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戀歌
얼마 전 동기회장님의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면 어떻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졸필이지만 국립대전현충원에 대한 연가(戀歌)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지난 초여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동기회 주관으로 먼저 작고한 동기들 묘소 참배행사 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넌 변함없는 대전 현충원지킴이”라고.
작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대전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긴 것이 ′89년 말이었으니 국립대전현충원에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30여년이 지났습니다. 육군본부로 보직을 옮기면서 고교 동기인 고 서충환 중령의 묘소를 참배하면서부터 대전지역을 벗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동기회 행사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홀로 시간이 되는대로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었습니다. ′00년 이후에는 매년 동기회 간부나 일원으로 국립대전현충원 참배행사나 장례식 또는 안장식에 참석하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매년 현충일이 다가오면 동기회의 지원과 대전지역 동기들의 헌신적인 참여와 배려로 참배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는 13명의 동기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잠들어 있습니다. 모두의 사연을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직접 접했던 사연들을 담고자 합니다.
육군본부 근무 시 늘 업무협조를 하고 함께 웃던 2명의 동기가 해상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여 논산통합병원에서 염을 할 때, 동기 누군가 참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사신(死身)을 접하는지라 다소 두렵고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얼굴을 보며 새가슴이 되기도 하였지만, 두 사람의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도 달라 염(殮)을 하는 군의관에게 물었더니 사고 당시 살고자 하는 의지차이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던 말이 생생하며, 조사(弔詞)를 읽을 때도 그 생각에 많이도 울먹였던 것 같습니다.
ㅇㅇㅇ동기는 육군교육사 근무할 때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여 대전통합병원 장례식장에서 봉사하고, 너무도 허망하고 어이없는 교통사고였기에 사고현장을 헌병들과 재조사도 해보았습니다.
ㅇㅇㅇ동기는 몇 주 전까지 함께 골프운동을 하며 웃음을 주고받았던지라 갑자기 암 투병 한다는 소식에 대전통합병원으로 찾아가 위로해 주었는데 그 동기의 안장식에 참석하여 가슴이 아려왔으며,
ㅇㅇㅇ동기는 전방에서 훈련부대와 평가부대로 만나 밤새워 전술토의를 했던 기억을,
ㅇㅇㅇ동기는 사관학교 생도시절 2학년 하계군사훈련 때 함께 박격포를 메고 고각을 쟀던 기억을 되새기며 안장식에 왔던 동기의 어린 아들을 보면서 걱정스런 마음에 가슴이 아팠었고,
ㅇㅇㅇ동기는 사관학교 같은 교반으로 늘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성적이 아주 우수해 내가 가장 부러워했었고, 대전지역의 토박이라는 말까지 하며 업무와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였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운명을 달리하여 장례식장과 안장식에서 서글프게 눈물을 훔쳤었습니다. 그는 우리 군을 빛내고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로 지금도 국익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먼저 하늘나라에 갔어도 영원히 이름이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전역 후에는 ㅇㅇㅇ동기가 암 투병 중에 대전 근처로 치유하러 와 신ㅇㅇ 동기와 함께 찾아가 위로를 하였는데 얼마 후에 안장식에 참석하여 업무 스트레스의 결과라는 말을 듣고 군인의 직업의식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ㅇㅇㅇ동기는 대전지역에서 현역 및 전역 후 19년 동안 늘 골프운동도 함께 하고, 전역 후 산악회에 가입시켜 등산도 하고, 주기적으로 만나 사우나도 즐겼던 법 없이도 잘 살아갈 사람인데 갑작스런 비보에 코로나 상황에서도 한걸음에 달려가 조문하며 가슴속으로 한없이 울었고, 안장식 때는 대전지역 동기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배려로 홀로 가는 길이 홀가분하게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몇 개월을 일상생활 속에서 동기의 생각이 새록새록 나서 추억의 사진들을 보며 되새김도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그 동기의 말대로 노후 건강에 대비한 규칙적인 생활과 중요성도 느끼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운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모두가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건강을 지키려 하지만 운명의 수레는 우리의 의지대로 가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면부지의 남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4년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어지고, 함께 울고 웃으며 생활하고, 훈련하며 끊을 수 없는 연을 맺었기에 지금까지 대전국립현충원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내가 묻힐 곳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있는 우리 육신의 마지막 종착지가 아닌가요.
이제 칠순이 지나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짧을진대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면서 모든 것 내려놓고 잊고 살아가는 것도 삶의 지혜겠지요.
요즘도 가끔씩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을 걸으면서 먼저 간 동기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사관생도 시절 어떤 이는 날쌘 돌이로 어떤 이는 선착순 꼴찌로 들어오면 절차탁마 안됐다고 다시 뛰고, 밤이면 봉걸레 몰래 챙겨주고 서로 웃고, 2층 침대에서 잠꼬대 하다 굴러 떨어져도 멀쩡했던 기억 등도...
그래서 동기애가 더 깊은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절차탁마’라는 말이 더 정겹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보다 먼저 운명을 달리한 동기들을 그리며 내 인생에 가을쯤 왔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때까지 건강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참고 하세요.
★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든 동기생들의 명단 (13명)
1. 고 서충환 ; 장병 1묘역 202묘판 572번
2. 고 전성칠 ; 장병 1묘역 202묘판 886번
3. 고 김세경 ; 장병 1묘역 204묘판 1443번
4. 고 장동진 ; 장병 1묘역 204묘판 1521번
5. 고 박정창 ; 장병 1묘역 210묘판 3926번
6. 고 서재훈 ; 장병 1묘역 210묘판 4148번
7. 고 임병국 ; 장군 2묘역 5번
8. 고 고종모 ; 장병 2묘역 216묘판 8849번
9. 고 김동수 ; 장병 2묘역 216묘판 9096번
10. 고 민항기 ; 장병 2묘역 216묘판 9253번
11. 고 박용운 ; 장병 3묘역 312묘판 10219번
12. 고 김광국 ; 장병 7묘역 708묘판 66919번
13. 고 장종대 ; 장병 7묘역 711묘판 71194번
★ 대전국립현충원 보훈둘레길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은 무지개 색깔(빨주노초파남보)을 따서 명명하였는데 사계절 산책하기도 좋고, 푸르른 숲과 어우러져 어떤 길은 소나무와 대나무로, 어떤 길은 단풍나무와 낙엽수로, 어떤 길은 잡목으로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고, 작은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아직도 다람쥐가 보이고 산새들도 지저기는 환경에, 요소요소에는 쉼터와 연못도 만들어 운치를 더 해주며, 적당하게 언덕과 편편한 길이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입니다.
총 10.04km이지만 7개 코스로 나뉘어 자신의 건강과 능력에 맞는 걷기를 할 수 있는 코스로 2~3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또한 대전 시민들이 ‘걷고 싶은 길 12선’에 선정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1. 빨강길(1.4km) ; 단풍나무와 소나무, 잣나무, 메타세콰이어가 숲을 이루는 가장 편편한 길로 동기들이 가장 많이 잠들어 있는 묘역(6명) 주변을 지난다.
2. 주황길(1.3km) ; 소나무와 대나무, 잡목 숲으로 오르막 내리막이 조금 있는 길이다. 이곳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소를 뒤로 하는 길로 쉼터가 있어 차 마시기 좋은 곳이며, 초입에는 ‘한얼지’라는 연못이 있어 7~8월에는 연꽃도 볼 수 있다.
3. 노랑길(1.4km) ; 단풍나무와 소나무, 잣나무가 많은 길로 가을엔 울긋불긋 예쁜 단풍을 구경하기 좋은 명소이며, 작은 산을 도는 길로 옆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특히, 여름철에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4. 초록길(2.2km) ; 초록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다소 있는 길로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전망대’란 표지판이 보이는데 쉴 수 있는 벤치만 있고 ‘전망대’는 없다. 아마도 잠시 쉬면서 국립대전현충원의 전경을 한눈에 보고 감상하라는 것 같다. 조금 지나면 또 다른 전망대도 나오는데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 길은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묘비가 퍼레이드를 하는 것 같은 추억을 되새겨주는 곳이다.
5. 파랑길(0.84km) : 파랑길은 산책로 중 가장 짧은 길로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 옆을 지난다.
6. 쪽빛길(1.4km) ; ‘남색’을 우리말로 ‘쪽빛’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일부는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주는 길이며, 나무들 사이로 바라보는 경치가 햇살과 어우러져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7. 보라길(1.5km) ; 다소 오르막길이 있지만 충혼관과 현충지 옆을 지나는 길로 나름대로 전경이 아름답다.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 중 제일 아름다운 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현충지의 사계절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각 계절 나름대로 아름답지만 특히, 봄, 가을에 현충지에서 바라보는 풍광들은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절경이 아닐 수 없다.
혹시 대전지역 산이나 둘레길을 걷고 싶다면 한 번쯤은 국립대전현충원 둘레길을 걷는 것도 권해보고 싶습니다.
첫댓글 병우 대전에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함께 했던 옛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빌며...
대전 현충원지기 이병우동기에게 상금을 줄만합니다. 너무 적게 주었지요.
유명을 달리한 동기들의 이름을 보면서 착착한 심정입니다. 우리 동기들 더욱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아갑시다.
멋있는 현충원을 산책하면서 동기생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이병우 동기님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전우애, 희생과 봉사정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