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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성경을 보고 공부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역사를 바꾸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위대한 일이 오늘 여러분께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밭에 대추나무를 심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냥 두었더니 위의 사진과 같이 온갖 덤불이 나무를 완전히 감쌌습니다. 일부의 덤불을 걷어내니 속에서 자라지 못한 대추나무가 약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어떤 나무는 견디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나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저를 탓할 것입니다. 왜 나무를 심어 놓고 이 지경이 되도록 돌보지 않았나 하고 저를 책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나무들이 각종 신학 교리에 깊이 뒤덮여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성도로 보입니다. 같은 성경을 두고 천주교와 개신교는 로마서 1장 17절을 두고서 심히 논쟁을 합니다. 500년을 서로 옳다고 다투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각 교단은 서로 조금 다른 성경의 이해로 분열이 되어 200개의 교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 공히 성경의 이해에 있어서 아직은 온전하지 못한 분야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이단은 말도 되지 않은 성경의 이해로 성도를 유혹하고 있고 이단에 속한 이들은 많은 이들이 교회를 잘 다니다가 그들의 꾀임에 빠져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한국에만 50만이 넘을 것입니다.
나무가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이 햇빛과 물과 영양을 공급 받으면서 가지도 자라고 줄기도 자라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야 하는데 이를 막는 것이 덤불로서 제 사진과 같이 완전히 나무를 덮으면 햇빛이 공급되지 않아서 자라지도 못하고 덤불에 휩싸여 나무가 휘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제 밭을 보고서 이렇게 이상한 가르침에 덮여서 결실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하니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개신교 성도는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를 오직 믿음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믿음 하나면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데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이에 대해서 행위나 행동이 동반되어야 의롭게도 되고 구원도 받는다고 합니다. 같은 본문을 두고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500년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냥 자신이 믿는 진영의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라 갔습니다. 이제 루터 시대 성경이 한권도 없던 시대가 아니니 우리가 가진 각종 번역본으로 살펴 봅니다.
본문을 봅니다. 본문도 그냥 보아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영어와 같이 보아야 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개역개정, 공동번역, NIV순)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나타나 있는데,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한 의인데,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 것이다" 함과 같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영어를 번역한 데로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이면 다 된다입니까? 아니면 오직 의인은 믿을 가지고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본문에 500년 논쟁의 답이 나옵니다. 바로 초등학생이면 야! 본문을 통해서 의인은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으면 믿음만 있으면 되는 사람입니다. 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이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쉽고 쉬운 것을 왜 500년 동안 헤매고 있는지 모습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너무나 큰 덤불이 성도를 숨도 못쉬게 덮은 상태가 됩니다. 우리 말로 번역도 이해가 어렵게 되어 있고 또 신학적으로 개신교 신학은 오직 믿음이면 된다고 하니 이렇게 이해를 하고 모든 성경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바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 구절을 갖고 우리는 500년을 그냥 신학적인 주장에 목을 메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오직 믿음의 기준에 특히 로마서의 모든 내용을 끼워서 맞추고자 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서 본문을 그대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어서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구를 책망하고 비난하고자 함도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진리를 찾고자 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구절을 잘못 이해를 하면 너무나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올바르지 않는 이해는 앞으로 논의할 성도가 올바로 살고 결실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행위와, 모세 오경의 율법의 준수에 대해서 너무나 성경과 다른 쪽으로 인도를 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어렵게 하고 상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어렵기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와 다 깊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신학의 덤불에서 벗어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믿음+ 삶을 사는 자"가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의 500년 묵은 굵고 두터운 덤불에서 속히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그대로 이해를 하면 누구나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인정을 받는 자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사는 자임을 본문은 누구에게나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가 의롭다 인정을 하는 자는 나를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 자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고 또 "내가 의롭다 인정을 하는 자는 오직 믿음만 갖고 아무런 행동도 행위도 없는 즉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하루하루 삶을 살지 않는 자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덤불을 제거하는 시작에 불과 합니다. 이제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데 어떤 삶을 사는 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또 어떤 믿음인지 분명하게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신학의 덤불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믿음인데 어떤 믿음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삶은 어떤 삶인가?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을 같이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분명하게 밝혀 두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설명하고 있지 소설이나 다른 책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갑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성경에 있는지 확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 성경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7-12절의 말씀을 봅니다. 오직 믿음의 덤불에 갇히면 성경을 백번 보아도 이 구절이 절대로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이란 생각과 이해는 이렇게 분명한 성경의 구절을 그대로 건성건성 지나가게 합니다. 제가 거짓으로 끼워넣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여러분이 가지신 성경책 로마서에 분명하게 있는 내용입니다. 믿지 않으시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초등학교 국어 실력이면 어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았는지 바로 압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얼마나 믿습니까? 조금만 성경을 보신 분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을 때가 그의 나이 75세임을 압니다. 그리고 100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습니다. 여러가지 약속은 처음 하나님을 뵈올 때 받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라고 하시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을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그런데 100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다고 합니까? 그 믿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오늘 믿고 어제 믿고 믿다가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랫동안 적어도 25년 동안 역경이 와도 나이가 들어도 늙어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어떤 일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비록 아내의 경도가 끊기고 자신의 기력이 쇠했지만 인간적으로 자녀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아들을 낳게 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심을 초등학생이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냥 믿으면 의롭다 한다는 의미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로마서 4장 17-22절에 자세하게 설명을 하심은 우리가 이렇게 믿어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하셨다면 이렇게 적어도 오랫동안 어떤 역경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는데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에 설명이 자세하게 있는데 이 설명은 아무리 읽어도 그냥 지나감은 오직 믿음의 덤불이 나를 너무나 강하게 얽매고 있기에 진리에 눈이 멀어진 것입니다. 오직 믿으무그 덤물을 넘어 의롭게 인정을 받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아는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이미 제가 설명하는 이 내용을 저는 확인을 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신 어떤 분께서 성경을 백독하셨고 이 분은 어떤 내용이든지 한 번 읽으면 대부분 암기를 하시는 인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백독을 하셨으니 성경 전체에 모르는 부분이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로마서 4장 17-22절의 구절만 딱 집어서 읽어 보시라 하니 이 구절을 다 읽으시고는 "아니 이 구절이 성경에 있기는 있는데--- "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구절이 보이니 이 구절대로 믿어야 됨이 이해가 오기는 오는데 오직 믿음만 있으면 다 된다고 지금까지 세뇌가 되어 이 교리를 너무나 굳게 믿고 있으니 이 로마서 구절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갈등이 생기신 것입니다. 이분께서 이렇게 확인을 하셨는데 과연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믿음으로 성도가 의롭게 되는지를 지금은 이해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얽어맨 신학의 덤불은 깊고 강하고 그리고 그 줄기가 강하고 굵습니다. 이번 기회에 끊어내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이 이 성경의 기록대로 그냥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석을 분명하게 달아 놓으셨는데 이대로 믿지 않으시고 어찌 버티십니까? 의롭게 되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신 설명입니다.
여기서 다시 힘을 내셔야 합니다. 다시 로마서 1장 17절에 기록된 본문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시 살펴 보아야 합니다.
Rom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나타나 있는데,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한 의인데,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 것이다" 함과 같습니다.)
이 구절은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는 것을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인용을 한 것입니다. 하박국서로 갑니다. 역시 개역개정, 공동번역, 그리고 영어를 같이 봅니다. 어렵지가 절대로 않습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
(역시 이 구절도 제가 번역을 해 봅니다. "보아라 그는 교만하다; 그의 의도들은 올바르지 못하다 ---- 그러나 정의로운 사람은 그의 믿음으로(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이 구절의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우리는 오직 3장으로 구성이 된 하박국서를 읽고서 바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서 1장과 3장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짧은 3장의 성경(하박국서)을 우리는 가서 바로 확인을 해야 합니다.
먼저 하박국서는 기원전 B.C 608년 경에 하바국에 의해서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586년에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바벨론이 남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B.C 586년에 멸망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남 유다의 가장 말기의 시절입니다. 율법이 해이해지고 정의는 볼 수가 없으며 모두가 악을 행할 때 정의롭게 사는 하박국과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생활이 어렵게 됩니다. 하루하루 정의롭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됩니다. 모두가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사는 무법천지가 되었는데 법을 지키려고 하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이런 살 수가 없는 세상을 보고서 선지자 하박국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타락한 자신의 동족 남 유다를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여쭙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남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 답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하박국 선지자가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비록 남 유다가 악하기는 하지만 더욱 악한 나라가 바벨론인데 이 악한 나라를 어떻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하고 여쭈니 이에 대한 하나님의 두 번째 대답이 우리가 보는 본문 하박국 2장 4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절대로 옳다고 하지 않으시고 교만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바벨론도 심판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비록 심판과 멸망이 다가왔지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는 의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 살 것이다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보는 본문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과연 의인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산다는 말씀입니까? 동족 이스라엘 즉 남 유다가 멸망하고 악한 바벨론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악한 나라를 척격하시는 정의로우시고 능력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박국과 같은 의인은 하루하루 어떻게 살 것입니까? 악해서 망하는 동족 남 유다와 같이 막 삽니까? 아니면 더욱 악한 바벨론과 같이 교만하게 삽니까? 절대로 절대로 의인은 이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무언가 악해서 멸망하는 동족 남 유다와 바벨론과 같이 살지 않고 달리 살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이 악해지고 선한 이가 찾기가 어렵게 되어서 그 나라들이 멸망하는 가운데 이들과 같이 막 산다면 절대로 악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의하게 살아서 망하게 되는 악한 이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실리가 1%도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인정을 받을 이가 절대로 이들과 같이 악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다 해도 남 유다와 바벨론과 같이 멸망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얼마나 세상에 뻐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분명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멸망을 할 정도 타락을 했습니다. 그런 민족의 타락 속에서 의롭게 율법대로 사는 하박국은 너무나 사는 것이 어려워서 탄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나도 악하게 마음가는 데로 이익이 되는 데로 힘이 있으면 약자를 강탈하면서 산다면 무엇이 어렵습니까? 자본주의를 굳게 믿고 하나님의 법 즉 율법도 어기고 마음대로 재산을 축적해서 수십대 수백대를 벌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력이 있는 자가 무엇이 어렵습니까? 국가도 교회도 모두가 정신이 나가서 자본주의에 빠져서 허우적 그릴 때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에 소망을 두지 않고 정의롭게 하루하루 어렵게 사는 사람이 어려운 것입니다. 진실로 지금 시대에도 정의롭게 살고자 하면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정의에 목이 마른자는 이 제 말을 분명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온갖 불의를 체험하고 어느 곳에서 하소연도 못하고 사는 모든 이는 제 말이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삶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제 이러하신 하나님! 즉 이렇게 더러운 세상을 속히 심판하고 악을 척결하고 하박국을 괴롭게 한 악한 사람을 모두 바벨론의 군사로 죽게 하시고 포로로 잡혀 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당시에 하박국과 정의롭게 어렵게 사는 백성들이 믿습니다. 이제는 이런 하나님의 약속에 숨통이 터인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정의를 세울 것이라는 믿음에 이제 더욱 힘을 내어서 이런 하나님과 하실 일을 믿고 정의롭게 산다는 표현이 위의 하박국서 2장 4절의 분명한 의미입니다. 모두가 악으로 망하는 때입니다. 심지어 믿는 이스라엘도 망하는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 믿음을 가지고 악하게 산다는 해석은 0.0000001%도 이 본문에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어렵지만 곧 악한 세상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희망으로 견디며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제 이런 설명을 대부분의 분들은 다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신학의 굵고 오랜 덤불이 걷어 내어지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고 살고 천국에 가고 못가고 천국에 가도 상을 받고 못 받고를 결정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 아니라 믿음의 삶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오랜 세월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삶이 정의롭게 사는 삶임도 분명하게 밝히어졌습니다. 여기까지 흔들리지 마시고 진리에 대해서 들었으니 굳게 믿으셔야 합니다. 제가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성경의 내용을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제 설명을 들으시고 조용히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과 로마서 4장 17-22절의 내용과 하박국서 2장 4절의 내용을 동시에 묵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고 살고, 천국에 가고 못가고, 천국에 가도 상을 받고 못 받고를 결정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성경의 구절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살았다면 진리를 듣고 바로 회개하고 올바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누구를 벌하시고 책망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올바른 길로 행하여 예수님 안에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입니다.
여기까지 이해를 했다고 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시 우리는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로마서 7장 6절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비로소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영적인 갈증과 호기심을 발동하셔서 힘을 내시고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신학의 덤불이 다 걷히고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거기까지 가기를 바라십니다. 본문을 세가지 버전으로 동시에 보시겠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제가 영어를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때 우리를 얽어 매였던 것(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옛날 방법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모든 제 설명이 하나님의 깨닫게 해 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제가 어떤 말씀을 전하고자 인용을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영어와 한글의 번역을 동시에 보게 하시고 너무나 잘못 번역이 된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 전에는 저도 이 번역대로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자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율법에 대해서 찬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냥 위의 한글번역대로 이해를 하고자 할 때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영어 구절을 올바로 이해 하도록 은총을 베푸시기 전에는 저도 위의 구절대로 믿고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라고 모든 분과 다를 바가 없고 잘난 점도 하나도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오직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고 성령님의 감동이 쉬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할렐루야!!
유튜브를 보아도 이 구절을 정확하게 설명하시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이는 이 구절의 해석이 위와 같이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다른 한글번역을 확인해 봅시다. 표쥰 새번역입니다.
롬 7:6.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어 매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은 같이 해석한 위의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은 법조문(율법)이 문제가 있다는 의미를 강하게 풍깁니다. 절대로 이런 의미가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번역한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옛날 방법과, 표준 새번역의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은 서로 비슷합니다. 표준 새번역이 이부분은 가장 정확합니다. 천주교의 번역이 이렇게 되어 있음에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속히 바로 잡아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제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여러 본문을 보고서 이해가 되었다면 모든 분이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의 이해를 위해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말 번역으론 잘 이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분이 함께 저와 함께 바울 사도의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쓴 해는 기원 후 약 57년 경입니다. 고린도에서 자신이 가서 세운 교회가 아닌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57년 이라는 년도는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 바울 사도의 전도여행과 경력을 이해를 해야 이 구절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사도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대부분의 분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사도는 율법학자로 율법으로 흠이 없게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실천하던 사람입니다. 유대교의 전통과 구약을 굳게 믿고 오직 율법대로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삶이라 그는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후 200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렇게 믿는 이들이 지금의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모세 오경을 잘 배우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믿던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자 이들을 유대교를 해치는 집단으로 알고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을 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합니다. 그만큼 율법에 대한 굳은 신념과 배움과 실천에 있어 당대 최고였습니다. 이렇게 믿으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절대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시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시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자 바울은 눈이 멀게 되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혼이 나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니 예수님께서 바울이 그렇게 핍박하는 예수라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서 없으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며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오시면 모든 인간은 제 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옳다고 믿던 모든 과거의 신념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죽을 죄를 지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와 믿는 이를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도 멀게 되고 먹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하는 도리 외에 아무런 살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안에 들어가서 아나니야를 만납니다. 아나니야의 안수로 눈도 뜨게 되고 음식도 먹게 됩니다. 3일을 그렇게 죽은 사람과 같이 있었으니 그 동안에 얼마나 자신이 한 일이 흉악한 일인지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율법만 알고 행하면서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오셔서 이 바울 사도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으며 구약의 에스겔서의 말씀대로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는 사람으로 재 창조가 되었습니다. 이 구절도 확인을 하고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바울 사도의 위대한 삶은 새 사람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지 바울의 초인적인 인내와 불굴의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이가 이렇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자신 있게 잘 알던 구약의 내용이 성령님의 조망으로 모두가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구약의 말씀이 드디어 바울 사도에게 열립니다. 그리고 직접 3층천에서 가셔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천국의 모습을 봅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많은 것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데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을 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모든 과거의 지위를 다 버리고 예수님과 같이 들판에서 강도를 맞고, 돌에 맞고, 파선을 당하고, 굶고, 옥에 갖히고 하면서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웁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로 약 20년을 살고 난 후에 로마서를 기록하고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도 기록합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위대함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율법을 찬양하고 높히는 분이십니다. 절대로 율법을 조금도 건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모습을 봅니다. 예전의 자신이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고 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예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신자를 힘들게 한 것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만 알 때와 너무나 다르게 성령을 받고 나서 진정으로 율법이 모두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난 자신의 모습도 다 기억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오직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일을 봅니다. 이제 이전의 율법을 가지고 조문 조문 지키려고 하면서 섬기던 옛 방법과 이제는 성령의 인로로 섬기는 방법을 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섬기는 새 방법으로 섬기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는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율법을 다 완성하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에서 잘 표현을 했습니다. 절대로 율법이 낡아서 그렇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과거 예수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고 오직 율법 조문만 알고 조문 조문 지키려고 했던 옛날에 섬기던 방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살아본 경험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 방법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성령을 받고 큰 성경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성령의 인도로 기적을 행하고 성령의 인도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로 교회를 세운 경험으로 자신과 같이 이제는 옛날의 방식이 아니라 새 방식으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의미는 정말로 0.0000%도 없는 성경 말씀이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이니 천주교에서 속히 고치시고 개신교도 이 구절을 올바로 고쳐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린도 전서 13장도 사랑 장입니다. 로마서 13장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령을 받고 새롭게 되고 거듭나게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기를 자신의 너무나 분명한 경험을 토대로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여전히 율법을 조문 조문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령도 없고 율법도 자신이 지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처음 성령을 받은 데로 자신과 같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성령도 없이 예수님도 모르고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날 섬기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 선하게 살면서 새로운 방법의 섬김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삶을 사는 의미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라는 것이 또 밝혀졌습니다. 이제 이를 로마서 1장 17절로 대입을 시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이는 믿음으로 삶을 사는 이이며, 성령의 인도로 삶을 사는 사람임이 밝혀집니다.
성령의 인도로 새롭게 섬기는 사람이 믿음으로 삶을 살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의 삶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새롭게 섬기는 삶임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이제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바울 사도는 로마서 3장 31절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31. Do we, then, nullify the law by this faith? Not at all! Rather, we uphold the law.
율법을 존중하기에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와 같이 반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7장 6절에 낡은 법조문이나 혹은 법조문의 낡은 방법이란 말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오직 율법은 그대로 두고 섬기는 방법만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어는 분명하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르던 그리고 참다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에 대해서 모르던 옛 사람 바울이 율법을 조문 조문 신경을 써서 형식적으로 섬기던 옛 방법과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방법을 대조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 아님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영어로 제가 번역한 바와 같이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옛날 방법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으로 섬기는 새 방법을 서로 대조하면서 설명한 것입니다.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고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고 공경의 대상이 되는 율법에 대한 어떤 지적도 없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이해를 해야 로마서 7장 6절이 올바로 이해가 된 것이고 많은 성경의 문제들도 풀립니다.
긴 여정으로 여기까지 이해가 되신 분은 많은 덤불이 제거가 되신 분들이십니다. 모든 분이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 이렇게 된 상태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보일 것입니다. 신학의 덤불에 가려 있으면 그냥 지나 갈 수가 있는 너무나 중요하고 중요한 말씀이 그대로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율법의 완성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죽고 살고 천국에 가고 못가고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보다 로마서 1장 17절의 잘못된 이해를 더욱 굳게 믿고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그 굴레에서 벗어나시고 천국에 빛난 자로 사는 삶에 대해서 위의 말씀을 통해서 깊이 묵상하시고 위의 말씀에 굳게 서시고 절대로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예수를 믿는 거듭난 성도가 성령을 따라서 섬기게 되면 율법이 완성되고 율법이 굳게 섭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이 굳게 서는 나라는 법이 잘 지켜지기에 정의가 넘칩니다. 정의가 있는 곳에 평강이 옵니다. 평강이 있는 곳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진정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잘 지킴은 이렇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잘 세우는 일과 너무나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도 없고 율법도 없고 마음대로 하는 곳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는 너무나 분명하게 성령의 인도대로 율법이 굳게 세워지고 완성되는 공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목사나 신학자는 그냥 성도에게 어떻게 하면 성도가 율법대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설교도 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해야 되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을 받는 일이요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의 인도대로 사는 것이요,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우리가 잘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반드시 잘 배우고 잘 지켜야 하는 일입니다. 이제 율법을 공경하고 잘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전하는 저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아직도 온전하지 못한 도구입니다. 제가 전하는 모든 내용은 다 예수님께서 순서대로 차근차근 주신 것입니다. 약 예수님을 믿고 38년 정도 걸렸습니다.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삶을 주로 살았고 목사가 되었지만 세상에서 모든 분과 똑같이 일을 하고 가정도 있습니다. 늘 제가 하고 싶은 데로 살았고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목이 곧았습니다. 그리고 늘 가난했습니다. 은행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장 극빈한 삶을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늘 평안했고 행복했습니다.
목이 곧고 고집이 센 저를 하나님께서 늘 참아주셨고 격려하셨습니다. 제가 들을 수가 있게 쉬지 않고 말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힘을 내어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 저는 죄도 여러 번 범했습니다. 참으로 패역된 죄도 범한 자로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이렇게 영적인 것을 이해할 능력도 열의도 없는 평범하지도 못한 못난 죄인에 불과합니다. 모든 영적인 깨달음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제가 온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런 저를 사랑하시고 품고 긴 세월을 참으시며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신 사랑과 우리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과 함께 하심 그리고 성령님의 내주와 감동하심을 찬양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올립니다. 주님의 나라가 굳게 서고 주님의 이름이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 귀하고 귀한 성경의 이해를 온 세상에 전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 주 보혈의 공로로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력한 뜻을 깨닫고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굳게 세우고 완성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이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게 하소서! 아무 공로없고 순종도 잘 못하는 죄인을 참으시고 귀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전하게 해 주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작고 강대국에 끼여 흔들리는 이 나라를 세우는 유일한 길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이라 굳게 믿습니다. 많은 이들의 동참과 도움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에서 성경의 올바른 이해로 모든 강대국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 속히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