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八空山 은해사 銀海寺
2019년 4월 4일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 기슭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 (一道銀色世界 如海重重)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은해사의 가람
은해사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산지가람처럼 단탑단금당식(單塔單金堂式)으로 가람배치가 되어있다.
대웅전 앞에 있던 오층석탑은 최근 보존을 위해서 부도전으로 이전하였다.
대웅전 앞에는 보화루가 있고 보화루 좌우로 심검당과 설선당이 있으며
그 가운데 장방형의 정원이 있는 중정식 가람배치 구조이다.
중정은 장방형이지만 중간부분에 계단으로 축대를 만들어 놓아서 보화루로 들어오는 참배객이 볼 때
정방형에 가깝게 보여서 대웅전이 더 웅장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준다.
역사 속의 은해사 출신 스님들
은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수와 불사를 거듭한 은해사는 한국을 빛낸 여러 고승을 배출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새 장을 여신 화쟁국사 원효스님과 해동 화엄종의 초조이신 의상스님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현재 조계종의 종조이신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보각국사 일연스님 등이 있다.
(일연스님과 원효스님의 추모 다례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홍진국사가
머무른 뒤부터 선교양종의 총본산으로 사격이 고양되었고
화엄학의 대강백이신 영파성규 스님이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의 본산으로서 그 명성이 높았다.
최근에도 향곡, 운봉, 성철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하였다.
현재에는 비구 선방 운부암, 기기암과 비구니 선방 백흥암 등에서 100여 분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계신다. 또한 한국불교 최고의 경율론 삼장법사과정인
대한불교 조계종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서 10여 분의 석학들이 정진 수학중이시다
은해사 성보박물관
은해사 내에는 보물 제 1270호인 은해사 괘불 탱화,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 후불탱화, 괘불, 신장탱화, 쇠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은해사 성보박물관은 은해사를 중심으로 암자와 말사를 비롯하여
인근 지역의 성보문화재를 수집해서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고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 전시하기 위한 성보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은해사 성보박물관은 1996년 12월23일 착공하여 2003년 4월 19일에 준공하였고, 2005년 5월에 개관하였다.
성보박물관은 건평 140여평의 전면 9칸,
측면 5칸의 전통목조건축 형식에 실내전시공간을 비롯하여 학예실, 수장고등이 마련되어 있다
은해사 역사
신라 41대 헌덕왕이 즉위한 809년에 해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헌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했다.
당시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숨진 원혼을 달래며 왕의 참회를 돕고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창건한 사찰이 은해사의 시초가 되는 해안사이다.
운부암에 가는 길 부근인 해안평이 그 해안사 절터이니 운부암을 가는 길에 한번 관심있게 살펴보기 바란다.
해안사 창건후 고려시대 1270년(원종 11년)에 홍진국사가 중창하였고, 1275년 충렬왕 때 원참스님이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도 1485년 성종 16년에 죽청스님과 의찬스님이 묘봉암을 중창하였으나,
1545년 인종 원년에 큰 화재가 발생해 사찰이 전소되었다.
이듬해 1546년 명종 원년에 나라에서 하사한 보조금으로 천교화상이 지금의 장소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지었다.
이 때 법당과 비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다.
1563년 화재로 소실되고 이듬해에 묘진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589년 선조 22년에 법영대사가 법당을 현재의 자리에
크게 중창하고 사찰의 규모를 확장하는 일대 불사를 이루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