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네 13남매
벽면에 그려진 꽃과 나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낡은 지붕 아래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난한 마을의 한켠, 오래된 흙집이 있었다. 그곳에는 흥부의 13남매가 살고 있었다. “이 집에는 늘 웃음이 넘쳐요.”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비록 지붕은 삐뚤고 벽은 거칠었지만, 그 안엔 생명처럼 반짝이는 미소가 있었다. 아이들이 마당을 뛰어다니며 서로 부딪혀도, 부모의 목소리는 꾸중보다 웃음으로 먼저 번졌다.요즘 같은 세상에, 13남매라니. 그 자체로 기적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 세상이라구요.” 그러나 이 집은 그 말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부족한 것이 많을수록, 서로에게 기댈 줄을 배웠고,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느낄 줄 알았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과 봉사자들이 이 집의 벽을 하얗게 칠하고 그림을 그려주었다. 초록 나무와 꽃밭, 파란 나비가 벽을 덮자 그 집은 한순간에 ‘동화 속 집’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우리 집이 이렇게 예뻐질 줄은 몰랐어요. 아이들이 웃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됐어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행복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큰 집, 높은 지위, 많은 재산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있기에, 이 집은 비록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집이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나누었다. 고구마 한 개도 여럿이 쪼개 먹고, 헌 옷 한 벌도 돌려 입었다. 그들은 ‘가지지 못함’ 속에서 함께함을 배웠다. 사랑은 그렇게 자랐다. 나눔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희망이 되었다. 아버지는 오래된 오토바이를 타고 일을 나갔다. 아침마다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열세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려 퍼졌다. 그 인사는 마을의 새소리보다 더 활기찼다. 가난은 이 가족을 무겁게 짓누르지 못했다. 그들은 오늘도 서로의 손을 잡고 웃을 줄 알았다.
요즘 세상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다. 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한 명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는 말이 흔하다. 하지만 그 한 명조차 외로움 속에서 자란다. 형제가 없는 세상, 대화보다 화면이 가까운 세상. 그 속에서 ‘흥부네 13남매’는 하나의 생명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서로의 보호막이 된다. 형이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누나는 막내의 머리를 빗겨준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는 진리를.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은 자연스럽게 익어간다. 이 가족의 집 앞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벽화의 나무와 꽃들이 그들의 삶을 닮았다. 거칠지만 아름답고, 단단하지만 부드럽다. 바람에 흔들려도, 뿌리를 잃지 않는다.
아기가 귀한 시대에, 이 집은 생명의 증언처럼 서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보고 말한다. ”참 대단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집은 세상의 희망이다.” 세상이 이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부족 속에서 나누는 법을, 작음 속에서 기쁨을 찾는 법을. 그것이 바로 생명의 존엄이고, 가족이란 이름의 진짜 의미이니까.
나는 다시 한 번 그 집을 돌아본다. 벽화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들이 문틈에서 손을 흔든다. 그 웃음이 내 마음을 오래 흔들었다. 그 웃음은 세상의 가장 따뜻한 언어였다. 가난은 이들을 막지 못했다. 그들의 집은 작았지만, 그 안의 사랑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컸다. 흥부네 13남매는 오늘도 서로의 미소 속에서 희망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