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제4강] 메조토이콘(Μεσότοιχον)과 쉬스소모스(Σύσσωμος): 원수 된 장벽을 깨 부수는 십자가의 평화와 한 새 사람
(본문: 에베소서 2장 11절 - 22절)
에베소서 2장 11절부터 22절까지의 서사는 기독교 교회론(Ecclesiology)의 위대한 대헌장이자, 십자가 대속이 어떻게 수평적 파멸의 장벽을 부수고 우주적 대연합을 성취해 냈는가를 변증하는 복음의 핵폭탄입니다.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 과거 그들이 언약의 외인이요 하나님도 없던 절망적인 '그때(포테)'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피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철옹성 같던 분리의 담벼락을 어떻게 단숨에 해체했는가를 법정적으로 논증하고, 마침내 교회가 성령이 좌정하시는 거룩한 신적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음을 가장 담백한 필치로 주해합니다.
1. 포테(Ποτέ)와 제노스(Ξένος): 언약 밖에서 소외당해 파멸을 기다리던 외인들의 과거
사도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이방인 회중들을 향해, 과거 그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비참한 격리 상태에 놓여 있었는가를 역사적 팩트로 상기시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포테)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제노스)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1-13)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제노이, ξένοι)이요!"
원어 '제노스'는 아무런 법적 권리도, 보호막도 없이 철저하게 격리되고 배제된 '외국인, 나그네, 이방인'을 뜻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된 메시아의 구속 언약에서 이방인은 완전히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적 주소는 그리스도 밖(코리스 크리스투)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엘피스)도 없고 창조주 하나님마저 존재하지 않던 완벽한 '무(無)'의 절망 상태였습니다.
해롤드 호너(Harold Hoehner)의 정교한 주해처럼, 이 절망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 우주적 사건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하이마티 투 크리스투)'뿐입니다. 인간의 외교적 노력이나 도덕적 철학이 아닙니다. 골고다에서 쏟아진 성자의 피가 영적 우주 공간을 뚫고 들어와, 멀리 격리되어 있던 죄인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직통으로 끌어당겨 가까워지게 만드셨음을 선포하며 인간 중심의 모든 연합주의를 도끼로 쳐냅니다.
2. 메조토이콘(Μεσότοιχον)과 카이노스 안드로포스(Καινος ἄνθρωπος): 원수 된 법조문의 담을 깨 부순 십자가의 화평
사도는 이제 예루살렘 성전 내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역을 서슬 퍼렇게 갈라놓았던 실제적 분리의 장벽을 소환하여, 십자가의 평화 신학을 웅장하게 논증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메조토이콘)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카이노스 안드로포스)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4-16)
"중간에 막힌 담(메조토이콘 투 프라그무, μεσότοιχον τοῦ φραγμοῦ)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원어 '메조토이콘'은 예루살렘 성전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 사이에 서 있던 '돌 담벼락'을 뜻합니다. 당시 그 담벼락에는 "이 선을 넘는 이방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한다"는 무서운 문구가 헬라어와 라틴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혈통과 차별을 규정하던 이 원수 된 장벽과 법조문의 율법(노몬)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육체(사르크스)를 찢으심'으로써 단숨에 완벽하게 폭파하여 해체하셨습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 본문을 향해 지성적인 사자후를 터뜨립니다. "그리스도는 차별의 담을 허무셨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자기 안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제3의 인류인 '한 새 사람(카이노스 안드로포스)'으로 재창조하셨다!" 기독교 교회의 일치는 인간들의 타협이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로 원수 된 것을 영구히 소멸(아포크테이노)시키시고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신적 화평(에이레네)임을 묵직하게 못 박아 넣습니다.
3. 쉬스소모스(Σύσσωμος)와 오이케이오스 투 데우(Οἰκεῖος τοῦ Θεοῦ): 왕가의 시민이자 권속으로 승격된 영적 신분
바울은 십자가로 장벽이 깨어진 이방인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획득한 새 사회의 법정적·영적 신분의 권세를 찬란하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쉬스폴리테스)이요 하나님의 권속(오이케이오스 투 데우)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아크로고니아이오스)이 되셨느니라" (엡 2:19-20)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오이케이오스 투 데우, οἰκεῖοι τοῦ θεοῦ)이라!"
이방인들은 더 이상 천국의 변방을 기웃거리는 불법 체류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늘나라의 완벽한 합법적 '동일 시민(쉬스폴리테스)'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왕가적 가문의 일원인 '가족, 권속(오이케이오스)'으로 영적 지위가 대격상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토대는 인간 사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사도와 선지자들이 생명 바쳐 전한 '그리스도의 계시의 터(데멜리오스)' 위에 우뚝 섰습니다.
피터 오브라이언(Peter O'Brien)의 통찰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고 동서남북의 모든 벽을 완벽하게 하나로 묶어 고정하는 건물의 최종 반석인 '모퉁잇돌(아크로고니아이오스, ἀκρογωνιαίου)'이 되셨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라는 모퉁잇돌에 접붙여진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정치적 사상이나 분열의 기수도 감히 깰 수 없는 초자연적 연합체(쉬스소모스)임을 선언하며 공동체 파괴의 우상을 도끼로 쳐 죽입니다.
4. 카토이케테리온(Κατοικητήριο)과 순오이코도메오(Συνοικοδομέω): 성령이 좌정하시는 움직이는 성전의 대건축
바울은 에베소서 2장의 대미를 장식하며, 신자가 서로 연합하여 이루어가야 할 우주적 성전 건축론을 선포하며 논증을 완벽하게 닫아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나오스)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카토이케테리온)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순오이코도메오)" (엡 2:21-22)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카토이케테리온, κατοικητήριον)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원어 '카토이케테리온'은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영원히 정착하여 좌정하시는 거룩한 '신적 영토, 안식처'를 뜻합니다. 과거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나오스)은 돌덩어리에 불과했으나, 신약의 참된 성전은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서로 연결(쉬나르몰로게오)'되어 대건축을 이루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 유토피아입니다.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순오이코도메이스데, συνοικοδομεῖσθε)!"
이 위대한 단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성화와 교회의 일치는 단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나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거룩해지는 성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꼴 보기 싫은 형제와 모난 부분이 부딪치고 깎여 나가며, 성령의 통치 아래 장엄한 신적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는(순오이코도메오)' 공동체적 대역사입니다. 교회는 이미 천상적 성전의 완성형을 향해 달리는 영광의 실체임을 선포하며 2장의 위대한 대서사를 마칩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