴은 당연히 겨울집일텐데 그렇다면 ‘깃’은 무엇인가?,
우리는 닭이나 새들의 몸통이 아닌 몸통의 ‘갓’ 의 털을 ‘깃털’ 또는 그냥 ‘깃’ 이라고 하고 새들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을 "깃든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땠을까?
사람도 분명 여름에는 그 깃(巢)을 틀고 살았을 것인데 그 사람의 깃은 지금 원두막 같은 것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바로 위 그림이 그 원두막같은 그림일 것이다.
그런데 위 그림 제목에서 "계집과 자식들이 사는 깃(집)" 그림 이라 하였다.
그렇다. 이 원두막에서는 사내가 아닌 계집과 자식들만 사는 집으로 추정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우선 얼마전까지도 문명이라고는 전연 들어가지 않고 중국 정부에서도 소수민족으로 그 생활 상태를 그대로 보전, 보호하고 있던 중국의 오지에 사는 부족 즉, 우리와 유전자가 거의 같은 묘족이나 특히 모우스 부족의 집 모양과 성 생활을 보자.
* 모우스족의 성생활
지금 광동성에서 기차를 타고 일주일인가 얼마를 가야하고 거기서도 하늘과 같이 높은 천산 산맥을 넘어가면 그 너머에는 엄청난 분지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 이름이 '로고'호이다.
이 호수는 천산 산맥으로부터 눈 녹은 물이 흘러 들어와 항상 깨끗하여 물을 그대로 떠 먹어도 좋고 따라서 물고기들을 그대로 잡아 날로 먹어도 걱정할 게 없다.
여기에는 지형상 몇 천 년인지부터 뿌리를 박고 사는 부족이 있는데 이들은 몇 마디 안 되는 그들만의 언어로 문자도 없이 독특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모우스 부족이다.
즉 변동하는 외부와의 문화와 철저히 차단된 원시 인류의 철저한 박물관같은 곳이다.
이 모우스 부족이 기록상 처음 밝혀진 것은 당나라 시대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면서 이 부족에게 납치되어 고생을 한 기록 즉 '서유기' 에 나온다.
객설이지만 여기까지 신경을 써서 추리해야 이해가는 골치 아픈 글을 읽으시느라고 고생을 하신 독자님들께 쉬어가는 의미로 현장의 유래부터 옛날이야기 형식으로 말한다.
때는 바야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니고 당나라 어느 때이던가?
현장 법사의 아버지는 출중한 미남에다가 머리도 천재라 과거에서 장원 급제를 했다.
그래서 공주와 결혼을 하고 수도에서 만 리나 떨어진 어느 성주로 부임하러 떠나게 되었다.
물론 갓 결혼한 공주와 함께 며칠인가 몇 달을 마차로 달린 뒤 강을 건너게 되었다.
중국 땅은 한국과 달리 강도 무척 넓어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정도다.
이 강 한가운데서 미리 정보를 입수한 임꺽정이 같이 힘이 장사인 도둑에게 잡혔다.
다급해진 일행은 112로 핸드폰을 쳐 보았지만 기지국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지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나 ....ㅎㅎ
도둑들은 현장의 아버지와 수행자들을 죽여 강물에 던지고 공주를 인질로 잡았다.
공주도 자결하려 했지만 복중에는 이미 현장이 들어 있었고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이 아이를 잘 키워 꼭 복수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꺽정이같은 도둑의 두목은 현장 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임명장의 사진을 바꿔 붙인 다음...아니 그땐 사진이 없었고....도장과 모든 서류들을 빼앗고 자기가 새로 부임하는 성주인체 빼앗은 임명장으로 성을 접수 했다.
그리고 공주를 아내라 하였는가 하면 글씨깨나 잘 모방하는 부하를 구해 현장 아버지의 필체를 그대로 위조, 도장을 찍고는 무사 도착 보고도 했다.
달이 차자 현장이 태어났을 때 두목은 현장을 칼로 죽이려 했으나 공주는 제발 마누라 노릇 순순히 해줄 테니 아이만큼은 무참히 칼로 죽이지 말고 강물에 띠워 내버리자고 애원 했다.
도둑은 강물에 띠워 보낸다고 살 것도 아니니 그러라고 했고 공주는 혈서로 이 피나는 사연을 일일이 기록 한 다음 아기와 함께 갈대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띠워 보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 강 하류에서 어느 스님이 이 바구니를 건저 자기네 절로 데려다가 젓동냥을 다니며...아니지 이는 심봉사 이야기고, 양, 염소의 젖을 짜다 먹이며 이 아기를 친자식처럼 키웠다.
물론 그 누군가가 보면 관가로 알려 달라는 혈서는 감춘 채...
현장은 그 아버지를 닮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천재였다.
스님은 현장에게 불법도 가르치는가 하면 비싼 강남의 과외비도 마다 않고 영어니 수학이나 또 고등고시 준비도 시켰다.
한편 꺽정이같은 도둑은 양민의 재산을 수탈하여 일년에 몇 번씩 황제에게 진상품을 올리며 이 지방은 꺽정같은 나쁜 도둑들이 많이 있으나 자기가 다 평정하고 지금은 태평 성대하니 염려 말라고 보고했고 공주도 어느새 꺽정이같은 도둑의 품에 녹아들었다.
즉 그 방면에는 백면 서생이었던 현장의 아버지와는 달리 이 꺽정은 그 억센 힘과 기교로 공주를 매일 밤 기절하게 하니 공주는 어느덧 전남편과 현장을 잊고 그러다 보니 공주는 애를 몇 명씩이나 낳았다.
황제는 딸과 사위가 너무 오래 외지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안쓰러워 도로 불러들이려 했으나 그때마다 공주는 여기는 태평 성세라 살기가 좋고 백성들이 떠나지 말라고 촛불 시위까지 벌여 그대로 거기에 눌러 살고 싶다는 편지를 했다.
세월이 흘러 현장이 장성하고 고등고시...아니 과거가 있자 현장은 과거에 응시, 역시 장원 급제했으며 또 어여쁜 공주는 현장을 사모했고 황제도 현장을 부마를 삼으려 하자 현장도 이 아름다운 공주를 보고 여기에 반해 중이고 나발이고 공주와 결혼하고 벼슬길에 나가려 하였다.
그제서야 스님은 그 혈서를 현장에게 보인다.
현장은 물론 아연 실색, 이 혈서를 황제에게 올리고 현장으로부터 이 혈서를 전해본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처 올라 군사 만 명을 주며 당장 그 성을 점령하고 그 도둑과 도둑의 씨가 있다면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참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현장은 당장 그 성으로 달려가 그 도둑을 참살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 도둑의 씨들이란 바로 그간 어머니가 낳은 도둑의 자식들, 즉 아비가 다른 형제들일 줄은 몰랐다.
현장의 어머니는 현장에게 애원한다. 제발 애들 목숨만은...
그러나 국법이 지엄 하거늘...망설이는 현장을 보고 그 부하들은 하는 수 없이 국법에 따랐다.
그러자 현장의 어머니는 목매어 자결하고 말았다.
한편 전승의 환호가 아니라 피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돌아온 현장에게 스님은 말한다.
"중생들의 업보가 다 그렇거늘...너는 공주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서장(西藏 -인도)으로 건너가 불경이나 구해 오너라"
"스님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셨죠?"
"그렇다. 그러나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 도둑과 네 어머니는 언젠가 들통 나 그렇게 죽게 된다."
"그렇더라도 저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게 하고 저의 가슴에 이렇게 피눈물나는 대못을 박아 주시다니요?"
" 잘 듣거라!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불경은 대부분 구전된 것이라 엉터리가 많고 또 범어( 梵語, 싼스크리스어)로 기록된 것도 있기는 하다.
하나 이는 모두 범어를 모르는 엉터리들이 번역하여 부처님 말씀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써놔 불법에 오해가 많구나."
" 그 동방예의지국에 있다는 하느님 말씀 신지녹도전자를 아무도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음양오행설 등 엉터리로 해독하고 있다는 그와 같다는 말씀입니까?"
"그랴!. 그러니 너는 지금 당장 서장으로 건너가 이 범어를 완전 통달하여 박사가 될 때까지 공부하고 돌아올 때 범어로된 불경을 모두 구해가지고 와서 이것을 네 평생 번역하거라.
그 천부경인지 뭔지는 아무도 해석할 놈이 없듯이 이것은 너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고 이것이 네 업보를 소진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니라.
그까짓 공주와 늙어 죽는 게 대수냐?"
"서장은 무척 멀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 비단길(실크로드)을 따라 가야 하는데 말이 길이지 사람은 아직 별로 다니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길이 얼마나 험한지 사막을 한달 씩이나 가다가 목말라 죽고 여기서 겨우 살아남아 숲이나 물이 있는데 가면 이번에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들이 들퍽거리니 만약 백 명이 가면 한두 명 살까 말까 한 험악한 길이다.이 길을 네가 가겠느냐?"
"그렇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현장은 차라리 그러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피나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스님은 현장의 보디가드로 천하의 말썽꾸러기 손오공을 붙여 주었다.
이놈의 몰골은 꼭 원숭이를 닮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산이나 나무타는 것이 비호와 같고 힘이나 용력이 당할 자가 없는데 얼마나 말썽꾸러기인지 이놈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살수가 없는 기라...그래서 스님은 도술로 이놈의 머리에 철테를 씌우고 바위 굴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이다.
이런 놈을 풀어서 순박한 현장의 경호원을 하라는 것이니.... 이 말을 듣고 먼저 웃은 건 손오공..."
" 저 녀석이 제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스님?"
" 않들으면 "일시무시일" ...아니지 그건 최치원 천부경 소리이고 ...'수리수리 마수리 대갈통 죄어져라' 를 외우거라 그러면 저 철테가 죄어져 저놈의 머리통이 깨어질 테니...그리고 네 임무가 무사히 끝나면 저 철퇴를 풀어 주거라... 하긴 그때는 철테가 없어도 말썽부리진 않을 테지만..."
현장은 이 말썽꾸러기 손오공을 데리고 가다가 불타는 개울에서 불타 죽을 뻔도 했고 꼭 돼지같기는 하나 힘은 장사인 저팔계에게 죽을 뻔도 하고 또 물귀신같이 헤엄을 잘 치는 사오정을 만나 또 죽을 뻔 했으나 그래도 손오공 덕에 이 녀석들까지 제자로 삼아 데리고 가는데 여기의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한편 죽을 사막의 땅을 겨우 벗어나자 손오공 놈이 "밥도 안주고 일만 시킨다" 며 불평하고 산으로 도토리를 따 먹으러 가고 저팔계는 호박을 하나 따 통째로 먹고 그대로 낮잠을 자고 있으며 사오정은 개울로 송사리를 잡아 먹으러 간 사이 현장은 숲 속에 숨어있던 요괴들에게 납치되는데 요괴들은 저팔계는 아예 돼지로 봐 그대로 두고 현장만 납치해 간다.
이 요귀가 바로 모우스 여인국의 여인들이다.
모우스 부족은 먼저 말했듯이 높은 산에 가로막혀 외부에서 알 수 없는...그래서 외부와의 세계에서 단절된 채 그들만의 전통이 수천 년간 전해오는 부족인데... 그들이 그 높은 산을 넘어와 사내들만을 납치해 가는 이유는 딱 하나...종자를 퍼트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 부족에겐 남자가 없는가? 있긴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다시 돌리자
지금 재야 사학계에서는 인류가...특히 우리의 조상들은 몇 천 년 몇 만 년서부터 호화로운 궁궐을 짓고 신선과 같은 옷을 입고 선녀와 같은 여자들과 성스러운 결혼을 하며 살았다고 꿈을 꾼다.
그러나 이는 동물의 세계나 인류 발달사를 보더라도 천만에 만만에 뚱딴지 캐먹는 소리이다.
재야 학계에서 이런 근거 없는 뚱딴지 캐먹는 이야기나 자꾸 하니 학계에서는 아예 재야 학계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러면 재야 학계에서는 기존 학계를 이병도 반민족 사관으로 보려 한다.
인간도 동물인만큼 그들의 본능은 벗어 날수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지금도 아마존 유역이나 아프리카 오지 그리고 중국의 오지에서 문명과 철저히 단절된 오지 부족들의 생활상을 보자.
현재까지 이런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는 오지인들은 사람의 씨가 아니고 짐승들의 씨이며 우리 조상들만 사람이라 수천 년 수 만 년 전부터 문화 생활을 했다고 믿을 것인가?
인류도 처음에는 짐승과 같았을 것이고 다만 별다른 무기가 없는 인간에게는 머리 쓰는 것이 무기 일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쓰고 이것이 부족 간 전쟁 등을 통하여 서로 교환되다 보니 차츰 문명이 생겼을 것인데 이 문명이라는 것도 신석기나 청동기 시절을 되면서 그제야 시작 되었다고 볼 때 그 이전 즉 구석기 이전은 그야말로 동물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또 인류가 동물과 다른 만물의 영장이고 고등 동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부심에 불과하며 지구 위에서 생명들이 살아가는 자연 섭리면에서는, 즉 神의 섭리로 본다면 가지고 가지도 못할 먹이 감(돈)을 싸 놓고 또 쌓아 놓느라고 피땀을 흘리며 평생의 세월을 거기에 다 소비하고 또 동물들은 자유로이 넘나드는 본래의 땅덩이에 인간만이 쓸데없이 금을 그어놓고 서로 죽이고 있는 것을 동물이 본다면 세상에 어리석은 동물은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딴소리 그만하고...
하여간 인간도 동물인 이상 동물의 본능을 알기 위하여 사자를 예로 들자.
사자의 수컷은 무리를 통솔하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
사냥도 암컷이 하면 제일 먼저 가서 맛있는 부위부터 잡숫는 건 숫사자이고 이때 그 사슴을 잡아온 암놈 까지도 침을 흘리며 숫 사자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딴 무리들과 일단 전쟁이 나면 목숨을 걸고 자기 무리를 보호 하는 것은 이 수컷들이다.
사자나 곰이나 유인원인 진빤찌나 오랑우탕이 모두 그렇다.
이 동물의 본능이 그대로 살아있던 곳이 지금 말하는 모우스 부족이다.
이곳은 남녀가 한 집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사내 따로 여자 따로 사는데 일은 여자들이 하고 사내들은 놀고만 있다가 여자들이 지어놓은 곡식만 갔다 먹는다.
물론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여자네 집을 짓거나 무겁고 어려운 일을 할 때야 사내들 무리가 나서지만 보통 일은 모두 여자들 차지이고 사내 무리들은 외적에 대비하여 제식 훈련이나 총검술, 사격 훈련 등...아니 그땐 총은 없었고... 군사 훈련만을 해 왔다
그러나 몇 천 년이 흐르도록 외적이라는 것은 나타날 수 없는 곳이 이곳이니... 이곳 사내들은 로고호 상류 솟아나는 온천에서 10분 휴식 한다며 목욕이나 하는데 이놈의 10 분이 하루가 되고 한 달, 일 년...몇 천 년이 흘렀다.
그렇다고 심심하면 고스톱이나 쳐야 할 텐데 군 부대에는 화투가 없으니 자연 여자 다루는 기술과 이야기 일수 밖에...
한편 이곳 여자들의 집은 지금도 위 원두막같은 집들이 둥글게 죽 붙어 있어서 지금 월드컵 경기장 같이 해 놓고 사는데 여기 안마당은 공동 작업장, 공동 취사장이고 아래층에는 돼지 등 짐승들을 기르며 위층은 초경이 시작된 계집아이에서 월경이 아직 끝나지 않은...즉 젊은 여인들이 방 하나씩을 배정 받아 사는 곳이다.
그러니까 소녀가 14-15세가 되어 초경이 시작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이 방 하나를 배정 받는데 이때 이 소녀에게 가장 먼저 성교육을 시키는 사람은 사내들 중에 가장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6개월쯤 단골손님이 되고 이 소녀가 뭣좀 알게 되면 그때부터 손님을 받다가 늙어 월경이 끝나는 할머니가 되면 방을 반납하고 가운데 공동 생활소로 내려온다.
이 여인들은 낮에는 공동으로 일을 하지만 밤이 되면 아기들은 할머니들이 돌보고 젊은 여자들은 맑은 호수에서 목욕을 한 다음 머리에 꽃을 꽂고 손님을 받으러 자기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열어 놓은 다음 대장금이 노래를 부르며 손님을 기다린다.
" ♬오나라 오나라 아주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그리고 손님이 오면 문을 닫는다.
그러니까 다음 손님은 당연히 문이 열린 집만을 찾아 가야 한다.
여기의 손님이란 당연히 사내 들이다.
그러니까 사내들이란 여자와 한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내아이가 일단 일곱,여덟 살이 되면 어머니들이나 할머니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무리아들(庶子)들이 사는 부락(部落)으로 간다.
여기서 어머니들이나 할머니 '들' 이란 젊은 여자가 일단 임신을 하거나 아기를 낳으면 "임시 휴업"의 간판을 자기 방 문 앞에 내어 걸고 여자 공동체로 가서 자기 자식한테만 젖을 먹이는 게 아니라 다른 젖먹이 아이한테도 똑같이 젖을 먹이고 같이 돌봐주고 할머니들도 내 손자 네 손자가 없이 역시 그러니 아기들은 어느 것이 자기의 친 엄마인지 할머니인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엄마들이고 할머니들이다.
이렇게 크던 아이들이 엄마들을 떠나 사내 부락으로 온 사내아이는 선배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할 텐데 군기가 개판이 되어 훈련도 안 하고 그렇다고 여자들이 다 일해서 곡식을 만들어 주니 일할 필요가 없어 하루 종일 놀기만 하는데 일단 여자들이 일을 해주니 사내들은 그 여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여자들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를 연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아이가 14-15세로 성장하여 사내가 되면 여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지긋한 여인이 선정되어 이 소년을 성교육시키고 이 소년이 또 뭔가 알만하면 그때부터는 자유로이 밤마다 여자네 집으로 손님이 되러 나간다.
여기서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먼저 말한 요순(堯舜)등에서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들이 한 세트가 되어 결혼한다는 양급제(兩級制)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들은 밤에 여인네 손님으로 갔다가 날이 새기 전에 무리 아들 부락으로 돌아오는데 왜냐하면 하루 밤 같이 했던 여자는 날이 밝으면 빨리 도망을 가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더 이상 퍼질러 있다가는 뼈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여자 집 손님이 되는 사내들은 특정한 여자네 집이 없고 골고루 다니는 게 그 동네의 예의이며 그 부대의 법도이기도 하다.
즉 모두 젊고 예쁜 여자네 집만 찾아 간다면 늙고 못생긴 여자는 매일 밤 공을 치니 골고루 다녀 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내 여자, 내 사내가 없으니 여자건 사내건 질투가 뭔지도 모르고 질투라는 말도 없으며 또 결혼을 하지 않으니 결혼이란 말과 아비가 누군지 모르니 아비라는 말도 없다.
이렇게 사내들이 여자네 손님이 되다 보니 그래서 이집 구조는 위 원두막 그림에서 보았듯이 누구의 간섭 없이 아무나 여인의 방으로 들어가기 좋게 외부로 사다리가 놓여 있다.
또 위에서 일은 여자들만 한다고 했는데 일이란 모두가 옥토이니 씨를 뿌리기만 하면 곡식이 여물고 물에는 고기 반 물 반이니 뭐 힘이 들것도 없고 하나라도 더 수확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그들이 먹을만치만 농사짓고 고기 잡으면 된다.
* 모우스족의 여인네들
모우스(摩梭)족에 대한 DNA 검사 결과 부계는 티베트족(藏族)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모계는 리장(麗江)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나시(納西)족이었다.
야후에서 퍼온그림
그러다 보니 이 여인들은 들꽃을 따다가 머리에 꽂고 일 조금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또 일 조금 하고 노래 부르며 춤추고...
또 여기 여자들은 일단 배정 받은 방은 늙어 손님을 받을 수 없을 때까지는 자기 방이고 늙어 여인 공동체로 내려와도 젊은 것들이 잘 돌봐줘 여생이 보장되니 돈이나 경제란 말도 아예 없어 길바닥에 황금이 떨어져 있은들 가져가는 놈도 없고 도둑도 있을 수 없다.
여기에는 모계 중심 사회로 아직은 젊고 똑똑한 할머니가 통반장 다 해먹고 이 통반장을 하며 부정 축재할 일도 없으며 또 통반장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다음 사람에게 인계해야 하니 권력욕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이들에게 지금 결혼 제도가 있고 아버지라는 단어가 있고 내 것과 돈이라는 것이 있다는 현재 문명 사회 제도가 있다는 것을 말하면 그들은 깜짝 놀라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떻게 지겹고 재미없게 일생을 같이 살 수 있느냐는 것이며 개인 것, 그리고 돈이라는 것이 있다면 매일 싸움질이 나 어떻게 살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문명 제도야말로 참으로 미련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오히려 현재의 문명인들을 비웃고 있다.
이들의 종교는 우리 고대인들의 기도 의식과 같다. 즉 먼저 "환나라 본기"에서 말했던과 같이.
* 桓國本紀 - 朝代紀曰古俗崇尙光明以日爲神以天爲組萬方之民信之不相疑朝夕敬拜以爲桓式(환국본기-조대기에 말하되 옛 풍습은 빛을 숭상하여 해로서 神을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으니 만방의 백성들이 믿고 의심치 않아 환나라(환한무리) 방식으로 조석으로 경배하였다.)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조상을 하늘 삼아 제사 의식을 드린 후에 밥을 먹는데 여기서 조상이란 현재 우리처럼 씨족의 조상이 아니라 ...하긴 성이 없으니...자기들을 낳게 해준 양쪽 조상 모두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즉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심심한 사내들 하는 일은 곡식을 주는 여자들 에게 보답하는 일이고...즉 사내들의 임무가 국방 수호가 아니라 여자에게 보답 하는 것으로 바뀌다 보니 자연 여자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고 이렇게 되니 여자들은 사내 맛을 알아 사내를 밝히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사내들 나이는 40 이면 장수 하는 거라.
이렇게 사내들 수는 자꾸 줄고 그러다 보니 여자들은 사내들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공치는 날이 많아지니 그러면 그럴수록 어쩌다 들어온 사내에게 본전을 빼려고 하룻밤에 열 번씩이나 그걸 강요하고 안 되면 비아그라같은 약초만 마시게 하니 사내의 숫자가 기하 급수적으로 줄 수밖에... 그래서 사내들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도망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이러다 보니 근친 상간이 되어 무지랑이나 기형아만 낳게 된다.
그래서 외부에서 새로운 씨를 받아 와 종자를 새롭게 하려 한다는 것이고 이 역시 동물의 본능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종자를 갈기 위해서 그 높은 산을 넘어가 지나가는 사내들을 납치하게 되었고 여기에 걸려든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현장 스님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종족 여자들은 위 그림에서 보듯이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다
그 이유는 대략 400 전 외부 군대 일개 사단이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처들어 왔는데 아마 그들은 유전학상으로 보아 우리와 유전자가 거의 같은 티베트족(藏族) 사내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 군대들은 창과 칼을 날카롭게 갈고 쳐 들어왔으나 이 군대를 맞이한 사람은 모두 여자들뿐으로 무기로 대항하는 게 아니라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며 먼저 방으로 끌고 들어가 바지부터 벗기는 게 외침에 대한 대응이니...
결국 이 군대는 군기가 개판이 되어 상관이 이제 도망가자고 해도 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가 하면 상관조차도 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다보니 결국 총 한번 ... 아니 칼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이 군대는 삼 년 만에 전멸하고 겨우 살아 도망간 녀석이 자기 잘못을 변명하느라고 보고한 기록이 " 이 나라에는 사람은 없고 요괴들만 들퍽거려 누구든지 가기만 하면 뼈만 남고 죽는다"고 보고하였으니 그 후 사람들은 이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이 전쟁 덕분에 여기의 사람들은 유전자가 교체되어 그런지 하여간 그녀들의 얼굴은 꼭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인데 키가 좀 크고 얼굴도 아름답다.
이런 남녀가 犬판인 성생활을 하는 그 부족을 지금 우리 문명인은 미개한 족속이라고 비웃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한국의 이혼율은 세계의 최상위...즉 100 쌍이 결혼하면 49쌍이 이혼이고 결혼율도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가 먼저가 아니고 서구쪽 문명인이 먼저이다.
즉 그들은 아예 결혼을 않겠다고 하는 것이 풍속이 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못된 풍속부터 받아들여 이제는 그들보다 더한 형편이다.
그렇다면 현재인류의 결혼 풍습을 백 년후 자손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마 "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미개했는지 그래 한 남자 한 여자가 결혼이라는 족쇄를 채워 일생을 같이 살았다더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천 년이 아니라 불과 몇 백 년 후의 일일 것으로 볼 때 6천 년 전에 우리에게도 이런 풍습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물론 그 동기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은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그 오지인들의 犬판 성생활을 비웃을 수는 없다.
또 잔소리 그만하고
다시 이야기를 현장법사로 돌려 ...그 순박하고 어진 현장이 이 여자들의 표적이 되어 납치 되었으니...
요녀들은 그렇지 않아도 석 달이나 굶어 기갈이 자심하던 차에 이 젊은 미남을 만났으니 서로 쟁탈전이 벌어져 현장의 빤스는 벌써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데.... 현장은 다급하여 다시 손오공에게 핸드폰을 쳤것다.
"수리수리 마수리 대갈통 어쩌구 오바!"
현장이야 없어 졌건 말건 도토리로 배를 불리고 낮잠에 빠져있던 손오공은 갑자기 대갈통이 깨지도록 아파오자 정신을 차리고 그 예민한 코로 냄새를 맡아 보니... 손오공은 현장의 위급이 문제가 아니라 대갈통 문제가 더 급하여 한 다름에 현장을 찾아 가보니 ...어럽쇼 현장은 꽃밭에서 노네
" 아니 이렇게 좋은데 왜 핸드폰은 쳤시유? 우선 이 대갈통부터 풀어 주시고 남는 거 있으면 저에게도 한 마리 좀..."
"시꺼! 너 살고 싶으면 빨리 날좀 업구 뛰거라"
그랴서 현장은 빤스까지 못 입은 채 도망 나왔다나...
중간 다 생략하고 그래서 현장은 죽을 고비를 천 번 만 번이나 넘어 드디어 인도에 가서 16년 동안 범어를 배우는 한편 똑똑한 인도 스님 댓 명을 한자 교육을 시키어 코끼리 열 마리에 범어로 된 불경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와 불경을 번역하는데 현장이 번역한 한자 불경을 인도 석학이 다시 범어로 번역하여 그 범어 번역문이 원 범어 불경과 같아야 했다니 얼마나 정확을 기한 것인가?
하여간 현장 덕분에 우리는 현재 한자 불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니 현장의 공덕은 정말로 천추에 남을 것이다.
위 이 만화 같은 내용을 일본인들은 무시하지 않고 불타는 개울에서 유전을 찾아내고 그 요괴의 여인국에서 모우스 부족을 찾아 낸 것인데 이런 모우스 부족의 풍습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그대로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 정부는 그곳에 관광객까지 받아들이고 있으니 또 하나의 인류 문화 유풍 하나를 파괴한 꼴이 된다.
물론 남자 관광객들은 특별히 성병 등 질병 검사를 한다지만 그들이 들여가는 일반 다른 병균은 온실 속의 꽃같이 저항력이 없을 그들을 죽일 수도 있고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물질 문명의 맛을 알게 되어 그들만의 풍속이 훼손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우리 조상들이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 고대 문헌이나 말에서 여기에 근접할 말을 추리해 보면
* 朝代記曰 時人多産乏憂其生道之無方也 庶子之部有大人桓雄者深聽輿情期欲天降開一光明世界于地上 (조대기에서 말한다.그때에 사람은 많고 생산은 궁핍하여 그 살아가는 방법이 걱정스러웠다.
무리 아들의 부락(庶子之部)에 환웅이라는 대인이 있어 여러 가지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 위에 한(하늘)의 광명 세계를 열려 하였다)
글쓴이 주 - 여기서 한(하늘)이란 하느님(桓因)이 계시는 "환나라" 즉 지금의 바이칼 호 부근이고 무리의 아들(庶子)란 삼국유사나 삼성기전 하편 등에 많이 나오는데 그때는 결혼제도가 없었으니 민법상의 첩의 아들은 아닐 것이고 글자 그대로 "무리의 아들로 보며 庶子之部의 部는 어느 어느 부처라고 보기보다 부락으로 보아 "서자지부"(庶子之部)는 위 여인국에서 말하는"무리 아들의 부락"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우리말의 어원으로 우리 선조들의 성생활을 유추해 보면.
* 마누라는 맛오래 > 만오래 > 마누라가 된 말로 '맞'은 마지, 즉 위사람 이라는 뜻이고 (여기서 땅 천부인 'ㅁ' 이 높다는 뜻은 상감마마, 마님, 맞이, 마루 뫼, 뫼셔라 등...) '오래' 의 어근은 '오라' 인데 이 '오라'는 위 여인들이 부르던 MBC 인기 연속극 대장금이의 주제가 "♬오나라" 오나라♬"와 같은 말이고 이 "오나라"는 "오려나?"의 뜻이다.
이 '오라' 에 감초 격 접미사 '이' 가 붙어 '오래'가 된 것이므로 '오래'는 "오려나?"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문(門)이 된다.
그러니까 '맛오래' 는 문에서 마지(윗사람)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그 문안의 주인은 아이들이나 사내가 아니고 여자임을 말하니 마누라는 문에서 사내를 기다리는 겨집이다.
* 애비 - 애비는 통상 아버지(父)를 말하므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네 애비 어디 갔냐?" 할 때도 쓰지만 또 지애비(夫)로도 쓰여져 남편이 되는가 하면 싸울애비 (武夫), 농부(農夫), 어부(漁夫),광부(鑛夫)등 젊은 사내도 애비이며 중신애비나 헛애비(허수애비)도 애비이다.
* 오라비 - 오라비는 "올아비" 인데 '올' 은 '올벼'(이른벼)등에 쓰여지듯이 '이른' 이며 아비는 그대로 '아비' 를 뜻하니 오라비란 이른 아비를 말한다.
* 이상 아비(애비)가 남편인지 젊은 사내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인지 헷갈리는 게 우리 말이고 그렇다면 아비의 진정한 뜻은 "쎅스를 할 수 있는 사내" 이다.
* 사랑방 - 세월이 흐르고 결혼 제도가 생기자 자기만의 여자가 생기고 이 자기 여자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 여자네 집 앞에 보초막을 지어 놓은 게 사랑채, 사랑방의 시초이다.
* 바깟양반 - 평소 같은 방에서 기거하지 않고 사내는 바깥 보초막에 기거했으니 남편이 바깥 양반이다. 즉 부부가 같은 방에 기거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에 살만한 집에서는 아무리 신혼이라 하더라도 신랑은 사랑방에서 자고 신부 방에 한번 들어가려면 아버지나 하인들의 눈치를 봐가며 들어가야 했는데 신부 방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위 모우스부족 사내들처럼 날이 새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 예의이었다.
* 서방님 - 자기 남편만이 서방님이 아니라 큰서방님 작은 서방님도 서방님이다.
이상으로 볼 때 6000 년 전의 고대 선조의 생활이 꼭 위에서 말하는 모우스 부족과 같았으리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같은 면도 많았으리라고 도 본다.
즉 모우스 부족은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외부와 단절되다 보니 전쟁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내들의 힘이 약화되어 일도 안하는 등 무력해지다 보니 여인국이 되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런 환경이 아니었으니 모우스 남자들과는 좀 달랐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결혼제도가 아직 없었던 시대에서 내 여자 네 여자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내 아들 네 아들도 없는 무리의 아들이며 남녀의 성생활은 이 무리의 아들들이 씨름 등의 경기를 통하여 우수한 유전자를 전했을 것이라는 근거는 위에서 열거했듯이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 씨름의 우리말 뜻
씨름은 '씨놀음' 이 단축된 말이다.
그렇다면 '씨' 는 무엇인가?
지금 씨름은 황소 한 마리를 걸고 한다.
즉 이긴 자가 황소를 타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황소 노름이지 씨노름은 아니다.
따라서 씨놀음이란 씨를 다투는 ...즉 씨를 누가 뿌릴 것인가를 경기화 한 것이고 여기서 이긴 사내의 강인한 유전자를 전승시킬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씨놀음은 후방위 교접이었으며 은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왕 이나 판정관 앞에서 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먼저 제시했던 보스턴 박불관의 유물. 풀치마를 입은 왕 앞에 엎드린 계집들과 그 뒤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사내들인데 여기도 해당 분야이니 다시 한 번 제시한다.
즉 우리 선조들은 씨놀음을 통하여 기형아나 무지랭이들의 씨는 전수시키지 못하게 했었을 때 이 씨름에 이긴 자가 한 여자에게만 씨를 뿌렸을 것인가?
그래서 덕분에 우리도 건강한 건 아닌지?
하여간 5.000 여년전 선조들의 성생활에 대하여 현재 우리는 이조 500년의 타성에 젖은 현재의 예의와 도덕이라는 잣대로 비도덕적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우리말 "여덟"의 뜻
우리말 여덟을 말하느라고 여기까지 객설이 많았다.
그러면 이제부터 여덟의 우리말 뜻을 풀어 보자
** 여덟과 여름과 열매
다음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자
겨집들과 자식만이 사는 깃 (집) 그림 1.
겨집들과 자식만이 사는 깃 (집) 그림 2.
이 집들은 여름지이를 잘한 결과 즉 수확물을 두는 곳이다.
그러니까 수확한 곡식은 땅굴 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통풍상 위 그림 같은 집에 두었던 것이고 씨족 즉 처자식을 일군 집도 이런 것이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구려의 고분인 안악제4호 고분의 뒷면 배경에 고구려인들의 생활풍속도가 나오는데 바로 그들의 집이 위 그림과 같다는 것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도 고구려의 국토자리에 우리 민족이 우리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의 집들이 바로 위 그림과 같다는 것이다.
** 다음 여덟의 말뜻을 더 보자
* 여름 - 계절의 중심으로 열매(實)를 맺는 때를 말한다. (녀름果 - 訓)
그러므로 농사짓는 일을‘녀름지이’ 라고 했고 풍년을 ‘녀름좋다’고 했다 (豊-녀름좋을풍- 訓) 그리고 여기서 ‘여물다’ ‘여미다’ (옷깃을) ‘엮다’의 말이 파생된다.
다음 그림을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여기 金文1,2,은 집안에 아기와 조개가 있는 그림이고 금문 3 은 그 아기가 밭(田)으로 변했다.
그러나 집 안에 밭이 있을 수 없으니 이는 일곱에서 사내가 겨집과 아들과 그들이 먹고살 밭을 일구어 놓았다는 말이다.
이 역시 여덟이란 사내가 일군 결과이고 따라서 여덟이란 열매이며 겨집과 자식의 집이란 말이다.
* 여드름 (여들음) - 청춘의 볼에 열매처럼 솟아나는 작은 종기의 일종이지만 이것을 ‘여름지이’를 한 열매로 본 데서 나온 말로 본다.
* 여덟, 여듧, '여들비’ (八은 여들비라) - 숫자인 여덟의 어원은 무엇일까?
이는 고어로 ‘여들ㅂ’ 인데 이의 비슷한 말을 국어사전에서 보면(현대국어사전 양주동 책임감수) "여들없다"가 있고 이는"멋없고 좋지 않다" 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들’ 은 멋있고 좋다 일 것이며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 여름지이를 잘한 들판, 즉 농사를 잘 지은 들판이 '여들' 로 본다.
따라서 여섯에서 나온 일구부, 즉 무리 사내들이 일군 겨집 벌판에 여름내 좋은 햇빛과 풍부한 물로 서로 얼누어 열매를 여물게 하듯 겨집이나 자식 등 있을게 모두 갖추어진 집구석이 바로 여덜 ㅂ 이다.
* 따라서 위 그림은 일구어 농사지은 벌판에서 수확한 곡식의 창고일수도 있고 모우스 부족에서 보았듯이 사내들이 보호하고 있는 겨집과 아이들의 집일 수도 있으며 이 둘 다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 집의 형태는 모우스 부족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와 유전자가 같은 묘족도 그렇고 위에서 말한 고구려 고분 벽화와 고구려 영지에 사는 우리 동포들, 그리고 우리의 원두막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때 신지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이 여덟을 표시한 방법이 아닐까?
즉 여덟이란 사내들이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 그 수확물인 곡식을 얻듯이 가족을 일구어 그 수확물인 계집과 자식을 얻는 집이다.
다음 여덟이라는 八의 금문에서는 어떻게 써 놓았을까?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여기서 보통 八자는 거의 무엇인가 나오는 통로인데 이중 갑골문3과 금문3 은 사람이 나오는 통로를 그려 놓았으니 이는 분명 계집의 음부를 뜻하고 있다.
다음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림을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위층에는 겨집이 앉아있고 그 아래는 돼지가 있다.
* 여덟의 다음 그림
먼저도 말했듯이 글자의 음은 따지지 말고 그 뜻만 이해하자.
이 그림도 여덟의 발음하고는 관계가 없다.
다만 사내가 처자식들의 집을 지어주었으니 하늘과 사내한테 감사하는 그림이고 먼저도 말 했듯이 그 무릎이 땅과 붙어있는데 이는 사내가 기도하는 그림과는 달리 계집은 뒤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이상 집은 결과적으로 일곱에서 사내들이 일군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계집과 자식등 우리를 위하여 돈을 벌었던 것이다.
이 돈은 아홉에 가면 완성되어 부자가 되니 우리를 위하여 부자가 되는 길이 바로 천부경의 수행 방법이다.
이는 또 먼저도 말했듯이 사람이 사는 길은 귀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거나 자기 부모 처자식 다 굶겨 가며 가진 것 다 퍼다 교회나 절에 바친다거나 또 산중에서 저만을 위하여 죽을 치고 앉아 참선하는 것은 이 땅위에 이 땅의 주인인 살아있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길을 가서 '우리'를 만들며 부자가 되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인 천부경 수행의 길이다.
여기서 최치원의 81자 해설은 아홉에서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