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장산의 단풍 남한강 25x23x8
이박 삼일의 행복 [1부]
- 내장산 단풍놀이 -
만추의 새벽
6시, 기대와 흥분이 뒤 섞인 기분으로 11월 상순의 차갑고 어두운 밤공기를 가르며 새벽을 달린다.
운전석 뒷자리는 아이 할멈과 두 살
아래인 처제가 나란히 앉았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어제부터 비바람이 심하게 분 탓에 단풍은커녕 앙상한 가지만 남았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뿐이다.
“간밤에 바람이 그렇게 불었는데 단풍인들 어디 남았겠어”.
하며 아내가 말을 건넨다.
“그러게 말이야 왜
하필 바람까지 불어·······”.
못내 아쉬운 처제의(이모) 말투다.
“괜찮을 거예요. 낙엽 진 늦가을 경치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요.”
나는 애써 그들을 위로 했다.
“그럼요”
처제가 말을 받는다.
한 30여분 달렸을 때 차창이
밝아온다.
야경이 비친다. 뿌연 안개를 사리며 산들이 빨갛게 들어났다.
“언니, 저것 좀 봐 단풍이야 아직 괜찮아”
하며
처제는 창문까지 열어젖힌다.
“야, 곱다”.
“정말 아름답다.”
두 여인의 기분이 괜찮은 모양이다.
상수리나무와
침엽수인 잣나무로 어우러진 황갈색과 노란 빛이 조화를 이룬 것을 보고 저렇게 좋아 하니 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30여 년 전
우리가족 네 식구가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10월 마지막 날 내장산 단풍이 절정이던 날 내장산을 찾았을 때 그 황홀함과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여,
매년은 아니지만 가끔씩 10월 하늘이면 내장산을 찾았으나, 차가 막히고 주차할 곳이 없어, 입구에서 돌아 서거나 백양산 단풍으로 대리 만족을
했어야 했다. 이번에도 그리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미끄러지듯 빠르게 여산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서두른 탓에 그리
늦지 않게 정읍IC를 빠져 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운전석 창문이 요지부동이다.
“어, 창문이 안
올라가네”
“뭐요?”.
“창문이 고장이 났어”.
모두 놀라 걱정스러워한다. 차를 길 가장자리에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그리고
두 손으로 유리를 위로 미니 올라간다. 손을 떼니 이네 아래로 털썩 내려앉는다.
실망이다.
모두 난감한 눈치다.
평소
말수가 적은 할멈이 테이프로라도 붙이고 가자고 제안을 한다. 나도 좋은 생각 같았다. 그러나 2박3일의 긴 여정이라 너무 불편할 것 같아
고치기로 하고 물어 차량 1급 정비소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처음 2~30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1시간을 지나니 안달이
나기 시작 한다. 1각이 여삼추란 말이 이래서 난 것 같다.
호사다마란 말도 빈말은 아나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정비사에게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지 재촉을 해 보지만 대수롭지 않게 거의 다 되었다고만 한다.
한 시간을 훨씬 지나 정비소를 빠져나와 정읍시내로
들어서니 신호등이 자꾸만 걸린다. 마음은 급하고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시내를 벗어나니 꽤나 곧고 넓은 아스팔트다. 할멈이 천천히 가자고 경고를
한다.
급한 마음에 과속을 하는 모양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인데도 감정조절을 못하는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저수지를 지나 제 1
주차장 까지는 잘 왔는데 막히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미친 사람들이 또 있구먼.”
누군가 말했다.
짜증스러운
말투라기 보단 우리와 같은 처지의 동행자가 많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위로가 됨을 공감케 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상가 입구에 닿았다. 차가
서로 엉키고 차로인지 인도인지 교통경찰의 호각 소리만 쩌렁 쩌렁 날카롭다. 호각소리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내 길이 터이고 헤집듯
조심스레 이 식당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산행에 나섰다. 길도 없어졌다. 울긋불긋 사람 물결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건너편에선 약장사인지
엿을 파는지 품바 꾼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구성진 목청으로 구경꾼의 흥을 돋운다. 올 가
을 끝자락의 큰 잔치 마당이다. 단풍
축제다.
우리들은 행락객들 틈에 껴서 떠밀리듯 매표소로 들어섰다.
가는 이, 오는 이 정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행을
놓칠까봐 연신 뒤를 돌아 봤다.
만산이 홍엽이더니 골골마다 잘 타는 불꽃이다. 붉다 진홍색이다. 노랗다, 누렇다. 불그스름하다.
노르스름하다. 아니 모르겠다. 사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색깔이다.
햇볕과 비와 바람과 온도, 습도와 시간의 장단의 조화로 창조된
그 오묘함을 누구라서 감히 들추겠는가. 오직 지은이만 아는 비밀일 뿐이다.
정말 내장산 단풍은 아름답다. 곱다기 보단 황홀하다.
붉은 빛은 아드레날린을 방출하여 우울증이나 자살을 예방하며, 노란 색은 명랑하고 낙천적임을 주며 위를 자극하여 소화를 돕고 주황색은
안식과 편안함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 시장 끼가 돈다. 모든 이들이 다 즐거운 표정들이다. 벤치에서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가을 햇볕을 받으며 속삭이는 이 가을이 가는 것이 아쉬워서인지 추억이 그리워서 인지 붉은 잎 노란 잎 고운 것만 골라 단풍잎 자루를
조심스럽게 쥔 중년 부인의 모습이 왠지 아쉬운 듯 하면서 즐거워 한다. 정말 내장산 단충은 아름답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준다.
나도 취한다.
마음도 단풍에 취한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사랑하는 이와 같이 하니 더 그러한다. 가보다 바람이
분다.
단풍잎들이 꽃잎처럼 곱게 휘날리며 멀리 날아간다.
사랑스런 마음 아름다움과 아쉬움을 휘날리는 낙엽에 실어
이 가을
곱게 띄운다.
心安如海
첫댓글 멋진 수석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