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유묵 이야기> 신석초의 ‘천지’ 유묵
* 석야, 신 웅 순(시조시인 ․ 평론가 ․ 서예가, 중부대교수)
보령시 개화예술공원에 있는 신석초의 육필 시비
충남 서천 한산에는 허균 일가와 비견될 수 있는 문장가 일가가 있다. 신석초 7대조인 석북 신광수의 일가이다. 당시 일세를 풍미했던 석북 광수, 기록 광연, 진택 광하, 부용당 신씨 4남매 시인들을 말한다. 숭문동은 학문을 숭상하는 마을 이름이다. 낡은 체제를 일신하고 새 시풍을 세워 당시를 풍미했던 석북은 중국의 백거이와 비교되기도 한다. 생존시 석북 만큼 만인에 회자된 시인은 일찌기 없었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만년에 악양루에 오른 행적을 읊은 석북의 유명한 과시「관산융마」는 평양의 교방 및 홍류계에 인기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 애창되었고 중국에까지 널리 회자되었다. 애국애족, 애민사상을 유교적 이념으로 승화시킨 이 시는 서도창으로 정조가 매우 구슬프고 처연하다. 일제 치하 백성들이 이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조국 생각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춘원 이보경이 평양에 있을 때 이 노래를 듣고 석북의 인기를 흠모한 나머지 이름을 아예 이보경에서 이광수로 개명했다고 한다. 지금도 인간문화재 명창들에 의해 불리워지고 있다. 이「관산융마」를 지은 영조 대 시인 석북의 7대 손이 바로 신석초 시인이다. 시인은 석북이 살았던 한산면 숭문동, 속칭 은골인 현 화양면 활동리 17번지에서 1909년 6월 4일(음력 4월 17일) 부친 신긍우와 모친 강긍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중에 있을 때 문 앞의 오얏나무에 두 초립동이가 올라가 오얏나무 열매를 따서 모친께 드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시인으로 타고난 운명이었을까. 일본 유학시절 운명처럼 만난 발레리. 그의 작품을 접하고 온 몸이 전율했던 신석초. 발레리는 석초에게는 방황하던 젊은 시절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석초는 일제에 찬동하거나 이용당하지 않았다. 일제의 치욕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젊은 시절. 그의 지우 육사는 절정을 향해 치열하게 조국을 위해 살다갔지만 석초는 조용히 멸하지 않는 정신으로 전통을 지켜 내면화의 길을 걸었다. 석초는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을 조화시키며 선비의 길을 걸었다. 신화와 현실을 오가며 자연을 노래했고 서양의 프로메데우스와 한국의 처용을 노래했고 또한 생명과 폭풍을 노래했다. 그리고 비밀한 사랑도 노래했다.
밝아오는 너의 높은 정수리로부터 일월은 천지개벽을 하고 천도화를 피우고 태초에 하나의 무리의 조상을 낳았나니 - 신석초의 「천지」
신석초는 필자의 당숙이다. 다음은 필자의 사촌 누나인 신향순이 필자에게 보내준 「천지」유묵의 탄생 이야기이다.
「천지」를 제목으로 한 시는 신석초 시인이 맏손자인 지수(芝秀)에게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하 기 위해 붓글씨로 써 준 작품이다. 지수가 1971년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사립초등학교인 한신병 설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 담임선생이 지수의 할아버지가 시인인 것을 알고 교실의 환경정리 를 위해 지수학생에게 할아버지의 글씨 한 점을 부탁했었다. 지수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은 할아 버지 신석초 시인은 그러마고 답하고는 맏손자의 입학축하라는 의미를 담아 정성껏 의미있는 작 품을 만들어 주었다. 그 후 이 「천지」시는 6년 동안 한신초등학교 교실 벽에 걸려 있다가, 지수가 졸업하는 날, 1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지수를 찾아와 돌려줌으로써 신석초 시인 사후(死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가정 안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신석초 시인은 맏손자를 유난히 애지중지했었다. 손 자가 둘이 있었는데 어릴 적에 둘이서 토닥토닥 싸움이 벌어지면 잘잘못을 가려주지 않고 무조건 맏손자편만 계속 들어 주어서, 한 번은 석초 시인의 딸들이 둘째 손자를 데리고 들어와 “이럴 수 는 없다”고 심하게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니 귀담아 들을 만하다. 신석초 시인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큰아들이 피란을 내려와 고향(서천 군 화양면 활동리) 집에 머물다가 끌려가 희생당한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다. 생사라도 확 하려고 많은 사람, 많은 재물을 들여 수소문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다가 시인 사후에야 대전(충 남 大田)의 한 우물에 몰살시킨 그 희생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확실한 최후를 다른 가족들이 알 게 되었다. 석초 시인이 맏이에 대한 조건 없는 집착을 하게 된 것은 과거로부터의 상처를 치유받고자 하 는 잠재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맏손자에게 남겨진 작품 「천지」 는 내면에서 실컷 발효되다가 오래된 미래에 탄생된 절명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서 천지가 탄생되었다.
한국문학신문 2-13.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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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