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은 일부 식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시작된 유일한 곳이다.
그러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선교사를 파견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모진 박해를 받았다.
선교사들은 방인사제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세 명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가 최초로 사제수업을 위해 선발되어 파견되었다.
최방제는 현지에서 짧은 삶을 마감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 받아 귀국하였다.
이와 관련된 성지가 제주용수성지이다.
한국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신부는 1845.8.17.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동년 8월 17일 고국을 향한 귀국길에 올랐으며 페레올주교님을 포함하여 13명이 승선하였다.
목선은 ‘라파엘호’ 로 명명하고 천사의 도움을 요청했던 거다.
하지만 포효하는 바다는 그냥 두지 않았으며 그들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 차귀도에 표착하였다.
어렵게 고국 신자들을 향한 열정으로 찾아왔지만 조선조정은 날이 갈수록 천주교 탄압의 칼을 휘둘렀다.
4대 박해를 거치면서 2만 명 이상 신자들이 참수되었던 거다.
제주도에 표착한 후 익산 나바위 포구로 이동하여 조선 땅에 들어왔지만
성인은 1년 남짓 사제로 활동하다 1946. 9.16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서품 후 한국에 처음 표착한 곳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이다.
‘좋은 물이 솟는 곳’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엎드린 바위, 매바위, 차귀도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주변 전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차귀도 낚시 관광을 선호하는 곳이다.
이런 즐거움보다는 용수성지에 들려서 잔디밭을 밟으며
성 김대건 신부의 삶을 묵상하며 바닷바람으로 그릇된 습관을 씻어내는 편이 헐 유익하다.
모형으로 세워둔 라파엘로를 돌아본다.
잔디밭을 걸으며 성인 신부님이 돌아왔던 차귀도를 바라본다.
순간 정신이 들어 새남터에서 마지막 남긴 말씀을 묵상한다.
“나는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뒤 행복하기를 바라면 천주교를 신봉하십시오.”
우리들에게 이를 깨우쳐주려고 성인은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 지상의 삶을 마감하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