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제4권) 간행에 즈음하여
오세종(예수원교회 목사)
애산(愛山) 김진호 목사의 순(純) 한문 설교집『무화과』(제4권)은 애산이 아직 배재학당에 근무하던 시절인 ‘1930년 9월에서 1931년 12월까지’ 서울의 몇 교회에서 행한 설교문을 모아 놓은 글이다. 이 설교집에는 애산 자신의 설교도 있지만, 다른 이의 설교문들도 애산이 한문으로 기록한 것들이 섞여 있다.
또한,『무화과』(제4권)에는 설교문 뿐만 아니라, 배재학당 청년회 임원 명단, 정동 산수회(山樹會) 임원 명단, 그리고, 중곡교회, 삼청교회, 홍제동교회의 학습⋅세례자 명부도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그 해당 교회의 역사 자료로 귀중한 자료들이다. 애산이 설교하러 다닌 여기에 등장하는 중곡교회는 지금의 종로 4가 세운상가 자리에 있었던 교회이다. 이 교회는 1910년 어간에 세워진 교회로 처음에는 초가집 예배당이었으나, 교인이 50여명으로 증가하여, 1917년에 한 차례 증축하였고, 1922년에는 교우들의 헌금으로 1,000원을 모아, 1925년에 벽돌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당시 삼청교회와 중곡교희의 교세가 비슷하고 또한 거리가 가까워서 두 교회를 한 구역으로 묶어서 관리했다.
『무화과』(제4권)에 실려 있는 설교자와 설교한 장소는 이렇다. 그 설교자와 그 설교를 행한 교회는 애산 뿐만 아니라 다른 설교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설교를 행한 교회들은 다음과 같다. 홍제동교회에서 11회, 그 다음으로 정동교회, 상동교회, 중곡(中谷)교회가 각각 9회, 삼청동교회가 5회, 이태원교회 2회, 그 밖에 도화동교회와 세브란스 의전에서 각각 1회씩 설교했다.
그 설교자들의 명단은 이렇다. 이시웅 이명직 강매가 각각 3회, 정마리아 조병결 서태원이 각 2회, 이은택 안석행 허엽 명성(明性) 신공숙 이용태 이용석 장(張) 목사 김 감리사 전필순 목사 등의 설교도 각각 1편 씩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설교문 중에는 선교사들의 설교를 애산이 한문으로 적은 것도 몇 편 수록되어 있다. 그들은 합쓰 목사 3회, 기이부(케이블), 쉘함머, 피도수(피터스), 아펜젤러 등이다. 그뿐 아니라 이 설교문 중에는 여성 설교자의 이름도 눈에 띈다. 정 마리아와 손몌레(孫袂禮) 등이 그들이다. 이 설교문에서 설교자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설교들은 물론 애산 자신의 설교다. 자기 설교집에 구태어 자기 이름을 적어 넣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30년 10월 12일 상동교회에서 애산은 ‘참 해방’이라는 설교를 행했다. 그 내용의 일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약한 점이 무엇 입니까? 어떤 이는 교육의 부족을 말하고, 어떤 이는 경제의 부족을 말하고, 어떤 이는 정치의 부자유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제일의 취약한 점은 영적인 것입니다. 지난날의 실패도 후일의 비운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이 죽으면 육도 따라 죽게 됩니다.’ 『무화과』(제4권)을 통해 들려오는 애산의 음성이 지금 우리의 귓가에 쟁쟁하다.
20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