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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4일 (금요일)
스위스 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의 분위기는 다소 스위스적이며 레만호 주변 의 다른 스위스 도시들과 매우 흡사하다. 레만호 주변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절반이 푸른 레만호를 바라보고 있고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뻗어있으며 곳곳에 배가 드나드는 작은 선착장이 늘어서 있다. 먼 발치에는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알프스의 산봉우리가 아득히 보인다. 에비앙의 생수는 이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라 빈 물병만 몇개 챙겨들고 산책삼아 골목길을 오른다. 작은 마을치고 어린이집(?)이랑 유치원 그리고 학교가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꽤 많이 보인다. 잠깐이나마 에비앙의 분주하고 활기찬 아침 풍경을 본듯하다. 식수대 Griffon de la source Cachat 에비앙 생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 (사람을 이렇게 과분수로 만들어도 되는거임??..ㅠㅠ) 에비앙이 생수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이곳의 까샤 샘(Source Catchat)에서 유래한다. 신장 결석을 않던 프랑스의 레쎄르 후작은 요양을 위해 1790년 에비앙 지방에 사는 그의 친구 까샤(Cachat)를 방문했다. 그의 소유의 샘물(에비앙물)을 매일 마셨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자신의 신장결석이 치료됐다. 이 마을의 샘물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는 이들이 숙박할 호텔등이 들어서면서 에비앙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1826년 샘터에 수치료 센터가 세워지자 프랑스와 유럽의 부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에비앙 생수는 소화불량과 신장질환 등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호텔들은 물론 카지노까지 들어서게 됐다. 이런 전설과 같은 이야기 덕분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유럽 북부와 남부 사이의 교차로 역할을 하는 천연의 방어요새 이자 전략적 부지 "스위스의 가장 역사적인 기념물" 시옹 城 [Château de Chillon]
석방된 곳인데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이 사건을 주제로 서사시〈시옹성의 죄수>를 지었으며 세 번째 기둥에는 바이런의 이름이 조각되어 있다. 철길위를 건너는 오래된 목조 건물(다리)을 지나면 성밖 뜰로 들어선다. 레만호변 육지에 인접한 작은 바위섬 위에 지어진 성이라, 천연의 해자가 된 셈이다. 천연의 해자와 성채를 잇는18세기에 지어진 다리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첫 번째 안뜰 (좌) 16세기 후반에 지어진 옛 마굿간과 축사가 있던 곳 현재는 안내구역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다. (우) 아치형 문을 통과하면 두 번째 안뜰 11세기에 지어진 요새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성루는 오늘 날 시옹성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성주의 식당 템페라화로 장식된 벽면 지하 통로 시옹성의 대부분의 장식과 벽난로의 장식화는 템페라화로 제작되었다. 템페라화는 중세에 사용하던 화법으로 색색의 염료를 물과 접착제와 혼합하여 그린 그림이다. 세 번째 안뜰 '영예의 안뜰'이라고도 불리며 사부아가문의 처소로 둘러싸여 있다. 순찰로 시계탑의 내부?? 망루에서 본 바깥 풍경 순찰로 순찰로에서 내려다 본' 첫 번째 안뜰'과 기념품 매장 순찰로를 따라 한쪽으로는 성의 안뜰들을, 한쪽으로는 호수와 발뵈브,프레 알프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모퉁이에는 망루가 마치 범선의 뱃머리처럼 자리잡고 있다. '문장의 방' 접견실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다양한 색의 장식 벽띠에는 1536년부터 1733년에 걸쳐 시옹성에 살았던 베른의 대법관과 성주들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변소 13세기에 지어진 건물내 이곳은 사람의 배설물이나 폐기물과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으로 사용. 쁘띠 살롱 침실 옆에 잇대어있는 이 방은 중세때 구석방 또는 옷을 보관하던 용도로 사용 14세기 사부아 가문의 귀부인들을 위한 처소인 '나무로 된 방'은 레만호와 몽트뢰 시내, 시옹의 포도밭 등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