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전차굴'로 알려진 가마오름 동굴진지 내부 모습. 갱목홈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총길이 2km 달하는 도내 가장 긴 지하호 무분별 개발 지양… 역사성·원형 살려야
가마오름 동굴진지(등록문화재 제308호)는 태평양전쟁 시기 제주도 일본군 군사시설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본보 취재팀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가마오름에 대한 탐사결과 동굴진지 길이만도 2km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초대형 규모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는 곳이다.(본보 2008년 6월30일자 3면)
가마오름 동굴진지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미로형 구조로만 알려져 왔을 뿐 정확한 규모라든가 내부 구축양상은 베일에 가려져 왔다.
▶조사결과 밝혀진 것=제주 서부지역 중산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총 길이가 1.901km로 약 2km에 이른다. 가마오름에 분포하는 갱도 수는 모두 17곳으로 이 가운데 진입이 가능한 곳은 15곳이다. 출입구만도 30곳이 넘는다. 비고 51m에 불과한 자그만 오름 지하에 송이(scoria)층을 뚫고 약 2km에 이르는 동굴진지가 마치 벌집처럼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같은 규모는 제주도내 최장의 동굴진지로 일본 본토에 있는 마츠시로대본영 지하호(松代大本營)를 연상시킨다.
가마오름 동굴진지 가운데 가장 긴 곳은 9백69m 규모다. 이 동굴진지 일부는 현재 평화박물관 방문객들의 관람코스로 이용되고 있고, 나머지는 미공개구간이다. 특히 이 동굴진지는 출입구만 해도 9곳인데다, 내부 자체가 3단 구조로 돼 있는 등 미로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즉 동굴진지는 오름 맨 하부층과 중간지점, 상부층으로 구분되는데 끊기지 않고 조그만 통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있는 양상이다. 내부에는 크고 작은 공간 20여 곳이 만들어져 있어서 눈길을 끈다. 또한 2단 구조로 된 동굴진지와 함정 형식으로 판 수직갱도 3곳도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곳에는 제주 서남부를 중심으로 포진했던 일본군 제111사단 예하의 244연대본부 및 병력이 주둔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실태는 어떻게=가마오름 동굴진지는 현재 일부 구간이 박물관 관람코스로 개발되면서 일본의 침략야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체험공간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박물관측은 현재 오름 사면을 따라 산책로 정비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하지만 오름 지하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점을 감안하면 무분별한 산책로 정비는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오름 지하가 송이층으로 돼 있어 장기적으로 외부충격에 노출될 경우 동굴진지 내부가 무너질 우려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실제 탐사 결과 훼손되거나 함몰이 진행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한 공개 구간 뿐 아니라 비공개 동굴진지의 경우도 보존가치가 높지만 아직까지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동굴진지 입구부분은 송이층으로 돼 있어서 함몰이 진행되는 등 훼손되거나 훼손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
▲가마오름 동굴진지 내부에서 탐사팀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가마오름에서 가장 긴 동굴진지 내부 도면. 초록색 부분이 박물관 공개구간.
▶정비 보존 방안은=가마오름 동굴진지는 구조나 규모, 또 보존상태 측면에서 일본군 진지유형의 하나인 '주저항진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의 하나다. 또한 제주도내 최장의 동굴진지가 해안가가 아닌 중산간지대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은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볼모로 준비했던 본토결전 작전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사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관람코스로 이용되고 있는 공개구간 뿐 아니라 미공개 구간에 대해서도 보존 정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미공개 구간의 경우는 구축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섣부른 공개는 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머지 동굴진지 가운데 일명 '전차굴'로 알려진 곳 등은 갱도 진지 구축실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성급한 개발보다는 철저한 조사와 전문가의 자문 등을 토대로 보존할 곳은 원형대로 보존하고, 활용할 곳은 역사교육의 장으로 일반에 개방하는 방안 등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된다.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국내외 사례 비교]일본 마츠시로대본영 지하호와 유사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셋알오름(알오름)의 지하호와 비교할 수 있다. 셋알오름은 지금까지 총 길이가 1.220km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가마오름은 약 2km로 셋알오름에 비해 8백여m 긴 제주도내 최장의 동굴진지다. 하지만 셋알오름은 하나로 연결된 단일 동굴진지 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마오름의 경우 17곳 동굴진지 가운데 가장 긴 것이 약 9백69m로 현재 일부가 평화박물관 관람노선으로 이용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가장 유명한 태평양전쟁 당시 지하군사시설 중 하나는 나가노현에 있는 마츠시로대본영(松代大本營)이다. 마츠시로대본영은 쇼산지하호, 마이즈루산지하호, 미나카미산지하호 등 3개 지하호로 이뤄졌으며 총길이 10.4km에 이른다. 쇼산지하호에는 정부건물과 NHK, 마이즈루산지하호에는 대본영과 천황 황후실이, 미나카미산지하호에는 식료창고를 만들기로 하고 1944년 11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최대 1만명의 군인, 일본인과 조선인 노무자들이 공사에 동원됐다. 이 가운데 쇼산지하호는 5.9km로 3곳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나머지 마이즈루산지하호는 1.5km, 미나카미산지하호는 1.6km로 가마오름 동굴진지에 비해 작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지하공장은 13.90km로 알려진다.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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