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 번씩 만나던 군대 친구가, 기어이 고희연을 한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가 축하의 뜻이 아니라 “인생 그렇게 아득바득
오래 살아봤자 별 거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그렇게 가르쳐줬는데도 말이지요.
전화 받으면서는 그렇게 말하며 웃고 말았지만, 막상 초대를 받고 보니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군요.
잔치라니 가서 잘 마셔주기만 하면 되는 거냐, 아니면 비록 몇 푼이라도 축의금
봉투를 들고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작은 봉투 하나 집어넣고 갔지요.
막상 호텔에 당도해 보니, 예수님 시대의 성전 앞 장사꾼 같은 축의금 수금자와
고리대금 장부 같은 방명록, 그리고 늘어선 축하화환이 사람을 질리게 합니다.
그의 아들이 워낙 힘센(?) 자리에 있어서인지, 눈도장 찍으러 온 젊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장날처럼 북적댈 뿐 정작 머리 하얀 주인공의 친구는 몇 없더군요.
행사가 시작되자, 그 놈의 “할아버지 할머니”소리는 또 얼마나 자주 해대는지
그 소리만 듣고도 한 십 년은 더 늙어지는 기분입니다.
하기야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 일흔이면 산 송장이나 다름 없었지요.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나이 일흔은, 아직은 노인정에도 갈 수 없으면서,
사실은 중년이라 우기기도 애매한 중늙은이에 불과합니다
지하철은 공짜로 타지만, 노인석에 앉기에는 아무래도 꺼림칙한 나이지요.
몸이 마음 같지 않아 가끔씩 다리가 휘청거리기는 하지만, 생각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넘치는 중년이니까요.
이런 중년의 나이에, 이제 그만 뒷방으로 물러나라는 고희연에 함께 앉아있자니
고희까지는 아직 노루꼬리보다 더 많이 남은 저로서는 민망스럽더군요.
잔치가 무르익어가는지, 초청된 가수가 나와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할 일이 남았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가기에는 아직은 너무 젊은 건 사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