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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언약
(신 30:1-10)
율법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만을 의미하지는 않습
니다. 율법을 주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가에
관련된 제사법, 둘째는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도덕법, 셋째는 그 도덕법을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법입니다. 그러나 사회법은 도덕법에 대한 사회적
인 실현이기 때문에 결국 율법은 크게 제사법(의식법)과 도덕법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를 통해 모세는 제사법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5대 제사와 7대 절기
를 다룬 책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반면 신명기에서는 주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도덕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에 도덕법을 따라 살라’는 명령이 기록된 책
이 신명기입니다.
신약시대에 언급된 율법에는 의식법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서 단 한 번의 영원한 희생제사로 구약의 제사가 말하는 모든 실체를 다 이루셨기 때
문입니다. 의식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는 구약의 제사의식을 시행할 필
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율법은 제사법을 제외한 도덕법을 의미합니
다. 모세가 강조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도덕법은 영구불멸의 항존법(Standing Low)
입니다. 신약시대라고 해서 십계명을 무시하거나 도덕법이 폐하여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신약시대에는 십계명과 하나님의 도덕법이 더욱 굳게 세워집니다.
신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십계명의 말씀이 모두 반복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
습니다. 우상숭배 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도적질 하지 말라 등의 말씀들은 신약
에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교훈들입니다. 이처럼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도덕법은
구약시대이거나, 신약시대이거나 언제든지 타당하게 적용되는 항존법입니다. 예수님께
서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
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말씀하셨습니다. 또
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
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 중 하나라
도 버리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요,
도덕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의식법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도덕법에 관련된 것입니다. 예언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망한 이유를 우상숭배와 간음과 도적질 등의 도덕적, 사회적 부패로 진단합니
다. 신명기에 기록된 도덕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당하
고 결국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도덕법
을 지키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존 하는 도덕법
을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덕법을 가르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할 것임을 먼저 예견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
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
에서 기억이 나거든”(1절)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덕
법에 순종해서 축복도 받았지만, 반면에 불순종해서 저주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의 삶에는 이처럼 축복과 저주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과 저주가 섞이면 축
복이 빛을 잃어버리고 저주만 남게 되어 쫓겨 간 모든 나라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인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 목사님께서 저술한 책을
보면 이런 일화가 소개됩니다. 1978년에 영국에서 월급 인상을 요구하는 소방관들의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할 수 없이 육군을 동원해 소방관들의 업무를 대신하게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런던에 사는 한 할머니가 소방대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집에
불이 났는데, 기르던 고양이가 안방에 갇혀 있으니 구해달라고 신고를 하였습니다. 임
시 소방관들은 군인정신을 발휘해서 불 가운데 있는 고양이를 건져냈습니다. 고양이
의 주인이었던 할머니는 따듯한 차를 소방관들에게 대접하였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
며 떠나는 소방관들을 마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소방차를 몰고 그 집을 떠
나려던 순간, 그만 불 가운데서 구해냈던 고양이를 치어서 고양이가 죽고 말았습니
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식인종에게 잡
혔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식인종이 세 사람에게 과일을
열 개씩 따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미국 사람이 사과 열 개를 따서 식
인종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식인종은 “네가 사과 열 개를 이 자리에서 다 먹되
웃거나 운다면 내가 너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사람은 열심히 사과
를 먹었지만 아홉 개 째를 먹는 도중에 그만 힘들어서 울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은 식인종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조금 있다가 한국 사람이 도착했는데 한국 사람
은 딸기 열 개를 구해 왔습니다. 식인종은 이번에도 똑같이 딸기 열 개를 다 먹되 웃
거나 울면 잡아먹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한국 사람은 마음속으로 ‘딸기 열 개 먹
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이제 살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딸기를
먹는데 아홉 개 째를 먹는 순간 그만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식인종에게 잡아먹힌 한
국 사람이 천국에 도착해서 먼저 죽은 미국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사림이 묻
습니다. “나는 사과 열개를 먹기가 너무 힘들어서 울었는데 당신은 딸기 열개 먹는
게 뭐 어려워서 그렇게 웃다가 죽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한국 사람이 대답합니다.
“내가 딸기를 9개째 먹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일본 사람이 수박 열 통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보가 터져서 웃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딸기 열 개
를 먹는 축복을 누리다가 그만 웃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축복과 저주가 섞이면 결국 축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저주만 남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이면 좋은 것
은 별로 빛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1. 율법의 한계
율법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옳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지만 그 법을 지
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 바로 한계입니다. 그것은 율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죄성의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법이 거룩하고 옳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범하여 실패를
자초합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고 탄식하였습니다. 잠언 7장에는 간음을 하면 집안이
망하고 인생을 망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소가 푸줏간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이
방 여인의 색에 홀려서 끌려가는 소년의 이야기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
면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인간은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탐
심은 곧 우상숭배와 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탐욕과 탐심을 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율법이 거룩하고 그것을 지키면 축복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율법을 거역하고 저주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너와 네 자손
이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라. 축복을 택하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망과 저주를 택하여 길을 선택합니다. 신명기 이후의 역사
적인 기록에 이 사실이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결국 주전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고, 주전 586년에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비극적인
역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2. 도덕적 실패와 국가적 운명
이스라엘이 도덕적으로 실패하는 것과 국가적인 운명은 그 맥을 같이합니다. 하나님
의 도덕법에 순종하여 살면 개인도 축복을 받고 나라도 축복을 받습니다. 나라의 부강
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여 사는가에 달려 있습
니다. 만약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한다면 개인과 국가는 함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제가 지난주에 필리핀 바기오에서 사역하시는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필리핀의 바
기오는 고산지대라서 습도도 낮고 사시사철 시원합니다. 이렇게 기후가 좋기 때문에
필리핀의 부자들과 외국인들이 그 곳에 별장을 세우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인
들도 바기오로 관광을 많이 갑니다. 그래서 바기오의 시내 중심가에는 한때 부패하고
타락한 환락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바기오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희한하게도 지진의 여파로 환락가들이 밀집한 땅들이 땅 속에 파묻혀서 환락가가
모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기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
달았고, 지금 바기오에서는 개신교의 부흥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
다. 제가 바기오에 가서 설교할 때도 주민들이 3,000명이 몰리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바기오에서 부흥이 일어난 것은 바로 죄악을 징벌하신 하나님의 심
판을 그들이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는 방
향으로 흘러가고, 경제에도 큰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스컴은 북핵의 위협에 대해
서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지만 이 축복이 과연 지
속될 것인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해 우리는 정치인
과 경제인들의 부패, 혹은 교육의 실패를 탓합니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성도들의 도덕
적 부패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치인들, 혹은 경제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보
십시오. 한 손가락은 그들을 가리키지만 세 손가락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세 배 더
잘 못했다고 탓합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들의 도덕적 부패가 결국 나라의 패망과 위기를 가
져온다는 사실을 묵상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불순종하여 교회가 부패하
고, 성도들이 부패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축복을 거두시고 저주를 내리실 것이
라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허물과 나의 잘못과 나의 죄
악이 크다는 사실을 생각하니까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까지 예레
미야서를 모두 읽으면서 모세가 신명기서에서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던
하나님의 도덕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어겼기 때문에 포로 되고 고통 받았
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3. 실패한 이스라엘이 행할 두 가지
인간이 이와 같이 율법을 지킬 수도 없고, 실패하며 저주받는 방향으로 가는 존재라
면 모세는 무슨 이유로 신명기를 통해 율법을 열심히 교육했을까요? 무슨 이유로 하나
님의 거룩한 도덕법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선포했을까요?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이 실패하는 현장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 옳은 것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지는 못합니
다. 우리는 실패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실패한 현장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패
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
패를 돌이키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축복받는 위치로 다시 돌이켜 놓으
실 것입니다. 모세는 실패하고 포로 된 현장에서 두 가지를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
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신 30:1)
말씀을 기억하라(Remember)고 명령합니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반복해서 선포한 말씀
을 머리로만 알았었다면 이제는 그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으니 마음으로 기억하라는 명
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포로 된 현장에서 ‘우리가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는
가? 왜 우리가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 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이방 나라에
와서 포로생활을 해야 되는가?’라고 탄식하더라도 그 마음으로 모세가 가르친 신명기
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운동을 배울 때도 처음에는 이론을 배웁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하게 이론을
배웠다고 할지라도 현장에 가서 막상 운동을 하면 실수를 범하기 마련입니다. 거기서
실패를 하면 비로소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깨달아질 때, 그것이 마음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고통스러운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
면 저주가 온다더니 바로 이것이었구나. 도덕적으로 실패한 삶을 살면 개인적, 국가적
인 실패가 찾아온다고 하더니 바로 이것이었구나. 간음하면 재앙이 온다더니 이것이
재앙이구나.’
그러나 그 기억으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너와 네 자손이 네 하
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
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마음으로 하
나님의 법에 불순종해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즉시 하나님께 돌아오라
(Return)는 말씀입니다. 돌아오되 몸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함께 돌아와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예언서를 읽다 보면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인 도덕법을 따라
살면 축복이요, 도덕법을 어기면 저주라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 그 도덕법을 어겨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풍
재와 깜부기 재앙과 염병과 메뚜기 재앙 등 갖가지 재앙을 내리셨다고 꾸짖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는 분노의 날, 이방 백성들에게 포로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
자들은 그 날을 가리켜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여호와의 날’이 임하였기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는 그 곳에서 예레미야서와 신명기를 읽다
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포로된 것은 모세가 그렇게 가르친 신명기의 말씀
을 범했기 때문이구나. 그러나 이 포로생활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70년 후에
는 다시 돌이킴을 받게 되겠구나.’ 그래서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온 이스라
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
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
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단 9:11).
우리 대한민국이 살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통치를 잘하거나 경제가 성장해
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고 다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대한민국이 삽니다. 기억하고 돌아와야 우리가 다
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했습니다.
술집에 가서 ‘집사님’을 부르면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절반이 뒤를 돌아볼 것
이라는 어떤 분의 농담 같은 진담을 들으면서 저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부패하면 국가적 위
기와 재앙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선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
이 시행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것이 부흥입니다.
4. 하나님의 약속 세 가지
우리가 기억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약속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Restoration)시켜 주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
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
찌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
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너로 다시 그
것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신 30:3-5). 이것이 회복입니다. 포로에서 돌이켜 국가를 회복시키시
고, 열조의 땅을 회복시켜서 열조보다 더욱 번성케 되는 경제적 회복을 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고구려 땅
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공산주의가 무너지며, 남북한
이 자유와 민주와 신앙으로 통일될 날이 올 것입니다. 쓰러져가는 대한민국의 경제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회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내 허물로 실패와 재앙이 왔
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억하면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말씀으
로 하나님의 법을 다시 존중하면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갱신(Renewal)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
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
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우리가 돌이키면 영
적인 갱신, 마음의 갱신, 정신적인 갱신, 신앙적인 갱신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참
된 부흥입니다. 부흥은 성도들의 심령이 새로워져서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다시 나와서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 등 기도할 수 있는 모임에 여
러분들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십시오. 어떤 분들은 집이 멀어서, 차타는 시간이 아
까워서 나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는 차타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사용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미국 배톤 루지라는 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뉴올리언스신학교에
서 배톤 루지까지의 거리는 약 80마일(130km)이었습니다. 왕복하는데만 대략 세 시간
이 걸렸는데, 저는 이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확보하였습니다. 차 안에서 혼자 주여
삼창을 하던지, 조용히 기도하던지 방해할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며 가며 차 안에서 시간 낭비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차를 타는 시간까지
기도의 시간으로 삼으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입
니다. 마음을 갱신하면 체험과 이적도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체험과
기사와 이적만 원하면서 이것이 참된 부흥인양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체험과 기사와
이적만 원하면 악한 사단의 역사가 개입되고, 가짜 방언, 가짜 예언, 가짜 능력을 체
험할 수도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내적인 갱신이 이루어질 때 성령의 능
력이 나타나고 참된 체험, 참된 이적, 참된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
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Rejoicing).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
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
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가
정 문제, 경제 문제, 자녀 문제, 교회 문제, 국가 문제가 모두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참된 부흥, 내적인 부흥을 열망해야 합니다.
결 론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평양 대부흥도 달리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어겨서
부패하였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고 기도했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께서 폭팔적으로 역사하셔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의 탓을 하지 말고 내 자신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
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대개 50년 주기로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2007년에는 하나님께서 다시 부흥을 주시
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억(Remember)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Return), 하나님께
서 우리를 회복(Restoration)시키시고, 갱신(Renewal)시키시며, 기뻐하실 것
(Rejoicing)입니다. 숫자적인 성장이 부흥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과 가정과
국가가 모두 회복되는 대각성(Great Awakening)이 찾아와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이 변화되면 세상은 반드시 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우리의 허물을 깨닫고 기
도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2007년에는 우리나라에 평양 대부흥
의 역사가 다시금 새롭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피영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