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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몸간판>의 줄거리:
사람의 몸은 샘이며 동시에 간판입니다. 마음이 안쪽에 있는 천국에 연결되면 천국기운이 분출되는 샘이됩니다. 동시에 몸은 그렇게 안쪽으로 천국을 두고 있는 한 인격이 이 세상에 내 건 간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 몸이 없으면 그 인격의 존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면 부활 신앙은 일개 미신이나 엉뚱한 추측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몸간판
(눅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몸간판>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간판의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재료로 따지면, 아크릴간판, 목재간판, LED간판, 네온사인, 이런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세우는 형태에 따라서 입간판이 있고, 옥외간판, 실내간판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아마 처음일 거예요, 간판의 종류에 하나를 새롭게 추가합니다.
몸간판, 인간의 몸이 간판이라 이겁니다.
인간의 몸이 간판이라는 이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부활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부활신앙은 막연한 추측이 돼버립니다.
구체적이고 올바른 내용을 우리가 가질 수가 없습니다.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다는 얘깁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강릉의 다운타운을 들어가려고 하는 초입에 강릉 시내를 가로지르는 조그만 하천이 있습니다.
강릉 시내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쯤에 첫 번째로 놓여 져 있는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정말 너무 어색해서 눈에 아주 잘 들어오는 간판이 하나 있었어요.
그 간판의 이름이 뭐냐 하면, ‘손병욱 베이커리’였어요, 뭐 이걸 얘기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빵집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간판이 너무 눈에 잘 들어오는 이유는 어색하기 때문이에요.
전혀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를 않습니다.
굉장히 화려하고 크게 눈에 띠게 간판을 달아놓았는데, 그렇게 큰 간판을 달고 베이커리를 할 분위기가 아니에요.
아파트단지도 아니고 일반주택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상점들이 많이 모인 상점가나 번화가도 아닙니다.
그냥 시골도시의 변두리에, 그런데 도대체 그 큰 간판을 보고 누가 여기에 와서 빵을 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이 어색합니다.
그래서 제가 워낙 빵을 좋아하기 때문에 눈여겨보면서 왔다 갔다 하는데, 차를 대고 빵을 사려고 해도 차를 댈 곳이 없어요,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고.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안 있다가 보니까 간판은 그대로 있는데, 신호등에 걸려 들여다봤더니 폐업을 했더라고요.
장사를 안 하고 있는데 간판은 크게 달았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 동네의 큰 마트 안에 잘 되는 빵집이 있었는데, 그 빵집도 손병욱 베이커리였어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간판을 몇 개월째 내리지 않고 있는 그 집은 도대체 뭐냐고 물었더니 그게 3호점인데, 시동생인가 누군가가 열었는데 잘 안 돼서 그만 두었다고.
그런데 1호점 2호점은 아주 잘되고 있고 강릉에서는 나름 명물입니다, 손병욱 베이커리.
그래서 외지에서 온 분들도 그 베이커리를 찾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그래요.
영업은 안 하고 있는데 간판만 달고 있는 그 상태.
아! 참 영적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커요.
여러분, 사람의 몸이 간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몸의 위치는 마음의 바깥쪽에 있습니다, 또 이야기 합니다.
마음을 중심으로 마음 안쪽에 주님께서 가져오신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그곳에 아버지하나님이 계십니다, 천사들도 있고, 지금도 그렇게 있어요.
그리고 마음의 바깥쪽에 세상이 있는데, 그 세상이 마음으로서 있는 나, 이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몸이 없어도 우리 마음이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 지금 당장 실험을 한번 해보세요!
여러분의 눈을 닫고 귀를 막고 코를 닫고 그리고 입을 닫고, 모든 감각이 죽었다고 실험을 하는 겁니다.
5감각이 다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과의 교통이 끊어져버립니다.
세상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죽은 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대로 살아있어요.
그런데 몸의 5감관이 있기 때문에 몸을 통하여 접하게 되는 세상에 대해 내 마음이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근데 5감관이 끊어져버리면 마음은 세상에 대해 반응할 수가 없습니다, 느낄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마음이 죽은 게 아니에요.
그 마음이 바로 ‘나’라는 거예요.
우리는 ‘나’를 말할 때, 자꾸 몸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나’라고 그러지만, 이 몸은 안쪽에 천국을 두고 있는 마음, 그게 나에요.
그게 마음으로써 안쪽에 천국을 두고 있는 그런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세상은 몰라요.
그래서 이 세상에 알게 하기 위해서 내걸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간판이 바로 몸입니다.
몸이 있음으로써 마음이라는 내가 있고, 그 마음 안쪽에는 천국이 있는, 천국을 마음 안쪽에 두고 있는 그런 ‘나’가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 알려지는 거예요.
그래서 몸이 간판입니다.
어제는 우리가 육체의 이 몸이 샘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마음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다 그 마음 안쪽에 천국을 두고 있습니다, 예외 없습니다.
살인자 강도도 마음 안쪽에 천국을 두고 있고, 재벌도 목사님도 마음 안쪽에 천국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똑같은데, 문제는 그 마음 안쪽에 있는 천국과 마음이 연결되면 몸은 샘과 동시에 간판이 되는 것이고, 연결이 안 되면 샘이 아니고 간판이기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볼 때 그 몸을 보면서, 혹시 장애인들을 볼 때 마음속으로 무시하면서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그냥 간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손병욱 베이커리 3호점 간판이 그렇게 화려해도 안에서 영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상징적으로, 이 세상에서 보여 지는 이 몸에 온갖 타이틀이 다 기록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손병욱 베이커리 3호점 간판에 ‘저희는 유기농 밀만을 사용해서 빵을 만듭니다’ ‘전국 제빵 대회에서 1등 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간판에 들어가요.
그런 것처럼 간판이 아무리 화려해도, 내가 대통령이다, 재벌이다, 학 박사다, 교수다, 별의별 타이틀이 다 주어져도 그건 간판일 뿐이라는 얘깁니다.
간판이 굉장히 화려한데 실지로 영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안쪽에 있는 천국과 연결이 되어있지 않아서 천국으로부터의 기운이 마음을 통해서 몸으로 나타나는 샘이 되지 않는다면, 간판만 화려한 폐업상태의 가게와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장애인을 볼 때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무시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단지 간판일 뿐이라는 겁니다.
간판도 없이 장사하는 감자옹심이 집이 있습니다, 심곡이라고 하는 곳에 가면.
거기에는 간판이 없어요, 그런데 유명합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을 볼 때 잘 봐야 돼요.
몸에 연관된 그 사람의 모든 타이틀은 그 사람이 박사든 재벌이든 간에, 그 사람의 마음이 마음 안쪽에 있는 천국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완전히 폐업상태로 간판만 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겁니다.
자, 이런 상태를 알고 본문을 보면,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늘 바리새인들과 신학적인 논쟁을 벌이는 자들인데, 이들은 바리새인과는 다르게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할 때에 무기삼아 가장 강력하게 즐겨 사용하는 논리적인 내용이 뭐냐 하면 ‘수혼제도’입니다.
‘수’자는 형수(兄嫂) 할 때의 수(嫂)자에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서 형의 이름 밑에 그 자식을 입적함으로 형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 이게 수혼제도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바로 그 바리새인과의 논쟁 때 사용하던 논리를 가지고 질문을 한 겁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 모두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한 여자가 첫째 아들에게 시집을 왔다가 그 가문의 여섯 형제가 다 죽고 막내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막내와도 자식이 없이 죽어버렸습니다.
자, 이제 부활한다면 누구의 아내로 살아야 되느냐? 이렇게 질문을 한 겁니다.
아, 기가 막힌 논증이지요, 대 바리새인과의 논쟁에 있어서는 정말 쌈빡한 논리입니다,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느냐 하면, 질문의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고 나면 시집도 장가도 안 간다는 거예요.
이 세상의 자녀들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데 부활하고 나면 시집가고 장가가는 게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왜 그랬는가 하면, 이때 유대사람들이 믿는 부활신앙에서는 이 부활을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삶이 아주 멋있게 개선된 상태로 지속된다고 본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아내로 살고 있으면 부활하게 되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편과 부활해서 둘이서 다시 사는 것,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자식들과 다 같이 모이게 되는 것, 이런 친족관계들이 아름다운 형태로 개선되어서 다시 지속되는 것,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러니 그만큼 이 세상의 삶에 마음을 깊이깊이 뿌리를 두고 사랑하며 아꼈던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쩌나? 부활하면 시집도 장가도 안 간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은 ‘부활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주체가 되는 너 자신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이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자의 몸을 갖고 남자의 몸을 갖고 사는 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간판으로 내건 것이지, 그런데 그 간판의 종류가 여자의 간판일 수도 남자의 간판일 수도 있는 것이고, 키가 작은 간판, 키가 큰 간판일 소도 있고, 타고날 때 소아마비로 태어나 소아마비 간판일 수도 있고, 멀쩡한 간판일 수도 있지만 그건 ‘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평생을 그냥 소아마비로 산다면 그건 간판이 소아마비인 거예요, 내가 소아마비인 게 아니라.
내가 초등학교도 못 나온 채로 산다면, 간판에 기록된 내용이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는 얘기지 내가 초등학교를 못 나온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나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참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 여기까지 하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요.
마음이 마음 안쪽에 있는 천국과 천국에 있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 그게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니까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겠는데, 그 다음에 누가는 38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게는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몸이 없어져버리면, 육체가 죽어버리면 이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음으로 존재하고 있는 나를 보지 못합니다.
‘나’라는 존재를 그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 몸이라는 간판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항상 보고 계시고 살아있는 것으로 관계하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에게는 항상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 우리가 실험했듯이, 5감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세상과는 끊어진 것이고 이게 죽음인 거예요.
그렇다고 내 마음이 죽은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게 간판을 내리는 거지,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활이란 내가 다른 몸을 입고 천국이라는 새 세상에 태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남자라는 간판을 가지고 여자라는 간판을 내건 사람과 결혼해서 살았다고 해도 그건 이 세상의 일이지 천국을 향하여 부활해서 들어갈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전혀 새로운 몸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마치 이런 거죠.
지금 제로원방송이 오늘 아침에도 강릉의 한 상가를 빌려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계속 하는 거잖아요.
주로 아이들 학원이 있는 상가인데 다들 간판을 내걸었어요.
근데 유독 4층 건물 전체에서 제로원복음방송만 간판을 걸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변 사회에 제로원복음방송국이 여기 있어서 사람들을 이쪽으로 오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모든 상가가 다 간판이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제로원복음방송은 간판이 아예 없는 겁니까?
아니에요, 이 빌딩에는 없어요, 왜냐하면 이 빌딩이 놓여 있는 이 지역사회 사람들이 이곳에 와야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알려야 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간판이 있어요, 인터넷 상에는 홈페이지가 있어서 간판을 두고 있습니다.
간판의 형태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다른 세계를 향해서 방송을 할 때는 간판의 모양이 다른 겁니다.
마찬가지에요.
내가 천국 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될 상황이 될 때는 다른 몸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빌립보서에서 ‘우리의 낮은 몸이 신령한 몸,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때는 다른 간판을 거는 거예요.
영광스러운 몸, 신령한 몸, 시간과 공간의 세계가 아닌 4차원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새로운 몸을 내가 또 입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몸이라는 간판을 내리거나 말거나 죽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부활이라는 것은 다른 몸을 입게 되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몸에 갇혀서 살고 있습니다.
몸에 갇혀 살고 있으면서 마음 안쪽의 하나님과 연결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보는 기간이라는 거죠, 지금 이 기간의 의미는. 간판인 몸에다가 내가 재벌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건희 씨, 그분이 마음 안쪽에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아실까요, 모르실까요? 그래서 천국과 연결하지 않았다면, 재벌이라는 간판만 내걸고 있는 겁니다.
실지로 그분 안에서 일어나야 될 내용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분의 몸은 샘이 아니라 간판일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었어요.
관계가 죽었다는 얘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있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튼 사람들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부활에 합당한 자가 누구냐?’
여기서 부활에 합당한 자라는 것은 천국으로 부활할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게는 살아있다는 이 말씀은 심판으로 부활할 사람들도 죽은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너무 이 간판의 내용을 채우려고 마음을 쓰지 마세요!
몸이 간판이라는 거예요, 이 간판 내리면 끝나는 거예요, 그냥.
문제는 간판이 별 볼일 없어도 그 안쪽에서 천국과의 관계가 원활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이 관계가 원활하게 연결되어있느냐에 따라서 이제 몸의 간판을 내리고 부활해서 새로운 간판을 갖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천국 안에서 나에 대해 아주 영광스러운 간판을 내 거실 거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정말 유대인들이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너무너무 무지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그들만의 일입니까?
우리는 안 그래요?
우리는 마음 안쪽 세계와 마음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주 유식합니까?
우리도 무식한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리고 그건 앎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현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오는 거예요.
몸이 샘이 되는 거죠.
그 연결이 안 되면 단지 이 몸은 간판일 뿐이고, 모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그 간판 채우기로 소모돼버리고 맙니다, 내리면 그뿐인 것을.
내리면 그 다음에 그 뒤에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한 번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샘이 돼본 적이 없으니까 간판을 내리고 나면 삶의 내용이랄 게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간판에 채워 넣는 일에만 분분했으니까.
내 몸의 간판에 내용 채우기에 바빴으니까.
간판 내리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게 되는 거죠.
몸은 간판입니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몸은 단순히 안쪽에 천국을 두고 있는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알리는 간판일 뿐인데, 실지로 이루어져야 될 안쪽의 천국과의 내용은 하나도 없는 채로 그저 간판의 내용을 채우기에만 급급하며 살았던 우리의 삶이 중단되게 해주시고, 이제는 정말 간판일 뿐만 아니라 참된 샘으로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