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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아 지
초가삼간의 허름한 집들이 여러 채 모여 있는 마을이지만 마을 뒤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에는 이른 봄이 되면 벌써 진달래가 함빡 피어나 온 마을이 꽃 밭 속에 묻힌 것 같았다.
오늘도 흥룡이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가는 중인데 문득 길을 가다 보니 물이 가득한 논에서는 올챙이들이 숨을 쉬느라 뽀끔뽀끔 물방울을 지우고 있었다.
엄매하며 송아지울음소리가 들리자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흥룡이는 올해에는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목따라지 한 마리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하였다.
사실은 진작 송아지를 한 마리 사려고 하였으나 돈을 마련을 해 놓으면 갑작스럽게 집의 아이들이 병이 나는 바람에 약값을 대다 보니 늘 얼마가 모자랐다.
그럴 때마다 한번 먹은 마음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또 생각을 한 것이 얼마가 모자라게 되면 친구에게 돈을 꾸어서라도 송아지를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며 그 즉시 옆집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던 것이다.
친구는 흥룡의 사정을 잘 아는 친구로서 흥룡이가 어려울 때에는 무엇이곤 도와주려고 하였는데 송아지 한 마리를 산다고 하자 군 말없이 부족분을 빌려주었다.
흥룡은 다음 장날 아침 일찍 조반을 먹고는 장에 가서 한 바퀴를 돌다보니 마음에 쏙 드는 송아지가 있어서 중개인으로 하여금 흥정을 붙였는데 돈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모자라도 많이 모자라지를 않아서 사정을 하였지만 소 임자는 들은 척도 하지를 않았다.
흥룡이는 송아지가 마음에 들어서 꼭 사고 싶었지만 주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서 그늘로 가서 한숨을 푹 쉬면서 앉아 있자니 늙수그레한 영감님이 흥룡이 옆으로 다가 앉는다.
“ 내가 옆에서 보니 젊은이가 답답해서 내가 따라왔소.”
“ 예,”
“ 나 같으면 소 임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의 부랄 이라도 늘어져라 붙들고 사정을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렇게 덤덤하게 말을 하니 누가 들어주겠소. 그러니 다시 한 번 만나서 송아지는 팔지 않아도 좋으니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해봐요. 소임자야말로 식전에 장엘 와서 송아지가 여러 마리 장에 나온 걸 보고는 제값 받기는 다 틀렸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오. 점심때가 되어 배는 고픈데 흥정을 하자는 사람이 없을 때에 그를 다시 부르게 되면 마음속으로 밑져서라도 팔아야지 하는 생각을 할 거요. 안 그래요. 그럼 어서 가보아요. “
흥룡이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지당하고 어찌 보면 상대의 약점을 꿰뚫어 보는 혜안의 지혜 같았다.
흥룡이는 힁해서 그가 앉아있던 쪽으로 가니 흥룡이 연배의 소 임자는 그때까지 맥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 아직 송아지 임자가 나타나지 않았소. 점심때가 되었으니 어쨌거나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영감님의 말씀 마따나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흥룡을 따라오기에 우선 막걸리를 시키고 한 잔을 권하니 그는 반겨 잔을 받았다.
“ 보아하니 나와 나이가 비슷한 것 같은데 지금부터 말을 놓고 지냅시다.”
그러자 소 임자는 흘깃 흥룡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
점심과 막걸리를 잔뜩 먹은 소 임자는 마음이 풀어졌는지 쇠고삐를 물려주면서 한마디를 하였다.
“ 집에는 또 한 마리의 갓 난 송아지가 있는데 석 달 후에 이 송아지도 싸게 줄터이니 갔다가 길러봐.”
“ 그래. 좋아 그 대신 송아지 값은 1년 후에 받아 가도록 해.”
“ 1년 후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우리가 인연을 맺게 된 이상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될 거야.”
“뭐야. 호랑이가 날고기를 먹는다더니 남의 송아지를 그렇게 해도 되는거여.”
“ 친구 좋다는 게 뭐 있어. 다 그런거지. 안 그래.”
“ 이거. 아무래도 내가 오늘 대낮에 도깨비에 홀린 거 아니야.”
“ 웬. 도깨비는. 오늘부터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거여. 안 그래. 하하하.”
이렇게 해서 흥룡이는 목 따라지 한 마리를 끌고 오면서 그 영감님을 다음에 뵙게 되면 술 한 잔을 톡톡히 사들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 날 소를 끌고 내를 건너서 오던 오 흥룡은 강가에 살고 있는 술 잘 먹는 염 종치를 만났는데 그는 마침 잘 만났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지금 막 주막거리로 술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라고 하였다.
염 종치는 평상시에도 사람을 만나면 제 일성이“ 술 한 잔 하세.” 를 내세우는 건달이었다.
염 종치는 겉으로는 사람이 좋아 보이고 호감을 살 인물인 것 같지만 막상 그와 몇 번 만나다 보면 그는 이중성격으로 어떤 때는 상대방을 좋게 평을 하다가도 조금만 서투르면 그를 경원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였다.
어쨌거나 흥룡은 점심을 먹은 후라 바로 가고 싶었지만 모처럼 막걸리 한잔하자는데 안 뙈 할 수는 없었다.
주막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소를 바깥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다 매놓고는 안으로 들어서니 술꾼들이 왁자지껄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쪽 사랑방에서 여자의 악에 바친 비명이 들리었다.
“ 언제는 나를 좋아한다면서 외상술까지 먹더니 이제 와서는 뭐 명심 이를 좋아한다구.”
그 소리가 끝나자 이내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멱살을 잡혀서 나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마당에 내동댕이쳐진 남자는 마당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가리에 쳐 박힌 채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러자 여자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물 한바가지를 떠가지고 와서는 남자에게 들여 안기니 남자는 그제야 정신이 나는 듯 꾸물대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약종상을 하면서 한 달 동안은 지방으로 나돌면서 돈을 버는 흥룡이의 친구 탁 개슬이었다.
흥룡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얼른 쓰러진 그를 부축하면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여자가 “ 그냥 내깔려 두지 못해요.” 하더니 이번에는 흥룡에게 대들었다,
“ 내가 지금 저 사람으로 인해서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알아요. 남의 일에 참견도 하지 말아요.”
사실 탁 개슬은 흥룡의 초등학교 동기로 학교 다닐 때에는 서로가 친한 사이였지만 학교 졸업을 한 후에는 여러 해 동안 고향을 떠나 있어 소식조차 몰랐는데 두어 달 전에 읍내로 이사를 왔다고 하여 만난 적이 있었다.
“ 술을 어지간히 마신 모양이니 진정을 하세요.”
그 소리를 한 흥룡은 친구가 너무 취해서 우선 술을 깨라고 맨 끝 방에다가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다.
큰 소동을 벌리던 여자는 흥룡의 행동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듯 하더니 군소리 없이 이내 안방으로 들어갔다.
“ 원래 주막이라는 곳은 저렇게 밤낮으로 싸움이 벌어진다네.”
염 종치의 말마따나 주막이라는 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이지만 흥룡은 지금까지 남과 시비 한번 겨뤄보지를 못하였기에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공연히 불안하였기에 술 한 주전자를 마시고는 서둘러 헤어지려고 하자 염 종치는 흥룡에게 부탁할 말이 있다면서 팔소매를 붙잡았다.
그렇지만 흥룡은 다음에 만나자 하고는 소를 끌고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을 하니 아버지가 몹시 그리웠다.
아버지가 장가들기 전까지만 해도 남의 집 머슴으로 몇 년간을 사시었다.
처음 머슴으로 들어간 댁의 주인아저씨는 마음이 후덕하신 분으로 모든 일을 어른 일꾼 아저씨에게 맡기시고 그분은 장날마다 우전으로 나가셔서 소 장사를 하신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열다섯 어린 나이에 머슴으로 들어가니 일꾼 아저씨는 처음 일을 배우려면 몸이 고단하다면서 밭을 가는 방법부터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주인아저씨와는 다르게 잡다한 일은 모두 아버지에게 시키는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쇠물가마에 불을 지펴 쇠여물을 끓여주는 것과 이른 봄이 되면 해토가 되어, 두엄을 퍼낼 때에도 아버지 혼자 일을 하게 하였으니 그렇다고 일이 힘이 들어 못하겠다는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그날도 아버지는 감자밭을 매고 있는데 난데없이 독사가 새끼손가락을 무는 바람에 “악 ”소리를 하고는 그대로 밭고랑으로 굴렀으니 상처가 펄쩍 뛰도록 아팠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일꾼 아저씨가 멀리서 보시고는 달려와서 손가락을 꼭 쥐시더니 입으로 손가락의 독을 한참동안이나 빨아내셨는데 그러고 나서는 다소 아픈 기는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집으로 들어와서 된장을 처매주셨는데 한 이틀간은 상처가 퉁퉁 붓고 아프더니 일 주일 만에 완전히 손가락은 전과 같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 아버지는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아저씨는 그 다음 해에 머슴살이를 고만두고 안성 고향으로 가신다고 하였다.
아저씨가 가시던 전날 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아저씨는 여기 오기 전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이장 일을 보셨다고 하였다.
그때 마을가운데로 흘러내리는 개울에 제방을 쌓기 위한 사방사업을 하기 위해서 예산을 요구하였는데 그 예산이 배정이 되어서 사무장과 함께 어떻게 돈을 쓸지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사무장이 며칠 간 몸이 아프다고 하더니 병원에 입원을 한다고 하여 그런가보다 하였는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되질 않아서 알아보니 사무장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불명이 되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사무장이 공금을 빼가지고 줄행랑을 놓는 바람에 그는 책임을 회피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공금 횡령죄로 수감이 되었다가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의 판정을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그런 생뚱같은 일을 당하고 보니 세상이 무섭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고향을 떠나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에 이 댁에 와서 만 3년간을 머슴으로 살았다고 하였다.
아저씨는 그동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기 위해서 거제도로 가신다고 하였는데 거기에는 배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으며 기회가 된다면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겠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도 장차 머슴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였으며 다른 머슴들 모양 돈을 없애는 술을 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셨다.
그렇지만 1년에 한두 번 대 가을이 되면 수확을 다 하고 나서 머슴들도 한유하게 몇 명이 모여서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충충거려 그 모임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
그날이 되면 모두가 모처럼 일 년 동안 죽을 둥 모르고 일만 하였으니 우리 한번 실컷 술이라도 마셔보자고 하는데 아버지야말로 참았던 술의 그리움이 폭발하여 그날만은 친구들과 어울려 밤을 새워서 술을 잡수시었다.
“ 오 수황이 술 한 잔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 다시 보아야 하겠는데.”
“ 그러게 말이야. 저 사람이 술 한 잔도 못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오늘 저녁은 웬 일이래.”
“여보게. 눈은 두었다가 무얼 하자는 거여. 저 사람 잠시 전에 색시가 어께 한번 만져준 다음부터 술을 먹기 시작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저사람 색시를 무척 탐을 하는 모양이여.”
“ 거 희한한 소리들 하고 있구먼. 이 자리에 색시 싫어하는 눔 있으면 나와 보더라구.”
“ 하하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색시를 싫어한다. 그거야. 왜냐하면 먹지도 못할 물건을 만져 보았자 지.”
“저런 말하는 것을 보니 초보자가 맞네. 그렇지만 몇 번을 맞닥드려 보면 얼마 후에는 오케 라는 싸인을 받는 단 말이여. 알고 보면 거기에는 이게 들어가는 것이지.”
그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 그러니 안 된다는 거라니까.”
“ 여보게 내가 오늘 자네를 위하여 톡톡히 그 일이 성사되도록 해 줄 테니 그리 해볼래나.”
“ 그까지 1년 새경 눈 딱 감고 주어버려. 몇 밤이라도 오케이할 것이니 께.”
그때 술자리에는 언제나 기생이 끼게 되고 기생은 밤을 새워 가무를 하게 되니 술꾼들은 주머니의 돈을 기생이마에 있는 대로 붙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패거리는 오락이라도 하자면서 화투장을 방바닥으로 펼치니 술 한 잔 자셨겠다. 남들은 다 투전판에 들어앉는데 아버지라고 나는 못해 하고 돌아서실 수가 없었다.
이렇게 술김에 투전판으로 돌아앉게 되면 그에게 바짝 붙어서 바람을 넣는 사람이 있으니 술도가집의 양조기술자로 있는 도 장술 이었다.
이 사람을 사람들은 술도가의 기술자라 부르지 않고 그의 이름을 따서 도 장사라 불렀다.
사실 그는 술도 좋아하지만 술꾼들이 모이게 되면 어떻게 하던지 투전판을 벌려 거기에서 자릿세를 뜯어내기도 하지만 훈수를 두기도 잘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머슴으로 살면서 새경 받은 돈을 단단히 묶어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버지를 충충거려서 투전판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는 옆에 바짝 붙어서 짓구땅하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아버지의 옆구리를 꾹 찍고는 속삭였다.
“ 이번에야 말로 물러서지 말아요. 저쪽의 낮 짝을 살펴보니 짓지도 못한 거여. 어서 큰돈을 놓으셔요.”
아버지는 그 소리에 정말 그런가 하고는 주머니에서 송아지 사려던 돈을 꺼내 놓으시면 서 큰 소리를 치셨다.
“자! 여기 추석날의 보름달이 떴네. 여기 당할 사람 없지 그렇지.”
아버지가 쌓여있는 돈을 긁어모으려는 순간이다.
“ 잠깐.”
그러자 좌중의 투전꾼이며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에게로 눈이 쏠렸다.
“ 이것 밖에 안 되는 데. 해해. “
그가 펼쳐든 것은 국준 껍데기 두 장이 노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러시아 굴뚝이네. 구땅이야. 구땅. 그러니 팔당이 맥을 못 추지.”,
구땅을 쥔 자는 아랫마을에 사는 개장사 진 도견이었다.
투전판에서는 그를 가리켜 도견이라 하지 않고 순 진도라 불렀다.
“ 뭐야.”
“ 순 진도가 오늘은 구땅을 잡았으니 어제 저녁에 뱃놀이를 단단히 한 덕이 아니야.”
“ 그럴 수도 있을게야. 저사람 투전판에서 따 본적이 없는데. 이상하네.”
옆에서는 이렇게 순 진도에 대해서 칭찬을 하자 아버지는 맥을 잃고는 슬며시 밖으로 나오시었다.
아버지도 이번만은 자신이 있는 것 같았는데 옆에서 바람을 넣으니 그리로 마음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아버지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판을 잡을 것이라고 자신을 하였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자 잡수신 술이 확 깨시고 말았으니 모든 재산이 한꺼번에 날아갔기 때문이다.
사실 훈수를 받는 입장이 되다 보면 얼른 판단이 서지를 않아서 주저하게 되는데 그때에 이 사람은 전격적으로 상대방의 끝 발을 알아낸 것처럼 옆구리를 슬슬 긁으면서 해 볼만하다고 해서 덤볐는데 한 수나 두수의 차이로 나가곤드라지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도 장사는 한수가 부족해 이런 환장할 일이 어디 있어 하면서 방바닥을 내리치지만 돈을 잃은 사람은 그가 아니고 아버지였다.
사실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외아들로 자라신 아버지는 오갈 데가 없어서 이리저리 떠밀려 살아야 했다.
할아버지가 살던 고향은 원래 이 마을이 아니고 이천 땅인데 아버지가 천하의 고아가 되자그 때 양주에 사시는 먼 친척이 되시는 분이 아버지를 보살펴 주어 자라게 되었다.
워낙 그 아저씨 네도 가난이 떠나지를 않게 되자 아버지가 열다섯 되던 해에 남의 머슴으로 들여보내게 되었으니 그 아저씨가 해수로 고생을 하셔서 도저히 조카를 건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워낙 부지런하셨기에 머슴으로 있으면서 해마다 받는 새경을 아낌없이 길러주신 아저씨에게 갔다가 드렸다.
그러자 주인은 네 살 궁리도 하지 않고 그 분에게 다 갔다드리면 이다음에 장가는 무슨 돈으로 갈 거냐고 해서 그때부터 아버지는 매년 쌀 한 가마씩을 저축을 하였는데 아저씨는 오래 사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시자 아이가 없던 아주머니 또한 1년 후에 홀연히 집을 나가셨으니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웃에 살던 홀아비와 눈이 맞아서 가셨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 흥룡은 아주머니를 진작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니 그 나름대로 조카를 잘 길러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후 이웃에서 술장사를 하던 과부댁의 외동딸에게 장가를 들으시고 그 이듬해에 낳은 아들이 흥룡이었다.
흥룡이를 낳은 어머니는 자랄 때에 과부 딸이란 딱지로 해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였기 에 아들만은 놀림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무슨 일이던지 닥치는 대로 하였으니 이웃집에서 감자를 캐면 감자밭에 가서 일을 하고 보리를 베면 보리이삭이 몸을 찔러도 그 따가운 것을 참아가며 보리타작할 때까지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일을 할 때에는 몰랐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오만상을 누비게 되었지만 식구들에게는 그런 내색도 하지를 않았다.
흥룡이 엄마가 그렇게 일을 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작으나마 땅마지기라도 장만을 하였으니 실로 이야말로 온 몸의 뼛골이 다 빠진 뒤에 온 환희의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흥룡이 아버지는 남의 일만 나가면 술을 먹고 들어오기 시작을 하였으니
그 이유는 어느 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동네에 총각 두 어 명이 흥룡 아버지를 보고 머슴살이를 하는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다닌다고 놀려 화가 나서 술을 먹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흥룡 엄마는 남이 그런다고 화를 내면 본인만 손해이니 들은 척도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사내대장부가 남에게 무시를 당하고 살 수는 없다면서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그 애들이 놀리기에 더 이상 참지 않고는 지게 작대기로 그들의 어깻죽지를 힘 있는 대로 내려치니 어이구어이구 하면서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아버지는 너무 점잔만 뺀 것이 그들로 하여금 무시를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생각에서 앞으로는 머슴을 산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주막으로 들어가서 화를 풀기 위해서 술을 실컷 먹고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다른 날 보다도 얼마나 술을 많이 먹었는지 집으로 오면서 걷는 자세가 도무지 평상시의 걸음과는 사뭇 달랐다.
그야말로 이리 비틀하다가는 딸꾹질을 꽥 하고는 다시 몇 발자국을 떼어 놓다가는 다시 딸꾹질을 꿱 하였다.
흥룡 엄마는 남편의 그런 거동을 보면서 왜 그렇게 술을 많이 자셨느냐면서 걱정스러워 한마디를 하였다.
“ 오늘은 웬 술을 그리 많이 자시었지요.”
그런데 흥룡 아버지는 다른 날과 다르게 대뜸 여편네가 왜 남정네가 하는 일에 참견을 하느냐면서 부엌의 물동이를 마당으로 둘러메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흥룡 아버지가 그렇게 나오자 성질이 바짝 난 흥룡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 물동이가 뭘 잘못해서 마당에다가 던진대요. 내가 아끼고 아끼던 물동이인데 어디서 그런 못된 짓을 배웠어요.”
그러자 흥룡 아버지는 더욱 화를 내면서 이번에는 마루에 놓인 쌀자루를 마당에다가 내팽개치자 쌀부대가 뻥 터지면서 온 마당이 쌀로 뒤범벅이 되었다,
마당으로 하나 가득 흩어진 쌀을 보던 흥룡 엄마는 너무도 가가 막혔지만 우선은 쌀을 빗자루로 쓸어 담은 후에 흥룡 아버지에게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하루 종일 남의 일을 하다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앉지도 못하였는데 흥룡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물동이를 내던지고 쌀자루까지 집어던지니 나는 더 이상 이 집에 살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해요.”
흥룡 엄마는 그리고는 안방에 들어가서 치마저고리를 갈아입고는 대문 밖으로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흥룡 아버지는 쌀자루를 내던지고 나서 순간 자기 자신이 밖에서 부릴 화를 집에 와서 부린 것이 잘못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얼마 전에도 모를 내고 와서 아내에게 화를 낸 생각이 났으니 그날 이웃에 사시는 부자 댁의 모를 하루 종일 내다가 다 저녁때 가 되어 일을 끝내고 저녁을 먹을 때의 일이다.
이날 일꾼들은 막걸리 한잔씩을 나누면서 오늘 일을 하던 이야기 끝에 못줄을 잡던 흥룡 아버지 오 수황이 못줄을 몇 번 놓지는 바람에 일꾼들이 한 마디씩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저. 오수황이 왜 못줄을 자꾸 놓지는 거여. 밤일을 너무 많이 하여서 힘이 빠진 거 여.”
“ 저 사람 밤일이나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어.”
“ 과부 딸의 신랑이니 오죽 잘 하겠어.”
“ 이 사람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말 좀 조심해 .”
“ 왜 내가 한 말이 잘못되었다는 거여.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저 사람이야말로 천하절색의 과부의 귀한 딸을 마누라도 데리고 살고 있으니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날마다 비단요 위에서 벗어나지를 못할 거여.”
“ 그렇다면 저 사람 마누라도 거시기를 좋아한다는 말이네.”
“이를 테면 그렇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우리끼리 이야기할 것 없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오 수황에게 물어보면 알 것 아니여.”
“ 다 소용 없는 일이여. 자네들은 부부지간의 이야기를 만인 앞에서 털어놓겠는가.”
흥룡 아버지 오 수황은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그들 패거리들에게 똥바가지라도 안기고 싶었지만 그들의 완력을 당하지를 못하자 들은 척도 하지를 않았으니 이들과 언쟁이라도 하게 된다면 나중에는 품도 팔지를 못할 처지가 될까봐서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일꾼들이 술을 한잔 두잔 하더니 나중에는 말술로 먹으면서 점점 더 진한 말들을 서슴치 않았기에 오 수황은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오 수황은 더 참지 못하고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아.” 하고는 술상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농을 걸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일어나더니 오 수황을 향하여 한 마디씩 지껄였다.
“ 오늘은 제법 남아 같은 행동을 하는구나. 오늘 술값은 너 혼자 부담해라.”
술판은 이렇게 해서 깨졌고 오 수황은 술이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누라가 집을 비우고 없어서 화풀이도 하지를 못하고 그냥 잠을 자고 말았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비록 술값은 냈을망정 화풀이를 한 것을 두고 남아답다는 말을 들은 것이니 그로서는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로 그것은 그에게 또 다른 용기를 주었다.
그 다음부터 예상외의 대접을 받았으니 더 이상 그를 놀리는 사람이 없어진 것은 물론 어딜 가던지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지나놓고 생각을 하면 지금까지 그는 남의 머슴 노릇을 해오는 동안 한 번도 올바른 인간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지나온 것이 사실이다.
머슴 주제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 왔으나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 대꾸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합당한 말이 될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었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습관화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며칠 후에 다시 집으로 오셨는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시자 아버지는
다시는 술을 막지 않겠다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는 맹서를 하시었다.
사실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셨지만 어느 한날 편안한 삶을 사시지 못하였다.
남의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짓긴 하였지만 벼농사가 매년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늘 부족하였다. 게다가 가용이라도 쓰자니 곡식을 팔아야 하는데 먹을 양식이 부족한 사람이 쌀을 팔 수도 없다보니 남의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행여 다음해에 농사가 잘 된다 손치더라도 그것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면 다시 먹을 양식이 떨어져 빚을 얻어야 하니 산다는 것이 늘 걱정 투성이었다.
아버지는 젊어서는 몸이 건강하셨다는데 어느 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셨다가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시다가 무게에 못 이겨 산에서 구르시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져서 반년동안이나 고생을 하셨다. 제대로 몸보신도 하시지 못하신 아버지는 그 후부터 몸이 약해지 신데다가 겨울이 되자 해수병이 생겨서 밤새 기침을 하시기 때문에 겨울은 아버지에게 큰 고통의 기간이었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시려면 밭을 갈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남의 소를 얻게 되어 아버지의 소원은 소 한 바리를 사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소를 사실 생각을 하셨다지만 가난한 살림은 먹을 것조차 부족하니. 소를 산다는 것은 도저히 그로서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농사를 짓다가 보니 그해에는 다른 어느 해 보다도 수확이 많이 나서 여유가 생겨 아버지는 이때다 하시고는 소살 돈을 마련하여 송아지 한 마리를 사셨으니 아버지의 소원이 몇 십 년 만에 이루어진 셈이다.
송아지를 사시자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좋아하셨으니 아버지가 그렇게 사고 싶어 하신 송아지를 사셨기 때문이었다.
송아지는 2년 만에 큰 황소가 되어 아버지는 그때부터 밭을 가시려면 한 바리만 빌리면 되었으니 아버지는 그날 밭을 가시고 나서는 그것이 대견하여 소를 쓰다듬어 주시었다,
“ 오늘 밭을 가느라 수고하였지.”
소는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엄매 하며 송아지적의 시늉을 하였다.
“ 오늘 밭 가느라 힘이 드셨을 텐데 왜 소를 만지고 계셔요.”
“ 허허. 얼마나 좋아요. 난 오늘 우리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는 밭을 갈다 말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어요.”
“ 밭을 갈다 말고 춤을 추시면 동네 사람들이 흉을 볼 텐데요.”
“ 흉을 보면 어때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 전에는 소 한 바리 없어서 만날 남에게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했는데.”
“ 하긴 당신의 말이 맞구 말구요. 돈이 없고 쌀이 없을 때에 쌀을 꾸러가는 일이 제일 창피하였지요.”
“ 이제는 그런 일은 없겠지요.”
“ 올 농사가 저 소 때문에 잘 될 것이니 우리 기대를 해 봅시다.”
그런데 호사다마라는 말과 같이 아버지는 그해 농사를 다 지으시고 난 다음에 타작 날을 받으시고 나서 골이 아프시다 고 하더니 저녁을 잡수신 후에 주무시고 난 다음 날 아침에 쓰러져 자리에 누우신 채 일어나시지를 못하였으니 바로 중풍이 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런 병에 걸리시자 의원을 찾아다니며 갖은 치료를 다 하였으나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의원에서는 좀 있어보면 차츰 병이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지만 시일이 갈수록 점점 아버지의 병환은 낫기는커녕 기력은 점차 쇠약해지셨다,
어머니는 그동안의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소를 팔고 그것도 모자라 땅도 팔아가며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 하였으나 2년이 지난 뒤에는 진지도 잡수시지를 못하더니 운명은 점점 야속하게도 아버지의 정신마저 희미하게 만들더니 쉰셋 연세를 마지막으로 돌아가시었다.
평생을 사시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시고 한때는 소원하던 소도 사고 땅마지기도 마련하였으나 종당에는 당신의 건강악화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집안은 난가가 되어 할 수 없이 어머니가 집안을 꾸려나가시게 되었는데 어머니야말로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오신 다음에는 언제 한번 편안하게 진지를 잡수시지 못할 정도로 밤낮 남의 집 일을 다니시었다.
어머니의 일생은 농사짓는다고 일만 하셨으며 천수답을 얻어서 모를 내기도 하였지만 천수답이라는 곳이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는 아주 망치게 되어 있어 아까운 헛일을 한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가 말년까지 고생을 하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생각을 할 때마다 흥룡이는 부모님이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에서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