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둘레길 열풍이다. 제주도 둘레길을 따라 지방 곳곳에 둘레길이 만들어졌다. 둘레길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유명한 곳은 왠만한 관광지 못지않게 사람들로 북적대고, 자연의 소리보다 사람들의 왁자지껄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법정 스님은 "완전히 혼자일때 완전한 자유가 찾아온다. 쓸쓸한 고독속으로 들어가라. 아무도 없는 곳을 혼자서 걸어가라"고 말했다 (혼자걸어라 中에서). 혼자 걸을 수 있는 길, 요즘 이런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예전에 동네 뒷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뒷산에서 길을 잃다니 사실은 어이없는 일이다. 뒷산은 보통 야트막한 야산이라 왠만해서는 길을 잃을 일이 없다. 하지만 왠일인지 그땐 그랬다. 동네 주민들만 아침 운동하러 오고가는 곳이라 어두워지니 사람들의 발길도 끊겨버렸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연의 소리가 친근해졌다. 나의 발소리와 숨소리만이 숲을 가득 채웠다. 어둠워질록 숲의 향기는 더욱 진해진다는 걸 알았다. 혼자 걷는 건, 나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낯선 둘레길이 있다. 전북 고창 질마재 길이다.
질마재. 국어사전에는 두가지 뜻이 나온다.
충남지역 방언인 경사가 급한 고개라는 뜻과, 정읍지역 방언인 길마다. 길마란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기구를 말한다. 고창이 정읍과 인접해있으니 후자인듯 싶다.
질마재는 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던 선운리에서 바다로 이어진 길이다. 소금을 팔기 위해 걸어간 길이기도 하다. 총 100리로 약 43.7km에 이른다. 총 4코스로 나뉘어 있다.
<고창 질마재 따라 100리길 코스>
♦ 1코스 : 고인돌길 (총거리 8.89km, 소요시간 2시간 30분)
고인돌 박물관-고인돌 유적지-습지관찰로-생태습지연못-동양최대 고인돌-운곡서원-등산로입구-고창 용계리청자요지-장살비재
♦ 2코스 : 복분자 풍천장어길 (총거리 8.18km, 소요시간 2시간 30분)
장살비재-할매바위-마명마을,반암-아산초교-병바위-호암마을-산림경영모델숲,골든캐슬
♦ 3코스 : 질마재길 (총거리 11.64km, 소요시간 2시간50분)
산림경영모델숲, 골든캐슬-꽃무름쉼터-소요사입구-서당골-미당시문학관-죽염공장-풍천
♦ 4코스 : 보은길(소금길)(총거리 19.83km, 소요시간 5시간30분)
풍천-선운산관광안내소-선운사-도솔쉼터-도솔암-소리재-연천마을-화산마을-진채선생가-소금전시관-갯벌체험마을-좌치나루터
이중에서 가장 오랜 코스인 보은길을 걸었다. 보은길은 소금길로도 불린다.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는 이 지역 도적들에게 소금 만드는 기술을 알려줬다. 도적들은 약탈을 멈추고 소금으로 생업을 꾸렸다. 도적들은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매년 이 길을 걸어서 선운사에 소금 공양을 했다. 그래서 보은길(소금길)이 됐다. 소금을 만드는 이 마을은 지금도 검단리라고 불린다.
선운사 가는길
보은길의 시작은 선운사다.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유명해 4월 말이 되면 꽃놀이 인파객들로 발디딜틈이 없다. 하지만 선운사는 굳이 동백꽃이 아니더라도 사계절이 각기 아름답다. 주차장에서부터 일주문까지는 제법 먼거리지만, 꽃무릇의 평온함과 맑은 시냇물 소리가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도솔암 가는 길의 멋진 하늘
도솔암가는 길. 진흥왕이 수도하였다는 진흥굴
도솔암
도솔암의 암벽 여래상. 부처의 배꼽에 숨겨진 비기를 열면 한양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조용한 절의 아늑한 정취가 살아있는 선운사를 지나 30여분쯤 걸으면 도솔암이 나온다. 도솔암에는 40여미터가 넘는 깍아지른 암벽에 새겨진 여래상이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이 부드러운 부처의 모습이라면 이곳은 우람하고 강하다.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보이는 이 암벽여래상은 동학농민운동과 연관이 있다.
1940년 오지영의 <동학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도솔암 마애불의 배꼽(명치)에는 신비스러운 비기가 숨겨져있는데. 그 비기가 세상에 출현하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배꼽에는 '벼락살'이 있어 누구든지 그 비기를 꺼내는 순간 벼락을 맞아 죽게 된다.
전라도 감사 이서구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배꼽을 열었고 책 한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는 벼락이 내리쳤고 그는 황급히 다시 책을 배꼽에 넣고 봉해버렸다. 그러자 하늘은 신기하게도 다시 고요해졌다.
세월이 흘러 조선말 온 백성은 기근과 학정에 시달렸다. 전봉준을 선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동학교도들은 이 마애불에서 비기를 꺼내기로 했다. 비기를 꺼내는 순간 한양이 망하기 때문이다. 그때 동학교도들이 비기를 얻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당시 동학교도들이 비기를 얻었다는 소문은 들풀처럼 번쳐나가 많은 민중들이 혁명에 가담하게 됐다.
도솔암을 지나 소리재까지 거쳐가면 전형적인 농촌마을과 바닷길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좌치 나루터까지는 유채꽃이 만발한 논밭과 갯벌로 가득한 바닷길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솔암까지 오던 이들이 사라지고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 쓸쓸한 고독의 시간이다.
소리재를 지나면 갯벌길이 시작된다
최초의 여류 판소리 명창, 진채선 생가
소금전시관
질마재길 보은길의 종착지, 좌치나루터
진채선 생가는 4코스의 중간이다. 여기서 피곤한 다리도 풀고, 가져온 간식도 꺼내먹으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진채선은 최초의 여류 판소리 명창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신재효의 제자가 되었으며, 35년 차이를 극복하고 연인이 된다.
좌치나루터까지는 단조로운 갯벌길이 계속된다. 갯벌 체험장도 있어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갯벌에서 조개를 체취하는 여행자들도 보였지만, 그 외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혼자 걸어도 법정 스님처럼 완전한 자유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혼자 걸었던 질마재의 정취는 나를 부드럽고 아련한 미풍의 기억이다.
고창 출신인 미당 서정주는 질마재를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 일 고단해서 지칠때마다
댓잎으로 말아부는 피리소리로
앳되고도 싱싱하는 나를 부르는
질마재, 질마재, 고향 질마재
소나무에 바람 소리 바로 그대로
한숨 쉬다 돌아가신 할머니 마을
지붕 위에 바가지꽃 그 하얀 웃음
나를 부르네, 나를 부르네
도라지꽃 모양으로 가서 살리요?
칡넌출 뻗어가듯 가서 살리요?
솔바람에 이 숨결도 포개어 살다
질마재 그 하늘에 푸르를리요?