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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사무엘상 8:1–22 (참조: 신명기 17:14–20, 호세아 13:9–11, 요한복음 19:12–15)
핵심 명제: 성도가 눈에 보이는 세상 권력과 제도를 동경하여 "열방과 같이(케-콜 하-고임)" 되기를 요구할 때 그것은 단순한 정치 제도의 변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왕의 자리에서 내어쫓는 배역(마아스)이며, 하나님은 때로 인간의 완고한 고집을 징벌적 허용(왕의 제도)으로 내어주시며 고난의 멍에를 통해 참된 메시아의 통치를 갈망하게 하신다.
1. 서론: 평화의 정점에서 터져 나온 반역의 함성
사무엘상 7장에서 이스라엘은 미스바의 대회개와 어린양의 번제를 통해 블레셋을 궤멸시키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에벤에셀)"는 찬란한 영적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5강). 사무엘이 다스리는 동안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을 막으셨고, 땅에는 평화(샬롬)가 깃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8장 1절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피할 수 없이 찾아온 인간 지도자의 황혼을 묘사합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삼상 8:1)
영원할 것 같았던 탁월한 영적 지도자 사무엘도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했습니다.
그는 남쪽 국경 브엘세바에 두 아들 ‘요엘(Joel)’과 ‘아비야(Abijah)’를 사사로 임명하여 통치의 짐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비극이 사무엘의 가정에서도 서글프게 반복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와이투 아하레이 하-바차 와이케후-쇼하드 와야투 미쉬파트)" (삼상 8:3)
아들들의 이름은 거룩했습니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였고,
아비야는 "내 아버지는 여호와이시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과 달리 탐욕에 눈이 멀어 재판을 굽게 했습니다.
이 작은 균열을 틈타,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의 고향 라마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늙은 선지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최후통첩을 들이밀었습니다: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삼상 8:5)
표면적인 명분은 훌륭해 보였습니다.
부패한 사사 세습을 막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사력을 갖추어 외침을 막아내자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그 번지르르한 정치적 명분 밑바닥에는,
출애굽 이래 400년 동안 자신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나르셨던
‘보이지 않는 영원한 왕 여호와 하나님’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려는 치명적인 배역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제6강은 엘리의 길을 답습한 사무엘 아들들의 타락, 세속화를 동경한 인간의 외침(케-콜 하-고임), 배신당한 선지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서글픈 탄식(오티 마아수), 왕의 제도(미쉬팟 하-멜렉)가 가져올 착취와 노예화의 경고, 그리고 인간의 거역마저도 메시아 왕국을 향한 섭리의 디딤돌로 바꾸시는 구속사적 역전을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사무엘 아들들의 실책과 장로들의 요구(1) 바차(בַּצַע)와 쇼하드(שֹׁחַד): 굽어진 공의 (삼상 8:3)
바차 (בַּצַע):
'폭력이나 부정직한 수단으로 취한 부당한 이득, 탐욕(Unjust gain)'.
쇼하드 (שֹׁחַד):
눈을 멀게 만드는 '뇌물(Bribe)'.
와야투 미쉬파트 (וַיַּטּוּ מִשְׁפָּט):
'나타(נָטָה, 기울이다, 비틀다)'의 히필형으로, "공평해야 할 하나님의 법과 정의를 돈을 받고 왜곡하여 구부려뜨렸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으나, 자식 농사에서는 완전한 영적 통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간 영웅의 한계입니다. 인간 지도자는 아무리 위대해도 영원한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성경은 냉정하게 폭로합니다.
(2) 장로들의 교활한 정치적 기회주의 (삼상 8:4–5)
이스라엘 장로들은 아들들의 부패를 바로잡아 달라고 공의로운 개혁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들들의 타락을 절호의 정치적 찬스로 삼아, 오랫동안 자신들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세속적 야망을 터뜨렸습니다:
"모든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시마-라누 멜렉... 케-콜 하-고임)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삼상 8:5b)
$$\text{"시마-라누 멜렉 레-쇼프테누 케-콜 하-고임"}$$
$$\text{"모든 이방 나라들(열방)과 똑같이, 우리를 다스릴 왕을 우리 위에 세워주소서!"}$$
그들이 원한 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다스리는 겸손한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이웃 블레셋, 암몬, 모압처럼 화려한 금관을 쓰고, 번쩍이는 철병거를 앞세우며, 강력한 군대를 상비군으로 거느린 '세속 제국의 독재 군주(케-콜 하-고임)'였습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케-콜 하-고임(כְּכָל־הַגּוֹיִם) — 구별됨의 포기와 세속화
성경 기자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 속에서 '케-콜 하-고임(모든 열방과 같이)'이라는 표현을 5절과 20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text{“케(כְּ, ~처럼/같이) + 콜(כָּל, 모든) + 하-고임(הַגּוֹיִם, 이방 민족들)”}$$
(1)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의 정면 부정
이스라엘은 왜 존재하는 민족입니까?
출애굽기 19장 5–6절에서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레위기 20장 26절:"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여러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의 영광과 생명선은 '구별됨(카도쉬, 거룩)'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나라들과 달라야 했습니다.
세상 나라는 눈에 보이는 인간 왕과 칼과 창을 의지하지만,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왕 여호와를 예배하며 말씀의 통치를 받는 독특한 '신정 국가(Theocracy)'로 부름받았습니다.
(2) 세상과 같아지려는 동화(Assimilation)의 영적 간음
그러나 이스라엘은 외쳤습니다:
"우리는 구별되기 싫습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들과 똑같아지고 싶습니다(케-콜 하-고임)!"
그들은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특권을 피곤한 짐으로 여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화려한 왕궁을 짓고 싶었고, 세상 사람들처럼 강력한 병거 부대를 자랑하고 싶었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영적 긴장감을 벗어던지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교회가 언제나 넘어지는 덫입니다.
세상의 문화, 세상의 경영 방식, 세상의 성공 방정식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끌고 들어와 세상과 똑같아지려는 '거룩함의 포기', 이것이 바로 '케-콜 하-고임'의 본질입니다.
4. 깊은 내면 해부: 거절당한 선지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탄식
백성들의 요구를 들었을 때, 사무엘은 깊은 슬픔과 배신감에 휩싸였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와예라 하-다바르 베-에네이 쉐무엘... 와이트팔렐 쉐무엘 엘-야훼)" (삼상 8:6)
와예라 (וַיֵּרַע): '악하다, 심히 고통스럽다(라아, רָעַע)'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평생 동안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고(12:3), 온 민족을 기도로 건져내며 에벤에셀의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늙었다는 이유로, 아들들의 문제를 핑계 삼아 자신을 토사구팽하듯 내쫓으려는 백성들의 배은망덕 앞에 사무엘의 가슴은 미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과 멱살을 잡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처받은 감정을 품고 조용히 무릎을 꿇어 기도의 골방(와이트팔렐)으로 들어갔습니다.
(1) 하나님의 서글픈 위로: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림이라"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우주에서 가장 아픈 신적 탄식을 쏟아놓으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키 로 오트카 마아수 키-오티 마아수 미-멜로크 알레이헴)" (삼상 8:7)
$$\text{"키 로 오트카 마아수, 키-오티 마아수 미-멜로크 알레이헴"}$$
$$\text{"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이 바로 나를 버려(마아수), 자기들 위에 왕으로 군림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아스 (מָאַס):
'역겹게 여겨 침을 뱉고 내던지다', '멸시하여 거절하다(Reject, Despise)'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아, 상처받지 말라. 백성들의 칼끝은 너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여호와의 가슴을 겨누고 있느니라!"
이스라엘의 왕 요구는 정치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온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공식적인 '영적 반역이자 해고 통지서'였습니다.
(2) 출애굽 이래로 반복된 배신의 역사 (삼상 8: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삼상 8:8)
하나님은 담담하게 회고하십니다.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평하며, 틈만 나면 바알과 아스다롯으로 달려갔던 그 배신의 뿌리가 오늘 또다시 '왕을 구하는 불신앙'으로 포장되어 터져 나온 것뿐이었습니다.
5. 핵심 원어 강해: 미쉬팟 하-멜렉(מִשְׁפַּט הַמֶּלֶךְ) — 착취의 예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되, 눈에 보이는 세속 왕을 세울 때 치러야 할 끔찍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경고하라 명하십니다.
사무엘상 8장 11–18절에 기록된 ‘왕의 제도(미쉬팟 하-멜렉)’는 한마디로 "빼앗김(Take, 라카흐)"의 연속이었습니다.
$$\text{"미쉬팟 하-멜렉 (왕의 법/제도/관례)"}$$
본문 11절부터 17절 사이에 히브리어 동사 '라카흐(יִקָּח, 취하다/빼앗다)'가 무려 6번이나 무섭게 반복됩니다.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라카흐)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11절)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라카흐)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3절)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라카흐)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4절)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라카흐)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5절)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라카흐) 자기의 일을 시킬 것이며" (16절)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가리니(라카흐)" (17절a)
그리고 17절 끝자락에서 왕정의 궁극적 결말을 서슬 퍼렇게 선언합니다: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웨-앗템 티헤이우-로 레-아바딤)!" (삼상 8:17b)
여호와의 다스림 vs 세상 왕의 다스림의 극적 대조
| 구분 | 참된 왕 여호와 하나님 | 백성들이 구한 세상 왕 (미쉬팟 하-멜렉) |
| 핵심 동사 | 나탄 (נָתַן, 거저 주시다): 생명과 땅과 만나를 주심 | 라카흐 (לָקַח, 빼앗다): 자녀와 토지와 소산을 강탈함 |
| 백성의 신분 | 자유인, 언약의 자녀, 제사장 나라의 백성 | "너희가 그의 종(레-아바딤, 노예)이 될 것이라" |
| 목적 | 백성을 살리고 번성케 하며 안식을 주심 | 왕 자신의 군사력과 궁궐의 사치를 위해 백성을 소모품으로 씀 |
| 위기 시 행동 | 큰 우레를 발하여 원수를 물리쳐 주심 (에벤에셀) | 백성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몰아 피 흘리게 함 |
얼마나 기가 막힌 역설입니까?
이스라엘은 애굽의 바로의 노예살이에서 하나님의 피 묻은 손에 의해 구원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 스스로 자청하여 "우리 위에 새로운 바로(인간 독재자)를 세워 우리를 다시 노예로 삼게 하소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참된 자유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을 착취하고 억압할 세상의 폭군 아래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영적 맹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6. 완고한 거절과 하나님의 징벌적 허용 (삼상 8:19–22)
사무엘이 왕정의 무시무시한 착취와 억압의 실상을 낱낱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로 키 임-멜렉 이헤예 알레이누) 우리도 다른 모든 나라들 같이 되어(웨하이누 감-아나흐누 케-콜 하-고임)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웨-닐함 에트-밀하모테이누) 하는지라" (삼상 8:19–20)
(1) 로! 키... (לֹא כִּי): 하나님을 향한 거역의 "No!"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자르며 소리쳤습니다: "아닙니다!(No!) 그래도 우리는 왕을 원합니다!"
"우리의 싸움을 싸울 왕":
그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홍해를 가르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리시며, 메롬 물가에서 대군을 꺾으시고,
엊그제 미스바에서 큰 우레로 블레셋을 박살 내신 분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눈앞에서 번쩍이는 칼을 차고 지휘하는 인간 장수를 의지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2) 징벌적 허용: 호세아 13장 11절의 조명
하나님은 억지로 그들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샤마 베-콜람 웨하믈레크 라헴 멜렉) 하시니" (삼상 8:22a)
이것은 기쁨으로 주신 축복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훗날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피눈물 나는 심판으로 규정합니다:"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호 13:11)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시는 가장 무서운 방법 중 하나는, 인간이 고집부리는 악한 욕망을 원하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유기(Abandonment)와 징벌적 허용'입니다(롬 1:24, 28 참조).
"그래, 너희가 그토록 인간 왕을 원하느냐? 좋다, 세워주마! 그러나 너희는 그 왕 밑에서 뼈저린 착취와 눈물을 흘리며, 인간을 의지한 대가가 얼마나 쓰디쓴 것인가를 온몸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7. 구속사적 절정: 가시관을 쓰신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그리고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무엘상 8장의 인간 왕 요구 사건을, 빌라도의 법정에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로마 황제 가이사를 택했던 유대인들의 궁극적 배역과 완벽하게 일치시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 12–15절을 펼쳐보십시오: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우크 에코멘 바실레아 에이 메 카이사라, οὐκ ἔχομεν βασιλέα εἰ μὴ Καίσαρα)!" (요 19:15)
| 사무엘상 8장의 이스라엘 백성 | 요한복음 19장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 |
|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통치를 거절함 | 성육신하여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거절함 |
| "열방과 같이(케-콜 하-고임) 인간 왕을 달라!" | "가이사(로마 황제)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
|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눅 19:14) |
| 착취당할 사울 왕을 징벌적으로 허락받음 | 로마 제국의 칼날에 예루살렘이 돌 위에 돌 하나 없이 무너짐 (AD 70) |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없이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을 멸망시킬 세상의 가이사, 세상의 사울을 왕으로 요구하는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간의 배역보다 훨씬 더 깊고 광대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불신앙적 요구(사울 왕)를 허락하시면서도,
그 어둠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사,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 ‘다윗’을 준비시키셨고,
그 다윗의 위(보좌)를 통해 온 인류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왕들(미쉬팟 하-멜렉)처럼 백성들의 것을 빼앗는(라카흐) 폭군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은 백성들의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으사(빌 2:7),
자신의 몸과 생명을 십자가 대속물로 다 내어주신(나탄) 겸손한 목자 왕이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영혼을 착취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과 안식으로 다스리시는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참된 왕이십니다.
8.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남들처럼(케-콜 하-고임)" 살고자 하는 세속적 동경을 찢으라
오늘날 성도들의 삶을 갉아먹는 가장 치명적인 영적 독소는 바로 "남들 다 그렇게 하는데요(케-콜 하-고임)"라는 세상과의 동화입니다.
"남들도 다 주일에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는데요. 남들도 다 부동산 투기하고 탈세하는데요. 남들도 다 세상 즐기며 사는데 왜 우리만 유별나게 거룩을 떨어야 합니까?"
교회마저도 대기업의 마케팅과 세상의 엔터테인먼트를 모방하여 "열방과 같이" 화려해지려 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영광은 세상과 똑같아지는 데 있지 않고,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카도쉬)에 있습니다.
세상의 유행과 방식을 흉내 내려 하지 마십시오.
광야에 홀로 서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았던 거룩한 독특성을 회복하십시오.
세상을 닮아가는 순간,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의 발에 짓밟히게 될 뿐입니다.
(2) 내 인생의 왕좌에서 하나님을 '해고(마아스)'하지 말라
입술로는 "주여, 주여! 주님은 내 왕이십니다" 찬양하면서, 실제 삶의 중대한 결정(진로, 결혼, 재정, 사업) 앞에서는 하나님을 완전히 제쳐두고 내 야망과 계산기만을 두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보다 세상 전문가의 조언, 통장 잔고의 위력, 권력자의 줄을 더 의지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을 향해 "당신은 내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시오(마아스)!"라고 사표를 던지는 영적 반역입니다.
당신의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돌려드리십시오.
눈에 보이는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만유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조건 항복하십시오.
(3) 내 뜻대로 고집부려 얻어낸 응답을 두려워하라
많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떼를 씁니다: "하나님, 무조건 이것을 주셔야 합니다! 이 사업이 성공해야 하고,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며, 이 돈을 쥐어야 합니다!"
금식까지 해가며 내 뜻을 관철하려 듭니다.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고함을 꺾지 못해 마지못해 허락하시는 '징벌적 허용(호 13:11)'일 수 있습니다.
내 고집대로 쟁취해 낸 물질, 내 욕심대로 올라간 성공의 자리가, 훗날 사무엘이 경고했던 '왕의 제도'처럼 당신의 영혼과 가정을 짓밟고 피눈물 흘리게 만드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기도하십시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기도가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복된 길입니다.
9. 결론: 역사의 무대로 걸어 나오는 한 청년
사무엘상 8장은 하나님의 씁쓸한 허락과 함께, 장로들을 각기 자기 성읍으로 돌려보내는 사무엘의 무거운 뒷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레쿠 이쉬 레-이로) 하니라" (삼상 8:22b)
백성들은 승리했다고 환호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자신들이 갈망하던 멋진 왕이 세워질 것이라 기대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그 배은망덕한 요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수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가장 완벽하고 매력적인 한 왕의 후보를 무대 위로 올려보내십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준수한 외모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큰 장대한 체구를 지닌 준마 같은 청년,
‘사울(Saul, שָׁאוּל — ‘구하여 얻은 자’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 헤매며 온 산천을 방황하던 한 청년의 발걸음,
그리고 그 사소한 일상의 방황 배후에서
역사상 최초의 이스라엘 왕을 세우기 위해 기름병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제7강: 기름 부음과 암나귀를 찾는 자 — 사울과의 만남과 섭리의 교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